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51%가 아닌 100%의 각오로 사는 남자, <내부자들> 이병헌
2015년 11월 11일 수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내부자들>에 대한 주변 반응은?
후반작업 전 믹싱도, 녹음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자들>을 봤을 때는 나와 승우 모두 큰일났다며 고민했다. 겸손의 말이 아니라 관객들이 영화를 재미없게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부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이 좋아서 의외다.

왜 그렇게 고민을 했나?
영화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지루했다. 유머코드 역시 의도했던 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내부자들>의 제일 첫 버전은 3시간 40분짜리였는데 이 버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 촬영 중간에 순서대로 편집 해 놓은 것을 봤을 때가 벌써 2시간 40분이었다(웃음). 그런데 3시간 40분짜리를 2시간으로 줄이니까 문제가 발생했다. 영화의 앞뒤 내용이 맞지 않거나 설명이 빠지는 부분이 생긴 거다. 덕분에 사건과 관계없지만 캐릭터에 도움 되는 신들이 제일 먼저 잘렸다. 배우의 입장에서 잘라내기 아까운 신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의 입체성이 살아나지 않았고 영화도 지루해졌다. 그래서 언론 시사회 때 영화가 후지다는 평을 듣지 않기만 바랐다. 심지어 조승우는 언론시사회에 가서 <내부자들>을 봐야 하는지도 고민했다더라. 그런데 막상 영화를 끝까지 다 보더니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나도 <내부자들>을 보면서 한 번에 몰아치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지금의 <내부자들>은 시간 순서대로 편집한 버전으로, 원래 시나리오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부자들>은 스타일이나 미술적인 부분은 덜어내고 배우의 연기로 채운 영화 같다.
<내부자들>은 미술적인 부분은 신경을 덜 쓴 대신 현실을 반영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사회성이 짙고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유행하고 있지 않나. 물론 사회고발적 영화가 흥행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만큼 사회가 잘못되고 있으니까 사회고발적인 영화가 흥하는 게 아닌가. 사회가 잘 돌아가서 이런 영화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내부자들>처럼 사회성이 짙고 사회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사투리 역시 처음이었고, 처음 만난 배우들도 많았다. 이경영 선배님을 빼고 조승우 씨, 백윤식 선생님, 심지어 나머지 조연들이나 단역들도 거의 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다. 그런데도 단역들까지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 어떻게 연기를 저렇게 할까 싶어 깜짝 놀라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내부자들>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
<내부자들>이 사회성이 짙고 사회비리를 고발하는 영화이기에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내가 영화를 볼 때 고려하는 것은 바로 ‘재미’다. 거창한 이유보다는 재미가 있는지를 영화 선택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내가 이 영화를 출연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있다. <내부자들>은 재미도 있었고 내가 출연할 거란 느낌도 있었다.

처음부터 <내부자들>의 안상구 캐릭터를 제안 받은 건가?
그렇다. 하지만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는 시나리오는 재미있었지만 안상구의 역할이 매력 없어 보였다. 오히려 조국일보의 주필로 나오는 이강희 역이 더 멋있어 보였다. 사실 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촬영할 때도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더 매력 있게 느껴졌다.

왜 안상구 역보다 이강희 역에 더 매력을 느꼈나?
안상구가 세 캐릭터 중에 제일 재미없는 캐릭터로 보였다. 원래 시나리오의 안상구는 그저 복수를 꿈꾸는 영화광 정치깡패로, 유머도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배우가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적어 보였다. 반면 이강희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도 내게 들어온 캐릭터는 안상구이므로 이 캐릭터의 문제점은 뭔지, 이 영화가 더 재밌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만일 시나리오 대로만 <내부자들>이 진행된다면 관객들이 보기 힘들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자들>은 현실적인 얘기를 질퍽하고 잔인하게,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영화다. 그러므로 덜떨어진 캐릭터가 하나쯤은 있어서 관객들이 그를 보며 쉬어갈 수 있는 지점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감독님께 안상구 캐릭터에 색깔을 입혀 보자고 제안했다. 자기 입장에서는 완벽한 복수 전략이었는데 끊임없이 뒷통수를 맞고, 덜떨어진 유머를 날리는 것들이 안상구의 색깔로 어떠냐고.

