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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야 채워지는, 그 단순 오묘한 순리 <감시자들> 설경구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분위기 좋죠?
저는 모르겠어요. 시사회나 촬영할 때 말고는 집밖을 안 나가요.

VIP 시사 후 반응은 어땠어요?
뒤풀이는 대박이었어요. 거기에 속으면 안 되는데(웃음). 물론 관객들의 선택은 모르겠지만요. 영화 어떠셨어요?

재밌게 봤어요. 보자마자 한마디에서 한줄 평도 썼는데.
뭐라고 썼어요?

신의 한수!
그거 우성이 다음 영화잖아! (웃음)

그걸 살짝 인용했지만(웃음), 어쨌건 근래 영화들이 메인 스토리 외에 서브플롯이니 반전이니 너무 많은 것들을 끌어들이는데 <감시자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쭉 간다는 것, 그 부분이 가장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빤한 이야기죠.

예전에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복잡한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됐어요.
반전이 숨어있어야 하고, 알 듯 모를 듯 꼬고, 과거가 있고. 우리는 반전도 없고 제임스도 과거가 있을 듯 없을 듯, 하지만 없어요. 도둑이야 도둑. 그걸로 끝나죠.

그래서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어요.
요새 너무 반전 깔아놔 가지고. 진짜 옛날에는 사실 없었는데. 우리도 왜 그랬지? 책 보는 입장에서도 반전 없으니까 재미없다고 그러고.

<감시자들>도 만들려면 여지는 많죠. 배후 세력이 있다든지.
어우 많죠. 뭔가 있을 듯 던지기는 하는데 없는 거죠.

그걸 포기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한 거죠.
책에도 없었어요(웃음).
원작 영화 <천공의 눈>은 보셨나요?
오늘 받았어요. 일부러 안보고 구해달라고 해서 오늘 받았어요. 촬영 전에 보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영화를 만들고 보니까 원작이 보고 싶더라고요.

리메이크가 웬만해서 좋은 평을 받기 쉽지 않잖아요.
잘해야 본전인 거죠.

<감시자들>은 그 부분에서도 평이 괜찮아요.
제가 알기로는 판권보다 리메이크를 더 비싸게 팔았다는 말이 있던데. 원작을 사온 금액보다 우리 작품이 더 비싸게 팔렸다고.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한테 와, 장사 잘하네! (웃음)

제작보고회 때 정우성, 한효주가 출연한다고 <감시자들> 출연을 결정했다 말씀하셨는데, 이 작품을 어떻게 선택한 거예요?
진짜(웃음).

시나리오도 안 보고요?
일단은 먼저 한다고 얘기했죠.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우성이가 한다고 했으니까 뭐.

정우성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 온 거죠?
사람을 믿은 거죠. 오죽 잘 봤겠어요. 우성이 역이 느낌은 굉장히 센데 영화 전체를 봤을 때 제임스가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사건이지만 분량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거든요. 자기가 꼭 하고 싶다고 했다더라고요. 그리고 한효주도 한다는데 어느 미친놈이 안하겠다고 하겠어요? (웃음) 책 조금 고쳐서 준다고 해서 며칠 있다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시나리오를 보니 어땠나요?
빤한 이야기. 범인 처음부터 다 나오는. 그런데 묘하게 읽혀졌어요. 궁금하고요. 되게 빨리 읽었어요. 속도감 있게. 이렇게만 나오면 묘한 영화 하나 나오겠다, 그랬어요.

황반장 캐릭터는요?
황반장은 입체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임스는 단선이잖아요. 그에 비해 황반장은 사연자체가 다양한 삶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없는 농담 툭툭하고, 또 집중할 땐 집중하다가 영혼 없이 확 풀어버릴 때가 있고. 그런 입체감이 재밌었어요.

입체적 인물 말씀하셨는데, 캐릭터 소개를 보면 황반장은 이성적 판단력과 인간미와 유머러스함을 갖춘 카리스마와 페이소스가 공존하는 인물이라고 되어있거든요.
그렇게 쓰여 있어요(웃음).

