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지금부터 주목!” 이 주문과 함께 엄마 ‘영수’(배두나)의 무시무시한 브레인해킹이 시작된다! 쿠팡플레이 <가족계획> 이야기다. 이 시리즈는 엄마를 비롯해 할아버지(백윤식), 아빠(류승범) 그리고 쌍둥이 남매(로몬, 이수현)까지 개성 강한 구성원이 모여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액션 호러·스릴러 블랙 코미디. 어딘가 허당미 가득한 이 가족의 중추인 엄마로 분한 배두나를 만났다. 피해자가 느낀 고통을 그대로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엄마의 응징 방식, 코믹한 분위기와 색다른 능력들,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이라 매력을 느꼈다는 배두나다. 관람 포인트로 “일단 봐달라”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이 작품의 어느 면에 끌렸는지.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어서였다. (웃음) 당시 들어온 시나리오가 좀 슬프고 디프레스되는 작품이 많았는데, <가족계획>은 흥미를 자극하더라. 무언가 통쾌하고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가 좋았다. 촬영 시 감독님 별명이 ‘피 많이’ 었을 정도로 피가 넘쳐나긴 했지만, 피와 B급 웃음의 콜라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만약 피가 많이 없었다면 그냥 씁쓸한 블랙 코미디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피 많이’가 강렬하게 몰아 부치면서, 지금 같은 호러도 스릴러도 아닌 뉘앙스를 형성하는 데 주효했다고 본다.
‘영수’를 비롯해 범상치 않은 가족 구성원이다. 누가 제일 블랙코미디적인 인물이라 생각했는지.
누구 하나 꼽을 것 없이 <가족계획>에 나오는 대부분의 캐릭터가 범상치 않은 웃음, 미소를 안기는 것 같다. 우리 가족도 정상적인 사람은 없지 않나. 언뜻 보면 되게 평범해 보이는데 다들 결점이랄지 결핍이 있는 인물이다. 영수를 예로 들면 브레인해킹 말고는 아무것도 잘 못 한다. 매번 앞치마를 매고 계속 주방 앞에 서있었는데 결국 음식으로 내놓는 건 콘푸로스트(시리얼)인 식이다. 촬영하면서도 ‘지훈’(로몬), ‘지우’(이수현)가 이 부분을 놀리곤 했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가오리파 두목 유승목 선배, 공인 중개사인 김국희 씨 등 웃긴 분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수는 캐릭터상, 감정을 못 느끼는 인물 아닌가. 모든 것에 무관심, 무감정하지만 쌍둥이에게만은 진심인 엄마인데 연기 톤앤 매너를 어떻게 잡아나갔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라 말 그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느끼지 않으면 되는데, 실제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라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캐릭터의 정서에 이입해서 연기해왔는데 하루아침에 기술적으로만 (연기)할 수) 없는 노릇이라 나름대로 빌드업을 해 나갔었다. 작가님한테 인물의 전사에 대해 물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설정을 더해 나갔다. 예를 들면 브레인해킹할 때 눈물이 나오는 설정은 나중에 추가한 부분이다. 평소에 티어스틱이 효과가 없어서 매번 생으로 울어야 해서 고생 좀 했다. (웃음) 그리고 영수는 감정이 없다기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훈련받은 거로 생각했다.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특교대 안에서 고문을 수행하는 등 사람을 괴롭히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감정이 소거된 인물로 접근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건, 아마도 (아이들은) 자신이 투영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역할은 처음이지 않나.
정말 그렇다. 처음에는 ‘우리 자식들이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리딩할 때도 ‘우리 아이들 너무 잘하고 귀엽다’ 했는데 막상 슛 들어가니… ‘엄마!’ 하고 부르는데 너무 깜짝 놀란 거다. 다들 연기인 줄 알고 지나갔지만, 스스로는 좀 찔렸었다. (웃음) 그동안은 많아 해봐야 7살 꼬맹이의 엄마였거든.
엄마 바라기 아들 지훈과 반항적인 딸 지우 역의 로몬, 이수현 배우는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고 하던데.
반항적인 지우를 보고 ‘다리 몽둥이를 확!’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하, 한편으로는 영수는 지우의 거침없는 행동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짠한 마음도 들었다. 수현은 좀 놀라웠다. 이번이 처음 연기하는 건 데도 전혀 떨거나 하질 않더라. 내가 <학교>로 1999년에 데뷔했는데 당시에 너무 떨려서 개미 목소리를 냈던 것 같거든. 그런 강심장이 부럽기도 하더라. 또 모델 출신이라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해서 그런지 몸을 아주 잘 쓰는 다재다능한 친구였다. 로몬은 연기도 잘하고 귀엽고, 애교가 넘치고, 극 중 지훈이 항상 짓는 은은한 미소가 있는데, 현장에서도 항상 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극본을 집필한 김정민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특별한 디렉팅이 있었는지.
