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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감독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그는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동안 다른 여자와 섹스했다. 죽은 아내의 휴대폰에는 남편을 향한, 보내지 않은 문자가 저장돼 있다.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이별을 하는 이들 모두가 살아생전 서로를 애틋하고 소중하게 여겼을까? 상대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속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면? 그렇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곁에 둔 누군가를 한 번쯤은, 모두 기만해봤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휩쓸고 간 일본에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생각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울 만큼 의리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던 당시의 자신 때문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에게 진실한 인사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다. <아주 긴 변명>의 시작이다.

<아주 긴 변명>과 함께 당신이 쓴 원작 소설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인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본래는 소설이 먼저 출간되고 영화가 나중에 개봉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개봉 시기가 조금 미뤄지면서 이렇게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두 가지 모두 내가 만들었으니 무엇부터 먼저 보라고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소설이 먼저 출간돼서 소설부터 보고 나중에 영화를 본 경우가 많다. 글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영화부터 보고 나중에 소설을 읽은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주로 이런 말을 한다. 아, 그 씬이 소설 속에서는 이 장면이었구나.(웃음)

‘연금술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곳인가.
아니, 어제 처음 만나서 식사했다. 일본 소설을 그리 많이 출간한 곳은 아니다. 아쿠타카와 문학상을 탄 작품을 처음으로 일본 소설을 출간했고 내 소설이 두 번째라고 들었다. 같이 일해보니 인물의 심정에 대한 자세한 묘사 하나하나까지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주는 곳이더라.

때로는 플랫폼도 메시지를 주는 수단이 되는 것 같다. <아주 긴 변명>은 영화 수입배급사 진진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 소개된다. 연출가의 철학이 분명한 작품을 선호하는 곳이다.
진진은 사이즈가 큰 작품보다는 나처럼 작가주의 작품을 연출하는 사람의 영화를 주로 배급해주는 회사다. 그런 작품을 소중히 여겨준다. 내 선배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인 <걸어도 걸어도>(2008)도 진진을 통해서 한국 극장가에 배급됐다. 내 경우에는 <우리 의사 선생님>(2009)이 그랬다.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신뢰가 쌓였다. 나와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진이 배급을 맡아준다고 하면 “아, 걱정할 필요 없겠네”라고 생각한다.(웃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아주 긴 변명>에 참여한 촬영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스탭들이 앞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일했던 이들이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에서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 업계에 들어왔다. 그 때 그 영화의 촬영감독이 야마자키 유가타였다. 20년 전에 알게 돼 지금까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아주 긴 변명>처럼 장편영화를 같이 한 건 처음이지만 CF를 찍을 때나 단편 영화를 찍을 때는 같이 작업을 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미츠마츠 케이코도 <유레루>(2006) <우리 의사 선생님>(2009) <꿈팔이 부부 사기단>(2012)에서 내내 호흡을 맞춘 분이다. 사실 이들 말고도 많은 다른 스탭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겹친다. 서로 추천해주기도 하고, 일종의 스탭 공유다.(웃음)

한국 관객 입장에서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인지하면서 당신의 작품을 보게 되겠다.
그럴 것이다. 실제로 회사도 같이 하고 있으니까.

어떤 회사인가.
분복(分福)이라는 회사다. 복을 나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는 아니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단계부터 연출가들끼리 힘을 모으는 곳이다.

일종의 영화공동체인가보다. 상당히 훌륭한 이름이다.(웃음)
그런가.(웃음) 회사를 세운 지 한 2년정도 됐다. 영화감독은 (자유로운 창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꾸준한 지원을 받아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결국에는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을 경험한다. 나도 몇 년 전까지는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하지만 감독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나, 그동안 작업 과정에서 쌓아온 지혜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시나리오와 편집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회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당신 말고 또 어떤 일본 감독이 있는지 궁금하다.
<엔딩 노트>(2011)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스나다 마미감독이 있다. 그녀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사람이다. 몇 년 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꿈과 광기의 왕국>(2013)도 만들었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극영화를 연출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압력을 가하고 있다.(웃음) 기획을 내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진짜 기획을 하나 들고 왔는데 정작 그걸 본 스탭들이 ‘그건 좀 아니지 않니?’라고 말 해버렸지만.(웃음) 그 외에도 TV 다큐멘터리를 찍는 젊은 연출가 등 여러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소규모 작가주의 영화를 연출하려는 이들끼리 일종의 생존 방법을 모색하는 건가.(웃음)
그런 부분도 있지.(웃음)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사무실을 하나 만들어서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얼굴을 보는 게 좋다. 그러면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마치 잡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너 저번에 쓴 시나리오 어떻게 돼 가? 혹은 그때 캐스팅 문제는 잘 해결했어? 하고 물으면서 말이다.