영화를 보면 그런 부분이 다 묻어나는 캐릭터가 맞죠. 하지만 대중들에게 더 강렬한 인상을 준 건 오히려 전작들의 단선적인 캐릭터였잖아요.
단선이죠. 하나만 보고 가는. 그런 건 오히려 쉬워요. 갈수록 업 돼서 몸이 힘들며 가는 거죠. 황반장은 오히려 한효주가 있고 팀원들이 있어서 힘든 일은 없었어요. 그들이 현장에서 파고 들어가면 되지 저까지 그러면 지쳐요. 재미없어요. 혼자 장기 두는 거예요. 굉장히 아날로그죠. 핸드폰도 그렇고, 무전기도 이만해요. 요새 그런 무전기가 어디 있어. 영화 현장에서도 그런 무전기 안 쓰는데(웃음). 황반장은 그런 인물이에요. 옛날식을 고집하는.
<감시자들>을 보고 설경구의 힘 뺀 연기가 굉장히 반가운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서 저도 굉장히 반갑고 좋아요. ‘강철중’ 콤플렉스가 있어요. 10년을 그 콤플렉스에서 살았는데 얼마나 불쌍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우성이 때문에 얻어 걸렸네(웃음).

전에도 힘 뺀 연기를 보여줬고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오랜만으로 느껴지고 반가웠던 건지. 이래서 설경구, 설경구 하는구나, 새삼 느꼈죠.
오랜만이죠. 제가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연기하는 것, 시작을 그렇게 했어요. 리얼리티 영화를 시작으로 초반에 죽 했잖아요. <역도산> 끝나고 부턴가 굉장히 지쳤어요. <역도산>이 거의 정점이었던 게, 할 것도 많고 대사도 일본어고 상대배우도 다 일본 배우잖아요. 말은 안 되는데 대사는 해야 하고, 내가 말해놓고 내 말을 확인을 못하는데, 그거 진짜 답답해요. 거기다 몸무게는 늘려서 레슬링을 하고 있고, 뚱뚱하게 만들어놓고 드롭킥하라니까 돌겠더라고요. 연이어 <공공의 적 2>하고 살 빼면서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어요. 모든 면에서. 굉장히 지쳐서 좀 쉽게 가자, 쉽게 가자,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사실 쉽게 간 건 아닌데, 초반보다 그래도 심적으로 좀 쉽게 간 게 있었어요. 대신 속도감이 붙었죠. 속도감은 붙었는데 고민의 깊이는 엄청나게 줄어든 상태인거죠. (이마를 가리키며) 여기가 아파하면서까지 찍진 않았던 거죠. <오아시스> 할 때는 여기가 진짜 아팠어요. 망치로 때린 것처럼. 그러면서 영화 찍었는데 그 후에는 그런 고민까지 할 필요는 없었죠. 대신 괜히 감독님한테 고만 찍어, 뭐 이렇게 많이 찍어(웃음). 어느 순간 모니터 확인 안하게 되고. 속도감이 붙으니까 모니터 확인을 안 해요. 어차피 잠깐잠깐 쓸 건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롱테이크나 이런 건 봐야죠. 자를 수가 없고 이게 다니까. 소스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고, 현장 편집본은 어차피 현장 편집본일 뿐이고 편집실가면 또 바뀌어서 나올 거니까. 그러던 중에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봐요.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자들>처럼.

