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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의 순간을 꿈꾸다 <조류인간> 정한비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 안석현 기자 이메일

사진 촬영할 때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웃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가요?
네 맞아요. 사진 찍을 때 그래보였나요?

네, 점점 괜찮아졌는데 처음에는 그랬어요(웃음).
(웃음)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좀 그런가 봐요(웃음). 전에는 낯을 더 많이 가렸는데 연기하면서 좋아졌어요. 사회생활을 하면 많이 변하니까요.

오늘 사진 촬영처럼 데뷔 후 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 앞이 점점 익숙해지던가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해서 그런지 오히려 즐기면서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익숙해지긴 했는데 어려워요(웃음). 그래도 카메라 앞에 서면 순간적으로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워요.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듣고 싶어요.
22살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연이 닿았어요. 고등학교 선배 언니가 가수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괜찮은 친구 소개해달라는 말에 제 사진을 보여줬나봐요.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아무 준비도 없이 오디션을 봤는데 계약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계약기간이 길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무산됐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딱히 하고 싶었던 일이 없었어요. 주입식 교육과 부모님 기대에 맞춰 속 썩이지 않고 순탄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평범한 학생인 제가 큰 회사와 계약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스스로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자꾸 호기심이 생겼어요. 부모님은 제가 배우들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허황된 꿈을 꾸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제 소식을 들은 먼 친척이 연기학원을 다녀보라고 권유했어요. 제가 연기학원을 다니면 얼마나 재능 있는 애들이 많은지 깨닫고 기죽어서 안 할 줄 알았대요(웃음). 그렇게 소극적이었던 제가 연기학원을 다니게 됐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면서 많이 떨었어요. 그런데 연기가 재밌더라고요. 연기학원을 다니는 1년 동안 제 길에 대해서 엄청 고민했어요. 특히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들이 정리됐던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연기에 갈망이 있었나 봐요.
고향이 포항인데 다니던 고등학교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였어요. 비평준화지역이었는데 저희 학교는 특히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어요. 학교에 예체능 전공인 친구들이 거의 없었죠. 추석과 설을 제외하고 평상시에는 오후 10시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했고, 방학 때도 오전 10시까지 등교해서 자율학습을 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연기는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마음 속 깊은 곳에 분명 배우에 대한 동경은 있었는데, 할 수 있다는 용기는 없었어요. 친구들이 서울에 아는 사람 있다며 농담처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세상에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하셨어요(웃음). 더군다나 포항에는 연기학원도 없어서 더욱 상상하기 힘들었죠.

<조류인간>은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됐나요?
<배우는 배우다>에 캐스팅이 됐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아쉽게 출연을 못했어요. 그때 알게 된 신연식 감독님과 연락을 하면서 지냈어요. 어느 날 감독님이 <조류인간>을 기획하고 있는데 출연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셔서 너무 좋다고 했어요. 저를 생각하고 쓴 시나리오라고 해서 우선 고마운 마음이 컸어요. 배우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잖아요. 더군다나 제가 유명한 배우도 아닌데 말이죠. 시나리오도 재밌게 읽었어요.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 나갔어요. 처음에는 ‘조류인간? 말이 돼?’라는 의문이 들면서 시나리오가 영화로 어떻게 나올까 걱정도 됐어요(웃음).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설득이 됐어요.

시나리오만큼 영화가 잘 나온 것 같아요?
영화가 더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림이 정말 예쁘고 음악도 정말 좋아서 다른 느낌이었어요. 주변 분들은 한비가 신비롭게 나온다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영화의 느낌이나 분위기가 묘하게 잘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저는 객관성을 잃었으니까요(웃음).

