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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액션’이라는 타이틀을 뛰어넘다 <악녀> 김옥빈
2017년 6월 8일 목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김수진 기자]
고진감래. <악녀>의 히로인 김옥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말인 듯싶다. 뭇 남성들도 해내기 어려운 액션을 CG나 대역 없이 소화한 그녀의 발 앞에 칸 레드카펫이 또 다시 펼쳐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러나 정작 본인은 ‘여성 배우로서 액션에 도전한다’는 타이틀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액션에 이끌려 작품을 택했다는 그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액션’ 앞에 붙은 ‘여성’이라는 단어가 껄끄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김옥빈은 ‘여성 액션’이라는 타이틀을 뛰어넘은 게 분명하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사실 현장에서는 열심히 연기했어도 나중에 어떤 식으로 완성될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심지어 이번 작품은 촬영하는 내내 한번도 편집실을 찾지 못했다. 정병길 감독님(이하 정 감독님)이 오지 말라고 하더라. 깜짝 선물을 주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악녀>가 칸에 초청됐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정 감독님이 날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면 아주 성공적인 계획이었다.(웃음)

시나리오와 거의 흡사하게 완성됐다고 들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일단 신기했다. 계속 액션신만, 그것도 긴 시간 등장했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다루는 무기도 다양하지 않나. 정 감독님이 이걸 다 표현할 수 있어?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과 동시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를 결정한 투자사도 마찬가지다. 여성 액션물, 남들이 기피하는 길에 도전한 것 아닌가. 정 감독님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왜 <매드맥스>(2015)같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 거냐고. 여러모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배우로서 정 감독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많은 여성 배우들 중 왜 자신이 캐스팅됐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악녀>를 선택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운동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실제로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 감독님이 건너건너 들었던 것 같다. 또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도 내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로는 여성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선이 많아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복수, 배신, 사랑 드라마틱한 감정을 한 작품에서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여성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와중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했는지.
정 감독님조차도 시나리오 쓰기 전부터 한국에서 ‘숙희’ 역을 소화할 배우가 있겠어? 라고 의문을 가졌다더라. 그러던 중 내게 캐스팅 제의를 한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더 정 감독님의 기대에 부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여성이 액션을 펼친다는 도전의식을 떠나 이번 작품 속 액션신 자체가 잠재된 욕구를 분출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그간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감정을 액션신 하나하나에 녹여낸 듯 했고 이와 함께 매 신이 신선하고 흥미로웠기에 출연을 결정했던 것이다. 슈팅, 검술, 속옷 액션, 비녀로 결투하는 신과 박진감 넘치는 버스 체이싱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게 십분 느껴졌다. 또 <내가 살인범이다>(2012) 때 함께한 스태프들과 그대로 다시 작업했던 터라 더 든든하기도 했다. 한번은 한 스태프에게 진짜 정 감독님이 시나리오에 나온 그대로 연출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정 감독님은 마음먹으면 진짜로 한다고 그러더라. 믿음이 생겼다.

평소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때그때 상황이나 정서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왜인지 파이팅 넘치면 액션에 도전하고 싶고, 우울한 감정이면 이를 녹여낼 수 있는 잔잔한 작품을 찾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기본적으론 시나리오 구성이 탄탄하고 모든 인물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럴만한 이유를 갖고 있으며 생동감이 넘쳐야 한다. 이후에 작품 속에서 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고려한다.

제 역할을 해냈는지 호평이 자자하더라. <킬 빌>(2003)의 우마 서먼과 비교되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다. 여성 액션의 표본 아닌가. 영광이다. 그렇지 않아도 장검으로 결투하는 신을 찍을 땐, 우마 서먼처럼 연기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습했었다.(웃음)