2000년대 후반부터 그런 장르영화들을 많이 선택해왔지만 생각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죠.
사람이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게, 그런 욕심을 가지고 덤볐더니 안 되더라고요. <감시자들>은 누가 한다고 해서 한 건데(웃음), 비우니까 채워지나봐요. 진짜. 참 희한하죠? 힘내서 확 담아놓고 시작하니까 제가 촬영할 때 예민하긴 하지만 힘만 들어가고 더 날카로워져요. 오히려 <감시자들>같은 경우에는 진짜 얻어걸렸어요(웃음). 이렇게 힘을 빼고 찍었더니 스타일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이 영화도 안 되면 나는 더는 이쪽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연기해야겠다, 싶었거든요. 이제 저도 40 중반을 넘어서 후반이잖아요.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영화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했어요. 이런 것만 하겠다, 저런 것만 하겠다는 건 아닌데요, 그래도 <감시자들>이라는 영화가 나오는 바람에 얼마나 반갑던지. 처음으로 세련됐다, 한마디 했어요. 어떤 언급도 잘 안하는 사람인데,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건 엄청난 칭찬이에요. 내 영화 인생에서 내가 그렇게 목말라 하던 영화가 나왔으니까요.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하는 그런 리얼한 영화로 시작하자마자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는데, 제가 참여했던 영화중에서 그렇게 스타일리시한 영화는 없었거든요. 시도는 했지만 만족한 영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가 나온 거예요. 저는 그게 반가웠던 거예요. 물론 저는 이 스타일 영화에 된장을 바른 역이긴 하지만(웃음), 그 된장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 있게.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감시자들>이라는 영화가 제 필모에서는 되게 반가웠어요. 그리고 ‘강철중’ 얘기가 안 나와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10년 콤플렉스였던 ‘강철중’. 다 떨궜다는 건 아닌데, 뭐 소리만 지르고 집어만 던지면 ‘강철중’이라고 그러니까 피곤하더라고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죠.
그래서 경찰 역이 들어오면 안했어요. 살짝 과격하거나 그러면 캐릭터 이름만 바뀌었지 ‘강철중’ 연기였어요. 그걸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캐릭터가 오니까요. 그래서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 접은 게 있었어요. 이번에는 재밌는 게, ‘몰라. 나 그냥 ’강철중‘이 나와도 몰라. 애써 피하진 않을 거야’라고 편하게 해버리니까 또 안 나오는 거예요. 전에 ‘강철중’처럼 안해야지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는데, 이것도 놓으니까 또 안 나와요(웃음). 캐릭터가 움직임이 별로 없어요. 거기서 득을 좀 본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강철중’ 얘기 안 나오니까 진짜(웃음).

영화를 보면 ‘강철중’ 얘기가 나올 여지가 없어요.
있긴 있어요(일동 폭소).
그건 본인만 아는 걸 테죠(웃음). 봉고차 신을 3일 동안 몰아 찍었다면서요.
마지막 날은 진짜 나 뭐하는 거야(웃음). 앞뒤 상황을 찍은 것도 있고 앞으로 찍어야 될 것도 있는데 그걸 못보고 연기를 하려니까 그것도 답답하더라고요. 생각만으로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이건 정말 모르겠다 싶을 때는 몇 가지 톤의 소스를 만들어서 맞는 걸 붙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고요. 나 혼자 영화를 해석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배우가 들어오면서 어떻게 그 신이 바뀔지 모르는 영화인데. 그런데 잘 붙어가더라고요. 물론 후시도 몇 개 했죠. 하지만 생각보다는 덜했어요.

설경구라는 배우가 있으니까 감독도 그렇게 무리하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거겠죠.
이유진 대표가 빨리 끝내라고(웃음). 애들 떨면서 했어요. 회차 넘기면 죽는다고(일동 폭소).

봉고차 신 촬영 도중에 먼저 감독들에게 힘을 빼고 연기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감독들은 그런 생각을 못했다면서요.
몰라, 기억 안 나(웃음).

설경구가 황반장 캐릭터를 다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던데요?
그건 감독님들이 겸손한 거죠. 그때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순서대로 찍을 수 없는 노릇이고, 내 부분만 가지고 갈 수는 없는 영화잖아요. 전체 호흡에 내가 맞춰서 가야하는데, 달리면 같이 달려야하는데 영화는 어느 톤으로 달리는 지도 모르겠고. 제가 안 나오는 장면이, 모르는 장면이 되게 많았거든요. 이 영화는 감독이랑 호흡을 못 맞추면 못 만드는 영화에요. 조의석과 김병서 두 감독이 정확히 계산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치밀한 영화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겸손 떠는 거예요.

