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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 아닌, 켜켜이 쌓여 완성된 캐릭터 <방황하는 칼날> 정재영
2014년 4월 9일 수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영화 어떠셨어요?
제가 되레 묻고 싶어요. 리뷰에서 인물의 상황을 극한으로 밀어 넣기 위한 몇몇 장치들은 오히려 인물의 감정에 몰입을 방해한다고 쓰셨는데 그 몇몇 장치들이 뭘까,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상현이 무릎을 다친다거나 하는 상황들이요. 인물의 상황을 극한으로 만들잖아요.
그렇죠.

힘들게 쩔뚝거리면서 걷는다거나, 칼바람을 맞으며 눈 덮인 산 속을 헤맨다거나 그런 장치들이 없더라도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 상황만으로도 이미 극한이잖아요. 그런 장치들이 오히려 배제됐으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의 감정이 오롯이 더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거죠.
그렇죠. 근데 지금은 생략됐지만 처음 시나리오 상에는 의미들이 있었어요. CD를 가지고 다니거든요. 딸 수진이의 동영상이 담긴 CD인데, 마지막으로 문자메시지를 받고 깨어나서 CD를 부셔요. 그 CD 파편으로 무릎에 찬 물을 빼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촬영했어요. 감독님이 아버지의 의지를,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 장면이 있었으면 또 다른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이러니하게 딸을 살해한 조두식이 버스 안에서 알려준 방법이거든요. 딸의 모습이 담긴 CD로, 조두식이 알려준 방법으로 무릎을 절개해서 물을 빼고 걸어서 조두식을 만나기 위해 다시 강릉에 가는 그런 아이러니함이 있었어요. 근데 너무 분량이 길어지다 보니 편집이 된 거죠.

글쎄요, 편집하기에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장면인 것 같네요. 분명 버스 안에서 조두식이 무릎에 찬 물을 빼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언급한 장면이 있지만 끝까지 상현의 무릎에 관한 다른 설명이 없다보니 단순히 상현을 더욱 힘들게 만들려는 의미로만 다가온 것 같아요.
변명을 하자면 단순히 힘들게 하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CD를 부수고 하는 장면은 감독님이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눈 속에 CD 파편이 보이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짐작이 안 되더라고요.
그냥 CD를 부수고 갔나보다, 하는 정도로만 짐작할 수 있는 거죠.

나중에 그 곳에서 총탄을 뺐다는 것은 밝혀지니까 CD를 부순 것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런 의미로만 생각을 했어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래서 궁금했고요.
무릎이라는 장치의 의미가 컸는데 그 장면을 편집에서 날려버리니까 단순히 무릎을 다쳐서 쩔뚝거리는 의미로만 남아서 좀 안타깝긴 해요. 저도 그 장면을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특수 분장에 더미까지 제작해서 힘들게, 정성스럽게 의도해서 찍었어요. 항상 그런 장면이 날아가더라고요(웃음). 너무 세다고, 잔인하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결국 편집됐지만 아쉬운 장면이네요.
또 상현이 힘들어 보이는 그런 장면들은 사실 다른 장면으로 가기 위한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디로 들어가게 되고, 누굴 만나게 되고, 이런 장면들인데, 아무래도 억관의 시선에서 짜인 것들이 많죠. 각자 사건이 벌어지다 보니 분량이 많이 늘어났고, 3시간 넘게 나온 분량을 지금 2시간으로 압축을 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야기하려 했던 부분은 거의 다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편집을 잘 한 거죠. 다행히 인물의 감정과 시선은 톤 앤 매너로는 잘 지켜지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 시나리오와 감독님이 의도한 여러 가지 시선과 여러 가지 입장이 문제를 던진다는 것. 누가 더 정당한가, 누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나, 이런 문제는 절대 아니고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문제라고 할까요. 그걸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거든요. 우리도 그렇거든요. 우리도 말로는 남의 일에 대해 굉장히 공정한 척 하지만 막상 나에게 닥치면 불공정하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거든요. 영화 속 인물들도 각자의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마지막 편집에서도 지키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시나리오와는 다른 지금의 엔딩, 에필로그처럼 억관의 뒷모습과 그걸 바라보는 현수의 뒷모습. 결국 그것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어서 저는 너무 좋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결말부에 세 인물의 행동들이 좋았어요. 세 명 모두 지키고자 했던, 행하고자 했던 의지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삶의 딜레마,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드라마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아서 묵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순서대로 찍었어요. 감독님과 감정이 변하는 과정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변화에 맞게끔 다시 수정을 하면서 찍었고요. 상현을 감독님과 쭉 같이 지켜보면서 복수에 대한 마음보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의 마음은 그럴 거 같아요. 그러면 더 이상 상현의 입장에서는 범인을 죽인다, 안 죽인다는 큰 의미가 없는 거죠.

만약 내가 아버지였다면 물어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해자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 같고요.
그러면 사실 다행이고요.

