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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는 당신 <양치기들> 박종환
2016년 6월 8일 수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너무너무 아파 보였다, <검사외전>의 이진석일 때는. 너무너무 까칠해 보였다, <양치기들>의 완주일 때는.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의 박종환은 아파 보이지도 까칠해 보이지도 않았다. 조금 긴장한 듯 보였으나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예술대학 영화과에서 공부하며 2009년부터 조금은 느긋하게, 유쾌하게, 반 박자 천천히 걸어온 배우 박종환.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제일 좋다는 그는 <양치기들>이 또래 삶의 단면을 그린 영화라서 출연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사람이 보이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배우 박종환이 어느 영화, 어느 캐릭터로 잘 지낼 계획인지 궁금해졌다.

*해당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인터뷰 일정이 빡빡해서 많이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인터뷰가 적응되지 않나 보다(웃음).
이런 게 익숙하지 않다(웃음). 적응 중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쉽게 적응되진 않을 거라더라. 인터뷰를 많이 하는 베테랑들도 힘들어 한다니까(웃음).

잠은 잘 자나?
잠이 잘 안 온다. 매일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을 하니 긴장된다(웃음).

기자들 사이에서 <양치기들>의 반응이 좋다. 소감이 어떤가?
<양치기들>이 다양성 영화로 분류돼서 더 응원받는 것 같다. 오늘(2일) 개봉해서 대중에게 영화를 선보이는데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걱정이 된다는 건가?
걱정되는 건 아니다. <양치기들>을 촬영할 때만 해도 그저 영화제에 출품되기만을 바랐다. 이렇게 대중 앞에 개봉하는 것까지 기대한 건 아니라서(웃음).
<양치기들> 시나리오의 첫 느낌은 어땠나?
흡입력 있었다. 장르영화처럼 시작되고 장르영화처럼 사건이 벌어지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게 참 좋았다. 인간관계를 어떻게 책임질 건가, 하는 물음도 좋았고.

<양치기들>을 선택한 이유는?
내 또래를 기록한 영화인 것 같아서. 특정 시기를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완주는 20대에 소중한 꿈을 이루려 하다가 30대에 와서 좌절한 남자다. 꿈을 외면하고 사는 거다. 그런 완주의 모습이 내 또래와 닮아 보였다.

본인은 무엇을 잃었나?
사람을 잃었고 사람을 얻었다(웃음). 과거의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잃었고 지금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은 얻었다.

그들은 왜 당신을 떠났나?
떠나진 않았다(웃음). 과거에 나는 사람들을 편하게 만났다. 몇 시가 됐든 전화를 했으면 무조건 만나는 거였다. 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니까. 지금은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만나지 못해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을 수 있잖나. 그런데 지인들은 자주, 편하게 만날 수 없다는 걸 아쉬워하더라. 그러다 보니 지인에게 전화하는 횟수도 줄게 됐다.

바빠서 그런 건가?
아직 경험치가 없어서 그렇지. 예를 들어 내일 촬영이면 오늘 저녁에 시간이 비지 않나. 그럼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 시간에 누구를 만나기가 어렵다. 정작 일정이 있는 건 하루인데 그 앞뒤 하루까지 합쳐서 사흘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끼는 거다. 적응할 시간을 여유롭게 두려 한다. 조금 더 경험이 생기면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 되겠지(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하하(웃음). 많은 기자분들이 내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이상하게 기자와 10분, 20분 정도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 기자의 기대치에 맞춰서 답을 하게 된다. 내 스스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말하는 게 아니라 그 기자가 원하는 배우상을 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든다. 당신은 내가 어떤 배우가 되길 바라나(웃음)?

글쎄(웃음). 그럼 질문을 바꿔 보자. 어떤 칭찬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 좋던가(웃음)?
음……(웃음).

청소를 잘 한다는 사소한 칭찬도 좋다.
갑자기 우울해졌는데(웃음). 내가 청소를 너무 안 하거든(웃음). 잘 지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좋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할 때 행복하다. 정말 고맙다.