제가 감독이라도 설경구라는 배우를 캐스팅했다면 욕심이 많이 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질 테고.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배우니까요. 그런데 그 욕심을 포기한 것이 결과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 설경구의 공이 큰 거죠.
그건 아니고요, 굳이 내가 힘줄 필요 뭐가 있어요. 밖에서 힘주고 뛰는 애들이 있는데. 저는 안에서 장기 두는 거죠. 리모컨 같은 스타일, 그런 거죠.

그런 것들을 통찰할 수 있는 시야가 있다는 거죠. 불안한데 나도 한 번은 뛰어야하는 거 아냐,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귀찮아졌어요(웃음). 우리 팀원들이 너무 좋은데 굳이 나까지 뭐.
앞에서 된장 얘기도 했잖아요.
저는 철저히 된장 역이었어요. 된장을 바르는 역할.

그렇다면 출연했던 작품 중에서 설경구에게 제대로 된장을 발라준 동료배우가 있었나요?
제가 된장이라서 된장이 된장 바르면 안 돼요(웃음). 된장을 정리해주는 배우가 필요하죠. <스파이>가 된장들한테 스타일 나게 해준 게 다니엘 헤니(웃음). <감시자들>은 스타일이 좋으니까 제가 된장을 바른 거죠. 스타일도 너무 스타일로 가면 지쳐요. 된장이 필요해요. 맛이 필요해요.

설경구라는 된장이 깊은 맛을 낸 거죠.
내가 맛냈다는 건 아니야(웃음).

예전 인터뷰를 보면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인물에 얼마만큼 가깝게 접근하느냐, 그 노력뿐’ 이라고 말했어요. ‘배우는 감독의 분신이 되어야 한다’며 감독과 배우의 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도 말했고요. 이번 영화는 공동 연출이다 보니 기존 1인 연출과는 다른 합을 맞추는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두 감독끼리 합을 워낙 잘 맞춰서 현장에 왔고, 김병서 감독은 촬영을 하던 사람이라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역할 분담이 되는 거예요. 둘이 내일 찍을 것에 대해서 미리 합을 맞춰놓고 와서 김병서 감독이 카메라로 가고 조의석 감독은 모니터 앞에 있는 거죠. 만약 둘 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으면 진짜 힘들었거나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오히려 감독들끼리 부딪히는 걸 내심 기대했는데 너무 없으니까 그것도 재미없더라고요(웃음). 근데 그게 잘 맞았어요. 둘의 장점이 안 살면 정말 끔찍하거든요. 장점을 서로 갉아먹게 되고. 이 영화에서는 둘의 장점이 정확하게 묻어났고, 죽기 살기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똑똑한 연출을 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촬영 도중 순간순간 피드백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어떤 감독과 이야기를 했나요?
조의석 감독님하고 했어요. 저는 카메라는 잘 모르니까. 전 제거 외에는 관심이 없어요. 촬영 끝나면 끝이에요(웃음). 편집실도 안가요. 어떤 장면이 잘리는 지 관심도 없어요. 알아서 잘랐겠지. 현장에서는 조의석 감독하고 상의했고, 조의석 감독은 김병서 감독과 상의하고 그랬죠.

두 감독들께는 죄송하지만, 공동 연출에다 최연소 상업 장편 입봉 등 주목받은 것에 비해 전작들 반응이 좋지 않았던 부분도 있어서 솔직히 여러모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박수 받을 때는 좋은데 그 다음부터는 할 게 없어요. <박하사탕> 때도 그랬고 박수 쳐주다가 그 다음에 문제인거예요. 콤플렉스가 돼버려요. 비교를 거기다가 해버리니까. 부담인 거예요. 혹이 되는 거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걸 계산하고 어떻게 살아요. 더, 더, 더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이 영화가 흥행 잘 됐으면 좋겠어요. 두 감독이 10년 동안 못 즐겼던 사람들이라서(웃음), 즐길 때가 됐어요. 일단 평이 좋으니까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지만 이 바닥이 냉정한 판 아니에요. 영화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현실이, 정말 무서운 현실이 닥칠 수 있는 거잖아요. 여러모로 다행인 영화에요. 저에게도 제 필모에 중요한 영화가 하나 생긴 거고요.

