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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영화 아니에요 <중독노래방> 이문식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문식이 공단 시위 현장을 찾아다니며 대오를 정렬하던 왕년의 운동권이라는 사실만큼 낯선 사실, 그가 코미디 아닌 영화의 주연으로 대중 앞에 선다는 점이다. <달마야 놀자>(2001) <황산벌>(2003) <마파도>(2005) <평양성>(2011)으로 이어지는 코미디 영화의 계보를 완성한 맛깔 나는 코미디 전문 배우가 중년에 들어 독특한 장르 영화 <중독노래방>에 도전했다.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다.
마약도 도박도 하질 않아 뉴스에 날 일이 없다 보니 그런 것 같다.(하하하)

음?(하하하) 6년 만에 <중독노래방>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TV 홍보에 열심인 것 같더라.
<냉장고를 부탁해>와 <인생술집>에 출연했다. 강호동과 박수홍이 진행하던 <야심만만>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젊었을 때라 감이 괜찮았는데, 이제는 예능이 쉽지 않더라.(웃음)

<야심만만>…정말 오랜만에 듣는 프로그램 이름이다.(웃음)
그때 악플에 제대로 시달렸던지라 기억에 남아있다.

어떤 이유로.
<범죄의 재구성>(2004) 홍보 차 출연했을 때다. 당시만 해도 MC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게스트는 무조건 받아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뭣 모르고 내 성격대로 받아 쳐버리는 멘트를 한 거다. 강호동이 “씨름 한 판 할까요?” 하면 “아 그래 합시다. 대신 말씨름으로” 하는 식이었다.(웃음) 촬영 때만 해도 담당 PD는 무지하게 재미있다고 했는데, MC들의 당황한 얼굴이 방송으로 나가면서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친구들한테 전화가 오더라. 인터넷이 난리가 났으니까 들어가 보라고.
주로 무슨 내용이던가.
처음엔 겁이 나서 찾아보질 못하다가,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 살짝 인터넷에 들어가 봤다. 주로 “이문식 조연으로 좀 뜨더니 MC 자리 꿰차려고 그런다”라거나 “알고 보니 전라도 출신”이라는 말이었다. 그때 정말 상처받았다.

충분히 그럴만한 내용이다.
<달마야, 서울가자>(2004)를 찍을 땐데 마음이 하도 안 좋아서 함께 촬영하던 신현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도 악플 때문에 힘들던 시절이 있지 않나. “야, 재밌자고 던져본 말 때문에 죽겠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더니 간단하게 대답하더라. “형, 관심 꺼. 그냥 보지 마”(하하하) 그 후로도 야구 스코어가 궁금할 때 정도가 아니면 인터넷에 거의 들어가질 않는다. 집에서는 TV도 잘 안 본다.

TV까지?
대안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덕분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생술집>에 출연하는 김희철이 누군지도 잘 몰랐다.(웃음) 검색해보고 알았다.

인터넷도, TV도 멀리하다 보면 시류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
예능프로그램이나 개그프로그램에 주로 출연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점이 문제가 될 거다. 시류를 알아야 감각적으로 상황을 받아 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배우는 좀 다르다. 유행은 매니저와 코디를 통해 전해 들어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연기해낼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TV는 보지 않아도 될 프로그램이 너무 많지 않나. 채널만 돌리다가 몇 시간이 간다.(웃음)

그럼에도 방송 출연을 결심한 건 <중독노래방>에 대한 애정 때문이겠다.
물론이다. 그런데 며칠 전 공개된 <인생술집> 예고편을 보고 걱정이 좀 생겼다.
어째서.
내가 (홍)석천이의 이마를 ‘팍’ 하고 때리는 장면이 나오더라. 영락없이 깐죽거리는 후배를 한 대 때리는 선배의 모양새인데,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촬영 중에 그런 상황은 없었다. 예고편을 몇 번 돌려보면서 파악해보니 그제야 알겠더라. 석천이가 범인, 내가 형사 연기를 하는 도중에 그의 이마를 때리는 지점을 다른 장면과 연결해 편집해 놓은 거였다.

한 번 악플에 시달리고 나니 괜한 구설에 오를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걱정된다. 특별한 죄를 짓고 산 것도 아닌데 욕 먹을까봐.(웃음)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더 그렇다.

별 일 없을 거다.(웃음) 복귀작으로 <중독노래방>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해보자.
앞서 여섯 개 정도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하나같이 흥행이 안 됐다. 우여곡절 끝에 <중독노래방> 시나리오를 만났다. 기존에 소화하던 코믹한 캐릭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도전욕이 생겼다. 물론 망설여지기도 했다.

