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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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 영화 <지느러미>는 차별과 상실, 그리고 팬데믹이 남긴 불안과 애도의 감각을 SF 로드무비에 담아낸 작품이다. 제목인 '지느러미'는 차별받는 존재의 낙인이자 코로나 시대를 상징하는 표식이며, 떠나간 이를 존엄하게 추모하는 마지막 의식의 의미까지 품고 있다. 박세영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지느러미"라고 말한다. 특정한 메시지를 설파하기보다 팬데믹을 통과한 우리가 그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극장을 나설 때는 그 기억을 조금이나마 흘려보낸 채 희망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개인적 슬픔에서 베를린의 편집실까지, <지느러미> 탄생의 궤적
<지느러미>는 오프닝부터 강렬한 분위기와 과감한 미장센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독창적인 미학과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결합된 이 작품은 '오메가'라 불리며 배척당하는 존재들을 내세워 낯설고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친할머니를 떠나보내며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박세영 감독의 개인적 비극은, 존엄한 매장을 위해 지느러미를 전달하는 로드무비의 출발점이 됐다. 여기에 동시대의 불안과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위해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픽션을 더했고, 이 사적인 슬픔은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인연을 맺은 전고은 감독의 제작 지원과 베를린에서 필립 보베르 프로듀서와 3~4년에 걸쳐 다듬은 긴 후반 작업을 거치며 장편 영화로 완성됐다.
사적인 슬픔과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연결됐나.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친할머니께서 감염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비상사태 속에서 제대로 된 장례 절차도 치르지 못한 채 곧바로 유골함으로 모셔야 했고, 가족 모두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슬픔과 상실감에서 출발해 '존엄하게 묻히기 위해 지느러미를 전달하는 로드무비'를 떠올리게 됐다. 한편 어린 시절 캐나다 토론토에서 생활하며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고, 자연스럽게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정작 아무도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더라. 팬데믹이라는 동시대의 현실을 정면으로 그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픽션이라는 장치를 통해 현실을 더 멀리 밀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을 택했다.
제작의 첫 물꼬를 터준 전고은 감독과의 인연과 합류 비하인드는.
미장센 단편영화제에 단편 <캐시백>을 출품했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전고은 감독님이 작품을 눈여겨봐 주셨다. 영화제가 끝난 뒤 먼저 연락을 주셨고, 함께 브랜드 광고를 연출하며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지느러미> 시나리오를 읽으신 뒤 첫 투자자이자 제작자로 흔쾌히 합류해 주셨다. 3~4년에 걸친 긴 후반 작업 동안에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셨고, "긴 시간을 거치며 영화가 다듬어지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편집의 힘을 깊이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다. 연출자로서의 시도를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신 분이다.
<슬픔의 삼각형> <더 스퀘어> 등 유럽 예술영화를 이끌어온 프로듀서 필립 보베르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또 3~4년간 함께한 작업 과정도 궁금하다.
전작 <다섯 번째 흉추>(2022)로 사라예보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필립 보베르 프로듀서를 만났다. 그 인연으로 이후 3~4년 동안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매주 줌(Zoom)과 상영회를 통해 가편집본을 함께 보며 의견을 나눴다. 한국에서는 늘 속도감 있게 작업해왔는데, 베를린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삶의 리듬을 즐기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영화를 다듬는 유럽식 작업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 <지느러미>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화에 어떤 가르침을 담거나 관객에게 교훈을 주는 방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관객들이 영화 속 칙칙한 날씨와 풍경을 보며 지난 4년의 시간을 떠올리고, 극장을 나설 때만큼은 그 어둠을 털어내고 조금 더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관객들이 유심히 봐주었으면 하는 지점을 꼽는다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지느러미' 자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지느러미라는 사물의 비인간적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가면 훨씬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느러미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며, 끝내 어디에 도착하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보면 좋겠다. 영화 속 지느러미는 결국 코로나 팬데믹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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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염된 얼굴과 고여 있는 물, 디스토피아를 완성한 상징의 언어
화면을 가득 메운 거친 질감과 음향은 관객을 단숨에 <지느러미>의 디스토피아로 끌어들인다. 탁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낯선 풍경과 붉게 물든 색감은 오염과 차별이 일상이 된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소수민족의 역사와 사회적 배제의 구조를 연구하며 탄생한 '오메가'와 '지느러미'는 차별이 남긴 상흔을 상징하는 존재다. 여기에 바다가 아닌 물이 고여 있는 실내 낚시터, 오염된 얼굴의 인간들, 베를린 편집실에서 우연히 마주한 오래된 트롯 음악, 그리고 노스탤지어에 대한 사유까지 더해지며 <지느러미>만의 독특한 디스토피아적 정서를 완성했다.
'오메가'의 외형과 '지느러미'의 비주얼에는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았나.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소수민족이 변두리와 해안가로 밀려나 정착했던 역사를 연구하며 인간 사회가 소수자를 차별하고 변형시키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 속 '오메가'는 괴물이 아니라 꼬리뼈가 조금 튀어나오거나 신체적 특징이 약간 다른 존재일 뿐이다. 2026년을 기준으로 오메가가 등장한 지 약 70년밖에 지나지 않은 진화 초기 단계라는 설정이다. 지느러미 역시 독성 폐기물이 축적되면서 오돌토돌하게 변형된 기형적 흔적으로 표현했다.