상업, 오락영화 장르로 흥행작으로서가 아닌, 인상적인 출연작을 설경구의 필모그래피에 남길 거라곤 저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시 초창기 작품 스타일로 돌아가야 할 줄 알았거든요(웃음).
아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가서 구르자, 나는 몸으로 때워야 될 것 같다(웃음). 내가 스타일 낸 건 없는데 참여를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 기분 좋아요.

같이 작업한 거잖아요.
당연하죠. 내 작품인데. 포기할 뻔 했는데(웃음), 운이 좋은 거죠.
정우성과의 마지막 격투 아닌 격투 신을 촬영할 때는 어땠나요?
책에는 더 길게 있었을 거예요. 촬영할 때는 짧게 끝내는 걸로. 영화 전체 호흡문제도 있었고 제임스가 거기서 질질 끌 일이 없잖아요. 치명적으로 한 번 팍팍 먹이면 되니까. 갑자기 지루하게 길게 가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임팩트 있게 빨리 끝내자는 게 콘셉트였어요.

프롤로그의 황반장이 테이블에서 하윤주의 발을 거는 장면이나, 하윤주가 핸드폰을 들고 싸울 때 황반장이 도와주는 장면을 보면 머리만 쓰는 형사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임스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기본은 있는, 그래서 한번정도는 제임스에게 대응하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죠.
마지막으로 가는 중요한 장면이잖아요. 그래야 한효주한테 바통 터치를 자연스럽게 하는 거고요. 그럼에도 불안하고 못 미더워서 스테이플러로 상처를 봉합하고 바로 뛰어나가는, 그런 부분이 더 극적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련한 부분은 있죠. 잡지를 들고 나가지 않았다면 황반장은 그 자리에서 아웃인데 치명상까지는 안됐던 거죠. 그것 때문에 또 들어갈 수 있었고요. 이 영화는 계속해서 들어가고 빠지고 백업해주고 그런 것들이 저와 한효주도 그렇고 팀원들도 그렇고 리듬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었던 거죠. 옷 속의 잡지를 보고 그래, 황반장이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을 사람이야, 라고요(웃음).
<천공의 눈>에 그 설정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베테랑이잖아요. 제임스가 찌르는 곳이 목과 배인데, 목은 어쩔 수 없으니 배를 보호한 거죠. 그게 황반장의 베테랑다운 모습인 것 같아요.

감시반의 특성상 동료애가 드러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유독 설경구가 연기한 황반장은 더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건 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웃음). 선배로서 진심을 툭툭 던져주고, 중간 중간에 또 실없는 소리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판단은 감독님이 하는 거니까 저는 여러 가지 소스를 보여준 것뿐이죠.

그 부분도 강렬했어요. 프롤로그에서 황반장이 자리를 뜨고 하윤주가 ‘출근해’라는 흔적을 확인할 때 황반장 캐릭터의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그건 잘 써 준거죠.

잘 썼고, 잘 표현한 거죠.
‘출근해’ 쓴 거, 그게 연기야? (일동 폭소)

그 상황이 극적으로 다가오게끔 분위기를 형성해 온 것이 배우의 힘인 거죠.
처음 프롤로그의 목적은 저 남자가 제임스 편인가, 아닌가, 그럼 뭔가, 그 트릭이었는데 안 걸렸나? (웃음)

누구 편인지 계속 궁금했어요. 하지만 왠지 악당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보도자료 내보냈잖아. 나 반장이라고. 우성이가 범인이라고 다 내보냈잖아(웃음).

악당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누구의 사주를 받은 캐릭터도 아닌 것 같고.
에이, 보도자료 다 봤으면서(웃음). 프롤로그부터 범인 숨기는 거 없이 다 까고 가는 영환데.