망설인 이유는.
이야기 수위가 너무 셌다. 배우 입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연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애 아빠가 되다 보니 가끔은 ‘순한’ 영화를 찍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두 아들이 “아빠 요즘 무슨 영화 찍어? 노래방 얘기야?” 하는데 “어 뭐 그렇지~”하고 머뭇거리게 되더라.(웃음) 청소년관람불가 작품이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못 볼 영화다.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된다. 사연 있는 노래방 주인 ‘성욱’은 그간 당신이 선보인 유쾌한 모습과는 판이하다.
어쩌면 역동적이지 못하고 무기력한 캐릭터다. 그래서 아쉬움도 있었다. 나는 ‘성욱’보다 훨씬 능동적인 성향이라서 연기하는 동안 답답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구타유발자들>(2006)이나 <마파도>(2005)를 찍을 때는 사건 사고도 많고 액션신도 꽤 있었다. 그런 촬영을 소화하고 나면 그날은 뭔가를 좀 해낸 것 같은데, <중독노래방>처럼 잔잔하고 조용한 작품을 찍을 때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웃음)
촬영을 위해 끊었던 담배를 피웠다고 들었다. 흡연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3~4년 담배를 끊었다가 촬영을 위해 담배를 피우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느낌이 들더라.(웃음) 그리워했던 맛이었다. 하지만 고충이 훨씬 컸다. 식사 후 한 대 정도 피는 담배야 맛있지만, 상대 배우와 연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이 각도에서 피우고, 저 타이밍에 다시 피우니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나 견디기 어렵더라. 촬영 끝나고 바로 다시 끊었다.

국내 개봉도 전에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먼저 호평받았다. 고생한 보람이 있겠다.
왜 호평했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이유가 궁금하다. 서로 말이 잘 안 통해서 그런가?(하하하) 영화제에서 후한 평가를 받는 작품이라고 해도 일반 관객의 코드와는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 나도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을 처음 봤을 때 “뭐야 이게?” 싶었다. 사람을 파는 정육점이 나오질 않나, 지붕에서 활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질 않나… 나중에 보니 유명한 영화더라.(웃음)

영화제에서 호평받는 것과 흥행 또한 별개의 문제다.(웃음)
흥행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다. 장르도, 표현 수위도 흥행을 바라기는 어렵다. 작품성 측면에서 인정받는다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작품성과 흥행성, 어느 쪽에 더 욕심을 내는 편인가.
흥행은 결과론에 불과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중에서도 “뭐 이런 게 천만 명씩이나?” 싶은 게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영화가 백만 명밖에 안 들었어?” 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작품성을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

작품성 면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평가하는 출연작이 있다면.
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2006)가 기억에 남는다. 당시 경쟁사 드라마 <주몽> 시청률이 3~40%를 오갈 때라 우리 작품 시청률은 7%에 불과했다.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모양새가 됐지만(웃음) 가끔 그 작품의 팬을 만났을 때 느끼는 흥분은 정말 대단하다. 필리핀에서 만난 팬이 <101번째 프러포즈>때 내가 소화했던 대사를 줄줄 외는 걸 봤을 때의 감정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꽤 명대사였나보다.(웃음)
내가 명대사에 목마름이 있는 편이라 그런 걸 잘 기억한다. (웃음) 오죽하면 드라마 <다모>에 함께 출연한 (이)서진이와 (김)민준이의 대사도 다 외고 있다. 나에게는 맨날 “아이고 형님!” 같은 대사밖에 안 주니까.(웃음) 왕 역할도 한 번 못 해봤다. 양반 역할을 맡아도 곧 죽어버린다.(하하하)

한정된 배역에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걸어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욕구는 늘 있다. 왕이나 양반뿐만 아니라 <유주얼 서스펙트>(1995)의 케빈 스페이시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은데 말이다. 나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알고 보면 연쇄살인범이나 사기꾼이라면 관객이 훨씬 잘 속지 않겠나. 그런 때가 오겠지 뭐! 정 안되면 내가 제작이라도 해야지.(웃음)

