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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수식어 <날, 보러와요> 이상윤
2016년 4월 9일 토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최정인 기자]
‘엄친아’ 이상윤은 모든 것을 가진 듯 했다. 데뷔 이후 꾸준히 드라마 출연을 이어왔고 참여한 작품마다 시청률도 좋았다. 심지어 국민 남편, 국민 첫사랑이라는 쉽지 않은 수식어도 얻었다. 하지만 이상윤은 새로운 수식어를 탐내고 있었다. <날, 보러와요>를 통해 본격적인 영화 신고식을 치룬 이상윤은 ‘영화 배우’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날을 꿈꾸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을 넘어 배우라는 두 글자로 기억되길 바랬다. 여유로운 표정 뒤에 숨겨진 이상윤의 심상치 않은 욕심을 발견했다.


어제 GV가 밤 늦게까지 계속돼 피곤하겠다.
졸립더라. 겨울 내내 잠이 많아졌는데 어제는 오랜만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웃음).

GV 때 보니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더라.
시사회 때 결과물을 처음 봤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시나리오 단계보다 더 많이 발전된 결과물을 보고 여러 가지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어떤 부분이?
영화의 전체적인 속도감이 예상했던 것보다 굉장히 빠르더라. 감독님의 성향이 원체 느긋한 편이어서 촬영 당시에는 영화의 속도감이 이렇게 빠를 거라고 예상 못했다. 그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본인의 연기는 생각대로 나온 것 같나.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보여 많은 숙제가 남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놓친 부분, 촬영 당시에 더 고민했어야 하는 부분이 보이더라. 촬영할 때 시나리오 상에서보다 이야기가 조금 더 발전된 부분이 생겼는데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신경썼다면 훨씬 ‘맛나게’ 연기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쉽다.

어떤 식으로 ‘맛나게’ 연기할 수 있었다는 건가.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모두 연결된 최종 결과물로 보니 완성된 영화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나남수의 캐릭터를 다루고 있었다. 감독님이 생각한 나남수는 화자로서 생각과 태도가 매우 중립적인 인물인 것 같더라. 색깔로 비유하자면 무채색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런데 만일 내가 캐릭터에 조금 더 감정을 이입해서 연기했다면 화자로서의 나남수가 아니라 인물로서의 나남수의 맛을 살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영화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감독님이 상상한 화자로서의 나남수에게는 불필요한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단지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다.

숙제가 남는 작품이라면 어떤 면이?
연기적인 부분이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스토리 라인이 기존보다 조금 더 탄탄해진 부분이 있다. 촬영 전에 감독님과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만 촬영할 때는 촬영에 집중하느라 놓친 부분이 있다. 결과물을 보니 촬영하면서도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가며 연기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질문이라면?
감독님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하는 촬영이기도 했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 에너지를 신경쓰다 보니 연기적으로 미처 꼼꼼히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

영화에 대한 걱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영화와 드라마의 연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물론 연기의 본질은 드라마, 영화, 연극, 모두 다르지 않겠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대와 영상 연기의 차이는 현저히 드러나도 드라마와 영화는 모두 영상을 이용한 것이다 보니 그 차이를 정확히 알기 힘들었다 . 예전에도 영화를 한 적이 있지만 작은 규모의 영화였고, 처음 했던 작품은 상업영화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다. 그런데 <날, 보러와요>를 하루 이틀 촬영할 때는 감독님이 잘 하고 있다고 편하게 하면 된다고 해서 드라마를 할 때와 크게 차이를 두지 않고 편하게 연기하려고 했다. 막상 해 보니 크게 다르지 않은데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더라. 하지만 처음에는 영화가 어떤 영역인지 모르니 걱정이 있었다.

나남수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 방송조작을 하는 나남수를 ‘악인’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방송 조작을 한 건 분명 잘못된 거다. 하지만 <날, 보러와요>는 영화이지 않나. 허구적이고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연기할 때는 나남수가 저지른 방송 조작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몸 담은 분야에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고 더 많은 걸 이루고 싶은 욕망은 있을 수 있다. 실행은 안 해도 한 번쯤 편법을 상상해 봤을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나남수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거나 그의 선택과 행동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남수는 과거에 자신이 누렸던 것들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그런 욕망을 구현하는 데 있어 일반 사람보다 더 크게 작용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남수가 거짓을 이야기한 이유는 또 다른 진실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었다.

