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저 사실 기계치인데, 이젠 아이패드로 대본 봐요!” 사뭇 뿌듯해하는 김고은이다. 남들은 태블릿으로 대본 볼 때 혼자 배낭에 이고 지고 다녔다는데, 그 말을 하는 모습에서 의도하지 않은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마치 <대도시의 사랑법>의 주인공 ‘재희’처럼. 동갑내기 찐친 ‘재희’(김고은)와 ‘흥수’(노상현)의 13년 성장기를 유쾌하고도 먹먹하게 담아낸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천만 영화 <파묘> 이후 다시 관객을 찾은 김고은을 만났다.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반성하고, 그 반성이 쌓여 지금 같이 한 발짝 떨어져 연기를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 같다는 김고은이다.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을 끝내고 한 반성의 내용을 물으니, 그건 마치 일기 같은 것이라 ‘비밀’이라고! 재희처럼 주관 확고한 모습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영화라고 소개했는데, 다행히 평이 좋다.
리뷰를 읽고 있는데 하나하나 감동이었다. (웃음) 평이 좋아서 한숨 놨지만, 관객 반응도 좋았으면 한다. 매번 떨리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리뷰를 찾아서 읽나 보다. (웃음) 2년이나 기다릴 정도로 <대도시의 사랑법>의 어느 부분에 끌렸는지.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찾아 읽는 편이다. 이 영화는 ‘재희’와 ‘흥수’의 13년 간의 성장이야기인데, 그 과정이 우리 삶과 밀접해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 20대 때 불안정하고 불안한 시기를 겪었고, 그 당시 느낀 감정과 시행착오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잘 다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잘 담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귀한 작품이라고 느꼈었다. 또 개인적으로 이 정도 규모, 그러니까 중간 규모의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주: <대도시의 사랑법> 순제작비는 56억원 상당)
소위 ‘허리급’ 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겠다.
특히 이야기의 다양성 부분에서 그렇다. 아무래도 큰 예산이 들어간 작품은 그만큼 흥행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다양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소소하거나 사람 사는 이야기, 혹은 여러 직업군의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로 담으려면 중간 사이즈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야 할 거다. 그래야 스토리 개발과 기획도 활발해질 테고.
많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로서 영화와 시리즈 중 어느 쪽이 부담감이 더 큰지 궁금하다. 또 영화 <파묘>로 흥행에 대한 목마름은 해소됐을 것 같은데 어떤가.
아무래도 영화가 더 부담된다. 관객수라는 명확한 성적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영화는 극장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기에 더 그렇다. 관객이 안 들기 시작하면 극장에서 금방 내려가고 마니, 아쉬움과 부담감이 훨씬 큰 것 같다. 또 드라마나 OTT 시리즈 등은 계속 볼 수 있는데 영화는 한 번 내려가면 보기 힘드니… <파묘> 때 흥행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된 건 물론이고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웃음) 한번은 무대 인사하러 가던 버스 안에서 관객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글쎄 하루에 85만 명이 봤다는 거다. 처음 들어보는 숫자라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되면서 순간 일주일 동안 85만 명이 들었다는 얘기인가 했었다.
이언희 감독과 재희 캐릭터에 관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또 여성 서사에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감독님과 매씬 이야기를 나눠서 특별한 기억이 난다기보다… 아, 이런 이야길 했던 것 같다. 재희랑 동갑이니까, 당시에도 여학생이 대놓고 담배를 뻑뻑 피지는 않았다고. (웃음) 또 이번은 촬영 기간이 짧아서, 처음에는 이 기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달 반 동안 모두가 한 씬 한 씬 한마음으로 씩씩하게 임해서 결국 끝냈다. ‘씩씩하다’가 당시를 표현할 제일 적합한 단어 같다. 으?으? 하다 보니 점차 제작부의 마인드가 돼 가더라. (웃음) 또 여성 서사의 경우, 아무래도 여성 캐릭터가 잘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면에서 공감이 더 많이 되는 지점이 있을 뿐. 시나리오, 감독, 스탭 모두 성별과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김고은’의 매력이 990% 발산됐다는 시선이 대부분인데, 개인적인 만족도는 어떤가.
<대도시의 사랑법>이 굉장히 유쾌한 영화인 건 맞지만, 그럼에도 너무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지점이 잘 나온 것 같다. 웃음도 많지만 보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라서 좋았고 이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다. 관객 역시 나처럼 기분 좋게 나오면서, 옆에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는 영화였으면 한다.
절친이 게이, 성소수자라는 설정이 낯설지는 않던가.
대학만이 아니라 고등학교도 예고를 나와서 그런지, 아무래도 예술계통이라서,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낯설거나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당시 나한테만 비밀을 털어 놓았던 친구도 있어서 (그들의 상황이나 어려움에 대해) 조금은 알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라 그 고민을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만 말이다.
