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단정한 교복에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윤가민’(황민현),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토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필기하는 누가 봐도 모범생 전교 1등 같은 면모인데… 반전은 뒤에서 2등! 비록 공부 달란트는 제로지만, 공부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타고난 체력 만땅의 소유자다. 전국구 꼴통 학교에서 스터디그룹을 결성해서 오직 공부로 대학 진학하겠다는 목표하에 움직이는 가민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스터디 그룹>이 코믹 액션 학원물로 유쾌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기적>으로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선사했던 이장훈 감독이 인기 웹툰 ‘스터디그룹’을 원작으로 재탄생시킨 시리즈다. 가민은 좌절하지 않고 주변을 성장시키는 캐릭터라고 소개하는 이장훈 감독을 만났다. 심심함을 달래고 현실의 힘듦을 잠시 잊게 해줄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데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전작인 영화 <기적>이 끝난 후 제안받았다. 대본이 나오기 전이라 원작부터 먼저 봤는데 ‘너무 재밌네’ 감탄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었다. 마침, 심플한 액션물을 하고 싶던 차라 내 니즈와도 맞았다. 무엇보다 명쾌해서 좋았다. 평소 어설프게 가르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 작품은 선호하지 않는다. 보통 학원물이라면 메시지나 의미 부여가 있기 마련인데 이런 부분이 없더라. 매력적인 캐릭터가 펼치는 통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가 평소 내 지향점과 꼭 맞았다. 개인적으로 의미와 재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재미’ 파거든.
공부를 너무 잘하고 싶지만, 공부 재능은 제로인 ‘윤가민’ 캐릭터는 그 자체로 독보적인데, 그는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할까. (웃음)
누가 봐도 전교 1등의 회장상인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가민의 매력이다. 그는 모든 이가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친구다. 시청자가 보다 보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끔 하는 데 이는 주인공 캐릭터로서 큰 장점이자 무기가 아닌가 한다. 공부를 왜 못하는지는… 만약 공부를 조금이라도 잘했다면 가민은 가민이 아니지 않을까! 오로지 공부를 잘하기 위해 체력 단련용으로 한 운동으로 찐 고수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가민이, 공부에 집착하는 나름의 이유는 나중에 드러난다. 소신이 매우 뚜렷한 친구다.
학원물의 주인공으로서 가민 캐릭터의 차별점 중 하나는 그는 성장캐는 아니라는 점이다. 잘 보면 이 친구는 거의 성장을 하지 않고 그 대신 주변 인물들을 성장시킨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민답다고 할지. (웃음)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윤가민 역에 황민현 배우가 정말 착 달라붙었던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지.
제작사의 추천이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눈빛이나 이런 부분이 그냥 ‘가민’ 자체더라. 은은하게 도는 광기가 심상치 않은데 말투와 행동은 정말 해맑았다. 같이 가민을 만들어 갈 수 있겠더라. 민현 씨 입장에서는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 ‘이 친구한테도 아주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가 되겠구나’ 싶었다. 과연 하다 보니 놀라운 부분이 많더라.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났고, 그 특징을 캐치해서 구현하는 센스가 남달랐다. (나와) 나이차가 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너무 잘 되었던 기억이 난다.
