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2013년, 술김에 던진 지원서 한 장은 그를 <마스터셰프 코리아 2> 우승이라는 드라마틱한 운명으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2026년 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의 '히든 백수저'로 돌아온 최강록은 또 한 번 서바이벌의 정점에 서며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특히 이번 파이널 무대는 그가 오랜 시간 짊어왔던 '조림 전문 셰프'라는 세간의 기대를 스스로 깨뜨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기교 섞인 조림 대신 "사실은 잘하는 척하며 살아왔다"는 담백한 자기 고백과 함께, 요리사의 고된 노동이 집약된 '깨두부' 국물 요리와 투박한 '빨간 뚜껑 소주' 한 잔을 차려냈다. 화려한 타이틀보다 요리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선택한 그의 승부수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우승의 환호 뒤에서도 여전히 요리가 무섭고 떨린다는 그를 만나, 가면 뒤에 숨겨두었던 진짜 요리 이야기를 들었다.
◆ 장사의 수단에서 본고장의 기록으로, 거꾸로 걸어온 요리의 길
최강록의 요리 여정은 뜻밖에 지극히 현실적인 지점에서 출발했다. 요리를 장사의 수단으로 먼저 선택한 후, 그 필요에 의해 뒤늦게 배움에 뛰어든 '거꾸로 된 행보'였기 때문이다. “기왕 일본 요리를 시작했으니, 본고장에서 배웠다는 기록을 남겨야 제 안의 콤플렉스가 없어질 것 같았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결심한 유학은 단순한 학업을 넘어 스스로에 대한 증명이었고, 그 치열한 기록은 그를 지탱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그 길의 끝에서 마주한 가장 큰 보람은 거창한 성취감이 아닌 손님들의 투박한 목소리에 있었다. “맛있게 드시고 ‘진짜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요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우승 역시 그에게는 향후 10년 정도는 더 힘내서 살아가야 할 소박하지만, 단단한 동기를 부여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가족들에게도 우승 사실을 숨겼다는 그는, 방송 후 무뚝뚝한 딸아이가 슬쩍 툭 치며 아는 체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다만 잦은 촬영과 외박으로 배우자에게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미리 실토할 수밖에 없었던 비하인드도 덧붙였다.
|
◆ 깨두부는 게을러지지 말자는 다짐, 가면 뒤에 숨겨둔 노동의 가치
그는 자신의 요리 인생을 '척하며 살아온 세월'이라 말한다. <마스터셰프> 이후 씌워진 '조림 전문가'라는 프레임은 그에게 일종의 가면과도 같았다. 이번 파이널 미션에서 조림이 아닌 깨두부를 꺼내 든 이유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깨두부는 팔이 아프고 힘에 부쳐서 나이가 들면 점점 안 하게 되는 요리거든요. 예전엔 거뜬했는데 이제는 버거워진 이 음식을 통해, 다시 한번 게을러지지 말자는 다짐을 담아 심사를 받고 싶었습니다.”
최강록은 누군가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항상 "시간과 귀찮음이 만들어낸 예술"이라고 답하곤 한다. 스스로는 "조금 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이라며 짐짓 너스레를 떨지만, 이는 다이내믹한 중식의 불꽃을 부러워하면서도 묵묵히 정적인 물의 요리인 일식, 그중에서도 조림에 천착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안성재 심사위원이 남긴 ‘저에게는 언제나 영원한 조림핑이십니다’라는 칭찬은 그에게 무엇보다 큰 울림으로 남았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좋더라고요.” 고집스러운 정성을 알아봐 준 그 한마디는 훈장처럼 그의 가슴에 새겨졌다. “마셰코 때의 깨두부가 비교적 힘이 덜 드는 디저트였다면, 이번 깨두부는 체력과 창의력이 떨어진 중년의 요리사가 자기 자신에게 ‘조금만 더 힘내라’고 건네는 서글프지만 따뜻한 위로였습니다.”
◆ 히든 백수저의 중압감, 여전히 쫄리고 무서운 셰프의 마음
우승을 거머쥐었음에도 최강록은 여전히 “요리가 쫄리고 무섭다”고 고백한다. 특히 이번 시즌 '히든 백수저'라는 거창한 연출로 다시 무대에 섰을 때의 중압감은 남달랐다. “이런 설정인 줄 알았다면 재도전을 고민했을 거예요. 막상 그 높은 자리에 세워지니 부담감이 너무 커서 차라리 빨리 내려가고 싶을 정도였죠.” 하지만 도망치지 않은 건 전 시즌 참가자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미 시즌 1에 나왔던 사람이 또 나왔는데, 적어도 많이 오른 다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긴장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지난 시간 쌓아온 혹독한(?) 수련 덕분이다. 시즌 1 종료 후 출연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는 그에게 또 다른 의미의 성장의 장이었다. “냉부는 굉장한 수련의 장이었어요(웃음). 15분이라는 압박 속에서 패배도 경험해봐야 했거든요. 그 과정을 거치며 맷집이 좀 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심사대 앞에서의 떨림은 좀체 적응되지 않는다. 팀전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1층에서 함께 요리하는 줄 알고 선재 스님을 한참 찾았는데 알고 보니 2층에 계셨다”는 일화를 전하며, 베테랑임에도 요리 앞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긴장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
◆ 오이짠지가 주는 위로, 언젠가 만날 국수 한 그릇
그의 요리 인생 점수는 우승 전 52%에서 딱 1% 오른 53%다. 숫자상으로는 단 1%의 전진이지만, 그 안에는 가면을 벗어던진 한 요리사의 치열한 고백이 담겨 있다. 현재 그는 따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화제가 된 그 '우승 음식'을 대중이 직접 맛볼 기회는 없을까. 아쉽게도 당분간은 최강록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듯하다. "시즌 3는 식당이 없어서 못 나갈 것 같고, 새로운 식당 오픈도 노년의 계획으로 미뤄뒀어요. 무엇보다 이번 우승 음식처럼 '나를 위한 요리'는 그저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 귀한 기억을 굳이 다시 꺼내 해치고 싶지 않거든요." 우승의 정점에서 내놓은 결과물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갈무리하려는, 그답게 담백한 고집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토록 치열한 서바이벌의 기억 뒤에서 정작 그가 애정하는 음식은 무엇일지. "저는 그냥 흰쌀밥에 오이짠지 먹는 걸 좋아해요." 쌀의 은은한 단맛과 오이의 쨍한 짠맛이 주는 조화.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낸 그 소박한 한 끼야말로 최강록이 평생 지키고 싶은 요리의 본질인 셈이다. 그는 이번에 받은 우승 상금 3억 원을 훗날 노년에 조용히 운영할 국숫집을 위한 밑거름으로 소중히 남겨둘 생각이다. 당분간 그의 요리를 직접 만날 수는 없겠지만, 시청자들은 언젠가 그가 차려낼 소박한 국수 한 그릇, 그리고 그 안에 담길 53% 이상의 진심을 맛볼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6년 2월 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