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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고민, 즐거운 압박 <차이나타운> 김고은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 안석현 기자 이메일

예술고등학교, 예술대학교 출신이에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현장에서 도움이 되던가요?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기본이 되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왜 배우는지 모르겠는 과목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움직임 수업이요(웃음). 그런데 배웠던 과목들이 데뷔를 하고나서 현장에서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하나하나씩 끄집어내서 쓸 수 있는 재료가 돼서 쌓여있더라고요.

어떤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물론 연기 실습처럼 실질적으로 연기를 선보이는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됐지만, 방금 이야기한 움직임 수업도 몸의 훈련이잖아요. 당당한 사람은 어깨를 펴고 걷는 것처럼 몸도 연기를 함께 해요. 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기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현장에 가니 기본적으로 아는 것들도 있고요.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이 궁금했어요. 학교에서 배운 그대로 캐릭터 일지를 쓰면서 분석하는 습관이 있나 해서요.
캐릭터 분석은 저만의 방식대로 하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캐릭터를 만들 때 일지에 적고 표도 그리는데 그렇게는 안 해봤어요. 일단 시나리오를 토대로 살펴보는 것 같아요. 모든 캐릭터는 시나리오 안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많이 보고, 캐릭터의 전사와 후사를 생각하면서 하나씩 파고드는 것 같아요. 상상을 거듭하고 디테일하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캐릭터가 어느 정도 만들어져요.
<차이나타운>의 일영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나요?
시나리오에 7살 일영까지 나와 있고 그 이후 어른이 된 일영이 곧바로 나와요. 일영이 어른이 되는 동안 어떻게 지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간 일영이 겪은 일상의 모습들이 쌓여서 궁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마작장에서의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간의 세월을 견뎌온 일영이라면 일에 관해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변했으리라 짐작했죠. 일영이 누군가를 때리는 형태, 맞는 제스처, 몸의 반응 등이 명확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연기했어요. 한 대를 때리더라도 어떻게 때리느냐, 맞을 때는 어떻게 맞느냐가 중요했어요. 여자인 일영은 힘이 약하고 몸집도 작아서 상대방에게 쉽게 제압당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영은 작은 힘으로 큰 충격을 줘요. 빚쟁이 입에 병을 물려서 재떨이로 때리는 장면처럼요. 일영이 하루하루 지내오며 쌓인 집합들을 마작장 장면에서 많이 찾았어요. 마작장 장면 이후에 일상에서 드러나는 일영의 모습을 차근차근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지내오며 쌓인 집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일영은 어렸을 때부터 쓸모없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들었고, 눈앞에서 쓸모없는 강아지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봤어요. 일영은 자신도 강아지와 마찬가지로 쓸모가 없어지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쓸모 있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그것은 엄마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뿐이라는 답을 찾았죠. 일영의 생각은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고 왜소하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한다. 감정을 배제해야한다’라고 이어졌을 거라 짐작했어요. 그러다 일영이 겪은 과정이 집합된 모습들이 마작장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이고요.

<은교> <몬스터> 때는 연기를 본능적으로 한다는 말을 했는데 <차이나타운>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준비했나 봐요.
<차이나타운>을 하면서 시나리오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파고들었어요. 아직 연기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영화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배우라는 직업을 수행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해요. 연기를 본능적으로만 했던 적도 있고, 다른 여러 방법을 써본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은교> <몬스터> <차이나타운>을 한꺼번에 놓고 보면 캐릭터가 다채로운 동시에 일관적이에요. 전작에서 맡았던 캐릭터들이 강박적으로 변하는 느낌이 아닌, 특정한 환경에서 자란 김고은이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인상이에요.
감사합니다(웃음).
캐릭터를 준비하고 연기하는 방법을 달리한다고 했는데 <차이나타운> 이후에는 어떤 방법으로 연기하는 중인가요?
지금도 <차이나타운> 때와는 조금 다르게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뭐라 말하기는 그러네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차이나타운> 홍보 때문에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는 상태에요(웃음). 오늘도 촬영 당시를 기억해내려고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보고 왔어요(웃음).

<차이나타운>의 초반에는 일영의 목소리가 걸걸해요. 목소리 톤을 의식적으로 바꿨나요?
일할 때니까요(웃음). 석현(박보겸)을 처음 만났을 때도 목소리는 걸걸하잖아요. 기본적으로 일영이 자신을 방어하는 제스처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등산복 같은 옷도 일할 때만 입거든요. 일영이 일을 할 때는 그 친구가 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돈 받으러 갔는데 여성스럽게 ‘갚아’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그럼 안 갚겠죠(웃음).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무엇인가요?
마지막에 사진 찍는 장면이요.