영화 외에도 CF를 많이 만든다고 들었다.
1년에 한두 편은 꼭 만든다. 작년에는 자파넷 타카타(JAPANET TAKATA)라는 쇼핑몰 광고를 만들었다. 단순하게 ‘이런 거 팝니다’ 하는 홍보용 CF가 아니라 일종의 드라마처럼 이야기를 가지고 가는 형식이다. 또 이토츠(ITOCHU) 종합 상사 광고도 찍었고.(웃음) 그런데 나만 이렇게 CF를 찍는 건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10년 전부터 아주 왕성하게(웃음) CF를 찍는다. 자신이 총감독을 맡고 영화에서 조수 역을 해줬던 다른 감독들을 모아 함께 감수하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소설, CF, 영화까지 창작의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다.
사실 CF는 생활을 위해서 만드는 거다.(웃음) 영화는 3, 4년에 한 편씩 만드는데 그사이에 할 수 있는 생업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CF 연출 제안이 들어오는 건 너무 고마운 일이다. 또 연출가는 적당한 보폭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연출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감이 떨어진다. 1년에 한 두 번씩이라도 제대로 연출할 기회가 생긴다는 건 중요하다. 또 그 기회를 타 평소에 같이 일해보고 싶었던 스탭과 작업할 수 있다. 그래서 CF 작업은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경한 조합이다. 당신과 CF라니.(웃음)
왜 생경한가? 요즘은 유튜브에서도 다 볼 수 있으니 한 번씩 봐달라.(웃음)

꼭 보겠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보자.(웃음)
아니 나 근데 왜 이렇게 CF얘길 열심히 하고 있었던 거지?(웃음)
역시 가장 인상적인 건 자기밖에 모르는 주인공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일 거다. 언론시사회 당시 감독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웃음) 물론 현실이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이니까 자기밖에 모른다는 설정을 극대화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 것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는 누구나 (자기 하나밖에 담지 못하는) ‘작은 그릇’을 품고 있을 것이다.

동의한다. 그래서 더 보기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것처럼?(웃음) 나도 내가 만든 캐릭터지만 진짜 싫을 때가 있다.(하하하)

<유레루>는 형제, <우리 의사 선생님>은 중년의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번에도 마흔 살의 남성 소설가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본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자 주인공을 고려해보지는 않았나.
아아, 그건 절대 싫다. 여자 주인공을 설정하면 오히려 이야기를 쓰기가 어렵다. 내 경우에는 남자 주인공을 설정해야 표현이 과감해진다. 특히 <아주 긴 변명>은 자기 고백 하듯이 쓰고, 촬영한 작품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상당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주인공 성별까지 여자면 다들 정말 내 얘기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자꾸만 내 얘기가 맞는지 질문하고 확인하려 들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무섭다. 가슴 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팍팍 써내야 하는데 그 무서움 때문에 붓이 떨리는 것 자체가 싫다.

창작에 몰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가보다.
그렇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6년가량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작품은 어쩔 수 없이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사고로 잃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 말대로 시간이 6년쯤 지났다. 확실히 이전만큼 지진이나 쓰나미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아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픔은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비단 동일본대지진 뿐만아니다. 일본은 재난 없는 해가 거의 없다. 얼마 전에도 구마모토 대지진이 일어났다. 화산섬인 데다가 기후가 불안정하고 태풍도 많다. 나에게 언제 재난이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실감해야 하는 나라가 일본인 것 같다.
그럼에도 아내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아주 짧게 표현된다. 영화는 사고 그 이후를 홀로 견뎌 나가는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할리우드에서 많이 나오는 재난 영화들을 보면, 어떤 재난이 밀려와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주인공만 홀로 살아남으며 끝이 난다. 그런데 난 그렇게 혼자만 살아남은 게 과연 해피엔딩일까 싶더라. 절대 아니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인간에게는 더 큰 고통이 남아있다. 상실 그 자체보다 상실감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게 더 힘든 일이니까. 쓰나미에 의해 살던 마을이 사라지고, 지진에 의해 살던 공간이 무너지는 경우 그 사람은 전혀 인연이 없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헤야만 한다. 익숙한 것을 상실한 이후에 다시 새로운 곳에서 새 시작을 해야 하는 셈이다. 분명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분명 새로운 희망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 과정을 잘 그리는 게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들도 그런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보고 싶어 하고, 또 필요 할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여 준다면 정말로 고마울 것이다.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영화가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 진출하기보다는 일본 내에서만 유효한 작품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는 지적이다.
그런 말을 한 걸 알고 있다니.(웃음) 과거보다 요즘 일본 경기가 많이 좋아졌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욕구는 이전만 못하다. 돈이 되는데 뭐. 돈만 되면 된다는 의식이 높아지는 거다. 내가 정말 만들어보고 싶었던 작품으로 세계 무대로 나가 보자는 생각, 또 그렇게 타인과 교류해서 인정을 받아보자는 욕구가 줄어들었다.

