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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① “영화제는 ‘직장’이 아니다”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최용배 집행위원장
2018년 7월 13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ㅡ편집자 주


<괴물> <26년> 제작자에서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취임 후 곧장 과거 부당 해촉된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 명예 회복
3년 차인 올해 영화제 드디어 원하는 프로그래머 진용 갖춰
프로그래머가 자유롭게 영화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일
영화제 ‘직장’처럼 생각하지 말고 때가 되면 다음 사람이 맡아야


제22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12일(목) 개막했다. 올해 영화제의 특징을 꼽는다면.
‘영화제는 영화로 승부한다’는 기조에 충실해 왔기 때문에 올해만 유난히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라면 애매하다.(웃음) 하지만 프로그래머 진용이 완성됐다는 것만큼은 전과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방향성의 프로그래머로 기틀을 짠 상태에서 처음 치르는 영화제다.

프로그래머(이하 ‘프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듣지 않을 수 없겠다.
주로 활약한 프로는 네 명이다. 유럽 쪽 영화 담당은 김영덕 프로, 미주 쪽은 남종석 프로, 아시아 쪽은 김봉석 프로, 한국은 모은영 프로가 맡았다. 그 외에도 중국 쪽을 다루는 객원 프로, 뉴미디어와 VR 영화를 담당하는 프로, 동남아 쪽을 담당해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김영덕 프로는 특히 부천영화제가 관료 개입으로 몸살을 앓던 때 해고됐다. 그의 복귀 이후 행보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부천영화제의 전성기를 복원하고 승계한다는 의미로 그를 다시 영입했다. 좋은 프로그래머를 잘 기용하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영화를 선별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프로그램 내용이 굉장히 알차다는 느낌이다. 여성이 주인공인 장르 영화를 선별한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SF영화에서의 여성의 재현’이나 대표적인 호러 영화의 거장 3인 작품을 모아둔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 등…
‘시간을 달리는 여자들: SF영화에서의 여성의 재현’은 김영덕 프로의 작품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한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웃음)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 프로그램은 공교롭게도 세 분의 호러 영화 거장인 웨스 크레이븐,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타계하면서 만들어졌다. 우리 영화제 입장에서는 <나이트 메어>(1984)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등 역대급 작품을 만든 그들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당연히 준비해야 했다.

20주년을 맞은 독립영화 전문 배급사 인디스토리 특별전도 마련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판타스틱 영화제’는 그해 만들어진 영화 중 장르물 마니아가 좋아할 만한 작품을 골라 충분히 보여주는 게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우리 영화제는 동시에 국비, 도비, 시비를 받고 있기도 하다. 국내 영화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화인과 함께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본다. 인디스토리의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은 한국의 어떤 영화제라도 했어야 하는 일이다. 그 시절 독립영화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이고, 설립 이후로 이뤄온 성과 또한 어마어마하다.

<우리집 이야기>(2016)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2006)등의 북한 장, 단편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꽤나 독특하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결과물인가.(웃음)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문화 교류를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영화인끼리도 서로 옮겨 다니면서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그 전에 영화제 입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고, 북한 영화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영화라는 건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집 이야기>는 2016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부모를 잃은 삼 남매가 주변 친척과 학교 선생님의 배려아닌 배려로 각자 다른 가정으로 분산될 위기에 처하자 서로 모여 살기 위해 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나 친척, 선생님과 관계맺어 나가는 모습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그렸다. 교조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북한 영화 특유의 체제 선전적인 면모도 적은 편이다. 북한영화 하면 ‘수령님’, ‘원수님’만 외치는 줄 알았는데 꽤 신선하더라. 많은 영화인이 봤으면 좋겠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는 평양의 교통상황을 배경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북한 도시인의 삶이 간접적으로나마 반영돼 있다.

듣기만 해도 굉장히 신선한 내용이다. 관람하는 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들었다.
옛날에는 북한 영화를 보려면 이름,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고 따로 신청해야 했다. 북한영화는 관련 하위법에 따라 ‘특수자료’로 취급됐기 때문에 그 자료에 접근하는 사람의 신분을 제출했던 거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틀고 싶지는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전향적인 태도로 협조해달라고 강하게 제안했다. 결국 개막을 3일 앞두고 노력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 영화제의 큰 성과로 꼽아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웃음) 3년 차 집행위원장의 생활은 어떤가. <괴물>(2006) <26년>(2012)을 만든 유명 제작자였던 당신이 영화제에 몸담은 건 좀 의외였다.
제작자가 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로 온 건 내가 처음이다. 영화 제작자는 주로 손님으로 영화제를 찾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이 자리에 오게 됐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이빙벨>(2012) 상영으로 파행을 겪던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영화인에게 영화제는 정말 소중한 자산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잘 회복시키는 건 물론이고 다른 영화제도 정신 차리고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천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영화제 아닌가.
2004년 당시 새롭게 부임한 부천 시장이 영화제 집행부를 물갈이한 사건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이사회와 총회를 거쳤지만 실제로는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과 김영덕 프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강제 해촉당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주 유사한 경험을 한 셈이다. 그 결과 2005년에는 부천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서울에서 일종의 반(反) 부천영화제인 ‘리얼’판타스틱영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많은 영화인이 부천영화제에 발을 끊었고 내가 취임할 때까지도 그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그때까지도 공식적인 보이콧을 해제하지 않았을 정도다.

아무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취임 후 영화제 창립 당시 집행위원장과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을 모셔 공로상을 드렸다. 상징적으로 명예를 회복해 드린 거다. 김영덕 프로도 다시 영입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도 공식적으로 보이콧을 해제했다. 그게 20회 때 이야기다.(웃음)

어쩌면 당신이 온 뒤로 부천영화제가 새롭게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웃음) 그간의 성과에 대해 자평하자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어서 참 괴롭다.(웃음) 그래도 과거의 아픔을 청산했고, 프로그래머 진용을 갖췄으며, 시민들을 위한 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작년에는 시 전역으로 행사장을 확장해보기도 했다. 물론 관객의 어마어마한 반발에 부딪혔지만.(웃음) 영화를 보기 위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서 올해는 행사장 규모를 다시 좁혀서 관객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려 한다. 어떤 쪽을 더 선호하는지 말이다.

여전히 이런저런 시도 중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이다. 부천시민들에게 우리 고장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참 훌륭하더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영화제는 영화인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지만 공공의 자산이기도 하니까.


꽤 많은 세금이 투입되는 행사이니, 당연히 그렇다.
그래서 소수의 집행부가 영화제를 마치 자신들의 직장처럼 여기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여건은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제를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하며,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무엇인지 공론화할 필요는 있다. 단순히 영화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일시적으로, 외부의) 힘을 모아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영화제의 미래를 위해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영화제도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전문성 있는 인력이 오랫동안 집행부를 맡아 그들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내 생각에는 매번 ‘그보다 더 잘할 사람’을 발굴하고 충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점점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게 가능케 하려면 결국 필요한 건 시스템이겠다.
조직을 시스템화하면 누가 신입 집행부로 오든 바로 기존의 것을 계승하고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영화제를 사유화한다면 그 과정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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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3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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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배 집행위원장 사진 제공_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진_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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