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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류에 딴지 걸고, 역행하려 정진하는 중 <나라타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2018년 3월 18일 일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원작 소설로 영화로 널리 알려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10년이 넘는 준비 끝에 <나라타주>를 내놓았다. <나라타주>는 어쩌면 평생 한 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사랑에 빠진 세 남녀의 깊은 감정선을 따라가는 정통 멜로다. 감독은 배우가 내뱉은 말보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주목하여 마음 속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만화 실사화와 달달한 판타지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 영화계에서 진지한 멜로를 고수하는 것이 감독에게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서사 강하고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 모호하고 업다운 없는 일상적인 것에 관심이 간다고 한다. ‘시류에 딴지를 거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용케도 영화를 계속함에 가끔 자신을 대견해 하며 시류에 역행하려 정진 중이다.

<나라타주>를 연애의 생생한 감정들을 담아낸 사실적인 사랑 영화라고 표현했다. 영화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면.
<나라타주>에는 세 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여주인공 ‘이즈미’(아리무라 카스미)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 지도 교사였던 ‘하야마’(마츠모토 준)을 좋아했었고, 그 마음을 지닌 채 대학교 진학을 한다. 어느날 연극을 도와주러 모교를 방문하고 다시 ‘하야먀’와 재회한다. ‘하야마’의 경우 ‘이즈미’의 감정을 알고 그도 갈등하는데 아내에 대한 책임감으로, 선생이라는 자신의 위치로 마음을 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즈미’의 새로 사귄 남자친구인 ‘오노’(사카구치 켄타로)가 있다. 그는 ‘이즈미’의 사랑을 의심하고 질투에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나라타주>는 시마모토 리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그녀가 여대생 때 발표한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고생에서 여대생이 되고 점차 성숙해지면서 마치 열감기에 걸린 것처럼 성인 남성을 사랑하고 좇아가는 느낌이 있다. 열애의 현장을 그대로 전한다고 할까. 소설이 누구나가 경험을 할듯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연애의 보편적인 요소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점에 끌렸다. 사랑의 감정은 장애물이 있을수록 극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그런 숨이 막힐 듯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탐구하는 게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등장인물들의 꽉 막히고 답답한 연애가 소위 ‘고구마’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연애가 저런 것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을 수도, 한편으론 질척인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애라는 게 멋지고 달콤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답답하고 질척이고 이런 것들이 연애의 리얼한 일부분이고 실체이기도 한데, 그 점을 영화에 표현해보고 싶었다.


영화화하기까지 10여 년 넘는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들었다. 스크린에 옮기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보다 캐스팅이다. <나라타주>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상당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흥미를 더할만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특히 남녀 주인공 ‘이즈미’(아리무라 카스미)와 ‘하야마’(마츠모토 준)를 누가 연기할지가 중요했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그 감정선을 섬세하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캐스팅한 결과에 만족하는가.
당연히 만족스럽다. 년수로 따지면 12년 전에 기획된 작품으로 ‘아리무라 카스미’가 데뷔하기도 전부터다. 그녀가 데뷔한 후, 10년 정도 준비했는데 그녀와 함께한 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소설 속 ‘이즈미’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었고 현장에서 질문이나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 목소리가 가끔 내게 들리곤 했었다. 그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적은 말수에도 순간순간 나타나는 표정이 있었는데 그 순간 인간미가 느껴졌었다. 본인도 깨닫지 못한 아름답지 않은, 못된? 표정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드문 배우였다.

‘못된’ 표정이라 하면. 어떤 의미인지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녀가 연기하는 ‘이즈미’의 표정에서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여자의 무서운 얼굴을 보곤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상대를 궁지로 몬다고 할까. 그런 모습을 보면 남자는 주로 외면을 하려 하고, 남자의 외면을 마주한 여자가 보여주는 험악함과 차가움이 있다. 그런 모습을 그녀(아리스마 카스미)에게도 발견하곤 했었다. 남자로서 보고 싶지 않은, 무서워하는 얼굴이다. (기자 주: 통역의 한계 상, 못된 얼굴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여자의 집요하고 독한 모습이라 생각됨)


영화는 일생에 단 한 번, 모든 게 망가져도 좋은 사랑과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결말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이즈미’에게 ‘하야마’는 단 한 번의 사랑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야마’는 부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의미하는 바는.
나 역시 기혼이라 ‘하야마’의 심정이 이해된다. 그건 가정을 지닌 남자라면 공감할 거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영화적인 결말을 생각한다면 해피엔딩으로, 즉 두 사람의 사랑이 맺어지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그리고 싶었다. 이건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둘(이즈미, 하야마)의 감정은 서로 같다는 것인가.
그렇게 봤다면 맞지 않을까. 마지막에 바닷가를 거닐면서 ‘하야마’가 “그건 아마 사랑이 아니었을 거야”라고 ‘이즈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말은 그(하야먀)의 진심이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극 중 등장인물이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이 모두 다 사실은 아닐 거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들이 모두 진심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극 중 인물이 진심을 말하는 건지, 하얀 거짓을 말하는 건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평소 영화를 보면서 극 중 인물의 마음속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것을 좋아한다. 등장 인물 간에 이야기가 오가는데 말 자체에 진실이 있다기보다는 표정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그래서 배우의 표정을 통해 마음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이를 관객이 보고 그들의 마음속 목소리를 눈치채줬으면 싶었다.

