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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앞으로가 더. <침묵> 박신혜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나이 서른은 되어야 영화에 ‘제대로’ 발을 들일 줄 알았단다. 여러 드라마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지만, 어쩐지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한 뒤에야 깊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던 차. 이전보다 감정은 섬세하고 사람은 더욱 궁금해지던 그런 때. 예상치도 못하게 대선배 최민식과 함께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 영화 <침묵>이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싶은 설렘, 서른 이후의 앞으로가 더 궁금하다는 말, 이해가 된다.

조금 전 당신 소속사 ‘솔트’에서 명함을 받았다. 하단에 기아대책 후원 번호가 써 있더라. 엔터테인먼트 회사 명함에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는 건 처음 본다.(웃음)
같은 회사 소속인 나와 (김)정화 언니가 기아대책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종교도 같은 기독교라 좋은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했다. 회사 이름 ‘솔트’도 ‘빛과 소금’ 할 때 그 소금이다.

너무 인상적이라 <침묵>에 대해 질문하기도 전에 그만 먼저...(웃음)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부터 들어보자.
음악, CG까지 다 들어간 완성본은 확실히 편집본과 다르더라. 관객 입장에서, 내 연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왜 저렇게 연기했지? 저것보다 좀 더 좋은 테이크는 없었던가? 하게 되더라.

아쉬운 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늘 부족하고 아쉽다. 무엇보다 스크린 속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7번방의 선물>(2012)로 영화 출연의 끈은 놓지 않았지만, 워낙 어릴 때 데뷔했기 때문에 서른 살은 넘어야 영화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많은 걸 경험하고 좀 더 어른이 된 다음 말이다.

서른 살이 어른의 기준인가.(웃음)
꼭 그렇다기보다는…(웃음) 배우라는 직업도 생활 패턴이 비슷해서, 촬영 전에는 운동과 몸 관리 같은 준비를 하고 촬영을 시작하면 촬영장만 오간다. 게다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학업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느라 새로운 걸 경험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못 해서 졸업하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는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안 해본 스포츠도 즐기고… 그렇게 시간이 쌓여가는 걸 경험하고 싶었다.

워낙 어릴 때 데뷔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다.
요즘에는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그게 걱정이다. 나는 그나마 중학교 2~3학년 때쯤 데뷔했다. 초등학생 조카가 너무 예쁜데 연예인 시키면 어떠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러지 마시라고 한다. 정말 반대다.

어떤 점이 걱정스러운가.
그 나잇대 아이들이 그냥 춤추고 놀면서 즐길 수 있도록 뒀으면 좋겠다. 아직 경험하고 보고 즐길 게 너무 많은데 굳이 TV 안에 가둬야 한다는 게 싫더라. 물론 정말로 연예인이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열정 있는 친구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즐거움이 ‘일’이 될까봐.
맞다. 다행히 나는 철이 없어서 스무 살까지도 일이 마냥 재미있었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하지만 드라마라면 시청률, 영화라면 스코어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는 시기가 온다. 책임감이 생기는 거다. 나 혼자 재미있는 게 아니라 시청자와 관객도 재미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촬영장에서 얼마나 내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고, 사소하지만 꼭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그런 걸 깨닫는 순간 마냥 즐거울 수는 없다.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를 먹으며 ‘경험’에 대한 갈증은 좀 채워졌겠다. 무엇보다 <침묵>은 최민식이라는 대선배와 함께 연기할 기회를 줬다.
최민식 선배와 함께 연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현장은 늘 새로웠지만 그중에서도 <침묵> 현장은 유독 새로운 경험이었다.

최민식은 후배들 사이에서 워낙 존경의 대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협업 소감이 궁금하다.
최민식 선배는 존재 자체가 공부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 목숨값이 다 같은 줄 아냐’는 대사는 선배가 직접 써온 거다. 그런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그 외에는 말로 하는 조언보다는 배우가 현장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줬다. 워낙 든든했다.

대선배와 함께한다는 것 외에도, 변호사 ‘최희정’이라는 역할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광고 이미지가 아닌,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아야 했다. 영화에서는 설명되지 않았지만 ‘최희정’은 본래는 구청에서 아이들 복지를 담당하는 변호사였다. 출세나 성공보다는 신념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변호사 하면 대개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6시간 동안 전화만 붙잡고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에 끌렸다.

법정신을 다수 소화해야 했던 만큼 차분하고 논리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야 했을 것 같다.
이전까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기였다면 이번에는 감춰두고 꾹꾹 눌러 압축시키는 듯한 느낌으로 연기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에 비하면 제약이 많다. 인물 관계가 다방면으로 뻗어있고, 표현해야 하는 감정도 명확하지 않은 편이었다. 감독님도 감정이 밖으로 많이 표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화가 난 상태를 연기할 때도 그 화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게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그 감정을 느끼면 좋은 연기일 것이다.