강수아를 강압적으로 대하는 모습도 ‘악인’의 이미지를 강화시킨 장면 중 하나다.
물론 나남수가 강수아를 대하는 방식이 좋지는 않다. 진실하게 다가가서 사실을 얻어내야 옳은 거겠지. 하지만 나남수는 강수아가 계속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녀를 자극한 거다. 그 정도는 어느 분야의 종사자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들도 취재할 때 상대방을 자극해서 정보를 끄집어내는 경우가 있지 않나. 촬영장에서도 감독님이 연기자에게서 특정 연기를 끌어내려고 회유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감독님에 따라서 배우를 조금 자극시켜 연기를 이끌어 내는 경우도 있다. 나남수의 행동은 그런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남수가 강수아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화를 내는 장면은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라기보다 욱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촬영할 때부터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기도 하고 결과물을 보고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실제 촬영도 어려웠다. 그 장면에서 나남수의 심리를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나남수의 감정이 고조되는 과정이나 나남수가 강수아로부터 진실을 끌어내기 위한 자극적인 말이 와닿지 않더라. 대사도 입에 잘 안 붙고 강수아를 제대로 자극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내 생각을 계속 어필하고 수정을 요구했다. 감독님도 내 생각에 동의해서 신경을 써 줬는데 여건 상 촬영 전날에야 그 부분을 제대로 논의할 수 있었다. 감독님도 밤새 수정작업을 했고 나도 감독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 도중에도 시간을 가지고 대사를 조금 손 보기도 했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남수의 행동이 발전되는 과정이 영화의 전체적인 속도감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편집됐다. 그래서 나남수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나남수의 행동이 갑작스럽고 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장면은 다양한 버전으로 촬영했다고 들었다. 당신의 의견이 반영된 버전도 있었을 텐데.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영상도 있다. 나남수의 감정선에 변화를 줘서 여러 가지 버전을 촬영했는데 사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실제로는 나남수의 감정이 지금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처럼 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강수아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가 화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남수의 고조된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설정을 하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연기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강예원의 반응과 다른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하다고 본 장면을 쓴 것 같다. 실제로 그 부분은 편집과정에서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다듬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니 어떤가.
창작은 한 건 결코 아니다. 의견 제시 정도였다. 촬영할 때는 감독님이 다른 부분을 신경써야 해서 내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 이후 추가 촬영에서 반영된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의견을 냈던 부분은 강예원이 담당한 영화의 과거 장면이 아니라 나남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철하 감독은 당신이 이야기를 보는 스마트한 눈을 가졌다고 크게 칭찬하더라.
그렇다기보단 평소 <날, 보러와요>와 같은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고 싶고 기대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지점들을 감독님에게 제시했고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받아들여줘서 추가 촬영을 한 거다. 어찌보면 영화사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더 추가되는 상황이라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간혹 연출을 위해 연기 수업을 받는 감독도 있다. 배우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건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어찌보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고 어찌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연기자들이 연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영역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에너지를 쏟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품을 계속 하고 내 연기를 스스로 모니터하는 과정을 통해서 연출적인 장치들을 조금씩 인지하게 되는 부분이 생기더라. 그리고 실제로 그런 부분을 알고 연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는 분명 연기의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연기자로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가려 하다 보니 가끔은 주제넘는 짓이지만 이런 콘티보다는 저런 콘티가 맞지 않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지극히 나의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해서 생각할 때 나오는 의견이다. 그래서 내 의견을 감독님에게 제시하는 건 위험하고 주제넘는 짓인 것 같다. 단지 캐릭터에 대해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어필하는 정도다. 내가 표현하고자 한 포인트가 이런 식으로 촬영했을 때 조금 흐릿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부분을 감독님에게 전달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거다. 하지만 연출적인 부분까지 건들이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인 것 같다.

