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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욕심 드글드글 했지만 참았다 <판도라> 문정희
2016년 12월 9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근래 들어서 배우 문정희에게 엄마 아닌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테두리에 결코 갇히지 않았다. 변종 바이러스에 노출돼 갈급하게 물을 찾아대며 괴물로 변해가는 <연가시>(2012)의 숙주 ‘경순’, 검은 헬멧을 쓰고 극한의 상황까지 치닫는 <숨바꼭질>(2013)의 범인 ‘주희’, 파업에 동참하지만 생계를 위해 노조를 등 지고야 마는 <카트>(2014)의 마트 노동자 ‘혜미’는 모두 문정희가 불어넣은 숨결을 통해 작품에 걸맞는 색깔을 확보했다. 박정우 감독의 신작 <판도라>에서도 그녀는 엄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작들에 비해서는 그녀의 역량이 덜 표현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에 대한 배우 문정희의 솔직한 대답을 들어봤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98년 작은 연극 무대에서 데뷔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연 무대에 서고 싶어서 오디션을 많이 보고 돌아 다닐 때다.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하는 뮤지컬 ‘의형제’라는 작품으로 처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블러드 브라더스’라는 원작의 한국판을 1년간 공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지.(웃음) 그 때 나이가 스물넷이었다.

관객에게 존재감을 과시한 건 <연가시>나 <숨바꼭질>을 비롯 주로 2010년 이후 작품 같다.
2006년에 했던 드라마 ‘연애시대’로 기억해 주는 분도 있다.(웃음) ‘달콤한 나의 도시’나 사극 ‘신돈’에도 출연했었다. 사실 업계에서는 여배우라면 한 번에 팍 떠서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는 게 최고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행보와는 좀 달랐다. 연극 무대에서 데뷔했기 때문에 TV로 넘어오는게 어려웠고, 그 다음엔 영화로 넘어 오는게 어려웠다. 역할의 크고 작음과 상관 없이 나에게는 그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회들이 상당히 중요했다. 다행히도 중간에 긴 공백기를 많이 갖지 않은 편이고, 결혼 후에 작품을 더 많이 해서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더 바빠지고 있는 것 같다.(웃음)
단박에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웃음)
그렇긴 하지만 배우가 은근하게 오래 가는게 쉽지 않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웃음) 그렇다고 내가 그런 말에 겁 먹는 스타일은 아니다. 데뷔 때부터 24살이면 연예계에서는 되게 많이 먹은 나이고 특히 여배우로서는 꺾인 나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지금부터 출발해서 어쩌려고 그래 벌써 시작 했어야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고.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뀐 지금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웃음) 그런 시간을 거쳐 벌써 2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20년이나 지났다는 게 안 믿겨지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지?(웃음)

일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팀을 소재로 재일동포 문제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2013) 내레이션을 맡았던 적도 있다.
처음에는 맡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가 다루는 럭비팀 친구들 이야기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내용이 아기자기하고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는데, 정작 영상과 만듦새가 너무 거칠어서 도저히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웃음) 그 때 내 재일동포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사를 추는 모임에서 만나게 된 분인데, 일본에 살면서도 우리 나라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가진 분이다. 이러이러한 영화에서 내레이션 제의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아, 무조건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한 번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거다. 아니 뭘 ‘해 주시면’이야.(웃음)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영화에 나온 오사카조고 출신이었다!(웃음) 왜 그 영화에 보면 후배들을 응원하려고 1년에 한 번 있는 학교 축제날 정문 앞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밤새 기다렸다가 선착순으로 들어가는 그 열성적인 사람들 있지 않나. 이 분이 그 중에 하나였던 거다.(웃음) 영화에 나오는 럭비팀 멤버도 다 안다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박사유 감독님을 만났는데 당시 유방암 투병중이었는데도 작품에 품을 많이 들였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맡게 됐다.

