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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가 안 돼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상호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김상호는 ‘적당히’가 안 되는 배우다. 우선 연기를 ‘적당히’ 좋아하는 법을 모른다. 94년 연극판에 뛰어들어 지독한 가난에, 막노동, 신문배달까지 하면서도 그는 연기를 끝내 놓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연기하는 법도 모른다. 목이 졸리다 못해 늘어나도록 연기한다. “배우는 ‘적당히’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제일 ’적당히‘를 모르는 건 김상호 본인인지도 모른다. 연기를 적당히 할 줄도, 적당히 좋아할 줄도 모르는 사람의 연기, 김상호의 연기는 그렇다.

라디오 출연으로 애처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더라.
착하다고 소문나면 안 되는데(웃음).

왜?
불편하다.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잖나(웃음). 아내가 장바구니만 들고 있어도 ‘알고 보니 다르더라’면서 소문이 날 것 아닌가. 실제로 보니 잡놈이더라고 적어 달라(웃음).

공식 입장인가(웃음)?
“잡. 놈.” 이렇게(웃음).

개봉을 기다리는 소감이 어떤가(웃음)?
차라리 담담하다. 기자들을 만나는 행사 때 더 긴장했다. 물론 일반 시사회 때 관객에게 영화를 선보이긴 했지만 드디어 전문가에게 <특별수사>가 공개되는 거잖나. 그래도 다행이다. 물론 기자도 예의상 하는 말일 수 있겠지만, 나쁘지 않다고들 말해줘서.

언론시사회를 많이 했는데도 긴장되나?
항상 긴장된다. 언론시사회 때 분위기를 보면 영화가 잘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고. 다음 질문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길게 늘어지면 영화가 안 좋은 거다. 다행히 언론시사회 분위기가 좋았다.

<특별수사> 같은 영화에 질문할 게 많지. 기자 입장에서도(웃음).
직관적이니까. 질문하기 어려운 영화가 <해무> <대호>……(웃음).

그 영화들도 좋은데(웃음).
<대호>는 흥행이 잘 안 돼서 내 아픈 손가락이다. 무겁고 어려운 영화는 배우도 여운이 남아 있어서 대답을 짧게 하게 된다. 그때 질문이 안 나오겠다고 직감했다(웃음).
공식적인 자리에서 짧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에서야 이것저것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영화 행사에서는 길게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의 마음속에 우리 영화에 대한 심상이 그려질 게 아닌가. 내가 혹시라도 말을 잘못해서 그 심상을 깨질까 봐 걱정된다.

그래도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 당시, 영화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보다 정말 잘 나왔다. <특별수사>의 원래 시나리오는 너무 친절했다. 필재, 판수, 순태 등 인물들의 전사가 다 들어 있었다. 이걸 전부 촬영하고 나니 영화가 너무 허술해져서 감독이 걱정했다. 그래서 권종관 감독이 다 편집해버렸다. 그러고 나니 영화가 훨씬 좋아지더라. 감독이 고생했을 게 눈에 훤했다. 편집실에서 곰이 사람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거다. 내가 나온 장면을 많이 들어내서 감독이 내 눈치를 보기도 했는데, 정작 나는 인지하지 못했다(웃음).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웃음).
그 양반도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투자자를 이해시켜야 하니 시나리오가 친절할 수밖에(웃음). 더군다나 10년 만에 신작 영화를 내놓는 거잖나.

순태 장면이 많이 편집돼 속상하지 않나.
영화에 순태가 너무 많이 보이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신파극으로 보일 테니까. 그래서 감독에게도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지거든 순태를 제일 먼저 자르라고 말했다. 예고편에서도 날 빼라고 했다. 예고편은 짧으면 5초, 길면 10초 안에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신파극인 순태와 잘 나가는 사무장 필재가 나오면 영화가 모호해 보일 게 아닌가. 그래서 예고편에도 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배우로서의 아쉬움은 없나?
전혀. 많이 나온다고 좋은 게 아니다. 짧게 나오더라도 내가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캐릭터가 뇌리에 남는다. 감독과 장면을 상의할 때도 어떻게 하면 더 짧게 압축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신이 필요한가, 불필요하면 빼자, 하면서.
순태를 연기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
순태가 처한 상황을 관객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순태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순간 영화가 무너지니까. 그래서 센 감정을, 짧고 굵게 한 번에 전하는 방식을 취했다. 감독이 정말 날 영리하게 잘 써 줬다. 한 시름 놨다(웃음).

그렇지. 순태가 무너지면 영화도 무너진다(웃음). 첫 줄기가 사모님의 갑질 대 필재의 대결이라면, 다른 하나는 순태의 부성애니까.
감독과도 순태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것을 가장 많이 상의했다. 그래서 순태를 연기하면서 여러 번 촬영했다. 감방 동기로 나온 이문식과 싸우는 장면도 세 번이나 찍었다. 영화에서 쓰인 건 두 번째 테이크지만. 한 번은 과잉으로, 한 번은 감정을 좀 덜어내고, 마지막은 건조하게도 촬영해봤다. 편집실에서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다시 찍을 수 없으니까. 차라리 지금 여러 번 찍어서 선택지를 늘려놓는 게 낫다.