|
가민의 ‘스터디그룹’ 1호 회원인 ‘세현’ 역의 이종현 배우도 시선을 사로잡더라. 특히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웃음)
세현은 가민과 함께 1화를 끌고 가고 시청자로 하여금 극에 쑥 들어오도록 이끄는 인물이라 가민과의 케미가 중요했다. 가민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인 캐릭터라면 세현은 그보다는 땅에 발을 붙인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이다. 가민에게 팩폭(팩트폭력)하고 쌀쌀맞아 보이지만 츤데레인 친구라 이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오디션을 통해 많은 후보를 만났는데 종현을 보고 찾았구나 싶었다.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끌리는 매력이 있는 친구로 내가 그리던 세현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 외 키나 외모 등 그림적으로도 민현과 잘 붙겠더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세현을 알아본 가민의 안목이 탁월한데… 공부 빼고는 다 잘하는 친구가 아닌가 싶다. (웃음)
가민의 남들과 다른 능력 중 하나라고 하겠다. 공부할 눈빛을 알아보는 능력 말이다. 앞으로 계속 나오겠지만, 이는 한 번도 틀리지 않는다. 또 굉장히 심플하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너무 단순하고 명확하고 명쾌하게 해답을 준다. (웃음) 잘 보면 가민은 울음의 끝이 굉장히 짧은 친구다. 무슨 말이냐면, 고난을 겪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좌절의 시간이 짧다. 힘들어하다 가도 바로 해결책을 찾아서 일어나는 캐릭터라 원작의 이런 부분을 잘 살리고자 했다. 심플하게 오래 절망하지 않는 것, 나였으면 혹은 내 옆 친구였으면 하고 한 번쯤 닮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한다.
어린 가민들도 너무 귀여워서, 초반 극에 흐뭇한 미소를 더한다.
민현 배우를 캐스팅하고 초딩과 중딩역의 가민을 물색했는데 운이 좋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어린이 배우를 찾을 수 있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공부하고 싶다며 학원 보내달라고 하는 어린 가민이 등장하는 씬이 몇 장면 없지만, 그때마다 유쾌했으면 했거든. 나중에 ‘스터디그룹’ 멤버들의 아역들도 나오는데 그 친구들 모두 현재의 모습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대부분 오디션을 통해서 뽑았는데 한 명 한 명 캐스팅할 때마다 마치 보석을 찾듯이 기쁘고 재미있었다.
웹툰의 만화적인 문법을 영상으로 옮기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만화적 상황에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보니 실사화의 톤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캐릭터는 만화적이되 이들을 연기하는 톤은 현실적으로 대비되게 가져갔던 것 같다. 그 외는 원작이 설정 자체로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의 여러 부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원작을 살리는 걸 최우선 목표로 해서, 시즌1에 해당하는 분량이 너무 많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10부작 안에 녹여 내려 했다. 일부 캐릭터나 에피소드 등이 생략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와 방향성은 그대로 가져갔다.
학교폭력 묘사와 그 수위 조정에도 고민이 많았겠다. 자칫하면 폭력 미화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폭력 미화와 일진 미화는 대본 단계부터 조심스럽고 제일 많이 신경 쓴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학원물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학생들 간의 정치 지형과 폭력과 괴롭힘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다. 그런데 원작의 폭력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라. 그래서 이에 맞춰 비현실이고 판타지같이 설정해서 한 발 떨어져서 관전하는 느낌으로 갔다. ‘이건 만화야, 현실이 아니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할지. 다만 빌런 설정을 위해서는 폭력씬이 불가피하니까, 이때는 물리적인 분량을 줄이고 강도를 높인 후 빠른 시간 안에 통쾌하게 해소하는 방식으로 갔다. 또 빌런에 약간의 코믹함을 가미했다. 개그캐릭터도 있고, 이들이 굉장히 진지하고 현실적인 악인이라기보다 만화적 인물이기에 약간은 어설프지만, 굉장히 센 캐릭터의 느낌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민의 범생이적인 외양과 더불어 그가 구사하는 화려한 액션은 <스터디 그룹>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아이돌 출신으로 댄스 경력이 많아서 그런지 액션을 굉장히 빨리 습득하더라. 또 액션하는 선이 예뻐서 똑같은 액션을 해도 참 아름답게 나와서 놀라웠다. 물론 화려한 동작을 위해서 고강도 발 찢기를 하고 무술 감독으로부터 빡센 트레이닝을 받는 등 연습의 과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원체 열성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더라. 가민의 경우 매화 굵직하고 컨셉이 매번 다른 액션 씬이 있어서 이에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했다. 불에 붙은 가방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는 장면을 비롯해 거의 모든 씬을 대역 없이 소화해 냈었다. 배우들 모두 각오하고 들어온 터라 힘들면서도 재미있어했다. 역시 젊음이 좋더라. (웃음) 민현은 배우로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친구라 이번 가민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군 제대 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작업하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서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이 기대돼서, 함께 그 새로움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다.