영상이 거칠긴 하지만 마음을 툭 건드리는 데가 있는 작품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을 찍으면서 조선이라는 국가명을 쓰고 파란 국기를 쓰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각국에 사는 교포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그들이 얼마나 차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됐으니까. 또 우리나라는 탈북자 문제도 있으니까… 요즘 독일은 피조차 섞이지 않은 타국의 난민을 다 받아주고 있는데, 미래에는 우리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훨씬 개선 될 만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형마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2014)에도 출연하는 등, 사회적 맥락과 접점 있는 작품에 다수 출연했다.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시국을 반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어떤 때에는 자기 만족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항상 관심이 있는 편이다. 물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해서는 늘 조심스럽지만, 내 직업에 관련돼서는 항상 그런 관점을 반영해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다. <카트>도 그렇고, <판도라>도 마찬가지 이유로 선택했다.

<판도라>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건 나뿐만 아니라 감독과 배우 모든 스탭이 동의하는 내용일 거다.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판도라>가 담고 있는 원전 문제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때문에 시작되지만 결국 국가는 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뿌리채 흔들리는 지경에 이른다. 전형적인 인재다. 나 역시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성수대교 붕괴 사태를 비롯해 충격적인 안전 관련 사건을 상당히 많이 경험했다. 그 때마다 사고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는 모습을 봐야 했고 최근에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모습까지 목격하게 됐다. 우리 작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그에 대한 공분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원전에 대해 너무 설명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이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에 대한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일단 나부터도 원자력에 대해서 정보가 별로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 돼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 곳에서는 그저 적은 양의 뭔가를 사용해서 굉장히 많은 양의 전력을 만들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정도만 알았다. 다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례로 봤을 때는 방사능이라는 것에 노출되면 상당히 위험한 것 같다는 정도? 그런데 막상 방사능에 노출 되면 어떤 피해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피폭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설명 할 수도 없더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정보 수준이라고 감안했을 때 <판도라>를 보면 원전과 관련된 꽤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는 첫 술을 뜬 거다. 앞으로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훨씬 더 발전 할 거라고 생각하다. 요즘 정치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 않나. 그런 발전도 그 전부터 수 많은 작품이 정치 이야기를 다뤄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본다.
한국적 신파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도 맞다. 우리 영화 되게 신파다.(웃음) 그런데 이건 우리나라의 정서와 코드를 잘 녹였다는 뜻일 수도 있다. 특히나 김영애 선생님과 내가 맡은 엄마 역할은 거대한 재난 상황 앞에서 자식을 잃을 위기에 놓인 여성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신이 소화한 <연가시>의 ‘경순’, <숨바꼭질>의 ‘주희’, <카트>의 ‘혜미’는 엄마이면서도 작품에 걸맞는 캐릭터만의 색깔이 살아 있었다. 반면 <판도라>의 ‘정혜’는 모성애를 가진 엄마로 시작해서 엄마로만 끝난다.(웃음)
물론, 내 역할에도 의미를 부여 하려면 할 수는 있다. 시어머니 역을 맡은 김영애 선생님과 며느리인 내가 몇 안 되는 씬과 대사를 통해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 한다는 점에서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이데올로기 차이를 엿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게 나는 썩 유쾌하지 않다. 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웃음) 그건 연기를 한 배우의 변명이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기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묘사되는 비중이 너무 짧다. 갈등하던 두 사람이 모성애라는 상징 하나로 교감하고,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무장 해제 하듯 연 후 화해 한다는 라인도 너무 단순하다. 나라고 왜 아쉬움이 없겠나.(웃음)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처음 시나리오늘 받았을 때는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연가시>에서 했던 것들과 장르, 역할은 물론 장면까지도 비슷했다. 아마 <연가시>를 연출 했던 박정우 감독의 작품이 아니라면 당연히 안 했을 거다.(웃음) 그런데 배우의 입장을 떠나서, 나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일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남긴 배우도 시간이 흐르면 세상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날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지킬 수 있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 연기, 캐릭터의 비중, 영화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면 너무나 아쉽지만 그럼에도 출연하게 된 건 박정우 감독과의 의리가 작용 했다고 봐야 할 거다.(웃음) 욕심을 버리고 철저히 작품 전체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기능적으로 연기했다. 연기 욕심은 드글드글 끌었지만 참았다.(웃음)
기능적으로 배역을 소화했다는 점은 아마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물론이다. <카트>에서의 인연으로 친해진 김영애 선생님도 애초에 내가 같이 하자고 꼬신 거라서우리 둘의 케미는 정말 좋았지만(웃음) 사실 그녀가 맡기에는 너무 작은 역할이었다. 각종 영화에서 주연을 도맡는 김명민 선배도 마찬가지고, 정인기 선배나 백도빈 배우는 마스크 한 번 벗지 못하고 애를 써줬다.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비중 작고 한정적인 캐릭터를 맡아 연기했다. 이 영화 자체가 어떤 등장인물의 심리를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가서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에 동의하기 때문에 각자 조금씩 희생해 십시일반 마음을 모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할만한 얘기도 별로 없는 역할을 맡은 내가(웃음) 선배들을 대신해 선봉장 격으로 인터뷰 자리에 선 거다. 사실 처음에는 이 영화로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홍보팀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실제로 그런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의 십시일반을 생각하며 열심히 영화를 홍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웃음)

