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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라서? <역린> 이후의 절치부심 <완벽한 타인> 이재규 감독
2018년 10월 31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재규 감독의 첫 영화 <역린>(2014)은 상업관점에서 보면 성공한 작품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제작비 이상을 회수했다. 이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역린>을 두고 “내게 돈을 많이 벌어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당시 전문가의 판단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의 연출법은 소위 ‘드라마에서 쓰던 방식’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야기의 교합이나 완급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다모> <패션70s>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 하츠>까지 흥행 드라마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의 연출 방식이 도리어 ‘약점’처럼 언급되는 문장들은 그의 자존심에 못내 상처를 냈다.

4년 만에 들고 돌아온 차기작 <완벽한 타인>은 지난 ‘스크래치’를 단숨에 회복하려는 듯, 개봉 전부터 전문가 사이에서 호평을 몰고 다니는 중이다. <역린>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여러 관계를 복합적으로 그리지만, 모든 이야기를 다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관계의 특정 대목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기법을 택했다. 이재규 감독은 전작의 약점을 냉철하게 해부하고 세간의 비평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낸 듯 보인다. 대중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 혹은 자기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그의 오기 사이의 어딘가를 오가며 만들어진 결과물이 <완벽한 타인>이다. 평단은 ‘OK’ 사인을 냈다. 이제 관객의 평가를 기다릴 뿐이다.

*이 인터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역린>(2014)보다 평단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역린>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드라마 연출로 체화한 경험과 영화 연출은 여러 면에서 다르더라.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의 느낌도 다르다는 걸 알았다. 촬영 방식과 편집의 호흡도 마찬가지였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겪어보니, 드라마 PD와 영화감독의 역할은 어떤 점이 가장 다르던가.
드라마를 찍을 때는 촬영에 99%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촬영이 끝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모든 게 소진된다. 당연히 <역린>도 그렇게 찍었고 촬영이 다 끝난 시점에 완전히 탈진돼 버렸다. 하지만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촬영 뒤에 본격적인 후반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 대개의 영화감독은 촬영 뒤 2~3주를 쉬고 편집, 음향, 시각효과 같은 이른바 후반 작업을 시작하는데, 나는 그걸 고려하지 못한 거다. 더군다나 <역린>은 작품 여건상 편집 시간도 5주 정도로 충분치 않았다. 하다못해 밀가루 반죽을 해도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편집을 2~3달 했다면 많이 다른 <역린>이 나왔을 거다.

4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완벽한 타인>을 선보인다. 이제는 완전히 ‘영화적 리듬’에 적응했다고 봐도 될까.
<역린> 때도 이미 다 적응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웃음) 어쨌든 이번에는 좀 더 쉽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역린>은 내가 하고 싶은 영화이긴 했지만 관객과의 소통까지 잘 해낸 작품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여러 방법을 고안했다.

예컨대, 어떤 방법인가.
생략이다. <완벽한 타인>은 7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두 각자의 독립적인 비밀 혹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맞물리게 만들려면 생략이 필요했다. ‘예진’(극 중 김지수)과 ‘석호’(극중 조진웅)의 관계에는 기승전결로 치면 승이 없다. 그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현재처럼 편치 않은 관계에 놓였는지 관객은 알지 못한다. ‘세경’(극 중 송하윤)과 ‘준모’(극 중 이서진)는 기승전결 중 결이 없는 셈이다. 맨 마지막에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 이런 식으로 관계마다 생략을 해보니, 전체적인 이야기가 마치 테트리스처럼 꽉 물리고 균형을 잡더라.


설득력 있는 말이다. 모든 정보를 다 드러내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의 완급 조절에 성공한 느낌이다.
급격하게 빠른 흐름을 타고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20년 전 영화에서나 썼을 법한 느린 템포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더 리드미컬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어쩐지 <역린> 이후의 절치부심처럼 느껴지는데.(웃음)
시대만 다를 뿐 <완벽한 타인>도 <역린>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다중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 <역린>은 ‘드라마 연출자이기 때문에’ 영화가 어떻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면에서는 사실 오기도 살짝 있었다.(웃음)

<완벽한 타인>의 강력한 무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유머일 것이다. 7명의 배우가 빚어내는 화학작용은 물론 각자의 에피소드에 걸친 웃음 포인트가 상당하다.
촬영 초반 1주일은 솔직히 힘들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도 처음 만나는 사이다 보니 40년간 알았던 친구 사이 같지가 않더라. 매일 저녁도 같이 먹고 살도 부대끼고 사우나에서 목욕도 같이하면서 점점 가까워졌다. 신혼부부를 연기해야 했던 이서진과 송하윤은 촬영 전 LP 바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거기서 찍은 사진을 두 사람에게 보내면서 당신들 진짜 신혼부부 같지 않냐며 계속 외부적인 자극을 줬다.(웃음) 시간이 지나니 배우들의 합이 확실히 좋아지더라. 그게 극을 살렸다.

영화에서는 그간 ‘웃긴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서진까지 웃음을 선사한다. 물론 본인이 재미있는 캐릭터라서 보다는, 철저한 영화적 편집 덕이지만.(웃음)
이서진은 아무래도 그간의 자기 모습과는 다른 연기를 해본다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익숙하고 상투적인 역할만 맡다 보니 아무리 출연료를 많이 받아도 흥이 안 났던 모양인데, ‘준모’ 역할은 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물적이고 무식한 사람이지만 여성에게만큼은 눈높이를 딱 맞춰줄 줄 아는 인물이라, 실제 이서진의 모습과는 꽤 간극이 있다. 그래서 역할이 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 것 같다. 물론 ‘투덜이 이서진’의 면모가 말을 툭툭 뱉는 ‘준모’의 어투와 꽤 닮은 면도 있다. 요즘 인터뷰에서 바람둥이 연기를 하는 게 엄청 힘들었다고 말 하고 다니던데, 옆에서 연기하는 걸 직접 본 나로서는 별로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웃음)

웃음을 직조하는 방식과 그 수위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는가. 언론 시사 당시에는 극 중 인물 누군가의 성 정체성과 관련된 대목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 재미있는 장면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싶은 고민스러운 기분도 살짝 들더라.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자칫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친구라면 서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법도 한데, 자꾸 자신과 다른 점을 부각하며 상대를 규정하려 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대목이 없었다면, 영화의 맨 마지막의 메시지가 힘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었던 만큼 관객도 기꺼이 감수해줄 것이라고 본다.

