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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음악의 거장’ 조성우 영화음악 작곡가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조성우 영화음악 작곡가는 한국 영화음악의 큰 족적이자 산증인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플란다스의 개><봄날은 간다><만추> 그리고 최근작 <인간실격>과 <보통의 가족>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수십 편의 음악 작곡을 해왔다. 선곡 중심의 국내 영화 음악 시장에 오리지널 스코어 음악의 역사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웅장하고 품격 있는 클래식곡부터 서정적인 선율, 오케스트라까지 영화에 있어서 음악의 역할을 누구보다 적확히 파악하여 영상을 청각으로 해석하여 관객에게 전달해 왔다.

▲<보통의 가족>


# <보통의 가족> (2024)

성공과 부에 집착하는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과 인류애를 지닌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이 다른 두 형제가 있다. 이들 형제 앞에 난제가 떨어진다. 바로 ‘자녀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 다. 자식의 죄 앞에서 형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 <보통의 가족> 이야기다.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성공적인 로컬라이징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인물 간에 오가는 팽팽한 감정선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쥐락펴락 분위기를 고조했다. 이러한 긴장감의 지분에 큰 몫을 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조성우 영화음악 작곡가가 작곡하고 설계한 음악이다.

“영화마다 음악의 역할이 다른데, 이번 <보통의 가족>은 그 역할이 좀 큽니다” 조 작곡가는 허진호 감독의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허 감독과는 데뷔작부터 함께 작업해 온 시간이 길다. 대본만 봐도 음악이 떠오른다고. “이번 대본은 음악의 역할이 명쾌했어요. 음악이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설명해줘야 했죠. 작곡은 난도가 있었지만, 해석은 어렵지 않았어요.”

어떤 식으로 캐릭터에 다가갔을까.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영화의 주제를 음악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는 조 작곡가이다. 엔딩크레딧과 중반부 몽타주씬에 나오는 테마에 이런 생각을 심었다는 것.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보면 인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본능적인 디오니소스 유형과 이성적인 아폴론 유형이 그것이다. 재완과 재규, 두 형제를 봤을 때 재완은 사냥을 좋아하고 직설적이고 욕망에 충실한 디오니소스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막판에서는 위선적이지 않은 인간 유형이라면, 재규는 아폴론적 인간 유형이라 파악했다.

음악을 캐릭터 유형에 맞춰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아폴론적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이라면, 재완이 등장할 때는 굉장히 강렬한 비트로 본능적이고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음악으로 갔어요.” 이 하나의 곡을 베리에이션하여 장면장면 마다 삽입했다.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는데요.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그리고 슬픔 이렇게 ABC 세 파트로 나누어 음악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되게끔 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조성우 작곡가는 연세대학교 철학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허진호 감독 덕분에 많은 대본을 읽고, 철학과 교수를 하면서 인문학 서적을 수십 년간 접하다 보니, 대본만 봐도 작가의 생각이 다 읽힌다는 그이다.

1963년생인 그의 첫 작품은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1995)다. 1998~99년 사이에 무려 4편의 영화 음악을 작업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김유진 감독의 <약속>, 이재용 감독의 <정사> 그리고 김태용 감독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다.

이 중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성우-허진호 명품 파트너십의 출발이자 한국 멜로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허진호는 학교 때부터 좋은 사람이었어요. <고철을 위하여>라는 단편을 찍었는데 이 음악도 제가 담당했죠. 당시 밴드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거든요.” 이 단편 영화의 반응이 꽤 좋아서 다음 영화도 함께했고,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8월의 크리스마스>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멜로 영화지만, 그 이면에는 철학적인 내용이 녹아 있어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시간이란, 다시 말해 한정된 시간을 가진 사람의 한계를 사랑을 통해 보여준 거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정원’(한석규)에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보통은 자기 죽음의 한계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다림’(심은하)이라는 사랑을 통해 죽음의 한계를 명쾌하게 보여줬다는 것. “인간의 유한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살고 싶어 하는 정원’의 사랑을 통해서 그 유한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음악도 이런 생각의 연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독서광이에요. 대본을 쓰는 걸 보고 천재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죠.” 당대의 철학자인 하이데거가 장황하게 쓴 철학책을 영화 한 편을 통해 표현했다는 허진호 감독이다. “음악하는 사람이 어떤 영화를 만난다는 건 귀한 인연이에요.” <8월의 크리스마스>를 귀한 인연으로 꼽는 조 작곡가이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그의 영화음악 작곡 인생에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리지널 스코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작품 중 하나로, 한국 영화음악의 터닝 포인트라 할 만하다.

“그 당시만 해도 선곡된 음악을 주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배경 음악 자체를 하나의 음악적인,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여보고자 작심하고 들어갔죠.” 기존 곡을 사용하지 않고 음악 자체의 퀄리티를 높였다. “영화를 떠나서 음악만으로 즐길, 감상할 가치가 있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받은 보수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투입했다며 웃는다. 김태용 감독과는 지금도 막역한 사이라고.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2001)

“엔니오 모리코네 하면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잖아요. 그 음악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예술품이자 명곡이죠. 제게 이와 가장 유사한 작품은 <봄날은 간다>가 아닌가 해요.”

“라면 먹고 갈래?”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대사로 유명한 이 영화는 메인 테마곡인 ‘One Fine Spring Day’을 비롯해 조 작곡가의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의 감동과 서정성에 날개를 달아준 음악이다. 2021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최초로 LP로 제작, 2LP로 디지털 리마스터링된 버전의 음반이 출시된 바 있다.

“<봄날은 간다>를 작업하면서도 <8월의 크리스마스> 때처럼 허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영화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예요. 흘러가는 소리를 채집하는 ‘상우’(유지태)는 세상이 변해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죠. 사랑도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에 저항하는 마음이 있고, 그 변화에 자신이 수긍하고 순응할 때 비로소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마지막 보리밭에서 상우의 미소가 이 영화의 포인트가 아닌가 해요.” 할머니도 떠나고 사랑도 떠나고 상우는 변화를 받아들이며 그렇게 성숙해져 간다.

# 영상을 청각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영화음악이다

“외국에서는 영화음악 감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영화음악 작곡가라고 하죠. 국내에서도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편으론 최근에는 음악을 하나의 사운드라고 생각하고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청각인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적인 능력이나 스킬이 발달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 작곡가가 생각하는 영화음악은 “시각적인 영상을 청각적으로 해석하여 표현하는 것” 그의 영화음악 철학이다.

평소 피아노를 베이스로 작곡하고 지금도 피아노 연습을 놓지 않는 조 작곡가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공연을 했고, 올해는 3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 영화음악은 인기가 없는 시장이라고 아쉬움을 표하는 그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힘을 내어 일본, 미국 공연 못지않게 대규모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악기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작곡가. 지금도 연습 삼매경이다.

2025년 2월 1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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