꼬질꼬질한 얼굴을 한 인간들의 모습에서 독특한 유머도 느껴졌다. (웃음)
오메가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인간들 역시 막상 보면 모두 꼬질꼬질하고 비위생적인 모습이다.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오메가이고 누가 인간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 시각적 설정을 통해 인간과 오메가, 더 나아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흐리고 싶었다.
영화의 핵심 공간인 '실내 낚시터'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 로케이션 비하인드도 궁금하다.
실내 낚시터는 1990년대 경제개발기 도시 회사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공간이다. 끊임없이 흐르는 바다와 달리 지하에 갇힌 고인 물은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과거를 붙잡고 있는 '죽은 노스탤지어'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 황금소망낚시터는 디스토피아 속 인물들의 정체된 삶과 허무, 애도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대부분 실제 공간을 찾아 촬영했는데, 마음에 드는 분위기의 낚시터를 찾아 여러 곳을 답사했다. 결국 부천의 한 실내 낚시터에서 촬영했는데, 촬영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업종으로 바뀌었다.
당신이 직접 경험한 노스탤지어의 순간도 있었나.
어릴 적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훗날 헤밍웨이가 작품을 썼던 쿠바의 집을 직접 찾아갔는데, 이미 유명 관광지가 되어 있어 소설 속에서 상상했던 정취는 느낄 수 없었다. 성인이 되어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던 집을 다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억 속 풍경과 달리 주변이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때 노스탤지어란 실제 장소가 아니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잔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강렬한 붉은 톤의 색감 역시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보통 색보정은 피부 톤이나 현실감을 살리는 데 집중하지만, 이 영화는 팬데믹 당시의 공포와 답답함, 불안 같은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화면을 뒤덮는 붉은 기운과 도시의 흑백 같은 질감은 모두 그 시기의 감정을 시각화한 결과다. 색보정을 맡은 박찬우 감독님이 3년에 걸쳐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지금의 색감을 완성해주셨다. 또 어두운 공간에서 생기는 디지털 노이즈도 일부러 제거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는 없애는 '결함'을 오히려 질감으로 살려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고자 했다.
실내 낚시터에 흐르는 트롯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사용하게 됐나.
베를린에서 편집 작업을 하던 시기 한국이 무척 그리웠다.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에게 잊힌 옛 트롯과 엔카 가수들의 노래를 접하게 됐다. 지나간 세월과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가사가 한국 특유의 한(恨)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바다가 아닌 고여 있는 물의 공간인 실내 낚시터와도 정서적으로 잘 어울렸다. 디지털화 이전 우리가 공유했던 민중적인 감수성을 영화 안에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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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년생 창작자의 영화론, 끝없는 도전으로 완성한 <지느러미>
실험적인 감각과 대담한 상상력으로 완성한 <지느러미>는 1996년생 박세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품었고, 당시 소설가를 꿈꾸며 영어로 글을 쓰던 경험은 훗날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됐고, 중학생 때 친구들과 카메라를 들며 시작한 창작은 연출자의 길로 이어졌다. 특히 11년 전 배우 고우와 함께 자비를 모아 만들었던 단편 <지느러미>는 긴 시간을 거쳐 동명의 장편으로 다시 태어났다.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를 모색하는 젊은 창작자의 시선은 이제 또 다른 도전을 향하고 있다.
유년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다고 들었다. 이런 경험이 <지느러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쳤나.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연스럽게 남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게 됐다. 당시에는 소설가를 꿈꾸며 영어로 글을 많이 썼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더 이상 영어로 글을 쓰기 어려워졌다. 대신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했고, 글뿐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가 함께하는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됐다. 그렇게 영화가 지금까지 내 작업의 중심이 됐다.
'영화'라는 매체가 당신에게 갖는 의미와 작업에 임하는 태도는.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영화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다. 광고든 뮤직비디오든 어떤 영상 작업이든 맡게 되면 모두 내 영화라는 마음으로 임한다. 11년 전, 대학교 2학년 때 배우 고우와 함께 돈을 모아 만든 첫 단편이 바로 <지느러미>였다. 당시에는 연출이 부족하다고 느껴 언젠가 실력을 더 쌓아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디벨롭을 거쳐 장편으로 완성하게 됐다. 단편의 확장이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영화인 셈이다. (웃음) 영화는 몇 달 동안 글을 쓰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책임질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차기작 계획은.
하나의 이미지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다. 사극도 해보고 싶고, 청춘 멜로와 비극적인 대서사도 만들고 싶다. 현재 준비 중인 세 번째 장편은 도벽이 있는 주인공이 공동체와 사랑, 연대를 찾아 떠나는 도시 모험을 그린 동시대 드라마다. <지느러미>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이 될 것이다.
사진제공. ㈜에무시네마
2026년 7월 2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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