디렉팅보다 많은 부분 의지했었다. 막힐 때마다 SOS를 쳤던 것 같다. 영수의 전사에 대해 대략이라도 파악해야 해서 작가님께 많이 물어봤었다. 그러면 원래부터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즉석에서 지은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영수의 엄마 등에 대해서 썰을 풀어주면서 극에 몰입하도록 도와주셨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세계관을 만든 분이라, 감정선 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브레인해킹이 결국 최면을 거는 건데, 그 대상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 다같이 최면에 걸리는 건가.
맞다, 영수가 ‘지금부터 주목!’ 하면,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무조건 걸리는 것으로 범위를 따로 정할 수는 없다. 피해자가 느꼈던 고통을 그대로 심어준다는 방식이 신선한 설정으로 느껴졌었다. 눈눈이이 느낌의 응징이랄지.
1화에서 허벅지를 도려내는 장면은 좀 세게 다가왔다. 다행히 무드가 블랙 코미디 같아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다면…
점점 더 세진다! (웃음) 사실 후반부에는 이렇게까지 가나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쭈욱 지켜봐 달라.
류승범 배우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는데 상대역인 아빠 ‘철희’ 역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어땠나.
매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꼭 한 번 같이 연기해보고 싶었는데 승범 씨가 매우 색깔 있는 배우다 보니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번 <가족계획>은 딱 봐도 블록버스터급은 아닌데 출연한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그 양반이 살린 부분도 많고 정말 좋은 배우다.
류승범 배우 하면 예전에 맡았던 캐릭터의 영향 때문인지 껄렁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는데 실제로는 어떻던가. 극 중에서는 영수라면 껌벅 죽는 캐릭터인데.
너무나 맑은 영혼의 매너남이다. 매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데다 심지어 매너도 정말 좋아서 현장 분위기를 맑고 밝게 만들었다. 그 양반만 있으면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현장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웃음) 힘든 씬을 찍거나 하는 경우에는 쓱 와서 나쁜 에너지를 날리자며 인센스 스틱을 피우는 등 되게 귀여운 면모도 많다. 가족을 꾸리면서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영수와 철희의 전사도 궁금하더라.
앞서도 언뜻언뜻 나오지만, 6회(마지막화)에 가면 좀 더 자세히 드러난다. 15~16살 무렵 특교대를 탈출했을 때는 서로 가족 같은 존재였다면, 이제는 한 팀 같은 관계라고 할까. 엄마와 아빠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다. 6회를 보면 저런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짜 좋은 남편임을 알게 될 거다.
영수는 능력은 특출나도 겉모습은 평범한데 오히려 분장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메이크업을 제일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작품이다. 평소 메이크업이 15~20분 안에, 남자보다도 빨리 끝나는 편이다. 이번에는 전혀 색다른 작품이라 분장팀과 의상팀의 의견을 그대로 따랐었다. 의상팀은 책에서 배운 것 같은 엄마 컨셉트로 옷을 입히고 싶다고 해서 오케이, 분장팀은 주근깨를 그리고 싶다고 해서 이것도 오케이! 그러다 매일 아침 1시간 20분 동안 주근깨를 그리는 것이 일이 되었고, 한 번은 진짜로 모세혈관이 터진 적이 있었는데, 이 또한 느낌이 좋다고 나중에는 메이크업으로 모세혈관을 만들기까지! (웃음) 평범한 분장 위에 주근깨를 그리고 다시 분장한 다음에 미세혈을 그리는 식이라 하다 보니 더더욱 그 시간이 길어졌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웃음)
넷플릭스 국내 론칭부터 함께해 넷플릭스 딸이라 불렸는데, 이제는 쿠팡플레이까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체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는데 그럼에도 희망하는 캐릭터나 역할이 있다면.
<센스8>부터 <킹덤>까지 넷플릭스와는 정말 오래된 인연이다.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마음에 들면 하게 되는 것 같다. 각 OTT 마다 선호하는 작품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그 부분까지는 잘 모르지만, 처음 <가족계획> 시나리오를 가지고 플랫폼을 컨택했을 때 쿠팡플레이에서 제일 좋아했다고는 들었다.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 혹은 선택 기준에 대해 자주 질문받는데 정말 그때 그때 다르다. 지금은 특별히 생각나는 장르는 없고,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장르가 없는 건 확실하다. 어떤 장르이든 열려 있고 글이 재미있으면 할 것 같다.
<가족계획>이 시청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작가님은 반드시 혈연이 아니라도 가족이라는 대안가족이나 유사가족을 지지하는 분이시다. 나 역시 이런 점이 마음에 와닿았었다. 슈퍼히어로가 나서서 정의라는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악당을 하나둘씩 물리치는 점이 좋았다. 대의가 아닌 소의의 실천과 이 과정에서 성범죄, 학폭 등 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리는 면도 역시 좋았던 부분이다. 시청자도 이런 부분에 공감하면서 보지 않을까 한다. 또 가족이라도 꼭 사이가 좋은 가족만 있는 건 아니니 뚝딱거리는기는 하지만 서로를 간절히 위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한다.
사진제공. 쿠팡플레이
2024년 12월 16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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