안상구의 외모는 조잡스럽게 멋을 낸 멋쟁이 스타일이다(웃음). 같이 논의해서 안상구의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을 결정한 건가?
안상구는 원래 설정상 영화광에다 패션에 집착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외모를 열심히 꾸몄는데 객관적으로 후줄근해 보였던 것 같다(웃음). 감독님이 패션에는 별로 개입하지 않았지만 머리 스타일은 기름 바른 단발 머리를 하면 어떻겠느냐며 부탁하셨다. 안상구가 팔이 잘리고 나서 센 이미지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면서 한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했던 머리스타일을 보여주시더라. 나도 워낙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을 재미있어하기에 그 머리스타일을 받아들였다.

가발인가?
뒤만 붙인 가발이다.

기름 발라 넘긴 단발 머리에서는 두 가지 인상이 느껴진다. 변태 사이코와 제비같은 느낌이다(웃음). 복수를 위한 울분, 유머, 인간미와 잔인함까지 다 갖춘 안상구와 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이다. 연기를 할 때 각각의 성격은 균형을 어떻게 잡았나?
안상구 성격의 균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안상구는 여우같은 곰이란 대사처럼 단순한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에 색깔을 입혀보자고 생각했을 뿐, 충분히 연구해서 안상구의 대사로 쓸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애드립을 치면서 연기했다. 캐릭터의 균형을 고려하기 보다는 내가 상상한 캐릭터의 모습만을 연기해내고자 했다. 감독님이 말씀해주신 거지만, 안상구의 됨됨이가 모두 드러나는 신이 바로 벤을 타고 오는 장면이다. 안상구는 영화광에 패션도 좋아하는 폼생폼사하는 인물인 데다 연예 기획사 대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인물이라면 멋을 부리기 위해 연예인처럼 벤을 타고 다닐 것 같았다. 목배게는 내 차에서 가져왔다(웃음). 안상구는 잔인한 짓을 하러 가면서도 차 안에서 잘 수 있는 인물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렇게 무서운 장소에 가는 게 얼마나 긴장이 되겠나. 그렇지만 안상구에게는 잔인한 폭력이 일상이기 때문에 자면서 이동하고 쫄병의 와이프까지 챙겨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면서도 낫으로 죽일까, 망치로 죽일까, 고민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또한 잔인하게 때려죽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못을 치는 것이었다는 등, 이 신에서는 안상구의 위트와 여유가 한꺼번에 나타난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정말로 손을 치는 것이었다(웃음).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안상구 캐릭터에 몰입되지 않았다. 안상구가 다짜고짜 손을 내려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손 대신 못을 치는 아이디어를 감독님께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면 안상구는 자기를 배신한 부하도 살려주고 마지막 순간에서 정의심을 발휘하는 등 끝까지 잔인한 인물은 아니었다.
<내부자들>에서 좋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안상구는 깡패이기에 나쁜 짓도 정말 많이 했지만 정과 의리 같은 인간미가 약간씩, 과하지 않게 있는 인물이다. 예컨대 자기를 위해 일 해준 여가수한테도 의리를 지킨다. 어떤 사람들은 그 여가수와 안상구의 관계를 멜로코드로 읽지만 나는 그 관계가 멜로의 관계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여가수와의 감정 또한 예전에 알던 사람에 대한 안상구의 의리였다고 본다.

안상구가 노래 ‘봄비’를 흥얼대고 인간미를 드러내는 설정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던 건가?
손이 아닌 못을 치는 것은 현장에서 낸 아이디어지만 안상구의 행동은 대부분 시나리오에 나와 있었다. 안상구가 흥얼대는 ‘봄비’ 역시 시나리오에 나온 노래다.
안상구의 복수심이 생존형 복수로 읽혔다. 복수심에 대한 톤 조절이 정말 좋았다. 광기에 사로잡혀 복수만을 꿈꾸는 캐릭터였다면 안상구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복수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
안상구의 복수심을 어떤 복수심으로 할지 고민했다.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은 복수심 하나로 영화를 밀고 나간다. ‘수현’을 연기할 때는 우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눈빛,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보통 복수 영화들이 ‘수현’처럼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밀어붙인다. 그런데 안상구는 복수의 과정에서 삶을 보여준다.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한다. 복수를 꿈꾸지만 때때로 신나 하는 안상구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복수가 1년 후에 이뤄진다면, 내가 1년 동안 복수만 생각하면서 살진 않을 게 아닌가. 복수라는 큰 목표를 두더라도 당장 내일 복수를 할 게 아니라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게 현실적일 것 같았다. 이렇게 보니까 <악마를 보았다>의 ‘수현’이 잘못된 연기 같다(웃음).