첫 스크린 주연작이에요. 소감이 어때요?드라마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작업하는 방식도 그렇지만 우선 모든 것의 출발이 저로부터 시작 되잖아요. 사람들이 저를 쫓아다니고 찾으면서 풀어가는 이야기라 아무래도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던 것 같아요(웃음). 주인공도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새라서 캐릭터를 준비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사람이 아닌 새의 정체성을 새로이 만드는 과정에서 패러글라이딩도 해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여러 시도를 했죠(웃음). 어떤 분들은 새의 구조와 사람의 구조가 다른걸 알 필요는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런 시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캐릭터에 동화되려고 노력했어요.
내면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했어요?
일상에서 한비의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했어요. 버스를 타고 갈 때나 친구들을 만날 때도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나는 다른 객체라고 되뇌었고, 내가 있을 곳은 저곳이라 생각하며 하늘을 봤어요. 그렇게 일상에서 한비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았어요. 일상에서는 피부과에 가야하고(웃음), 오디션도 봐야하고, 배우로서 제 삶을 살아가야하니까요(웃음). 그 시기에 저와 한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졌어요. 에너지가 넘치고 활달한 사람이 아닌데 한비의 상태로 지내려다보니 감정이 많이 침체됐어요.

한비는 주변사람들을 생각해서 오랜 기간 참다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 집을 뛰쳐나오잖아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두고 온 남편과 딸이 걱정되었을 것 같아요.
부모가 돼보진 못했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은 정말 크잖아요. 만약 한비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두고 온 아이가 가장 마음에 걸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이도, 아이로 생각할만한 동생이나 조카도 없고, 심지어 애완동물도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친한 언니 집에 방문했을 때 언니의 아기 사진을 찍고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일기를 썼어요. 한비의 마음으로 일기를 쓰려고 하니 역시 아이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김정석 선배님과는 마주치는 장면이 딱 한 장면이라 남편으로 다른 사람을 상상했어요(웃음).

캐릭터에 몰입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라면서요.<조류인간>은 급하게 들어간 건 아니어서 준비하는 시간이 조금 있었어요.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는데 캐릭터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촬영 들어갔을 때도 캐릭터를 50%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촬영 날에는 자우림의 ‘샤이닝’을 들으며 그날 촬영분에 해당하는 한비의 마음을 일기로 쓰면서 캐릭터 준비를 했어요.

그렇게 준비했는데 현장에서 디렉션이 바뀌진 않았나요?
시나리오에서 복잡했던 신들은 간소화하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했는데, 바뀐 부분은 많지 않아요. 감독님이 한비의 상태나 상황을 추가적으로 디테일하게 잡아주셨는데 그럴 때는 이해가 빨랐던 것 같아요.
대사가 많지 않은 역할이라 대사 하나하나에 신중했을 것 같아요. 풀숏도 많은 편이라 움직임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있었을 것 같고요.
사실 새를 관찰하면서 새의 걸음걸이를 표현해보려고 했으나 신체 구조상 쉽지가 않았어요(웃음).

‘생활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오달수, 공효진을 좋아하는 배우로 꼽았어요.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연기를 추구하나요?오달수 선배님이나 공효진 선배님을 보면 실제 본인이 말하듯이 연기하잖아요. 연기할 때 본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들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저는 캐릭터가 바뀔 때마다 본인이 180도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마다 본인의 다른 색깔이 조금씩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실제 모습이 나온다기보다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이죠. 그래서 <조류인간>처럼 독특한 영화도 좋아하지만, 자연스러운 연기를 좋아해서 사실적인 느낌의 영화를 좋아해요.

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블루재스민> <시티 오브 갓> <좋은 친구들> <범죄와의 전쟁> <파수꾼>을 좋아하고, 감독은 이와이 슌지, 마틴 스콜세지를 좋아해요. <블루 발렌타인>과 <더 라잇 비트윈 오션스>를 연출한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도 좋아요.