일각에선 액션신이 너무 잦고, 잔인하다는 평도 있던데.
글쎄, 잔인함의 정도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까... 전체적으로 피가 낭자하지만, 어떤 분들은 더 나가지 않고 적정선까지만 보여줘 편하게 감상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라. 하지만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다.
특별히 참고한 액션 영화가 있나.
상당수의 여성 액션 영화를 참고했다. 아무래도 극중 ‘숙희’라는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들에 다소 혼선이 있어서 정리 차원에서 다양한 작품을 봤어야 했다. 우리 영화는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그러다가 ‘숙희’가 사랑에 빠질 때는 한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오가는 게 어려웠다. 외국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살인을 일삼다가도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굉장히 이질감 없이 그려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러 레퍼런스를 보고 난 뒤에야 아, 그럴만하다. 결코 이상하지 않구나 라며 납득할 수 있었다. <루시>(2014), <원티드>(2009), <한나>(2011), <니키타>(2001) 등을 참고했고 <레옹>(1995)의 경우에는 어린 ‘숙희’가 점차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살펴봤다.

극중 몇 명이나 죽인 것 같나.(웃음)
일단 오프닝에서만 70명 죽인 것 같은데...(웃음)

극중 적뿐만 아니라 여성 배우에 대한 편견과도 잘 싸워 이겼다는 느낌이 든다.(웃음)
데뷔 때부터 여성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었다. <박쥐>(2009)나 <시체가 돌아왔다>(2012) 같은… 결과적으로 고정적인 젠더의 개념을 거부해온 것 같은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싸워 이겨내자는 느낌으로 매 작품에 임했던 건 아니다. 근본적으로 남성이든 여성이든 다 같은 인간인데 왜 구분하려 들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배우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멜로물은 잘 택하지 않는 것 같더라.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웃음) 솔직히 멜로물은 부끄럽고 민망하다. 진짜 상대방과 사랑에 빠질 것 같고 그래서 하고 싶지 않다. 아… 지금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웃음)

이번 영화에서는 잠깐이지만 성준과 로맨스 호흡을 맞췄다.
성준이 맡은 ‘현수’는 극중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면서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런데 성준 씨가 상상 이상으로 잘 소화해줘 감사하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긍정적인 부분을 담당하지 않았나. 피가 낭자한 신들이 가득한 와중에 ‘현수’가 등장하는 신에서는 어쩐지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중 본인의 캐릭터 이야기를 나누자면, 우선 ‘숙희’는 왜 ‘숙희’인가. 욕처럼 들리기도 한다.(웃음)
욕을 염두하고 만든 이름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웃음) ‘숙희’가 연변 출신이고 또 어린 시절에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숙희’라는 이름이 어린아이였을 때나 또 성장해서 숙녀가 됐을 때 모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서 선택된 듯싶다.

연기한 입장에서 ‘숙희’는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달라.
무엇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한 게 어린 ‘숙희’에겐 가장 큰 사건일 수밖에 없다. 순수한 이 아이에게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 게 ‘중상’(신하균)이었고 말이다. 이후 ‘숙희’가 살아야 하는 목포가 점점 뚜렷해 지는데, 자신의 인생에서 ‘중상’ 외에는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는 인물이 된다. 그랬기에 되려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한 켠엔 지니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큰 우주나 다름 없었던 ‘중상’이 어느 순간 무너지고, 이후 본격적으로 무지막지한 삶을 살게 되는 인물이다.

‘숙희’의 삶이 보통 인생은 아닌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멘탈 관리가 필요했겠다.
정신적으로는 아무래도 ‘숙희’가 나완 정반대의 성격이라서 계속 이해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정신적인 측면 못지 않게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는데, <악녀>를 찍기 전부터 운동을 꾸준히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는 굳이 촬영을 마치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됐었다. 현장에서 기운이 다 빠져서 할 수가 없더라.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말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끝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잠자기 바빴으니까 말이다.

의상이 몸매에 착 달라 붙는 게 대부분이라서 식이 요법 등 관리도 병행했겠다.
살을 빼기보단 오히려 근육을 키우고 싶었다. 외국영화 속 여성 배우들처럼 골격이 커 보였으면 했다. 그래서 영화 촬영 전부터 하드 트레이닝를 받았는데 한계가 있더라. 한국인은 체형이 다른지 근육이 더 이상 키워지지 않았다. 뭐, 약을 먹으면 된다는 소리가 있지만 그건 마음이 허락하지 않더라.