김지수, 조진웅, 염정아, 유해진… 정말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이다. 송하윤과 윤경호도 빠지는 데 없이 제 역할을 해낸다. 캐스팅에 상당히 만족할 것 같다.
처음 투자를 받으려고 할 때는 부정적인 견해가 상당히 많았다. 원작이 이탈리아 영화이다 보니 인물과 에피소드를 한국화해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아 보였던 것 같다. 작품 범용성이 낮을 것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건 무슨 뜻인가.
영화가 너무 도회적인 분위기라, 여러 사람의 입맛을 잘 맞추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가 아니었을까. 결과물을 보면 상상이 되지 않는 걱정들일 것이다. 다행히 좋은 배우가 작품에 붙어주면서 투자에 힘이 실렸고, 연출 과정에서 나 역시 어떤 확신이 생겼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내 바람에 가까운 영화가 나왔다고 본다.

‘세경’(극중 송하윤)을 제외하면 주인공은 모두 40대다. 아무래도 그 나이대가 가장 비밀이 많을 때라고 보는 모양이다.
물론이다. 40대는 삶의 변곡점이 생기는 시기다. 결혼 생활에 권태가 찾아올 수도 있다. 이전에는 충분한 대화를 나누던 부부도 각자의 주장이 강해지면서 방을 따로 쓰는 경우도 많다. 영화에서는 이들의 일탈이 불륜으로 불거져 나올 뿐, 결국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소통이 안 된다는 거다.

가장 가까운 줄 알았던 상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은 누군가의 ‘완벽한 타인’이었을 뿐임을 느끼게 하는 마무리는 어쩐지 좀 씁쓸하다. 결말은 다소간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아마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찝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비밀을 감춰온 극 중 인물의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상대는 나에게 거짓말을 할지도 모르고, 씁쓸하지만 삶은 그런 거라고 인정할 수만 있다면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인가. 그걸 인정하면 위안을 얻을 수 있는가.(웃음)
상대는 나에게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은 그 마음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사실을 부인할수록 우리는 슬퍼진다. 꼭 무언가를 까발려서 고름 짜 내듯 확인하고 대면해야만 관계가 더 발전하는 건 아니다. 물론 어떨 때는 그럴 필요도 있겠지만… <완벽한 타인>은 도무지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들의 비밀이 까발려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흠.
어떤 문학평론가가 <완벽한 타인>을 두고 말하길, 타인은 단순한 나쁜 놈이고 나는 복잡한 좋은 놈이라고 착각하는 게 사람이라더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만 단순한 나쁜놈이고, 나는 복잡한 좋은 놈일 리가 있는가. 그럴 리는 없다.(웃음)

어쩌면 상대에게는 내가 그저 단순한 나쁜 놈일지도.(웃음) 어쨌든 개봉 전 영화에 대한 평이 상당히 좋다. 드라마에 이어 영화에서까지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소 거친 질문이지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타고난 능력형인가. 아니면 노력형인가.
30대 중반까지는 완전한 노력형이었다. MBC 입사 후 조연출 생활을 하는 3년 동안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앉아있었던 적이 없다. 단 1분도 말이다. 24시간 중에 18시간을 촬영하던 때였다. 그러고 나니 현장 스태프들이 나를 조금씩 존중해 주기 시작하더라. 그 후로 40살이 될 때까지는 내가 재능이 좀 있나 보다 싶었다. <다모>가 잘 되기도 했고, 내가 신망하던 선배들도 나에게 재능이 분명히 있다는 말을 많이 해 주셨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어떤가.
40대에 들어서는 스스로 노력도 썩 안 하는 것 같았고, 재능이 있는 건지도 의심이 됐던 순간이 많다. 때에 따라 능력형인 것도 같고, 노력형인 것도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언제나 열등감이 내 인생의 원동력이었다는 거다. 워낙 걱정이 많고 자학하는 스타일이라 남을 괴롭히는 것보다 나를 훨씬 더 많이 괴롭힌다. 2~30대들의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을 땐 정말 너무 괴롭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자기 경쟁자는 다른 감독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젊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물론 자학하는 방식이 썩 좋은 것만 같지는 않아서, 조금은 스스로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두 달 뒤면 나도 50이니까.(웃음)

제작사 ‘필름몬스터’를 차렸고 공동대표 자리를 맡고 있다. 다음 작품 계획은.
회사를 차린 지는 3년쯤 됐는데, 많은 걸 준비했지만 막상 대중에게 선보이는 건 쉽지 않았다. <완벽한 타인>이 잘 돼야 회사가 잘 유지될 텐데...(웃음) 어쨌든 다음 작품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결정됐다. 뛰어난 드라마 연출자 중 영화까지 잘할 수 있는 두 분의 데뷔도 준비 중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그저께가 아내 생일이었다. 밤 12시까지 일을 하고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바람에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다행히 술자리에 있던 친구의 도움(?)으로 일종의 선물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웃음) 새벽 2시에 편의점에서 편지지를 사 편지를 쓰는데 행복하더라.(웃음)

2018년 10월 31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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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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