재희는 남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보는, 눈에 띄는 인물이다. 극 중 재희와 동갑이라 더 애착이 가는 캐릭터라고 했는데 실제 학창 시절은 어땠나. 소문으로는 ‘눈에 띄고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고.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 (웃음) 눈에 띄었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또 인기가 많은 것도 마찬가지고! 다만 대학교 때 클럽을 가거나 술 마시며 재희만큼 놀지 못한 건 사실이다. 당시 할머니와 함께 강남역 근처에 살았는데, 2010년대 초반에는 강남역 주변에 핫한 클럽이 모여 있었거든. 그 클럽 사이를 뚫고 통학했는데, 당시 6~7시 사이에 집에서 나갔었다. 그 시간이 마침 새벽까지 놀던 사람들이 귀가하는 시간이라, (사람들에) 치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클럽에 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작품 준비하면서, 미리 클럽에 가봤는데 참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정말 신나게 춤췄고, 그 기분으로 재희 캐릭터를 소화했던 것 같다.
재희는 일주일에 여덟 번 술을 마실 정도로 주당인데 심정적으로 공감되던가. 주량은 어느 정도인지.
뭐, 내일이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그때 뿐이라 실컷 즐기라는 마음이었다. 간이 생생한가 보다, 생각하기도 하고. 다만 나는 그렇지 않았고… 주량은 글쎄 (웃음)
벌써부터 케미맛집으로 소문 났더라. ‘흥수’ 역인 노상현 배우와 가장 재미있었던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첫 촬영인 라면씬부터 호흡이 좋다고 느끼기 시작했었고, 서로 머리끄덩이 잡는 씬도 티키타카가 잘 맞았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었던 건 타투하고 나서의 장면이었다. 타투 후유증으로 흥수가 아프고, 재희가 성심껏 + 정성껏 (웃음) 약을 먹이고 돌봐 주는 씬인데 그때 자세도 그렇고 흥수의 표정도 맛이 가서 여러모로 합이 잘 맞았던 장면이었다.
재희가 흥수에게 하는 ‘네가 너인 것이 약점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여러 관객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갈 것 같다. 누구나 확신과 불안한 시기를 거치기 마련인데 당신의 20대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대도시의 사랑법>은 ‘다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서러움 등 여러 감정을 느끼지 않나. 20대 때 나는, 내 생각을 다르다고 하는 걸 틀렸다고 하는 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나,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걸 왜 틀렸다고 하지?’ 라는 생각이 컸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 하면서 유연함이 더해지고 어른이 되면서, ‘다름’을 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점차 배우게 된 것 같다. 장황해졌는데 간단히 말하면 내 다름을 잘 전달하는 법을 알게 됐고, 이를 모를 때는 억울한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생각을 많이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편은 아니다.
이언희 감독은 이 영화를 ‘나는 누구일까’에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김고은다움이라 무얼까.
음… 어려운 질문인데, 편안한 상태에서 나다움이 나오는 것 같다. 현장에서도 또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편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방향으로 연기할 수 있고 고민 같은 생각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나다움이란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이지 않을까 한다.
<파묘>의 MZ 무당에서 이번엔 필요하면 ‘No’라고 말하는 거침없는 재희로, 외양은 완전히 다른데 자기 주관이 확고하다는 면에서는 닮은 듯도 하다. 매번 캐릭터를 자기색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그 비결은 뭘까.
음… 좀 더 가볍게 생각하려고 하는 경향이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특별히 선구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많은 부분 주변이나 회사에 조언을 구하고 모니터링하면서 작품을 결정하는 편이다. 또 내가 하는 연기가 그렇게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까 말했듯이 나를 편안한 상태에 있게 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연기가 너무 귀하고, 너무 특별하고,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경험상 힘이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 그 결과 오버하게 되고, 좀 더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하는 것 역시 연기의 연장이 아닌가 한다.
칭찬받는 것에 쑥스러움이 많은 것 같다. (웃음)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관에 변화가 있는지.
학생 때와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건강하게 연기 생활을 계속하려면 어느 순간 직업적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적으로 다가가니 좀 더 시야가 넓어지고 그만큼 많은 것이 보이더라.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고 할지, 이런 마인드가 한순간에 생긴 건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잡히게 된 것 같다. 한 작품이 끝나면, 나만의 일기를 쓴다고 할지, 반성의 시간을 갖는데, 그런 반성이 바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거든. 반성하다 어느 순간 내가 성장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훅 오더라.
<대도시의 사랑법> 이후 반성한 내용은 뭘까.
비밀이다! 반성은 내겐 일기 같은 것이라 공개하기 힘들다. (웃음)
유해진, 차승원의 예능 ‘삼시세끼’ 게스트로 나갔던데 어땠나.
차승원 선배님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목에 꽉 차도록, 배 터지게 많이 먹었다! (웃음)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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