특수 분장도 인상 깊었다.
얼굴도 빵빵 해지고 코 생김새도 달라지고 그랬다.(웃음)
전반적인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대체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다들 지쳐있었다. 칸 출품을 위해서 굉장히 타이트하게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잠도 많이 못 잔 상태였다. 정 감독님의 디렉션의 경우엔, 전적으로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었다. 물론 배우 입장에선 경우에 따라 편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게 맞는 건지 정 감독님의 속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할 때도 더러 있었다.(웃음)

그래도 정 감독이 액션스쿨 출신이라서 액션만큼은 확실하게 디렉션을 줬겠다.
그렇다. 한 장면을 20테이크까지 찍은 적도 있었으니까.(웃음)

스턴트맨과의 호흡도 타 영화와는 달랐을 텐데.
스턴트맨들은 이미 정 감독님과 액션스쿨에서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분들이다. 직접 액션을 해보지 못한 감독님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정 감독님 본인 스스로 액션을 해봤던 터라 모든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게 위험한 액션은 주지 않으면서 원하는 그림만 효율적으로 찍는 식이었다. 스턴트 배우들도 정 감독님과 친구처럼 자유롭게 소통해서 액션신을 그리는 데 한층 수월했던 것 같다.

대체 어디까지가 CG인지도 궁금하더라.
CG는 와이어를 지우는 정도로만 쓰였다. 이외에는 대부분 실사다. 특히 많은 분들이 버스 체이싱을 가장 궁금해 하는데, 달리는 버스에서 도끼로 사람을 찍어 밖으로 날리는 신도 진짜 스턴트 배우가 연기했다. 버스에 매달리는 것도 모두 실제였다.

그래서 인지 칸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국내 관객들 역시 더욱 기대하는 것 같은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담스럽진 않은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기분을 즐기고 싶다.(웃음) 개봉하고 나서도 이런 기분이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개봉작과 칸 상영작이 약간 다르다고 들었다.
원래는 오프닝 액션 시퀀스가 굉장히 길었는데, 상당부분 삭제됐다. 한층 더 스타일리쉬하고 화려했는데 길이상 높은 몰입도를 끌어내기 위해 편집됐다. 또 ‘중상’과 ‘숙희’의 멜로신이 더 많았는데 삭제됐다. 알겠지만 ‘숙희’의 과거가 교차편집으로 드러난다. 아무래도 귀여운 소녀 ‘숙희’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면 몰입이 깨질 수 있으니 이 또한 덜어냈다.

칸 국제영화제를 20대 때는 <박쥐>로, 그리고 30대 때는 <악녀>로 갔는데, 감회가 남달랐겠다.
칸에 액션 영화로 초청을 받는 건 각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전혀 예상을 못했다. 정 감독님이 ‘숙희 씨 칸에 같이 가요’라는 문자를 보내서 초청 사실을 알게 됐는데, 당시엔 믿기지 않더라. 맙소사 내가 칸에 가는 거야 싶었다. 소식을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박쥐> 이후 8년 만이었던 거다. 이번에 칸에 갔을 때도 여전히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론 또 언제 칸에 올까 싶어 울적해지기도 했지만…(웃음)

칸에서는 휴식시간에 뭐하고 지냈는지.
일단 머무는 내내 잠을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더라. 대부분 쉴 때는 숙소 테라스에서 바깥에 펼쳐진 해변을 구경하고 그랬다. 구경만 했는데도 재미있더라.(웃음)

21세 때 출연했던 <박쥐>와 비교해 이번 영화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엔 에너지와 열정이 넘쳤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편해졌다고나 할까. 뭔가 노련해지고 부드러워진 것 같다. 경험이 쌓이니까 놀라거나 신기해하는 지점들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악녀> 시리즈에 대한 논의는 없나.
<악녀>가 악하지 않은 인물이 악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식의 비긴즈 같은 느낌이라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진짜 <악녀>는 다음 편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글쎄…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문득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깨우는 사람이 없더라. 푹 잘 수 있어서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 느림보처럼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음식을 찾아 먹고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라며 고민할 여유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웃음)

2017년 6월 8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ooj610@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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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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