음, 그들이 각기 다른 길을 선택한 채 마지막 밤을 보내는데, 그 점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미처 그들의 마음속 목소리를 못 들었나 보다.(웃음)
(웃음) 그건 정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 아까 말했듯 판단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니까.

<나라타주>가 어떤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알겠다. 하지만 요즘 시류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정적이고 느린 편이다. 흔히 말하는 웃음 포인트를 배제한 이유가 무엇인가.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랑 이야기를 아주 고전적인 스타일로 찍고 싶었다. 요즘 연애라는 것이 속도가 빠르고 드라이한 측면도 강하다. <나라타주>는 현 세태와는 정반대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전적인 모습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관객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극 중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이즈미’, ‘하야마’와 달리 ‘오노’(사카구치 켄타로)는 감정이 겉으로 그대로 표출되는 인물이다. 즉흥적이고 이기적인 모습, 한편으론 구차스럽고 찌질해 보이는 면도 있다.
그는 ‘이즈미’와 ‘하야마’의 애매모호한 관계, 즉 서로 끌리면서도 확실히 드러내지 않는 관계에 얽히게 된 피해자라 생각한다. 원래 ‘오노’는 뭐든지 능숙하고 스마트한 캐릭터다. 단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로 무너지곤 하는 인물인 거지. <나라타주>가 일본에서 상영할 당시 ‘오노’에 감정 이입한 남성 관객분이 많았다. ‘찌질’하다고 표현했는데 그 모습 역시 ‘이즈미’에 대한 애정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당신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일 것이다. 아주 좋아하는 영화다. 최근작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2016)도 인상 깊게 봤는데, (좀 전에 얘기를 듣기 전까진) <나라타주>도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처럼 사랑과 욕망이 따로 간다고 느꼈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를 인상 깊게 봤다니 감사하다. <나라타주>에서 욕망과 사랑이 별개라고 느낀 건가? 그건 ‘이즈미’가 ‘하야마’가 아내에게 돌아가겠다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녀(이즈미)가 선생님(하야마)께 안기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하야마’는 이를 받아들인다. ‘이즈미’에 대해 애정이 있기 때문에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단지 욕망으로 바라 볼 수도 있다. 아까 말했듯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정답이 없다고 본다. 연애라는 건 특히 그렇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부적절한 관계가 많은 거 아닐까. 스스로가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애매모호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욕망과 사랑에 관한 평소 개인적인 생각은.
<나라타주>를 만들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그건 사랑에 몰두할 경우 가장 우선 하는 게 욕망이라는 거다. 다시 말해 욕망을 가장 우선시 하는 순간이 연애의 순도가 제일 높은 순간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떤 장면인가.
후배인 ‘유즈코’가 자살 기도해서 ‘이즈미’와 ‘오노’가 병원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선생인 ‘하야마’가 조금 기다리면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지만 ‘오노’가 ‘이즈미’의 팔을 잡아 당겨 떠나는데, 그 모습이 강하게 다가왔다. 같이 연극을 하던 동료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오노’는 사랑의 라이벌인 ‘하야마’를 앞에 두고 질투하는 데 급급하지 않나. 그런 슬프고 비통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리석게 행동한다는 사실 자체를 직시하지 못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정통 멜로 영화는 소위 ‘돈이 안 되는’ 장르다. 제작 시도 자체가 드물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인기 만화 실사화 혹은 판타지 장르가 주류 아닌가.
솔직히 만들기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 지적했듯 만화 실사화나 달달한 러브스토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그렇지 않은, 한편으로 질척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1950년대 활동했던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사랑 영화가 아름답기만 한 작품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 혼자 시대에 딴지를 건다고 할까. 시류에 역행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진하려고 한다. (웃음)

당신 작품의 지향점인가 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애매모호하면서 업다운이 없는 비일상이 아닌 일상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게 최근의 시류와는 정반대인 거지. 가끔 ‘용케도 아직 만들고 있구나’하고 대견하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한국 영화 혹은 감독이 있다면.
홍상수, 허진호 그리고 이윤기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그들로부터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그분들이 계속 작품을 만들고 계시기에 나도 고무된다! 무 자르듯이 단호한 것이 아닌 애매모호함, 어딘지 납득이 안 가는 그런 것들에서 인간다움을 느낀다. 서사가 강하고 구원 등의 거창한 메시지를 담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 없다.

최근 인상적인 일이나 기쁜 일을 꼽는다면.
고향이 구마모토 현인데 2년 전에 지진이 여러 번 발생하고 많이 파괴됐었다. 이후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서 아이가 많이 태어났다. 마치 새싹이 돋듯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 지진이 남긴 상흔을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특히 아이들의 표정이 인상이 남는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다.

2018년 3월 18일 일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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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국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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