코믹한 이미지의 배우로만 기억되는 것이 속상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그런 현상에 나 자신이 지대하게 공헌했다고 본다. 특히 <구타유발자들> 이후에는 작품을 쉬는 한이 있더라도 내 연기의 방향성을 고민했어야 하는데, 계속 쉬운 판단만 했다.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극도 워낙 잘 어울린다. 특별히 소화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나.
드라마 <한명회>를 너무나 감명 깊게 봤다. 물론 한명회는 단종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존재지만, 고 정진 선생께서 “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대사를 외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언젠가 꼭 한명회를 연기해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옛날 인물 중에는 심지 곧고 멋있는 사람이 참 많다. 왕이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댓돌에 머리를 박고 죽어 버리는 신하도 있었다. 요즘에는 간신배가 너무 많아서… 아! 이건 정치 얘기라 자제해야겠다.(웃음)

태생적으로 정치 이야기를 자제할 수 없는 사람 아닌가.(웃음) 유명한 운동권 출신 배우 중 한 명이다.
한양대에 87학번으로 입학했을 때 임종석 비서실장이 전대협 의장이자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에는 어지간한 요즘 아이돌 스타보다 인기가 많은 분이었다.(웃음) 그때 내가 학생회에 들어가면서 각종 시위대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시위 대열을 관리하고 본대를 보호하는 역할이었다.
어릴 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던 건가.(웃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돈, 권력 같은 속물적인 가치만 좇으며 살았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었을 정도다.(웃음) 공교롭게도 육군사관학교 체력장에서 떨어졌고 차선책으로 항공대에 입학했는데 적성에 영 안 맞더라. 1년 정도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서 방송국 PD가 돼 예쁜 탤런트도 만나고, 돈과 권력을 탐하고 싶었다.(하하하) 우연한 기회로 연극영화과의 존재를 알게 돼 진로가 바뀌었지만.(웃음)

그랬던 당신이 자녀를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했다니, 상당한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한 모양이다. 물론 대안학교도 대안학교 나름이겠지만 말이다.
그 애들은 나처럼 속물적인 가치만 좇고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운이 좋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일 뿐이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부모는 물론 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는 비록 나라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는 12년 과정의 대안학교지만, 8년 동안 담임이 바뀌지 않고 일관적으로 교육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등록금도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단계를 선택해 납부한다. 박봉을 감수할 정도로 자기 일에 자긍심을 느끼는 교사들 덕분이다.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당신에게도 의미 있는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내와 공동육아를 하면서부터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따뜻해졌다. 특히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낸 이후로는 나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도 받는다.

어떤 점에서.
대안학교 학부모들과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 나는 그 날을 ‘5.25 사변’으로 부른다.(웃음) 아무도 태클을 안 걸었는데 혼자 점프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뚝 떨어졌다.(웃음) 드라마 두 작품에 출연하기로 한때라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촬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신경이 거슬리고 짜증이 나 잠도 안 오더라. 당시에는 주연으로 출연하는 작품이 자꾸 실패하고, 드라마 <선덕여왕>과 <자이언트>로 인지도를 가까스로 다시 끌어 올려놓은 상황이었다.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어떻게 견뎠나.
다리가 부러지고 나니 아무래도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더라. 그 기회에 마음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1일 1식 같은 식이요법에도 도전하고,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놀아줬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몸이 아픈 게 잘된 일은 아니지만 꼭 나쁘기만 한 일이었을까? 싶다. 그 후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 것 같다.
작품이 좀 안 들어오면 어때? 연극 하던 시절만큼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아닌데! 집사람과 함께하고, 아이들 건강하면 됐지 싶더라.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니 조급함이 줄어들었다.

연기 외의 분야에 관심을 둬 본 적은 없는지.
배우라는 직업을 소화할 역량도 모자라다.(웃음) 연기라는 게 어차피 허상의 존재를 좇는 작업이기 때문에 완벽한 경지에 이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완벽한 수준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오죽하면 배우 배(俳)자에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를 쓰겠나.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거다.(하하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연기도 하고, 영화도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가능한 거고.(웃음)

하지만 ‘꿈’은 있을 것 같다. 가치지향적인 사람이잖나.(웃음)
사회가 건강해지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연인 이문식이든, 배우 이문식이든 말이다.

혹, 사회적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하나.
하고 있긴 하지만 어딘지 밝히지는 않겠다.(웃음)

알겠다.(웃음) <중독노래방>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전한다면.
이문식이 나오니까 가볍고 코믹한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극장을 찾는다면 손해 봤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기존의 상업영화와 다른 독특한 장르 영화임을 알고 영화를 감상하러 와줬으면 좋겠다.

요즘 행복한 순간은.
아이들이 캐치볼 하자고 불러낼 때.(웃음) 또 큰 놈이 더이상 힘으로 제압되지 않을 때! 이놈이 많이 컸구나 싶다.


2017년 6월 14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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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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