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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을 사랑하는 인간미 넘치는 배우 <고산자, 대동여지도> 차승원
2016년 9월 6일 화요일 | 류지연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류지연 기자]
차승원은 빈틈 없는 외모와는 달리, 빈틈이 많은 인물들을 연기한다. 교재보다 술을 좋아하는 선생 김봉두, 인공심장을 달고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뛰는 톱스타 독고진, 수트보다 두건이 더 잘 어울리는 수다쟁이 차줌마까지. 차승원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역시 위인이지만 어딘가 빈 구석이 있어 익살스러운 인물로 그려냈다. 마냥 진지하거나 마냥 현실적인 인물보다 조금은 삐걱거리는 인물이 좋다고 말하는 그는 빈틈을 사랑하는 인간미 넘치는 배우다.

완성된 영화에는 만족하나.
반반인 것 같다. 사실 말한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때가 있어 섣불리 말을 잘 못하겠다. 가령 영화에 삼시세끼 관련한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사실 좀 갸우뚱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주연배우가 싫어하는 데도 찍을 정도면 현장 분위기가 안 좋았겠네’ 이렇게 유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은 일반 시사가 끝나고 관객분들이 해주는 평가를 기다릴 예정이다.

데뷔 30주년이 됐다.
갑자기 데뷔 30주년이라니 무슨 소린가.(웃음) 28년 됐다. 1988년 11월부터 모델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니 2년이 더 남았다. 배우 활동에만 전념한 건 1996년도부터니까 따지면 20년 된 거다.

강우석 감독과는 오랜 인연이 있지 않나.
오래된 인연이다. 처음 데뷔할 때 만났던 감독님은 굉장히 영향력 있던 제작자셨다. 사실 이번에 감독으로서 만났을 때가 훨씬 좋았다. 제작자로 만났을 땐 약간 어려운 사람이었거든.(웃음) 이번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됐고 또 잘 들어주셔서 찍는 과정이 참 좋았다. 또 감독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고 할까 그런 스타일이셔서. 사실 현장에서 자기가 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데 강우석 감독님은 그런 면이 전혀 없으셨다. 영화를 같이 찍는다기보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감독님이 처음 캐스팅 제안을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섣불리 못하겠더라. 그 동안 감독님을 조금 어렵게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왜 나한테? 약간 불편할 것 같은데.’(웃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를 읽고 보니 왜 나에게 부탁했는지 이해가 되더라. 내 영화를 많이 봤고, 내 영화에 많이 참여하시기도 해서 내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하시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화 전반에 그려지는 김정호가 마냥 위인스럽지는 않지 않나. 이 사람이 남긴 업적은 물론 위대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진지하게만 접근하는 건 안 좋아하기 때문에. 또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굉장한 부담이다. 잘해봤자 본전이니까. 그런데 김정호의 경우엔 여지를 둘 수 있는 빈 구석이 많은 인물이고 밉지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비었다는 건 아니고. (웃음) 그래서 물론 지도에 미쳐있지만, 그런 점 이외에 사람 김정호의 냄새 같은 걸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애드립을 못하게 하신다고 들었다. 그 점이 답답하게 느껴지진 않았나.
감독님이 애드립을 싫어하신다.(웃음) 하는 건 좋은데 미리 얘기를 해야 한다. 약속되지 않은 애드립은 용납이 안 된다. 이번 영화에도 애드립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대사 하나를 생각해 놓은 건 있었다. 순실이가 묵주를 차고 있는걸 발견하고 그게 염주인 줄 알고 왜 염주를 차고 다니냐고 물으면, 순실이가 이걸 차면 마음도 편해지고 천당 간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쟤는 왜 염주를 차고 있는데 천당을 간대. 극락왕생이지.’ 라는 애드립을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그냥 말았다.(웃음)

감독님하고 현장에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으셨는지. 오래 되셨으니까 가끔 티격태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 맞는 부분은 없었다. 티격태격 했다거나 그런 일도 거의 없었다. 너무 열심히 하셔서. 일년 동안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 그런 불만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 담긴 자연경관이 그림처럼 예뻐서 CG같다는 말도 나왔다.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영화를 찍느라 부담은 없었나.
영화를 보면 일년 동안 집에 못 들어 갔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굉장히 경제적으로 찍었다. 물론 지방에 가 있어야 하긴 했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덜 고생했다. 어떤 영화들을 보면 찍을 때 고생 엄청 하고서도 티가 안 나는 영화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좀 반대인 것 같다.