인구 1억이 넘는 일본 입장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어떤 내수 산업의 경우라도 비슷한 경향이 있을 텐데.
그렇기도 하겠지만, 영화 쪽은 유독 더 그런 경향이 느껴진다. 돈이 되는 기획이 좋은 기획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물론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기획 영화도 나쁘지 않다. (관객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산업이 활기를 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이런 걸 누가 봐?’ 싶은 영화도 필요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장센이 좋다든가, 표현력이 좋다든가, 아니면 터부에 도전하는 것들 말이다. 영화는 어떨 때는 하나의 예술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 같은 개념이 아니다. 영화 산업이 균형감각 있게 발전됐으면 좋겠다. 요즘은 돈은 잘 벌지만 어딘지 오히려 가난해지는 느낌이다.

도후, 도에이, 쇼치쿠 같은 큰 영화사가 다양한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하)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들도 분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장은 돈이 안 되더라도 재능 있는 젊은 사람들을 길게 보고 지원해줘야 한다. 정말 그래 줬으면 좋겠다.(웃음) 하지만 나조차 그런 큰 회사들과 일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마구 말하기는 어렵다.(웃음) <아주 긴 변명>도 아스닉이라는 작고 내실 있는 일본 배급사를 통해 배급했다. 큰 기업은 큰 기업대로, 작은 회사들은 작은 회사대로 재능 있는 감독을 지원하는 데 동참해주면 좋을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재능 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일본의 감독을 한 명 추천해줄 수 있는지.
열심히 찾고 있다.(웃음) 그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분복이라는 회사를 만든 이유다.

알겠다.(웃음) 6년 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후로 7년이 지났는데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
아. 그때는 정말 부담스러웠다. 압박이 컸다. 데뷔작 <산딸기>(2003)에 이어 <유레루>까지 워낙 평가가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런 압박감에서 나온 게 <우리 의사 선생님>이다. 진짜 의사도 아니면서 주변의 기대 때문에 의사인 척하는 사람의 이야기 아닌가.(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들이 <산딸기>든 <유레루>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더라. 너무 오래 돼서 칭찬을 안 한다.(하하하) 그래서 부담감에서는 아주 자유로워졌다.

다행이다.(웃음)
아주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있다.(웃음) 사실 <유레루>까지 하고 나서 큰 기업에서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당신, 베스트셀러 영화화하는 거 잘한다며. 그럼 우리가 주는 소설로 영화 한 번 만들어 봐. 하면서 말이다. 근데 내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문제였지.(웃음) 원작을 건네주면 그건 거의 반영 안 하고 내가 하고싶은 것만 담아서 기획하고 그랬다. 그러고 나니까 영화계에서 니시카와 미와는 진짜 말 안 듣는 감독이라고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지금 되게 외로운 상태다.(하하하)

괜찮다. 한국에는 당신 팬이 엄청 많다.(웃음)
그래서 내가 한국에 올 때만 내 영화 팬이 이렇게 많아? 하고 느낀다.(웃음) 여기만 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어진다.(웃음)

이번 작품을 본 관객이 당신의 전작 중 딱 한 편을 찾아본다면 어떤 것을 추천하겠나.
아무래도 <유레루>가 <아주 긴 변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그 작품은 내가 딱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찍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인간관계를 통해 배운 것들을 모두 집약한 작품이다. 그 후로 딱 10년이 지나 마흔 살이 됐을 때 <아주 긴 변명>을 찍은 거다. 그사이에 실패도 하고, 갈등도 겪었지만 분명 전작과 묘하게 연결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있을 것 같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매일매일.(웃음) 오늘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먹은 간장게장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다.(하하하)

사진제공_영화사 진진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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