<악마를 보았다>는 장르적으로 그런 감정의 영화니까(웃음). 본인이 연기했던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뭔가?
내가 연기한 것 중 가장 좋아하는 신이 잘렸다(웃음). 원래 3시간 40분짜리 편집본에서는 그 장면이 제일 첫 장면이었다. 안상구가 기자회견에 가기 직전, 어두컴컴한 호텔 방에서 한 기자를 만나 독백하는 신으로 살짝 느와르같은 분위기의 장면이다. 자기가 왜 복수를 하려는지 영화를 빗대서 기자에게 얘기하는 상황이다. 굉장히 폼 잡고 멋 부리는 신으로, 캐릭터를 살리는 신이었는데 잘리고 말았다.

감독에게 그 신을 꼭 넣자고 말할 수는 없었나?
느와르같은 첫 신을 영화에 넣어 달라고 몇 번 이야기했다. 그런데 감독님과 편집 관계자들이 안상구가 호텔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영화의 흐름상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내부자들>은 현실에 딱 붙어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 담은 영화인데, 만일 그 신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삽입하면 영화의 장르가 느와르물로 한정되리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내부자들>의 러닝타임도 길어 시간도 넘치는데(웃음).

안상구가 옥상에서 라면 먹는 신도 인상적이었다(웃음)
개인적으로 안상구가 옥상에서 혼자 라면을 먹는 장면을 읽으면서 정말 처량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버림받고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안상구는 까만 비닐봉투에 라면과 담배,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신나한다. 아마 안상구에게는 그게 하루 중 제일 황금 같은 시간이었을 거다. 고작 라면, 소주 먹으면서 안상구가 행복해할 것을 생각하니 더 서글퍼지더라.

라면 먹는 신이 좋았던 이유는 안상구가 팔이 잘린 이후에 왼손잡이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서툰 젓가락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상구 캐릭터가 생동감 있었다.
사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해 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젓가락으로 라면을 정갈하게 먹으면 안상구의 느낌이 살지 않을 것 같았다. 젓가락질 외에도 안상구가 손을 잘리고 나서 머릴 긁적이려고 왼손을 올리다가 문득 느끼는 좌절감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안상구가 라면을 먹다가 너무 뜨거워서 뱉었다가 다시 먹는 장면이 있다. 누구나 다 뜨거우먼 뱉었다가 다시 먹지 않나(웃음)? 그 장면에서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면을 먹다가 뱉는 신을 촬영하면서 웃느라 나 혼자 5번 정도 NG를 냈다. 나는 정말 웃겼는데 현장의 스탭들은 아무도 웃지 않더라. 역시나 언론 시사회 때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백윤식 씨를 비롯해 편집본에 대한 배우들의 아쉬움이 큰 것 같다.
백윤식 선생님께 <내부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다며, 어떻게 보셨냐고 여쭤봤었다. 선생님께서도 재밌게 봤다고는 하시는데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았다. 스탭들이 말해주길, 편집본에서 캐릭터에 대한 신이 잘렸다는 걸 며칠 전에 들으셨다더라. 그렇게 따지면 내가 제일 많이 잘렸는데(웃음).
백윤식 씨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처음엔 백윤식 선생님의 연기에 리액션하기가 어려웠다. 평소에는 혼자서 상대방이 어떤 톤으로 대답할지 상상하며 연기 연습을 한다. 그런데 백윤식 선생님의 이강희 연기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일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예컨대 백윤식 선생님은 특유의 묘한 뉘앙스로 대사를 치고 연기를 하신다. 사무실 장면에서 보통 사람같으면 내가 죽이지 않았다며 안상구에게 반항할텐데 이강희는 묘한 호흡으로 알듯 말듯한 웃음을 짓지 않나. 사무실 신에서 백윤식 선생님과 연기하며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다음 대사의 톤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도 이강희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백윤식 선생님의 연기에 연륜을 느꼈다.