그렇다면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고생스러웠던 점은.
심적 부담이 아무래도 컸다. 김정호의 집에서 찍는 씬들이 비교적 감정의 변화가 많아서 좀 부담이 있었다. 또 관아에서 곤장을 맞고 목판을 부둥켜 안으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씬을 좀 초반에 찍어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 장면들을 제외하고 돌아다니는 건 큰 부담은 아니었다.

관아에서 오열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더라. 감정 몰입을 할 때 노하우가 있나.
노하우는 따로 없다. 요새는 좀 내려 놓으려고 하는 편이다. 중요한 씬을 찍게 되면 전날부터 어떤 마음을 갖고 감정을 잡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갈 수 는 없겠지만 될 수 있으면 부담을 놓으려고 한다. 촬영 당일 아침이 되면 애써 감정을 잡으려고 하기보다 그냥 웃긴 얘기를 하면서 나를 릴렉스 시킨다.

시골에서 촬영하다 보니 무료하진 않았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배우들과 시간도 많이 보냈을 것 같다.
인권이랑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인권이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 않나. 그때 어떤 게 정답인진 모르겠지만, 우리 둘이 연기 할 때는 뭔가 놓고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안 되면 다음 테이크에 또 하면 되는 거지. 인권이 경우에 영화 후반에 지도 펼쳐놓는 굉장히 중요한 씬이 있었는데,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다. 그렇게 감정의 폭이 극대화 되는 연기들을 할 때, 어떤 게 정답일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정해놓지 말고 나오는 대로 하자는 얘기를 많이 주고 받았다.


<삼시세끼>와 이번 영화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배우가 된 것 같다. 본인이 손꼽는 한국 최고의 힐링 장소가 있을까.
서울?(웃음) 제주도는 몇 번을 가도 좋은 것 같다. 제주도는 여기하고는 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니까. 백두산은 힐링을 하기에는 좀 경외감이 드는 장소고.(웃음)

백두산을 올랐을 때, 당시 상황은 어땠나. 요즘 북한과 상황도 안 좋은 편인데.
5박 6일 일정으로 북한에 갔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백두산에 올라가면 무조건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안 쪽의 허락도 있어야 되고 날씨도 허락돼야 되고, 조건들이 굉장히 많아서 찍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둘째 날 촬영 때는 날씨도 좋지 않고, 공안 쪽에서도 자꾸만 보이콧을 하더라. 그냥 촬영인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지팡이 짚고 다니고 이러니까.(웃음)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영화가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될 것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한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연기 할 수 있는 영화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 과정을 돌이켜보건대, ‘참 좋아서 찍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의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런 의도로 얘기한 것이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많이 해왔던 상업영화보다는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선택하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는 무조건 흥행이 되어야 한다. 이 영화는 흥행 안 되어도 내게는 의미 있는 영화다 이런 건 거짓말이다.(웃음) 흥행이 돼야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하지만 감히 말씀 드리건대, 1년간 함께 촬영하면서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들이 많이 쌓였다. 이 영화가 꼭 차승원 필모그래피에 최고의 영화로 남지 않더라도 과정이 훌륭했고, 결과까지 좋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치더라도 찍으면서 행복했었던 영화로 남을 것 같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껏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 중에 어느 작품으로 돌아가보고 싶은가.
꼭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면 <선생 김봉두>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걸 마지막으로 코미디를 그만하려고. 코미디 영화는 그때로 끝내고 조금 쉬었다가 다른 작품으로 스스로를 환기시켰을 것 같다. 지금 돌아갈 수 없으니까 얘기하는 거지만, 좀 더 다른 색깔들의 영화를 많이 찍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영화에 대한 에너지가 넘칠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도전을 좀 많이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 김봉두>를 정말 좋아한다.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연기였다.
내 영화 중 이름이 확 부각된 영화들은 다 잘됐다. 김봉두라든지, 독고진이라든지. 그래서 이번 영화도 아마 잘 되지 않을까.(웃음)

인터뷰를 보니 이제 사극은 그만하고 싶고 SF를 하고 싶다고 했던데.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지만 결국 여러 장르의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의미였다. 현실적이지 않은데 왠지 보면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인물 말고, 뭔가 현실적이지 않은데 현실적인?