그래서 딸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하는 그런 심정이 더 크지 않았을까요. 더 이상 복수를 하고 안하고는 상현에게 중요하지 않았겠죠.
앞부분을 촬영하면서도 그 뒷부분에 대한 생각을 계속 같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강릉역 장면을 찍을 때 가장 힘들었죠. 대사는 시나리오에 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를 몰라서요. 이걸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굉장히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집중만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또 촬영장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몰입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굉장히 고통스럽던 기억이고, 내가 연기한 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도 없어서 후련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어요. 이번 작품은 그런 면에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리 배우이고, 아버지여도 3자로 볼 때는 이해가 됐는데 내가 직접 표현하려고 하니 표현 자체가 너무 힘든 거예요. 출연 결정할 때부터 힘들 건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물론 매 작품마다 힘든 점들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그런 힘든 장면들이 많았어요.

그런 감정 자체가 가늠이 안 될 것 같아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상하기도 또 애매해요. 내 자식이 죽었다, 그 상상만으로도 죄거든요. 멀쩡히 살아있는 애를 계속 죽었다고 상상하며 연기하다가 혹시 애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내가 이런 상상을 해서 그렇게 된 건가, 죄책감이 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상상은 안 했어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면이 가장 끌렸던 건가요?
사실 캐릭터 때문에 끌렸던 작품은 아니에요. 상업영화의 리암 니슨처럼 멋있는 아빠의 복수도 아니잖아요. 상현은 하는 건 별로 없고 그냥 계속 걷기만 하잖아요. 이를 바라보는 억관의 시선이나 아이들의 아버지들, 세탁소 부모, 형사들 등을 조명하는 시선들이 참 좋더라고요. 장치로 활용되는 것들이 아니라 별개로 기능하는 인물들이 이해가 되고, 그런 부분들이 훨씬 더 디테일하고 리얼하게 다가왔어요. 디테일한 대사들도 굉장히 좋았어요. 누가 봐도 너무 착하고 어이없이 그런 일을 당한 여자 아이라는 걸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 형사가 하는 말은 ‘걔 행실이 어땠는지 알아봐’, 그럼 옆에서 ‘걔 너무 착했다잖아요. 아빠 보면 뭐’ ‘애 아빠는 다 그래’ 이런 대사들이 너무 현실적인 거예요. 냉정하면서도. 아무리 못된 애라도 그 아버지가 ‘우리 애는 사실 나쁜 짓을 좀 하긴 했어요’ 뭐 이러겠어요? 그렇지 않다는 얘기죠. 어떻게 보면 참 사소한 부분인데 저는 그런 사소한 부분이 이 시나리오에서 좋았던 것 같아요.

말씀 하신 것처럼 상현은 강렬하게 끌리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표현하기 힘든 캐릭터다보니 그런 측면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아니었나요?
표현하기 힘든 캐릭터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그때는 생각을 안 하는 거죠(웃음). 그냥 막연한, 아주 막연한 생각뿐이고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거니까요. 이런 작품, 이런 드라마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던 거죠.

