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혐오를 깨는 1도의 변화 <남태령> 김현지 감독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023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교양 작품상을 수상하며 '백상 최고의 이변'으로 전 국민의 가슴을 울렸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공동체의 가치를 조명했던 MBC 경남 소속의 김현지 감독이 이번에는 동시대 시민들의 집단적 경험을 담은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남태령>을 선보인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 내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던 이 작품은 12.3 내란 이후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행진이 가로막히며 우연히 형성된 남태령의 28시간을 기록한 영화다.

<남태령>은 변방의 트위터리안들이 현장과 X(트위터)라는 이중 광장을 넘나들며 만들어간 새로운 연대의 풍경을 담아낸 디지털 네이티브 리얼리티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거창한 구호 대신 전혀 다른 포지션에 서 있던 사람들이 힘이 필요할 순간 기꺼이 손을 잡는 '뜻밖의 연대'와 '느슨한 만남'에 주목한다. "가장 긴 밤을 건너 가장 먼저 아침을 마주한 전혀 낯선 존재들의 우연하고도 눈부신 연대"를 목격하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밝힌 김현지 감독. 서로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이를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며 덤덤하게 수용했던 남태령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 작지만 긴 파동을 던지는 지금, 다가오는 5월 20일 극장 개봉을 앞둔 감독을 만났다.

◆ 현장과 온라인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이중 광장

김현지 감독은 2024년 12월 내란 당시 모니터 뒤에서 밤을 지새우던 무수한 시민 중 한 명이었다. 김 감독은 “그때 당시에는 다들 잠을 못 자지 않았나. 깨어있는 시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잠들지 못하는 시민'이었다”며 “밤새 트위터 타임라인과 유튜브 생중계로 분노와 불안을 달래야 했다. 그때 남태령이라는 공간을 목격했다. 현장과 온라인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이중 광장’의 흐름을 보며 완벽한 서사 구조와 영원한 확장성을 가진 이야기의 탄생이라 직감했다. 그 탄생의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증언하고 기록하고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찰나의 희망이 내 일상에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기획 계기를 밝혔다.

그는 당시 타임라인의 수많은 트윗을 시트로 정리했고, 오직 트위터 DM(다이렉트 메시지)만을 이용해 인터뷰이들에게 기획서를 보내며 출연진을 섭외했다. 화면에 트위터 속성과 개인의 기억, 영상을 적극 활용한 태피스트리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일반인 이용자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감독은 “이미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분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사이버불링의 끔찍함을 잘 아는 청년, 여성, 소수자일수록 두려움이 강했다. 누구보다 용감하게 목소리 내온 분들이 상찬의 무대에 직접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감독은 이들이 다치지 않으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연출적 대안을 마련했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지만 피해자나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얼굴 노출을 원치 않는 분들을 위해 AI로 다람쥐 얼굴을 덧입히거나 마스크 등 소품을 활용했다”며, 특히 뉴스 계정주 ‘에스텔’에 대해서는 “에스텔 님에게는 ‘형사 가제트’의 빌런(의자에 파묻혀 고양이를 쓰다듬는 뒷모습)을 레퍼런스로 보여드리기도 했다”고 유쾌하면서도 사려 깊었던 비하인드를 전했다.

◆ 작업복과 응원봉의 공존

지역 방송사 PD인 김현지 감독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고향인 경남 진주와 거제에서 출발한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먼저 향했다. 김 감독은 “진주에서 트랙터가 출발할 때만 해도 경찰 호위를 받으며 멋지게 인터뷰도 하고 떠났는데 서울에 들어가보지도 못한다니, ‘아, 농부는 서울을 못 가?’ 배알이 틀리고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며 “전기도, 천막도 없이 바닷바람 맞으며 단식투쟁 하는 거통고 조선하청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지역 언론 종사자로서 마음의 빚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전했다.

그렇게 남태령에 고립된 농민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든 청년들이 섞이면서 세상에 없던 풍경이 만들어졌다. 광장에는 농민, 노동자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들었고, 민중가요와 케이팝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투박한 작업복과 화려한 아이돌 응원봉, 서로 다른 깃발들이 한 공간에 놓였다.

김 감독이 포착한 남태령의 본질은 서로의 다름을 가볍게 용인하는 감각이었다. 영화 속에서 논바이너리 깃발을 든 청년 용주 씨에게 한 농민이 “딸들, 수고했어”라고 인사를 건네자 용주 씨가 “저희는 사실 딸이 아니에요”라고 답했고, 경상도 농민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김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그날 남태령을 가득 채웠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대의 공기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한 번의 아름다운 연결감이 용주 님에게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그날, 이 경상도 남성들이 남태령과 말벌시민들을 통해 무언가 분명 달라졌고 상대를 웃게 하고자 노력한다는 걸 발견하며 기뻤다”고 덧붙였다.

◆ 기성 미디어의 한계, 알고리즘을 깨는 아카이브

레거시 미디어(기성 언론)의 종사자로서 김현지 감독이 맞닥뜨린 현장의 현실은 깊은 고민을 자아냈다. 기성 뉴스가 현장의 역동성을 채 담아내지 못하는 사이, 시민들은 트위터와 개인 유튜버의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직접 연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이 채우지 못했던 공백을 바라보며 김 감독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개인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 역시 날카롭게 짚어냈다. 알고리즘이 고도화될수록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수용하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현상이 심화되어 사회적 단절과 분열을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김 감독은 다른 계정들이나 타임라인을 접할 때의 낯섦을 언급하며, 갈수록 서로 다른 세상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과 생각의 거리를 인지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큐멘터리 <남태령>은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SNS 중계를 넘어, 서로 다른 타임라인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던 트윗과 영상, 개인의 기억들을 스크린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거대한 ‘대안적 아카이브’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남태령의 기적은 그날의 28시간으로 휘발되지 않고, 집회 이후 자발적으로 결성된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를 통해 온·오프라인 기록 공간으로 지속되고 있다. 김 감독은 온라인 타임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느슨한 연결을 포착하며 아카이브의 지속성을 증명한다.

◆ 배제의 감각이 이룬 연대

'유난히 2030 여성이 연대에 더욱더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현지 감독은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본질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본질은 생물학적 성별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소외당해 본 '배제의 경험'에 있다고 짚었다. 주류 사회나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서로의 처지를 알아채고 광장으로 달려온 것이라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연대의 흐름이 일상으로 돌아간 뒤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김현지 감독 역시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태령을 완전무결한 신화로 박제하기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지속해야 할 '태도'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김 감독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흠결을 가진 보통 사람이기에, 서로의 구질구질함을 받아들이며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싸우더라도 나중에 화해할 수 있도록 회복 가능한 방식을 남겨두어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번에 제거하려 해선 안 된다. 농부는 내년 봄을 위해 씨종자는 꼭 지키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현지 감독은 <남태령>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다. 김 감독은 영화의 핵심 정서이자 우리가 일상에서 가져야 할 태도로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를 꼽았다. “관객분들이 이 한마디만 익혀 가셔도 좋겠다”며, “남태령 이후에도 우리의 일상은 똑같겠지만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미세하게 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무수한 1°의 변화가 얼마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한다”라며, “나 스스로도 ‘내 마음속 관용이 미래의 못난 나를 살릴 것’이라는 전혀 멋지진 않지만 쓸모있는 각오를 다져본다”고 웃었다.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