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댄서의 순정>, 인기다! 개봉 몇 일째만에 관객 백만을 동원했다는 기쁨에 찬 보도메일이 온갖 매체들의 메일함에 꽂힌 지도 수일이 흘렀고, 뒤이어 <혈의 누>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는 가운데도, <댄서의 순정>에 대한 관객들의 발길은 꾸준히 이어질 것 같다(아닐라나?).
어쨌거나 비단 <댄서의 순정>뿐 아니라 어떤 영화에 대해 그냥 대박일지 아님 특대박일지 등등 그 결과에 대해 기자가 가진 관심은 크게 한 가지다. 인기를 끌었다면, 왜 인기를 끌었을까. 신통치 않았다면 왜 신통치 않았을까. 관객들의 심리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는 것.
한창 상영 중인 영화를 두고, 그 흥행 요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 될 수 있지만, 이 <댄서의 순정>만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외칠 것같다. 귀염짱, 선행짱, 공부짱, 그리고 이번엔 ‘춤짱’까지 도전한 문근영의 힘이라고!
이에 기자는 ‘뒷북’처럼 내놓는 이 기사 때문이 아니라, ‘그렇긴 해도 내가 <댄서의 순정>에서 좋았던건 문근영이 아니라 박건형인데!’라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싶다. 정말이다. 기자는 정말 박건형, 아니 ‘영새’가 좋았다!
● 그의 '미소'에 빠져버리다!
기자가 단지 ‘여자’기 때문에, 더구나 ‘미남밝힘증’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영새’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저너머 스크린에서“아즈바~이”를 외치며 해맑은 미소로 빛나고 있는 ‘채린’이 마치 ‘나’인냥 동일시 작용이 일어나서가 아니라는 얘기(사실, 아무리 무의식은 무의식이더라도 어찌 문근영 속에 투영되겠는가...)!
그렇다면 그의 춤 때문에? 물론, 문근영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반년 가까이 룸바, 차차차, 삼바 등을 배우며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신 노력을 알고 있고, 그중 눈에 ‘번쩍’ 띄이는 배우가 누구냐고 한다면 망설임없이 박건형인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혹자들이 ‘뮤지컬 배우 출신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라고 질시한다해도, 그의 안정된 자세와 육감적인 몸선은 정말 단기간의 투지와 열성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춤’ 때문이 아니었다. 혹은 뮤지컬로 보기좋게 다져진 몸, 그 스타일 멋지게 잡힌 육체 때문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영새’가 짓는‘웃음’ 때문이었다.‘채린’이 연습하기 좋으라고 밤새 페인트로 발자국을 만들어놓고, 그걸 보고 좋아라하는 그녀를 몰래 보고는, 자신 역시 좋아서 씨익 웃고 잠드는 모습. 웃음이 많은 인물이 아니라서, 아니 웃음을 오랜만에 되찾은 인물이 짓는 그 웃음에는 너무나 많은 삶의 표정들이 담겨있는 것만 같아서, 그 순간 ‘영새’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비쳐졌다.
누군가 그건 오버라며, 좋게봐야 귀여운 정도일뿐 그런 말도 안돼는 깊은 느낌까진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고개를 저을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아마도 영새가 보여준 ‘방황’의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박건형의 단순한 ‘연기’인지, 혹은 그의 인생 어디매쯤의 ‘경험’을 끄집어낸건지 알 순 없지만, 슬럼프에 빠진 ‘영새’의 나날들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움이 묻어있어, 이런 ‘영새’가 짓는 웃음에는 정말로 ‘기쁨’이, ‘즐거움’이, ‘사랑’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박건형을 만났을때, 기자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은 커녕, ‘버벅거렸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 마음 속 이미지일뿐, 타인에 대한 발화 목적으로 그걸 논리정연하게 가닥지었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건형은 기자의 예상과 달리(?) 분명하게 핵심을 이해하고 파고들고자 하는 타입이었고, 그러다보니 기자는 일방적인 질문 목록만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다가 되려 박건형의 질문을 받고, 그의 입장과 동등하게 빠르게 빠르게 대답을 쏟아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마디로 준비운동없이 고전한 셈!
예를 들면 이랬다. “일반 시사회로 영화 봤는데, 재밌었어요!”라고 하니, “어, 보셨어요? 반응이 어땠어요? 어떤 장면에 웃었나요? ”라고 박건형이 묻고,“흠, 뭐 여러 가지 장면들이 있었는데, 가장 크면서도 길게 웃은 건 마지막 반딧불 장면이죠”라는 기자의 응수, 그러면 “왜요?”라는 그의 또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이에“예쁘기도 하지만, 너무 판타지가 강하고 신파스럽잖아요”라고 기자가 대답하면, “만약 그 부분이 빠졌다면요?”와 같은 다소 생각지도 못한 박건형의 질문이 이어지는 식.