액션 연출 방향과 레퍼런스가 있다면.
가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 극의 제일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고, 액션 미술 음악 등을 활용해 그 유니크함을 살리려 했다. 레퍼런스를 꼽는다면 영화 <킥 애스>(2010)다. 이 작품을 놓고 액션 미술 음악 편집 리듬을 잡아나갔다. 일본 학원물이 많지만, 특유의 어두움이 있어서 그보다는 화사하고 밝게, 색이 풍부하고 채도를 높고 또 액션도 스타일리시하게 방향을 정했다. 다만 <킥 애스>는 19금으로 그 액션이 굉장히 잔인한데 우린 그렇지 않다. 잔인한 액션은 전혀 없고, 타격감에 중점을 두었다.
처음으로 액션 연출을 해보니 어떤가.
평소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연출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원 없이 다 했던 것 같다. 무술감독님이 액션 디자인을 너무 잘 해주었고, 개인적으로도 합이 정말 잘 맞았다. 또 와이어나 CG 등이 많이 활용된 과장된 액션을 하면서 큰 경험을 얻었고 재미도 있었다.
|
오프닝과 엔딩의 힙합 음악, 아기자기한 편집 등 드라마 외적으로도 가독성이 좋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음악은 개인적인 사심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다. (웃음) 영화할 때도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에 힙합을 삽입하고 싶었으나 작품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못 했었거든. 이번에는 처음과 끝을 아예 힙합으로 정해 놓고, 그 중간에 삽입되는 음악의 장르를 변주했다. 계속 힙합만 들으면 지루해질 수 있으니, 음악 감독에게 씬에 어울리는 음악을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넣어 보자고 했었다. 그 결과 힙합, 밴드, 락, 스트릿 등의 음악을 삽입했다. 중구난방의 느낌일 수 있으나 이 이를 컨셉화해 반영시켰다. 편집은 리듬감이 중요했고 무엇보다 빠르게 가려 했다. 개인적으로 지루한 흐름을 못 보는 편이라. (웃음) 또 예고편만 봐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색감을 예쁘게, 여러 색을 쓰는 방향으로 컨셉을 정했다. CG도 최대한 촬영하여 귀엽고 따뜻한 방향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시즌2를 염두에 둔 엔딩은 지양했다. <스터디그룹>을 연출하면서 첫 번째 목표가 제대로 완결성을 내는 것이었고, 후속 시즌은 이번의 흥행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터라 설레발을 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작에 시즌2 재료는 이미 있으니, 당장에 충실하자 했다.
시리즈는 처음이다. 다음 화 시청을 유도하도록 어떻게 끊어갈지, 매화 엔딩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또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매화 엔딩은 대본 단계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엔딩부터 잡고 들어간 에피소드도 있었고, 또 웹툰의 좋은 엔딩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새로운 장르를 해보고 싶다. 데뷔 때부터 준비한 장르는 스릴러였지만, 로맨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하게 됐었다. 스릴러를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있다. 이번 <스터디그룹>을 하고 나니 액션 장르도 재미있어서, 액션 멜로 스릴을 잘 섞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중요한 건 이야기지 장르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스터디그룹> 반응이 좋다. 시청자들께 추천하는 관람 포인트는.
<스터디그룹>에 끌렸던 이유가 무언가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메시지를 주는 이야기가 아니고 말 그대로 재미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심심함과 현실의 힘듦을 해소할 엔터테인먼트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작품이라 좋았다. 아무런 편견 없이 마음을 열고 캐릭터를 보고 즐긴다면 어느 순간 ‘어 벌써 끝났어?’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고된 현실에서 조금의 힐링을 받고 또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실 거다. (웃음)
사진제공. 티빙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