사람을 정말 중시하나 보다. 사람에 따라 시나리오를 택하기도 하나?
그것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시나리오를 택하려 한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가 좋다. 배우가 보이는 영화보다, 사람이 보이는 영화. <양치기들>를 택한 이유도 이거다. 장르적으로 들어가서 장르적으로 영화를 전개하지만 결말에서는 장르적인 느낌을 덜어낸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태도를 보여주려 하잖나. 기자들이 실제 내 성격을 물어보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캐릭터가 아닌 사람이 보이도록 결말을 만드니까 캐릭터와 내가 겹쳐 보이는 거지.
영화의 화두가 거짓말이다. 본인은 거짓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짓말에 대한 생각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캐릭터와 괴리가 느껴지는 걸 싫어한다더라. 관객 앞에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연기하는 걸 원한다던데(웃음).
너무 당연한 얘기잖나. 그런데 그게 내 특징으로 기사화가 됐다. 아마 다른 배우들도 다들 그렇게 연기하고 있을 거다(웃음). 남한테 거짓말하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 말이 어쩌면 역설적인 것일 수 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진정성을 담아 거짓말하는 것이잖나(웃음).
연기를 하면서 거짓말하는 상황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다만 영화에서 거짓말을 할지라도 그 메시지가 위로나 희망으로 관객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웃음). 관객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가 좋은 거니까.

다시 영화 얘기를 해 보자. <양치기들> 결말에서 완주가 유일하게 자기를 믿어준 미진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끝나잖나. 완주의 심경은 어땠을까?
글쎄, 촬영하면서도 완주의 심정을 10분의 1, 10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과거를 기억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 혹은 죄책감 같은 게 들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미진의 남동생이 완주를 찾아왔을 때는 박대하잖나.
완주가 진심을 보여주기에는 너무 창피한 상황이었다.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부끄러움 때문에 남동생을 거부한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과 현재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감정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를 튕겨낸 거다. 온갖 감정들이 뒤범벅된 상태의 완주였기에, 나 역시 어떤 감정을 전달해야겠다고 딱 정해서 연기하진 않았다.

그런 혼란스러움이 대표를 만났을 때도 묻어나더라. 대표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까 대표를 협박해서 다시 연기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완주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대표를 만나서도 별다른 말 없이 돌아섰다.
대표에게 배신 당하고 완주는 연극을 완전히 떠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대표의 아들이 사람을 죽여서 자기가 곤란에 처했잖나. 완주는 도대체 대표가 왜 자신에게 그런 상처를 줬고, 이번에도 목격자 역을 대행하게 만든 건지 혼란스러웠을 거다. 그러다 보니 당신은 어떻게 지내는지, 난 이렇게 돈 벌면서 지내고 있다고 빙빙 돌려 말한 게 아닐까. 문득 대표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저 툭 내뱉듯이 “당신 아들이 사람을 죽였어요”를 말한 거고. 목적을 가지고 이 말을 한 게 아니다. 나 역시 답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했다.
만일 당신이 완주의 상황에 처했다면 진실을 규명하려고 했을 것 같나?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거다. 애초에 그런 제안을 수락하지도 않을 테고.

완주의 어머니가 편찮으시잖나. 병원비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그래도 안 할 거다. 완주도 병원비가 필요해서 살인사건 목격자 역을 대행한 게 아니다. 강선영이란 인물이 자기 아들이 살해됐다고 하니, 그녀를 돕고 싶어서 수락한 거다. 나 역시 강선영을 도와주려고는 하겠지만 큰 돈을 받는다는 조건이 생기면 수락하지 않을 거다.

왜?
내가 한 것에 비해 큰 보상을 받아 봤던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큰 보상이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가 그냥 지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프러포즈를 하는 거다. 그러면 좋기도 하지만 부담스럽기도 하잖나.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완주는 어떤 사람인가?
완주는 과거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때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연극배우였다. 그곳에서 순수한 마음을 주고받았던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그런데 지금 완주에겐 아무것도 없다. 새로 사귄 친구도, 꿈도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을 만한 게 전혀 없는 것이다. 그저 역할 대행업이 즐겁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술에 곯아떨어져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서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사는 사람이 됐다.