그래서,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인터뷰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는 다음과 같은 유머러스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댄서의 순정>에 어떻게 캐스팅 되셨어요?”하니, “오디션 봤는데요.”. “경쟁자가 많았나요?”, “한 10명. 11명. 실명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존의 유명한 배우들이요.”, “그럼 감독님이 캐스팅 확정을 하고나서, 그 이유를 사담식으로나마 꺼내기도 했나요?”, “안 물어봤는데요. 나중에 한번 물어볼게요. (잠시 침묵) 지금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까요?”라고 귀엽게 웃는 형태였다.
● 에이,아니라니까요~춤 어려웠어요!
반대로 박건형 역시, 본격적인 연기자로서 대중적인 자리매김을 하는데, 자신의 장기를 잘 살릴 수 있는 <댄서의 순정>이 몹시 반가운 기회가 됐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영화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아요. 채린을 가르치는 장면 정도인데, 사실 춤영화라고 해서 처음엔 망설였어요. 뮤지컬에서 했던 이미지의 연장선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춤 한창 췄는데 또 춤이야!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드라마가 많더라구요. 전 그 드라마 부분에 끌렸기 때문에 선택했어요.”란다.
“그래도 춤을 워낙 잘 추시니까 춤 부분은 걱정 안 하셨죠?”라고 기자가 조금은 장난스레 묻자, “에이, 아니라니까요~”라고 말하면서, 그는 다른 매체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미 보기도 했던, 하지만 그러기에 정말 진심일, 다음과 같은 얘기를 털어놨다. “연습하는 과정에서부터 부담이 있었죠. 뮤지컬하고 왔다니까 잘 하겠네라고 생각할텐데, 배워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어려웠어요. 그래서 누구한테 말도 못하구...(웃음) 제가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킥복싱 선수가 복싱하는 기분이었어요. 어디서 어디까지 방식은 비슷한데, 그 끝에서 살짝 다른 거 있잖아요. 그럼 원래 하던 방식대로 갈려고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한편으로, 뮤지컬계엔 저보다 정말 멋지게 춤추는 후배들이 많은데,‘뭐야, 뮤지컬 배우가 고작 저 정도밖에 안돼?’ 라는 말로 누를 끼칠까봐 걱정도 됐구요.”.
‘뮤지컬 배우’에서 영화, 드라마로 그 영역을 넓힌 이유가 뭔지 묻기 위해 “박건형씨는 뮤지컬계의 스타잖아요...”라는 식의 서두를 뗐다가 쓴소리를 듣고 말았다. “어휴, 아니라니깐요. 전 그런 소리듣는게 정말 부끄러운데, 전 그냥 뮤지컬 하는, 했던 사람이에요. 뮤지컬을 평정한 스타라는 식의 수식어들은 좀 그래요...전 스타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스타를 꿈꾸지도 않아요.”라는 반박(?)이 바로 쏟아졌던 것.
● 하핫, 초능력자가 꿈!!
그래도, 그에게서‘뮤지컬’에 대한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렸을때부터 꿈이었는지 등등. “전 꿈이 없었어요. 제가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뭘 할 수 있는지도요. 스무살 때 방황하면서 겨우 제가 이거 아니면 길이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어렸을땐 내성적이어서 마음속엔 할 말이 가득한데 입으로 나올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구 그랬어요. 그래서 성격을 바꿔보자 자꾸자꾸 노력했죠”.
그 얘기를 들으니, 떠오른 바가 있어 “아, 그래서 화장품 외판원같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알고있어요.”라고 응수하자,“소극적인 성격을 바꿔보고자 했던 일들이에요. 지금 이렇게 배우가 될 줄 알고, 마치 배우가 되기 위한 경험으로써 했던 건 아니었어요.”라고 조용히 다음 말들을 이어갔다.
“제가 느꼈던 스무살은 풋풋하고 설레고, 대학생으로서의 낭만을 느끼는 식의 시간들이 아니었어요. 가정이나 사회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고, 길거리의 돌멩이같은 느낌이랄까. 이리저리 뒹굴며 살았어요. 하지만 그때 했던 제 머릿속 수만가지 생각들이 지금 저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요. 다른 재수생들처럼 학원에 가서 공부했던 게 아니고, 그렇게 방황하며 지냈던게 지금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박건형은 “저, 중학교 3학년때까지 꿈이 초능력 인간이었어요.”라고 속삭이듯 너무나 조용하게 말했고, (자칭타칭 가는귀 먹은 사오정인지라) 몇 번을 못 알아듣다가 제대로 알아듣고 난뒤, 기자는 그만 까르르 웃고 말았다.