그 격렬한 액션신을 세 번이나 찍었나.
물론 현장에서는 빨리 끝내고 싶다. 정서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 봐야 딱 5분이다. 더군다나 10년 만에 신작 영화를 내놓는 감독이잖나. 같은 편인데 힘을 실어줘야지(웃음). 아무리 쉬운 신이라도 쓸데없이 반복하게 만들면 힘이 빠진다. 그런데 권종관 감독은 워낙 배우를 영리하게 잘 쓰는 감독이니까 괜찮았다(웃음).

이문식과의 호흡은 어땠나?
감방 동기와 싸우는 장면은 촬영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연습했다. 액션 스쿨에서도 연습하고 당일 리허설도 몇 번이나 했다. 징글징글했지(웃음). 이문식과의 호흡은 정말 좋았다. 예전에 같은 소속사 식구였기도 했고. 이문식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 엄청난 사람이다. 몸도 정말 예쁘다. 마치 태국의 생활형 근육 같은 잔근육이 몸에 꽉 박혀 있더라. 힘도 어찌나 좋은지 내가 밀렸다. 그 장면을 끝내고 회식을 했는데 술도 많이 마시더라고.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데도 근육이 생기다니! 대단하더라. 그러고 보면 이문식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을 혼자 돌기도 했다.

목을 졸리는 신도 있었잖나. 무척 힘들어 보였다.
모니터로는 배우의 상황을 인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감독이 나한테 직접 컷을 하라고, 그러면 본인이 알아서 신을 잘라 쓰겠다더라. 문제는 배우도 자기의 상황에 맞게 컷을 못한다는 점이다. 배우는 어떻게 하면 더 진짜처럼 보일까, 고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적정선을 모르고 무리하기 일쑤다. ‘적당히’가 안 되는 게 배우다. 이번에도 그렇게 용을 쓰다 오줌까지 찔끔 지렸지(웃음).
순태에 많이 공감됐나 보다.
내가 살면 딸이 죽고, 내가 죽으면 딸이 사는 상황이다. 문제는 내가 죽으면 명예도 사라진다는 거지.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거든, 순태는. 얼마나 서럽겠나. 대본을 읽을 때도 병실신이 제일 서러웠다. 그런데 막상 샤워실 액션신을 찍고 병실에서 목줄을 매는데, 감정이 해소돼서 그런지 담담하더라. 감독도 이 컷이 제일 좋다고 했고.

이렇게 고생할 걸 어느 정도는 미리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특별수사>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특별수사>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니 눈보라가 몰아치는 들판 한 복판에 야생동물이 버티고 서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집도 절도 없는 그 짐승은 오직 눈보라를 맞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 눈보라가 지나갈 때까지. 그 짐승이 순태처럼 보였다. ‘버텨야 되는구나, 살아남아야 되는구나, 이게 순태구나’ 하는 느낌. 감독도 공감하더라.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장 재밌는 거(웃음). 나한테 와 닿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명작이라도 와 닿지 않으면 힘들다.

실제로 자녀도 있으니까 순태에 더 이입됐을 것 같은데.
순태가 내 마음속에 쑥 들어오더라. 이게 좋은 점도 있지만 무서운 점도 있다. 연기가 현실이 돼 버릴까 봐 무섭더라. 애들을 보면서 ‘변호사, 법조계 사람을 많이 알아놔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괜스레 애들한테 더 미안하고 애들이 애잔하게 느껴지고. 정작 애들은 잘 사는데(웃음). 좋은 경험만은 아닌 것 같다.

자고 있는 동현이의 입에 귤을 까서 넣어주는 장면이 참 찡했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촬영팀이 전부 울었다. 이 장면은 그냥 상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감독이 직접 겪은 거다. 권종관 감독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나오셨다더라. 어머님이 생선을 발라서 밥에 얹어주셨는데 꿈에서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알아서 감독이 울면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이런 신은 정서적인 힘이 대단한 것 같다.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지.
차 안에서 아기 동현이가 “아빠”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이 장면으로 순태의 과거가 짐작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아서 아쉽더라.
감독과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는데 공통점은 하나였다. 순태가 양아치였다는 거. 순태는 동현이를 만나기 전과 후가 180도 다른 인물이다. 과거에 순태는 아무런 책임감도, 정의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아무 여자랑 동거를 하다 헤어졌고, 소문으로 그 여자가 임신했다는 걸 들었을 거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그 여자가 동현이만 순태의 집 안에 덜렁 둔 채 가 버린다. 아마 순태는 동현이랑 둘이 쳐다보면서 밤을 새웠겠지. 그러다 아침에서야 정신을 차리곤 “아니야, 버려야지, 가자”하면서 애 손을 잡고 이끄는데, 동현이가 “아빠”하고 부르는 거다. 순태의 마음이 바뀌는 시점이다. 원래 극단에 있는 놈이 바뀌면 극단으로 간다. 그 이후로 순태는 자기 주위의 환경을 완전히 바꿔서는 동현이를 위해, 택시기사로 살게 된다.