일영은 왜 사진을 찍었을까요?
자신의 일상을 한번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 아닐까요? 마우희(김혜수)와 아이들을 내심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기적이지 않았던 거죠.
마우희가 ‘석현의 어디가 좋았냐’는 질문에 일영은 ‘모르겠어. 친절했어’라고 답해요. 일영은 작은 친절에 결핍을 느꼈다는 사실이 뭉클했어요.
저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대사가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석현과 만나는 장면에서 대사의 느낌을 굉장히 많이 생각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상투적인 남녀의 로맨스처럼 일영이 잘생긴 남자에게 한눈판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잖아요(웃음). 그 대사에는 정당성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진짜 힘들 때는 아무에게도 말을 안 한다’고 했어요. 일영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인가요?
힘들 때는 진짜 말을 잘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힘든 상황을 말한다고 상대방이 해결해줄 것도 아니고요. 사실 공감을 해줄 수도 없는 부분이고 제 자신도 어떤 심정인지 정확히 설명도 안 되는데 굳이 말을 꺼내서 부정적인 감정을 꼭 전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힘들 때는 대충 투덜거리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일영뿐만 아니라 <차이나타운>의 모든 캐릭터들이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절대 속 이야기는 안하잖아요. 심지어 쏭(이수경)도요. 마약으로 풀지 일영 앞에서 울고불고 하소연하지는 않잖아요.

<차이나타운>을 촬영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뛰는 게 점점 힘들어져요. 무릎도 아프고요(웃음). 어휴, 몸을 너무 많이 썼나 봐요. 이제 한 템포 몸을 쉬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몬스터>도 그랬지만 <차이나타운>도 액션이 많아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정신적으로는 어떤 부분들이 힘들었나요?
사실 매 장면 정신적으로 힘들긴 하죠. 그래서 매 테이크마다 기도해요. 그래도 연기를 하면서 생기는 심리적 압박이나 스트레스는 재밌는 일이에요. 좋은 긴장이죠. 그래서 딱히 힘든 기억은 없어요. 오히려 연기 외적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스트레스에요. 연기할 때의 고민과 압박은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아요. 그리고 감독님과 연기에 관해 엄청 치열하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 치열함 속에서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항상 좋은 방향으로 가더라고요. 그런 점이 한준희 감독님과 잘 맞았던 부분이었어요. 촬영하는 내내 재밌었고, <차이나타운>은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었어요.
감독마다 의논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죠?
그래서 감독님마다 봐가면서 다르게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매번 감독님들과 캐릭터에 관해 치열하게 이야기해요. <은교> 때도 치열했어요. 그런 방법은 정지우 감독님이 알려준 것 같아요. <몬스터> 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계속 치열하게 감독님들을 괴롭혀요(웃음).

그렇게 하면 결국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하나요?
뭐가 됐든 이야기하기 전보다 좋은 결론이 나는 것 같아요.

<차이나타운>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했어요. 이 장면에서 담배를 피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처럼 소소한 것들부터 큰 그림까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다 이야기했어요. 일영이 라이터를 만지는 모습도 일할 때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서 만들어졌어요. 라이터를 껐다 켰다 하는 건 어느 정도의 불안함 때문이겠죠. 언제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일영은 그동안 수없이 많이 맞아서 그 정도의 불안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일영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물건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물건은 라이터가 될 수 있고 신변 보호를 위해 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런 식으로 꼬리의 꼬리를 물면서 감독님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어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편인가요?
상대 배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듣는 편이에요. 감독님과는 제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히 논의하지만, 다른 배우들과 만났을 때는 함께하는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듣죠.
<은교> <몬스터>에서는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차이나타운>에서는 김혜수와 호흡을 맞췄는데 느낌이 어떤가요?
더 좋고 편했어요. 내적으로 좀 더 의지했던 것 같아요. 선배님이 의지해도 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같은 여배우라 선배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의 미래도 그렸어요. 후배로서 선배를 바라봤을 때 좋은 감정이 들었는데, 저도 나중에 누군가의 선배가 됐을 때 후배가 제게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남자배우와는 또 다른 공감대와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상황에 따라 선배님이 어떻게 연기하는지도 많이 배웠고요.

<차이나타운>을 통해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차이나타운>은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차이나타운>을 촬영했던 과정이 굉장히 즐거워서 저 또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고요.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들 정도로 시사회에 온 분들이 <차이나타운>을 좋게 이야기해주시고 결과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 마음 속에는 이미 <차이나타운>이 많이 남아있어요.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할 때도 <차이나타운>의 과정을 많이 기억할 것 같고, <차이나타운>을 통해서 배운 어떤 것들은 그대로 옮겨서 다시 할 것 같아요. <차이나타운>은 이야기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꿈은 무엇인가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라 생각하나요?
좋은 배우의 기준은 작품을 거치면서 바뀌는 것 같아요. 평생 해봐야죠(웃음).

2015년 4월 28일 화요일 | 글_안석현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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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a0930
정말 좋아하는 배우... 매번 놀라울정도인 주인공에 몰입력을 가진듯!   
2015-05-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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