내가 찍겠습니다, 감독님! 하는 거다(웃음).
그러니까! (웃음) 난 널 못 믿겠으니 나에게 이 컷을 달라, 이건 정말 위험하다. <날, 보러와요>에서도 이야기 구조가 이런 식이면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만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을 넣어 달라고는 말 못했다.
다른 인터뷰 기사를 보니 만화책 ‘소년탐정 김전일’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런 기호가 시나리오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
있다. 만화책이나 반전으로 인한 충격이 큰 영화들을 보면 그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본다. 어찌 보면 비밀은 왼 손에 있는데 오른손으로 시선을 뺏는 마술 같은 거다. 그래서 <날, 보러와요>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에 접근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관객을 함정에 빠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했다. <날, 보러와요>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는 복합적인 구조의 이야기다.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한 번에 다뤘지만 나는 나남수로서 현재의 이야기만 다루다 보니 각자의 이야기에도 조금 더 굴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두 이야기의 굴곡이 만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도 있고 한 이야기의 숨겨진 부분이 다른 이야기의 재미를 높일 수도 있지 않나. 서로 헷갈리게 할 수도 있고. 그래야 강수아의 비밀이 밝혀질 때 관객이 받는 충격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사람은 강수아고 나남수는 관객의 시선을 뺏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나남수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면 관객들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나남수가 왜 이렇게 심각하지? 하고 헷갈리게 될 수 있지 않나. 내가 관객의 시선을 잘 뺏어야 강예원이 연기한 부분도 모두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진실을 캐내려고 하는데 배우는 진실을 가리려고 하니 캐릭터의 목적과 배우의 목적이 반대인 셈이다.
맞다. 나남수가 거짓 진실을 진실되게 찾아가면서 관객이 자신을 따라오도록 해야지만 진짜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거다.

<날, 보러와줘>에 애정이 많아 보인다.
맞다. 사전제작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작품 전체에서의 나남수의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인물로서의 색깔을 조금 잃은 것 같아 아쉽다. 나남수라는 캐릭터에 애정이 많았다.

영화도 재밌었고 연기도 안정적이었는데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엄격하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데다가 관객들의 시선을 뺏는 건 평소에도 해 보고 싶었던 역할이라 아쉬움이 크다. 이야기는 전달됐지만 인물을 보다 더 사람 냄새 나도록 연기하지 못한 게 아쉽다. 물론 다시 영화를 보면 아쉬움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부족한 부분에만 눈길이 가더라. 그리고 영화가 재밌으니까 내가 놓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맞다. 그런 게 있다. 뭔가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를 계속해서 괴롭힌다.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완벽을 이루지도 못하면서 완벽을 꿈꾸는 것 같다. 요즘은 마음을 자꾸 내려놓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으려 하기도 하는데 <날, 보러와요>는 처음 접하는 장르인데다 영화다보니 나도 모르게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나왔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관객들의 시선을 뺏을 수 있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역할이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화 출연이 드물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무슨 이야기를 해도 결국 핑계일 거다. 결국 연기자로서의 부족함 때문이 아닐까. 내가 연기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영화 관계자들이 어떻게든 나를 꼬시려 했겠지. 과거에도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는 했다. 캐릭터의 비중을 떠나 욕심난 작품이 몇 개 있었는데 여건 상 무산됐다. 한 번은 너무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한 작품을 막 끝낸 상태여서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 기회가 눈에 안 들어왔다. 결국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찼던 거다. 드라마에 비해 영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까지는 영화계에서 이상윤이라는 연기자를 모르기 때문에 제의가 적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날, 보러와요>의 인터뷰를 통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사람들이 나를 몰라서 부르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영화는 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계속 드라마만 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다더라! 결코 아니다!

영화도 하고 싶다는 걸 조금 더 강하게 어필을 할 필요가 있다(웃음).
이번 기회로 영화 제의가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 다들 영화도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영화도 많이 하라고 하더라. 하고 싶다. 캐스팅을 해 달라!