영화에서 조승우 씨와는 강변에서, 백윤식 씨와는 사무실에서 에너지를 맞부딪쳤다. 각 배우와의 기 싸움은 어땠나?
백윤식 선생님과 에너지 대결을 했다기에는 내가 일방적으로 복수하러 이강희를 찾아간 것이기에 기싸움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강변에서 우장훈으로 분한 조승우와 싸우고 소리 지를 때에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함께 연기하면서는 조승우가 연기를 참 잘한다고 느꼈고 <내부자들>의 완성작을 보면서는 그가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우장훈이 이강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신에서 백윤식 선생님과 조승우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피 튀기게 맞부딪치는 걸 느꼈다. 배우 입장에서 상대방이 너무 연기를 잘하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조승우와 백윤식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둘다 정말 연기를 잘하니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신이다.

이병헌 씨와 조승우 씨가 한 영화에 출연해 연기력 대결을 하면 조승우 씨의 빛이 바래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난 <내부자들>이 조승우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말 연기를 잘했다.

이병헌은 조승우 씨가 데뷔할 때부터 굉장히 존경하던 선배다. 초반에는 조승우 씨가 이병헌에게 팬의 마음으로 접근했다고도 들었다.
평소 조승우의 말투가 약간 시니컬하다. 내가 농담처럼 나를 동생 취급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내가 <내부자들>에 출연해서 본인도 이 작품에 동참했다며 예전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말하더라. 평소에 시니컬하니까 칭찬 다음에 어떤 농담을 칠까 긴장했다(웃음). 그런데 인터뷰에서도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서 조승우가 날 좋아한다는 게 정말이었구나 싶었다. <내부자들>은 영화도 물론 좋지만, 이 영화를 통해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더 좋다. 지금도 조승우는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 놀러온다. 어제도 맥주를 잔뜩 사서 우리 집에 놀러왔었다(웃음).

조승우 씨는 유명한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데 노래를 불러주진 않던가(웃음)?
사실 나는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른다. 예전에 경험삼아 대사만 있는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올라본 적이 있을 뿐이다. 같이 <내부자들> 촬영을 하면서 조승우가 뮤지컬에 캐스팅됐다기에 그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조승우가 <헤드윅>을 공연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그가 정말 보통 배우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조승우를 칭찬하는지도 알았다. 아직 그에게 노래를 시켜본 적은 없지만 한 번쯤은 조승우에게 노래해 보라고 시켜봐야겠다(웃음).

조승우, 백윤식 씨와 연기하면서 같은 배우로서 탐나는 능력 같은 건 없었나?
조승우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 능청스러운 연기를 잘한다. 대사를 자기 내면에서 곱씹고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데 능숙하다. 그 자기화된 능청스러운 연기가 참 좋아 보였다. 백윤식 선생님은 움직이지 않는 표정과 조용조용한 말투에서도 커다란 에너지를 뿜어낸다. 조용함 속에서 배어나는 에너지가 놀라웠다.
무겁고 멋 부리는 이미지는 벗어두고 코미디 장르를 해 볼 생각은 없나?
진짜 웃긴 영화에 출연해 보고 싶다. 그런데 코미디에 대한 코드도 사람마다 너무 다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쓴웃음 짓게 만드는 코미디였는데 남들은 그것을 두고 세련됐다고 말한다. 반면 내가 생각했을 때 세련된 코미디를 남들은 슬랩스틱이라고 얘기하더라. 내 눈이 정확하지 않아서 제대로 된 코미디를 선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웃기려고 억지로 애를 쓰는 코미디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웃긴 세련된 코미디가 있다면 기꺼이 출연하고 싶다.

<내부자들>은 정경유착, 언론과 정부의 모종의 거래 등 정치, 경제, 언론의 카르텔을 갈등구조로 만든 영화다. 이같은 문제의식 중 어느 포인트에 가장 공감했나?
<내부자들>이 다루는 문제의식에 당연히 공감했기에 재미도 느꼈다. 극중 이강희가 우장훈에게 문장의 서술어를 ‘보인다, 보여진다, 가능성이 높다’ 등 세 가지로 달리해 얘기해주는 부분이 있다. 말이 권력임을 아는 이강희 신이 정말 좋았다.

할리우드 출연작들은 촬영이 끝났나?
<내부자들>을 끝내고 촬영한 게 <미스 컨덕트>다. 원래 제목은 <비욘드 디시트>였다.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기에 빨리 찍어야 했다. 뉴올리언스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촬영을 마친 것 같다. <미스 컨덕트> 다음 작품이 <황야의 7인>이다. 뉴올리언스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아주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 네 달에 걸쳐 <황야의 7인> 촬영을 했다. 육체적으로만 따지면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달콤한 인생> 다음으로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도 물론 덥고 말을 타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황무지는 건조하지 않았나. 그런데 <황야의 7인> 촬영지는 물속을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습했다.