자식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그동안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 영화들에서는 보통 오열하고 감정이 바닥을 치는 연기들이 어느 정도 연상이 되고요. 그것만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감독님이나 배우에게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했더라도 그렇게 안할 거라는 보장은 없죠. 저도 ‘샤우팅’한다는 배우 중 하나인데(웃음), 많이 해봤고요.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막연하게 그런 방법밖에 없지 않겠나, 자식이 죽었는데 슬프고 오열할 것 같고. 근데 과연 진짜 그런 느낌이 들까, 생각하고 표현하려는 순간 막히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래서 작품 들어갈 때 감독님과 이번 영화는 진짜처럼 해보자, 카메라 방식도 캐스팅도 연기도 막연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정말 최대한 솔직하게 해보자, 라고 이야기했던 작품이었어요. 딸 시신이 안치소에 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머릿속으로는 ‘뭐 우리 애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이럴 것 같았는데, 막상 할 때는 ‘네? 무슨 소리에요. 어우, 잘못 거셨어요. 아니에요’ 그냥 딱 차단의 감정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 순간 이게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속으로는 딸일까 봐 너무너무 겁이 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여유를 부리는, 여유를 부리면 부릴수록 아니길 바라는 감정이 점점 많이 드는 거예요. 근데 그게 상현의 입장일 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재영의 입장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감독님께 상현의 입장도 내 입장이고 정재영의 입장도 내 입장이고, 이런 아빠라면 이렇게 했을 거라고 따로 캐릭터 설정을 하는 건 의미가 없는 작품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아빠라도 딸에 대한 감정은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는 전혀 상관없이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현장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최대한 믿고 가려고 한 건가요?
그렇죠. 최대한 그렇게 믿고 가려했고, 거기서 나오는 의외성, 그리고 최대한 내 입장이라면 하고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재영의 가장 나약한 모습이 나오는 거죠. 초반에 억관이 집에 가서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할 때 심정적으로는 ‘이게 최선이라고요? 씨발, 이게 최선이야?’ 막 이러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는 억관에게 잘 보여야 수사를 더 잘 해주지 않을까 충돌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지만 ‘죄송해요’라고 한 건 시나리오에는 없는 애드립이에요. 억관에게 대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그게 정재영의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시작으로 또 그 감정이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던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그게 정재영 일수도, 정재영의 캐릭터일 수도, 상현일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모르죠.
정답은 없겠지만, 장르적 설정을 위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저는 그렇거든요. 어떤 사건에 처했을 때, 저 같은 보통 사람은 항상 이성과 감성이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 생각을 같이 하는 어떤 습관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술 먹고 대담해져서 담벼락에 오줌을 누면서도 혹시 누가 볼까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상현도 분명히 감성적으로는 다 뒤집고 본인이 해결하겠다고 생각 하더라도 실제 그렇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거죠. 저도 몰랐어요. 그 상황에 뛰어 들어서 최대한 진실하게 연기하려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대로 한거죠. 수진이 시신을 봤을 때도 보자마자 눈물이 나고 수진이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하는 그런 느낌일까, 일단 한번 느껴보자, 생각하고 슛 들어갔는데 눈물은커녕 수진이가 아니고 무슨 다른 애처럼, 더미처럼 보였어요. 내 딸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고 진짜 건조했어요. ‘감독님 죄송해요. 아무 느낌이 안 나는데요. 이상하다, 몰입이 안 됐나? 충분히 몰입한 것 같은데 아무 느낌이 안 나는 이유는 뭘까?’ 한참동안 그 느낌이 너무 강렬했던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정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부정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저한테 수진이를 보고 있으라면 몇 시간이고 그 상태로 쳐다보고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이런 느낌이 드는데 거기서 오열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상현에 몰입한 정재영이었던 거죠. 그런 기분은 상현으로서는 할 수가 없고 정재영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초반 상현의 집 장면들만 제외하고 90% 이상 순서대로 찍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촬영하는 것이 필수였겠어요.
그죠. 대신 청솔학원 부분만 강원도에서 찍지 않고 미리 찍고 왔죠. 갔다가 다시 올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감독님도 순서대로 찍는 걸 원했고, 단점보다 장점이 많죠. 사실 여건이 안돼서 그렇게 못하는 거죠.

우발적으로 가해자인 철용을 살해하는 장면도 촬영하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궁금하더군요.
그 장면도 참 힘들었죠. 이틀을 찍었던 것 같은데, 한사람을 죽이는 장면인데 저는 한 열사람은 죽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장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방에 숨어 있다가 철용이 동영상을 보는 장면 이후의 감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 부분 부터에요. 동영상을 보고 내 딸이라 생각을 하는 순간 팍 오더라고요. 일단 느낌을 잡고 했죠.

추적하는 일련의 과정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사실 육체적인 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아요. 각오를 한 거고, 더한 작품들도 있었고요. 추위로 따지면 <웰컴 투 동막골>은 진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정도라(웃음). 똑같이 대관령에서 촬영했는데 이상하게 한번 겪어서 그런지 덜 춥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정호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당시 하얀 설원에서 커다란 골프백을 매고 칼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상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했어요. 그만큼 중요한 이미지였다는 소린데, 앵글에 담긴 외적 이미지 이상의 상현의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롱숏의 몽타주 장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야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단순히 등산하면서 힘든 그런 장면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아마 그 부분도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순서대로 찍으려고 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장면이 겉으로 보이기에는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느낌보다는 감독님도 편집을 하면서 더 많이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무언가를 먹고 있는 그런 장면이 더 좋아요. 빵을 배고파서 먹는다기보다 더 가기 위한 에너지라 생각하고 집어넣는 거죠. 그런 장면 하나로 상현의 감정 표현이 된다고 생각해요.

친필 대자보를 썼어요. 마지막에 ‘자식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절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부모도 남은 인생이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닥치면 없어요. 모든 사건들을 보면 다 그래요.

작년 말부터 연달아 작품을 개봉하니 어떤가요?
촬영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웃음). 전작들이 평은 호불호가 갈렸지만 흥행 결과는 안 좋아서 부담이 커요. <방황하는 칼날>은 흥행보다 좋은 작품하자는 취지였는데, 결국 개봉을 앞두면 좋은 작품이 어디 있어요, 잘되는 작품이지(웃음). 사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또 <역린>까지 있으니까요. 떠나서 한 두어 달 있다 오고 싶네요(웃음).

흥행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열한시>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 <역린>까지 네 편의 출연작이 장르도, 캐릭터도 다 다르기 때문에 정재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었어요.
억지로 위안을 삼으려면 그런 식으로라도(웃음). 앞으로 각오를 해야죠. 주류는 아니고 비주류인가 봐요(웃음). 갑자기 속이 타네요(웃음).

2014년 4월 9일 수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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