영화 출연은 드물었지만 드라마는 꾸준히 하고 있는 데다가 하는 작품마다 흥행이 좋은 편이라 왠지 여유가 있어 보인다(웃음). 그러다 보니 영화까지 욕심내지 않는 느낌이 있다.
여유가 있어 안 하는 건 절대 아니다(웃음).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또래 배우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욕심이 날 법도 한데.
부럽다. 영화도 많이 하고 싶다. 그런데 소속사가 주로 드라마 쪽과 접촉을 해 왔고 나 역시도 드라마를 계속 하다 보니 그 쪽으로 기회가 더 많이 생겼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영화를 많이 접하다보면 영화에 대한 기회가 자연스레 많아질 수도 있겠지. 그런데 영화와 드라마 모두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에 한 쪽만 할 생각은 없다. 소속사와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소속사도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주연인데 영화를 하게 되면 주연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소속사 입장에서는 조금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더라. 반대로 소속사가 만족스러운 작품은 역이 작거나 그마저도 너무 대단한 연기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기회가 적었는데 만일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작은 역이라도 열심히 할 생각이 있다.
그럼 가장 하고 싶은 역은?
해 본 역할이 많이 없어서 모두 하고 싶다. 드라마는 대부분 멜로 연기를 했다. 그래서 장르물인 ‘라이어게임’이 너무 재밌었다. 어찌보면 <날, 보러와요>도 ‘라이어 게임’처럼 퍼즐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비슷할 수 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도 좋고 코미디도 좋다. 누아르, 액션도 마찬가지다. TV를 한다면 시트콤도 해 보고 싶다.

시트콤!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나는 드라마를 할 때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배우들과 친해져서 우리만의 시트콤을 짜게 되더라(웃음). 배우들의 성격은 각자가 연기하는 인물과 또 다른 매력이 있지 않나. 그래서 드라마 속에서와는 다른 인물 관계를 설정해 보는 게 재밌더라. 시트콤도 해 보고 싶다. 로맨스와 멜로 느낌의 따뜻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시트콤이나 다른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운동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액션도 잘 어울리겠다.
농구를 너무 좋아한다. 지인들은 나더라 농구 드라마나 영화가 있으면 꼭 출연하라고 하더라. 하지만 공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공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거든(웃음). 완성도 높은 작품이 제작된다면 당연히 해 보고 싶다.

‘슬램덩크’도 분명 봤겠다.
예전에 드라마 조연출을 하던 친구가 자신이 입봉하면 반드시 ‘슬램덩크’를 드라마로 연출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런데 콘티를 만화책과 똑같이 해서 만화의 내용을 현실에 그대로 옮기겠다고 했다. 나름대로 강백호는 누구, 서태웅은 누구, 모두 캐스팅도 했더라. 나보고는 윤대협을 하라면서(웃음).

정말 잘 어울린다(웃음).
나도 윤대협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

배우로서의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연기에 임하는 자세. 열심히는 한다.

욕심이 많아 보이는 당신이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는 정말 많은 노력이 있을 것 같다.
일할 때는 다른 생각을 못 한다. 작품할 때면 인간관계도, 몸 관리도, 개인 생활이 정지된다. 그래서 작품하고 나면 항상 몸이 크게 아프다. 작품하는 동안 몸이 계속 축나고 있는데 긴장하고 집중하기 때문인지 그걸 잘 모르는 거다. 그러다가 쉬는 동안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그 동안 정지됐던 인간관계를 몰아서 챙기다 보면 몸이 완전히 고장난다(웃음). 작년에도 ‘두번째 스무살’ 촬영이 끝나고 10월 말부터 <날, 보러와요>의 추가 촬영이 있었는데 평소대로라면 쉴 수 있는 기간에 일이 이어져 리듬이 어긋났다. 그리고 드라마가 잘 되면 종영 후 스케줄이 많아지기 때문에 12월 초까지는 계속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날, 보러와요>의 추가 촬영을 할 때부터 시작된 몸살과 목감기 기운이 그 이후로 한 달 반 정도 갔다. 12월에는 계속 요양만 했다.
<날, 보러와요>와 ‘두번째 스무살’의 촬영이 겹친 걸로 안다.
기간이 겹치긴 했는데 영화 스케줄이 잡힌 상태에서 ‘두 번째 스무살’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에 영화 촬영 스케줄을 건드릴 수 없다고 드라마 쪽에 먼저 이야기했다. 그래서 드라마 쪽에서 최대한 일정을 영화에 맞춰서 짜 줬다. 그래서 3주 정도 기간이 겹치긴 했지만 촬영일이 겹친 적은 없다.