공효진씨랑 찍었던 <최고의 사랑>이 정말 좋았다.
그건 정말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완전 싸이코지 않나. 근데 또 현실적이다. 그래서 매력있다. 현실적이지 않은데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말은, 분명 현실적이지 않지만 ‘저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납득이 가는 캐릭터라는 뜻이다.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SNS나 댓글들을 일일이 보는 편인가.
일일이 보지는 않는다. SNS보다는 시사회가 끝난 바로 다음의 분위기를 살피는 편이다. 영화는 특히나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영화의 좋고 나쁨이 관객 표정 속에 다 나타나고 지금까지 그게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배우가 너무 좋다고 한들 영화가 별로 좋지 않으면 표정에서 다 나타난다. 그런 기운이랄까 공기가 있다. 글은 좀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혼자 쓰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극장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막 영화가 끝났을 때의 그 정서가 나는 아주 정확한 것 같다.

<삼시세끼>를 보면 음식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요리에 그렇게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뭘까.
글쎄. TV에서 보이는 것처럼 집에서도 매일 그렇게 음식을 하지는 않는다. 물론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딱히 많이 하는 편도 아니다. 아마 <삼시세끼>에서 나온 건 과장된 면도 없지 않을 거다. 하지만 어쨌든 못하진 않는다.(웃음)

요리에 대한 촉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남자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수준까지 가던데.
여자로서도 못한다. 위대한 거다.(웃음) 아까 인터뷰하다가 혼술, 혼밥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삼시세끼>가 왜 이렇게 부각이 되는가 생각해보니 다 같이 어울려서 밥 먹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더라. 혼술, 혼밥에 대해서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낙오되거나 도태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밥, 혼술이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풍토가 됐다. 어찌 보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편하지 않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시세끼>를 보면서 흐뭇해한다는 건 어떤 그리움이 있는 것 같다. 왜 시골에 가서 밥을 짓고 밥상머리에서 얘기하는 걸 보면서 20대나 10대까지도 흐뭇해 할까. 가족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사실 요새 누가 세끼를 먹나. 두끼 밖에 안 먹지 않나.(웃음) 또 사실 거기서 하는 요리들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 마저 우리에겐 진수성찬으로 보일 만큼 되게 척박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넘나들며 활동 중이다. 그런 장르의 이동이 어색하거나 튀어 보이지 않는 배우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영화를 찍었으니 예능을 안하고, 예능 하느라 고생을 너무했으니 영화를 안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 배우마다 나름의 길이 있고 각자 다른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길이든 정답이라고 결론 내릴 수 없겠지만 나는 그저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서 좀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 배우로 남고 싶다.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 이력 때문인지 굉장히 현대적인 인상, 트렌디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코미디나 사극들을 많이 찍었다.
기존의 대중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맞는 역할들을 하면 쉬울 수도 있다. 왜나면 이미지로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약간 닭살 돋는다고 해야 하나. 뭔가 조금은 삐걱거리는 인물이 좋은 것 같다. 내 이미지와는 다른 역할을 맡고, 그걸 극복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 있다. 삼시세끼의 차줌마와 김정호라는 인물이 완전히 다른 인물로 시청자나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나.
영화 곳곳에 포진돼있는 웃음들이 많다. 또 추석을 맞아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편안하게 봐주셨으면 한다. 사실 보시는 분들한테 어떻게 봐주셨으면 하고 말하는 것도 굉장히 웃기다.(웃음) 하지만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 영화가 아주 자극적이거나 완전히 장르적인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라면, 어렸을 적 역사물들을 보면서 나도 위인들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졌듯이, 누군가도 이 영화를 보고 ‘김정호라는 사람이 저렇게 살다 갔구나’ 하는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얼마 전 가장 행복했었던 기억은 저녁에 잘 때는 분명 여름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가을이 되어있었을 때. 그 때 제일 행복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언제 폭염이 있었지’ 라는 생각이 들만큼 더위를 금세 잊게 되더라. 내 방은 2층에 있어서 직사광선이 엄청나게 들어온다. 그래서 한 여름에 정말 더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가을이 되어 있더라.

2016년 9월 6일 화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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