게으른 것도 있지만 저는 자료를 되도록 안보고 시사회에 가요. 기사를 쓰게 돼서 미리 자료를 찾아보고 그렇게 알게 되지 않는 한 될 수 있으면 정보들을 접하지 않고 가거든요. 감시하는 사람들 이야기 정도라는 것만 알고 갔어요(웃음).
재밌는 게 ‘감시자들’인데 우리가 주잖아요. 우리가 제임스를 감시하는 것 같은데 그 위에 제임스가 우리를 보고 있어.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감시자들’이라는 제목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감시’라는 제목이 더 좋았거든요. <감시자들>이 된 사연이 있죠. <감기> 때문에, 헛갈릴까봐(웃음).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한 부분도 있어서 <감시>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긴 했죠.
청문회 장면이 있었어요. 황반장이 양심을 고백한답시고 내부고발자가 되는. 평범했던 사람이 불법사찰로 가정이 파괴됐거든요. 그런 자기반성을 하면서 울려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호흡 때문에 편집이 됐어요. 그것도 깊게 안 들어가서 좋은 것 같기도 해요(웃음).

한효주에게 불법사찰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한번 나오긴 하잖아요.
더 가면 불법사찰이 된다고 훈계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 말고 청문회에서 자기 고백하는 감정신이 있긴 있었어요.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잘 자른 것 같아요.

덜어내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쓸 때도 분량을 쳐내야 하는데 아깝거든요.
잘 쳐내야하는데, 특히 영화는 한번 쳐내면 끝이잖아요. 개봉해버리면 어쩔 수 없으니까. 참 피 말리는 일인 것 같아요. 진짜 아까웠을 거야. <역도산>때 하루에 임대료가 800만원인데 다 날아갔어요. 감독 속이 얼마나 찢어질 거야. 호흡상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얼마나 심사숙고하고, 편집하고, 쓴 소주 먹고 했겠어요.
터널 입구에서 지하철이 들어올 때.
손 벌릴 줄 알았죠?

네(웃음).
벌리는 거 하나 찍을 걸 그랬어. 그 열차는 CG였어요. <박하사탕>은 진짜 기차였고요.

그 장면을 촬영하면서 감독은 전혀 <박하사탕> 생각을 못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바람도 불고 손만 벌리고 돌아서면 <박하사탕>인데(웃음).

CG란 생각은 못해서 영화를 보면서는 설경구에 대한 오마주인가 궁금하기도 했는데, 촬영 당시 열차가 없었으면 연상이 안됐을 수도 있었겠죠.
나는 생각했어요. 뒤에서 열차 온다기에 이건 웬 <박하사탕>(웃음). 그런데 현장에서 그 얘기는 안했어요.

<스파이> 개봉은 잡혔나요?
9월이라던데, 정확히 몰라요. 포스터도 아직 안 찍었고요.

<소원>은 촬영하면서 감이 어땠어요?
얼마 전에 크랭크업했어요. 정직한 영화죠. 다시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정직하게 감정선으로 붙는 영화에요. 그런 작품만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다양하게 섞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데, 그동안 너무 스타일 찾다가(웃음). 다행인 게 <감시자들>이 잘 나와서 <소원> 촬영이 끝났지만 마음은 편해요.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5 )
amitie1124
연기가 아니라 배역 그자체가 설경구 자신이라고 생각되게끔 만드는 배우~. 뛰어난 자기관리와 배역을 위해 헌신하는 점은 다른 배우들도 보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감시자들은 못봤는데 영화를 본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다고 꼭 보라고 하더라구요~ 이번주 주말에 보러 가겠습니다 설경구 화이팅!   
2013-07-25 01:01
lovsvips7
명품배우 설경구에 연기는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 다른 카리스마도 있는것 같구요. 무엇보다 부담없는 배우라 그의 영화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늘 좋은 모습 보여주어 감사합니다 설경구 화이팅!!!   
2013-07-23 21:48
aumma7
인터뷰 현장이 아주 유쾌했을 것 같아요. 글만 봐도 ^^   
2013-07-18 14:39
dk982duk
왜 설경구는 설경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는 늘 스크린 안에 만 있다. 그의 다른 모습이 정말 보고 싶다.   
2013-07-15 18:40
poocrin
인터뷰에서 조차 황반장 캐릭터가 뭍어나는 느낌이네요^^ 또다른 작품 스파이도 기대됩니다~   
2013-07-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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