무언가에 그토록 집중하는 스타일이면 두 작품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드라마 쪽에서 초반에 배려를 많이 해 줬다. 영화가 지방 촬영이다 보니 매니저가 이동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스케줄을 짰다.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그날 찍은 내용을 머리속에서 털어버리고 다음날 찍을 장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초반에는 두 작품 모두 아직 밤 샘 작업에 돌입하기 전이었다. 만일 매일 새벽 다섯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다면 못 버텼겠지. 그런데 최지우는 새벽 촬영을 하면서도 두 작품을 모두 소화하더라. 정말 대단했다. 하루는 최지우가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좋아해줘> 촬영이 있어 드라마 촬영을 새벽 4시까지 마쳐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조금 타협해야 되는 부분이 생겼는데 최지우가 그냥 모두 마무리 하고 가겠다며 30분을 더 찍고 갔다. 그렇게 두 작품 모두에서 정말 지칠 때까지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좋아해줘>를 보니 연기를 너무 잘 했더라. ‘두번째 스무살’도 잘 했지만 <좋아해줘>는 정말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더라. 그래서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최지우는 그때 정말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고생했다.

‘두번째 스무살’ 이후 인터뷰 기사를 보니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 느낀 연기의 재미란 무엇이고 아직도 유효한가.
‘두번째 스무살’의 차교수는 무게를 잡지 않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여서 너무 재밌었다.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날, 보러와요>와 ‘두번째 스무살’을 동시에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하루는 <날, 보러와요>에서 나남수로, 또 다른 날은 ‘두번째 스무살’에서 차현석으로 연기하는 게 정말 재밌더라. 두 작품을 동시에 한 건 처음이었는데 늘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모습으로만 연기하다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주며 연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났다. 공간, 소품, 분장, 의상이 주는 느낌이 있거든. 그 느낌을 받으면 캐릭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한다. 조금 과장돼서 말하면 사극같은 경우 수염을 붙이고 상투를 쓰면 나도 모르게 행동이 그 시대 사람처럼 변한다(웃음).

최근 가장 행복한 일은?
행복할 뻔 했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은 있다. 연예인 농구대회에서 우리 팀이 유력한 우승후보였는데 우리팀의 방심과 상대팀의 분전으로 우리팀이 준결승에서 떨어졌다. 작년 1회 경기에서 우리가 우승을 했는데 단장 형은 이번 결승전에는 작년 우승컵을 들고 와서 트로피 두 개를 들고 사진을 찍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준결승에서 떨어져서 모든 게 무산됐다.

원하는 수식어가 있다면.
그래도 ‘국민’ 이란 수식어 한 번 달아봤지 않나(웃음). 더 바라면 욕심이다. 감사하게도 소현경 작가와 함께 한 두 작품에서 국민 남편, 국민 첫사랑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과분하다. 글쎄… 영화배우? 사실 요즘은 이상윤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주는 분이 많지만 예전에는 서영이 남편, 강우재, 하우진이라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렀다. 최근에는 차교수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연기자라는 건 알지만 출연작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탤런트라고 한다. 사람들이 언젠가는 나를 영화배우, 그리고 탤런트와 영화배우가 섞어 그냥 배우, 연기자로 봐주는 날이 오면 좋겠다. 탤런트란 명칭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닌데 사람들이 보기에 탤런트는 왠지 연속극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이런 저런 다양한 영역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2016년 4월 9일 토요일 | 글_최정인 기자(jeongin@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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