<터미네이터>에서도 멋지게 나오더라.
<터미네이터>는 1980년대를 통틀어서 가장 획기적인 액션영화라고 생각한다. <터미네이터2>의 T-1000 역시 꽤 강력한 캐릭터다. 처음에는 내게 카메오 분량으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바로 승낙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 영광이라고도 했다. 물론 한국 관객들이나 T-1000을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그렇지만 <터미네이터>는 내게 있어서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내 고등학교 때 별명이 터미네이터였다(웃음). 이번 <미스 컨덕트>도 내 역할이 뭐든, 어떤 영화든, 분량이 적든 많은 상관없다. 이 영화에는 알 파치노가 출연한다. 알 파치노는 나의 아이돌이다. 그와 함께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내 평생의 행운이라 여겨질 만큼 신기하고 영광스럽다.

최근 이준기 씨도 할리우드에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찍는다고 들었다. 한국 배우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어떤가?
간혹 의상팀의 막내나 카메라의 서드 정도 되는 친구들이 내게 한국계라고 인사를 한다. 비록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지만 그래도 굉장히 반갑다. 때로는 미국의 스튜디오가 한국 배우 캐스팅을 추천받기 위해 내 사무실로 연락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난 신이 나서 이 배우, 저 배우들을 소속사 가리지 않고 추천해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중국 배우가 캐스팅돼 있곤 하더라. 그럴 때에는 중국이 정말 힘 있는 나라라는 게 느껴진다.

중국 쪽에서 러브콜이 들어오진 않나?
중국 쪽은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 같다. 간혹 중국 쪽에서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읽어 보면 재밌다고 느껴지는 게 거의 없더라. 또한 중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내가 한국말로 대사를 한 다음 더빙을 해야 한다. 나에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입히는 건데 무성영화나 더빙영화 시절의 영화를 찍는 기분일 것 같다. 물론 좋은 작품이 들어온다면 더빙을 감수하고서라도 출연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내게는 더빙 시스템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데뷔 이후부터 쭉 스타로 살아왔다. 때때로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많았을텐데, 그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힘은 뭔가?
버티지 않으면 어떡하겠는가. 버티지 않으면 죽는다. 예를 들면 죽거나 살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둘 중 하나를 51%의 마음으로 선택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51%만큼 살 수는 없지 않나. 비록 51%의 이유로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심했어도 100%의 각오로 행동해야 한다.

너무 유명한 자신의 상황이 싫었던 적은 없나?
간혹 내가 유명하다는 게 싫었던 순간들도 있다. 그렇지만 내 삶이 이렇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뭘 해주고 싶은지에 대한 청사진이 있나?
나는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물론 자녀가 공부를 잘 하면 좋겠지만 뛰어 놀 나이에는 뛰어 놀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거창하게 우리 나라의 교육방식이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교육열이 너무 뜨거운 것 같다.

관객들은 캐릭터를 배우의 이름으로 기억하곤 한다. 이처럼 배우가 선택한 배역은 배우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배우 역시 캐릭터로서 관객과 소통한다. 이병헌이 안상구를 통해 관객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나 만들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나?
캐릭터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영화도 있고 관객이 보고 느끼는 대로 두고 싶은 영화도 있다. 내가 <내부자들>을 선택했던 이유처럼 관객들 역시 현실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보는 동안만큼은 신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연기 실력을 더 쌓기 위해 고민하는 부분이나 나만의 연기 비법 같은 것이 있나?
연기 비법이 있다면 책을 쓸 것 같다(웃음). 나는 다만 관찰하는 버릇이 있고 호기심이 강하다. 호기심을 가지고 타인을 관찰하면서 저 사람은 왜 저런 버릇을 가졌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혼자 추측을 해 보곤 한다. 설사 그 사람에 대한 추측이 틀렸다고 할지라도 나만의 이유를 갖다 붙이며 관찰하는 게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관찰력과 호기심은 배우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면 연기 비법이나 노하우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미국에서 영화 작업을 하면서 배우와 스탭들과 감정을 주고받을 때 놀라운 경험을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곤 한다. 이들은 슬픔이나 분노를 한국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타인의 표현방식이 나와 다른 것을 보면서 내 연기폭이나 경험의 폭이 점차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 굉장히 기분이 좋다.

2015년 11월 11일 수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영화사 제공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