작품을 고를 때와 달리 평소에는 사회적, 정치적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으로 안다.
내가 이른바 소셜테이너는 아니다. 내가 만약 어떤 성향을 띠고 있다면 그건 어떤 문제에 대해 공감 한다는 뜻일 텐데, 그게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옳다고 말하기가 몹시! 조심스럽다. 게다가 배우는 한 마디를 해도 사람들이 더 쉽게 주목할 수 있는 직업이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사적인 공간에 올린 게시물이 뉴스에 날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물론 배우라는 직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책임 질 수도 있고, 내 주장이 틀렸다고 지적이 들어오면 인정하고 후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정치적인 분야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누가 공격을 해오면 나는 무방비 상태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삿대질 받아야 하는 상황을 견딜 자신은 없다. 특히 가끔 여러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정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못되게 표현 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절감한다. 그래서 사회, 정치적으로 자기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배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지식이 많아?(웃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웃음) 하고 말이다.
모두가 그렇게 용감해 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웃음)
아직까지는 우리 나라에서는 배우가 사회, 정치적인 분야에서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게,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을 수 있다고 본다. 외국에서는 그런 경우도 많다고 하지만 우리 나라는 그런 분야에서 워낙 감춰져있는 정보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늘 표현을 조심하는 편이다. 특히나 요즘에는 배우에게도 ‘공인’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공인이라 함은 그야말로 대통령이나 공무원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시대에는 그런 공인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가 배우에게도 비슷하게 적용 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나서도 느닷없이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독백을 하는 경우가 참 많다.(웃음) “아 참, 말은 또 되게 잘해. 그걸 그렇게 미화 시켜서 말하고 싶었니? 네가 진짜 그렇게 살아?”하고 중얼거릴 때도 있다.(웃음) 내가 말 했던 내용이 마치 진짜 나 인 것 처럼 기록되는데, 그게 진짜 내 생각이고 내 모습인가? 하고 물으면 스스로 명쾌하게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은 거다. 그럴 때는 후회 되고 답답하다. 내 본래의 성격은 대단히 ‘앗쌀’한 편이다. 우리 남편도 항상 그렇게 표현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호불호를 명확하게 표현한다.(웃음)

실제 성격은 그럴 것 같다. 소심해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어서 말을 조심하는 편에 가까워 보인다.(웃음)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연기 하는 삶 자체가 참 행복한 일이다. 다만 이번 작품으로 하고 있는 인터뷰는 배우 개인으로서 좀 아쉽다. 내 연기만을 두고 말 할 수 있는 계기가 꼭 다시 왔으면 좋겠다.(웃음)


2016년 12월 9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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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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