그도 따라 웃다가 “그니까, 그 마음에는요...초능력자는 다 할 수 있잖아요.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는데 있어 작은 꿈틀거림이었다고 생각해요. 전 지금도 그런 면이 많아요. 엉뚱할땐 무지 엉뚱하구 진지할땐 진지하구. 그런 여러 가지 모습들이 저한테 있고, 또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은 앞으로 찾아가야죠”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어떤‘청춘’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사랑은 비를 타고>로, 처음 뮤지컬을 봤고, 연극과에 다니던 대학교 2학년때, 그때 봤던 뮤지컬에 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작품에 도전한다. 그리고 바로 군대로 갔는데, 마지막 기억이 뮤지컬이다보니 작품에서 했던 탭댄스, 노래 등을 혼자 근무서는동안 반복해본다. 제대하고 복학 전, 우연히 대형뮤지컬 크루(crew)로 일하면서, 후에 뮤지컬 배우 오디션도 보게 된다. 이것이 장차 뮤지컬계를 활력으로 이끌게 되는, 멋진 배우 ‘박건형’의 시작이었다.
● “진실하게, 항상 진실하게 사려고 노력해요”
인터뷰 동안, 그는 참 ‘예쁘게’ 웃었다. 여자처럼 웃는다는 표현이 아니라 가식없이 편안하게 웃는 느낌. “자연스러운걸 가장 좋아해요. 형식적으로 꾸미는 건 싫어요. 음, 나를 포장한다든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다보니, 때로는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고, 싸가지 없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죠. 하지만 전 자신있는게 뭐냐면 진실하게, 항상 진실하려고 노력해요.”
그 말속에‘자신감’이 배어있다 싶어 “윤찬이 맡았던 극중 캐릭터같이 승부욕강한 타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저 승부욕 되게 많아요. 뭐 축구, 게임 등등 승부게임 좋아하고 굉장히 열심히 해요. 하지만 그런 방법을 써가면서까지 이기고 싶진 않죠. 이기고 지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게 재밌는 거잖아요. 그런 다음에 이기면 좋은거고, 지더라도 정말 열심히 해서 진거구요. 전 제가 항상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게임을 했을때 상대에게 지면, 그 상대가 결국 최고인 셈이잖아요. 최고한테 졌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죠.”란다.
그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는 면은 그밖에도 많았다. “예를 들어 아침에 양말을 거꾸로 신었는데, 안 좋은 일이 생겼다 그러면, 그 거꾸로 신은 양말은 저한테 징크스같은게 되잖아요. 전 그러면 다음날 일부러 그 일을 해요. 이게 징크스가 아니라는걸 저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런 심리적인 일에 얽매이지 않아요.”라거나 “그냥 편하게, 영화 본대로 저한테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그게 제 발전이 될 수 있거든요. 전 ‘칭찬’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빨리 잊어요. 그리고 쓴 소리는 생각해요. 그렇다고 마음속에 담아두거나 거기에 빠져있지도 않아요. 다음 작품에서 그 부분을 채워나가면 되니까요.”등등.
누구는 박건형을 뮤지컬에서 보고, 그 환상적인 춤과 노래에 ‘뿅갔다’고 하고, 누구는 드라마에서 피아노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고 하고, 이제 박건형은 ‘뮤지컬’안팎을 아우르며 대중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 <댄서의 순정>의 흥행은 그런 부분에서 박건형에게 도움을 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왜 뮤지컬 이외의 연기에 도전했냐구요? 음...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러 와 주기 원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만약 제가 알려지게 되고, 인기를 얻게 되면 뮤지컬 자체에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그는 인터뷰 말미에 기자가 던진 조심스러운 질문에 역시 조심스러운 답변을 전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얘기가 좀더 진전되는 찰나, 다음 스케줄 때문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뷰 도중 박건형은 문근영의 인기를 모르는바 아닌듯,“어휴, 요즘요, 문근영씨 옆에 잘못 있으면 테러 당해요”라는 유머러스한 말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했다.‘스타’가 될 생각은 없다고 그는 말했지만, 누군가 똑같이 “박건형씨 옆에 잘못 있다가 테러 당해요”라고 말할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될지 한 명의 팬의 입장에서, 기분좋게 지켜보고 싶어졌다고. 정말로...
취재: 심수진 기자
사진: 이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