완주가 안쓰럽다.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완주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은데.
없었다(웃음). 난 연극도 안 해 봤다. 지금까지 살면서 역할 대행업을 해 본 적도, 그런 선택을 한 적도 없다. 물론 연기를 소중히 여기긴 하지만 완주처럼 조마조마하게 살진 않았다. 마음 편하게 지냈다(웃음).

조금 의외다(웃음). 그럼 당신은 언제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나?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배우가 눈에 밟혔다. 서울예대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과제로 만든 단편영화에 작은 역할로 출연하게 됐다.
배우가 돼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내게 연기를 해 보라고 권유한 사람은 없다(웃음). 당시만 해도 배우가 되겠다고 커밍아웃을 한 상태는 아니었거든. 그런데 학교에서 영화에 자주 출연하다 보니 날 응원해주는 감독이 생겼다.

무명시절을 거치면서 불안하진 않았나?
불안하지 않았다(웃음). 내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행히 그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인 것 같다. 내 선후배들 성격이 느긋하다. “하루아침에 성공할 수 있나, 더 해야지, 많이 해 봐야지”하는 타입이다. 내가 주로 연출자와 친하게 지내는데, 감독의 경우 한 편의 영화를 3, 4년씩 준비하잖나. 내가 연기생활을 비교하는 대상이 배우보다는 연출진이라서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다.

성격이 느긋한 것 같다(웃음). <양치기들>에서 볼 때는 너무 까칠하고 예민해 보였는데.
실제로는 즐거운 걸 좋아한다(웃음). 내가 남들을 웃기진 못해도 웃긴 사람 보는 것도 좋아하고. 유쾌한 게 좋다(웃음).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웃음)?
전화한다. 유쾌한 사람한테 전화해서 시간 남으면 차 한 잔 하자고 불러낸다(웃음).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
영화 얘기. 최근에 뭘 봤는데 어떤 점이 인상적이더라, 하면서. 그러다 딴 데로 빠지곤 한다. 이를테면, 이 역할의 사이드퀄(전작의 같은 시간대 안에서 다른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온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는 거다. 내 주위에는 배우인데도 연출을 하고 싶어 하고, 연출자인데도 연기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보니 이런 얘기를 나누면 더 재밌다.

최근에는 어떤 영화를 봤나?
<곡성>(웃음).

본인이 연기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었나?
친구들과 이 얘기도 많이 했다(웃음). 곽도원이 맡은 ‘종구’ 같은 캐릭터가 좋다. 겁이 많지만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물이 매력적이다.

사이드퀄로 만들어 볼만한 캐릭터는(웃음)?
‘부제’의 사이드퀄이 나오면 재밌을 것 같다. 결말에서 ‘부제’가 동굴에 가 외지인과 만나잖나. 도대체 ‘부제’가 거기에 왜 찾아간 건지, 왜 외지인을 만나고 있는 건지, 참 신선하더라. 영화의 메시지나 종교적인 상징성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인가 싶었다.
차기작 <원라인>을 준비 중이라 들었다. 비중이 큰 역을 맡았다던데 어떤 역인가?
얼마 전에 <원라인> 촬영이 끝났다. 주인공의 조력자 역을 맡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내 역할 비중을 다르게 느낄 거다(웃음).

조금 등장하지만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쥔 인물인 건가(웃음)?
그 반대다(웃음). 많이 등장하는데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진 않다. 상업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초반에 이 캐릭터를 빨리 간파해서 설득되지 않으면, 끝까지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다. 이해한다면 내 캐릭터를 매력적이라고 느낄 거다(웃음).

큰 영화에서 비중도 크고, 도전적인 캐릭터를 맡아 좋으면서도 걱정될 것 같은데.
부담도 된다. 그렇지만 희열이 더 크다. 단선적인 캐릭터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인생에서도 단선적인 건 재미가 없다. 물론 부모님과 가족같이 확고히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은 있지만 이 외에는 입체적이고 열린 자세로 살고 싶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뭔가?
<원라인>의 남자 배우들과 낚시하러 갔다. 나도 최근에야 낚시에 관심을 가진 터라 낚시를 잘 하진 못한다. 그런데 (임)시완이도 실력이 나와 비슷하더라(웃음).

2016년 6월 8일 수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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