영화가 줄줄 나오네요(웃음).
요즘은 정신이 없어서 영화를 많이 못 봤는데 평소에 혼자 영화관에 즐겨가거든요. 집 앞에 예술영화관이 있는데 최근 <지슬> <1999, 면회> <매직 인 더 문라이트>를 혼자 봤어요. 혼자 보면 집중할 수 있어서 좋고, 친구들과 함께 보면 끝나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즐거워요. 하루에 세편을 연달아 본 적도 있어요(웃음). 아침에 영화보고 점심은 햄버거를 먹고 다시 예매해서 보고 또 봤던 적이 있죠(웃음). 영화관에 안가는 날에는 집에서 영화를 많이 봐요. 영화를 많이 보면서 제가 원하는 연기 스타일과 방향을 찾는 것 같아요. 전문가처럼 영화를 분석하지는 못하지만 작품을 보는 눈도 많이 는 것 같아요.

<조류인간>에서는 원하는 연기가 잘 나온 것 같나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조류인간>의 대사들이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죠. 그래서 더욱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일반적이지 않은 대사에 신비로운 이야기인데 캐릭터도 함께 일반적이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버리면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비의 마스크는 일반적이지 않아요. 도회적인 이미지가 있어요(웃음).
도회적인 이미지가 있군요! 그동안 과거 장면에 등장하는 여자로 많이 출연했어요(웃음). <조류인간>도 15년 전 인물이고, <7번방의 선물>의 예승이 담임도 과거 인물이고, 드라마도 주로 과거 속 여자를 맡아서 ‘내가 촌스럽게 생겼나?’라는 생각을 했거든요(웃음).

한비가 몽고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각박한 사회를 벗어나 드넓은 초원에서 날아다니는 삶을 원하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가 눈에 밟히지만 그래도 내가 있어야할 곳은 갑갑한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몽고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몽고 사진을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넣어놨는데 아직도 안 바꾸고 있어요(웃음).

<조류인간>에서 한비의 다이어리는 직접 썼나요?
제가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스탭들이 친절하게 다 준비를 해주셨더라고요(웃음). 일기 쓰는 장면에서는 직접 썼는데 화면에 나오는 일기는 제가 쓴 것이 아니에요. 나중에 보고 제 글씨체와 정말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전반적으로 영화에 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이에요.
제 연기에 만족한다기보다 영화의 완성도에 만족감이 커요. 아직까지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색하고 부족한 면만 보여요. 한비는 다른 캐릭터들과 달리 감정을 분출하는 신이 없잖아요. 직접적인 대사나 행위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새의 정체성을 지닌 한비의 내면에 많이 집중했어요. 그런 시도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전달이 됐을지 모르겠어요. 한비의 마음으로 연기를 했지만 과연 제가 품은 마음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됐을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돼요.
<조류인간>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에요. 알을 깨고 배우가 된 정한비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잠재되어있는 갈망이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런 저의 마음이 한비가 새가되려는 마음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해요.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 조연을 거쳐 8년 만에 주연을 맡았어요. 연기를 불현듯 시작한 스무 살 초반부터 지금까지 힘든 순간도 많았겠죠.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몇 년 해보고 아니면 말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힘들어도 포기하기가 싫었어요. 비슷한 시기에 연기를 시작했던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함께 걷던 길을 많이 떠났어요. ‘이 일을 안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막상 연기를 안 한다고 생각하면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고 계속 하고 싶었어요. 언젠가 책에서 그런 구절을 본 적이 있거든요. ‘만약 당신에게 10억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저는 그 구절을 보자마자 ‘그럼 그 돈을 투자해서 무조건 해야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제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잘 풀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늦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또 어린 나이에 오디션 막판에 떨어졌던 경우들이 있어서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생기겠지, 하고 버텼고 지금도 버티고 있어요(웃음).

배우 정한비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가볍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성실함? (웃음) 아직 때타지 않았다는 것? (웃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하면서 저 자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제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관객들이 캐릭터를 봤을 때 캐릭터만 남고 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전달된다면 성공한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은 진짜 감정을 전해요. 진짜는 다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을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올해 계획은요?
<조류인간>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도 8월에 개봉 예정이에요. 다음에 진행할 영화도 논의 중이어서 올해는 영화로 많이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비상하고 싶어요. 새가 되어서 날아가야죠(웃음).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 글_안석현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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