“아빠”하고 부르는 아역배우가 참 예쁘더라(웃음).
촬영할 때 애로사항이 많았다(웃음). 아기가 두 살이라서 촬영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거든. 아이가 자꾸 나한테 아빠가 아니라면서 떼를 썼다. 해는 지고 있고 시간도 없어서 빨리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이한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그냥 나중에 오디오를 삽입하기로 했다. 아이의 눈망울이 정말 예뻐서 그 장면이 공감됐다. 저 눈망울로 “아빠”라고 부르는데 누군들 안 넘어가겠나(웃음). 순태도 그렇다. 그 이후로 순태는 절대 자신의 외로움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괜찮은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 거다.

김명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다(웃음). 김명민이 나를 술이나 먹고사는 한량으로 보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유명하잖나. 보통 자기와 싸울 때 머릿속에서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하면서 그만둬야 할 이유가 백 가지도 넘게 떠오른다. 김명민은 그런 유혹을 다 이겨낸 사람이다. 대단해 보이지 않을 리가! 그런데 정작 만나보니 시원시원한 사람이더라. 전주에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말을 놨다(웃음).
한때 연극을 포기한 채 라면집을 차려보기도 하고 신문 배달도 했었다 들었다. 왜 연기를 놓지 못했나?
좋아서 그렇다. 이건 절대 이성적으로 말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부모님도 못 말렸다(웃음). 너무 재밌다. 욕을 먹어도 좋다. 연극을 그만둔 건 원주에서 아내와 사귀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열심히 연기를 했으면 전셋집이라도 한 칸 있어야 하는데 5만 원짜리 월세집에 살면서 지금까지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문득 너무 서럽더라. 그래서 막노동도 하고 신문 배달도 하며 돈을 모아서 상지대학교 앞에 라면집을 차렸다. 15만 원짜리 월세 가게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살았다. 문제는 장사가 잘 되고 밤새 일을 하는데도 남는 돈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낮에는 막노동을 해서 500만 원을 벌었다. 그러고 나니 다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지더라. 내 삶이 연극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았다. 연기가 너무 소중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하겠나(웃음).

무명시절이 불안했을 텐데. 어떻게 견뎠나?
지나고 나면 그게 참 신기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견디지 못한다. 내가 그때 수용소에서 그렇게 살았던 거라면 죽지 못해 살았다 말했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였으니까. 몇 년씩이나, 어떻게 그렇게 지냈는지 모르겠다(웃음).

오달수와 곽도원이 주연 영화를 찍어서 부럽다고 말했더라(웃음)
쪽팔리다(웃음). 부럽다는 말이 그렇게 활자화되니까 어감이 사라지더라(웃음). 내 목표는 주연이 아니다. 주연은 흘러가는 한 때다. 내 목표는 꽃이 지고 나서 씨를 뿌리는 거다.

어떤 씨?
‘그 배우 참 좋았지, 지나고 나니 참 재밌었네, 쟤 보면서 많이 웃었다’ 하는 배우로 남는 거지. 굳이 주연을 거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만 이렇게 가면,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부럽다”는 말을 “반갑다”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렇지. 반가운 거지(웃음).

본인이 주연인 영화는 어떤 작품일지 상상해 본 적 있나?
어떤 영화일지는 상상해 본 적 없다. 다만 김상호도 투자를 받고, 김상호를 주연으로 이야기가 완성되고, 관객들이 그 영화를 좋아해줄 날이 올까, 하고 생각은 해 봤다. 그거 진짜 대단한 거거든. 오달수나 곽도원, 지금 주연급 배우들은 정말 대단한 거다. 평생 벌어도 못 벌 30억을 투자받는 거니까. 하늘이 내는 거다. 정말 좋을 거 같다(웃음).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CG가 엄청 투입된 <조작된 도시>라는 영화다. <특별수사>에서는 잡놈이었다가 사람 된 캐릭터를 맡았다면 <조작된 도시>에서는 개잡놈으로 나온다. 너무 좋다. 아주 거침없는 캐릭터다. 개잡놈 캐릭터를 즐기고 있다(웃음).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뭔가?
<특별수사>가 일반 시사회를 하면서 3만 관객을 동원했다더라. 시사회가 거듭될수록 관객들의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맨 처음에는 ‘시사회 한다네, 배우들 반갑다’하는 느낌이었다면, 나중에는 ‘영화 재밌다며, 잘 볼게’ 하는 공기더라. 영화가 재밌다고 소문이 난 것 같아 좋다.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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