정지우 감독이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말도 했다.
<침묵>을 찍는 동시에 감독님의 전작 <4등>을 봤다. 촬영 중간중간 ‘최희정’이 하루 6시간 동안 전화를 받고 있는 모습이 과연 어떨지 끊임없이 이야기해주셨는데, 그런 디테일한 설명이 실제 영화에서 어떻게 현실감 있게 살아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드라마 <피노키오>(2014)에서 기자를, <닥터스>(2016)에서 의사를 연기했다. 이번에는 변호사다. 신념을 가진 전문직은 두루 섭렵하고 있다.
정말 신기한 게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꼭 잔상이 남는 책이 있다. 머릿속에서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런데 ‘좋다’ 싶으면 다 전문적이다.(웃음) 기자, 의사, 변호사가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직업이라 더 도드라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변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쁜’ 역할에 대한 갈증은 없나.
사실 못된 역할도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정의로운 사람도 자기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히 생긴다. 뒤돌아서지 말아야 할 때 내 욕심 때문에 뒤돌아선다거나, 피해서는 안 되는 상황을 피하기도 한다. 드라마의 여성 주인공은 보통 그런 상황에 정의롭게 맞부딪히는데 최근 본 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그러지 않아서 통쾌하더라.(웃음)

10대 시절에는 멜로 감성을 표현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땐 남자친구라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고 떡볶이 사 먹고 스티커사진 찍는게 제일 재미있었다. 이제는 사랑의 설렘을 경험해본 나이가 됐다. 18, 19살 때 표현하는 멜로 감정과 10년이 지난 지금 표현하는 멜로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비단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현장의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예를 들자면.
아는 이모나 삼촌, 아니면 그저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던 분들이 이제는 궁금하다. 3~40년 동안 연기를 해온 선생님들은 어떤 느낌일지도 알고 싶다. 엄마의 30대와 40대가 어땠는지도 알고 싶다. 내가 모르는 나날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좀 더 폭넓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궁금하다. 앞으로가 더.(웃음)

아역으로 시작해 성인 배우로 탈 없이 자리잡았다. 그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점이 있다면.
엄마가 늘 말씀해 주신다. 나 혼자 잘해서 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도우면서,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받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면.
아빠와 저수지 낚시를 간다. 어릴 때는 정말 하나도 재미 없었다. 아빠가 낚시를 시작하면 나는 동네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주워와 캠프파이어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밤낚시의 재미를 알겠더라. 새소리, 풀벌레 소리, 뒤쪽 산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그러다가 야광 찌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입질을 할 때 낚싯대를 낚아채는 그 재미…(웃음) 아빠가 얘기한 손맛이 이런 거구나 싶다.

쉬는 날에는 영화도 자주 보는지.
최근에는 <내 사랑>(2016)을 봤다. (영화를 떠올리며 아련하다는 듯) 아아 정말…(웃음)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북 오브 헨리>(2017)라는 작품도 재미있게 봤다. 양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옆집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방법을 써내려가던 소년이 어느 날 종양으로 죽는다. 소년의 엄마가 대신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다.

영화 요약을 상당히 잘한다.(웃음) 장르성이 짙은 작품도 좋아하는가.
직업상 그런 작품도 봐야하는데 사실 너무 잔인한 건 잘 못본다. 미드 <24시>의 ‘잭 바우어’ 역으로 나온 키퍼 서덜런드가 나온 <미러>(기자 주: 한국 영화 <거울속으로>(2003)를 리메이크한 할리우드 작품)도 실생활과 너무 밀접한 공포물이라서 못 봤다. <곡성>도 마찬가지다. 길 가다가 무서워진다.(웃음)

다음 작품 계획이 있나.
드라마도, 영화도 다 열어놓고 기다린다. <침묵>이 개봉하면 아마 새로운 시나리오도 들어오지 않을까?(웃음)

그러길 기대한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띠리링 문 여는 소리에 고양이들이 마중 나와있다. 첫째 고양이를 어깨에 들쳐메고 엉덩이를 툭툭 쳐주면 꼬리를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한다.(웃음) 드라이브할 때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앨범이 나왔을 때도 행복하다. 그래서 요즘 들을 음반이 많다.

예를 들면.
내 친구 용준형이 앨범을 냈다. 그동안 분위기 있는 음악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밝고 기운찬 음악을 해서 참 좋다. 그 친구의 행보가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에픽하이, 멜로망스, 후디도 좋아한다. 음악 듣고 영화 보기 참 좋은 계절 가을이다. 그런 의미에서 <침묵>을 보기 가장 좋은 때!(웃음)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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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솔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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