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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에 의미가 있다” <새벽의 모든> 미야케 쇼 감독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별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삶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죠.” <새벽의 모든>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말이다. 이 영화는 PMS(월경증후군) 여자와 공황장애 남자가 함께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휴먼 드라마. 동명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감독은 원작에는 없는 이동형 플라네타륨(천체와 같은 천문 영상이나 천체를 교육적 목적이나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반구형 스크린에 투영 및 상영하는 돔형 극장)이라는 오브제를 영화 속으로 끌어왔다. 밤, 어두움에서 새벽을 향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우주비행사를 꿈꾸었을 정도로 별보기를 좋아했던 소년 ‘미야케 쇼’가 경험한 신비한 순간을 나누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내한한 미야케 쇼를 만났다. 타이틀 ‘새벽의 모든’에서 ‘모든’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밝힌다. 영화를 보고 희망을 느끼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각자의 상황을 대입하여 받아들이는 말 그대로 ‘모든’이라는 감독이다.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수 있어>(2019),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 속 인물들이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면, <새벽의 모든>은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그간 영화와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에 변화가 있을까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주인공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면, 이번 주인공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와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는 전혀 모르는, 그것도 첫인상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모르는 인물 사이 이야기는 이 나이가 되어서 가능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할 때는 주인공들과 또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했었다. 반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주인공은 성별부터, 복서, 농인까지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그렸다. 20대 때는 나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꺼내 든다는 점이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잘 모르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이번 PMS(월경증후군), 공황장애 같은 병증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세오 마이코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어느 면에 끌렸는지.
출발은 캐릭터였다. 그들이 PPMS나 공황장애를 겪어서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고, 기존의 생각과 어긋나는 지점이 많았다. 예를 들면 A라고 생각했는데 B일 수도 C일 수도 있겠는 거다.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는 유연한 부분에 매력을 느낀 거다. 또 상대를 위해 행동에 나서는 점이 좋았다. 정리하면 유연함과 상대를 위한 액션이 매력적이었다.

또 하나 끌린 부분은 두 주인공이 연애 관계에 빠지지 않는 점이었다. 보통 연애를 통해 행복한 스토리를 완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더라. 나 역시 이성 사이에 연애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즐겁게 같이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점에 더욱 끌렸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도 배우들께 연애 감정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두 배우도 역시 서로 연인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써 주었다.

연애 감정이 아니라는 걸 보이기 위해 연출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두 사람이 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후지사와가 야마조에가 보는 앞에서 먹던 과자 봉지(감자칩)를 입에 털어 넣는 장면이 있다. 원작에서는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고 또 ‘너는 이성으로서 내 타입이 아니야’ 라는 대사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덜어내었다. 로맨스 분위기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다만 과자봉지 씬은 영화에만 있는 장면이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이성 간에, 그것도 바로 앞에서 봉지 채 먹거나 하는 일은 연애감정이 있다면 대체로 하지 않는 행동이다.

원작을 변주한 부분이 있는지.
원작가는 야마조에와 후지사와라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캐릭터를 만들었다. 영화화하면서 이 부분을 중시했고, 만족감을 느끼면서 작업했었다. 한가지 큰 차이점은 원작에서는 이들이 다니는 회사가 금속회사인데, 이를 영화에서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회사로 바꾸었고, 후반부에 이동용 플라네타륨을 설치한다는 설정을 가미했다.

별보기와 플라네타륨은 후반부를 이끄는 주요 모멘텀인데 어떻게 끌어오게 된 건가.
소설의 타이틀에 대해 생각해 봤었다. ‘새벽의 모든’이 제목이지만, 막상 글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말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하다가 플라네타륨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본 적이 있는데 어두움 속에서 환한 밖으로 나가는 순간,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었다. 글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원작자에게 허락을 구한 후 설정을 추가하게 되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별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었다. 영화 <아폴로 13호>(1995)를 보고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기도. 중학교 때 수학에 좌절하고 문과로 진학했지만 말이다. (웃음) 별보기는 어떻게 보면 삶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다.

PMS나 공황장애가 흔히 접하는 질환은 아닌데 어떻게 접근하고자 했나.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내 견해지만, PMS나 공황장애를 앓는 당사자에게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신체적 고통인데, 이 고통은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증세가 발현했을 때 겪게 되는 고통, 사회적 고통이라고 할지, 사회가 이들을 제대로 보듬지 못해서 발생하는 고통이 있지 않을까 한다. 비단 이러한 질환 때문만이 아니라도 성별, 국적, 질병 같은 이유로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 아닌가.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했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려 했다.

영화의 톤과 두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다.
그들의 지성과 멋진 연기로 인해 함께 작업하면서 정말 즐거웠다. 두 배우는 일본에서는 소위 스타인데, 실제로 만나보면 평범한 우리 이웃 같다. 일상의 감각이 살아 있고, 이러한 부분이 극에 잘 녹아든 것 같다.

지성적인 연기란 무얼까, 예를 든다면.
음… PMS와 공황장애는 힘든 병이고 연기를 통해 그 병을 표현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 배우와 나눈 이야기 중 하나가, 정말 고통스러운 사람인데 자기 병을 주변에 감추는 것이 사실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였다. 둘은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안으로 삼키는 쪽으로 방향 잡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지성미를 보여주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너무 따뜻해서 판타지 같다는 시선도 있다.
둘 다 동의한다. 일본에서는 ‘쿠리타 과학’ 같은 회사가 있겠냐는 되물음이 있었는데, 이는 그 구성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그 구성원이 방치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반대로 구성원이 함께 이상적인 회사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후지사와는 회사를 떠나고 야마조에는 회사에 남는다. 두 사람의 결정을 달리한 이유가 있을까.
만약 둘 다 떠나거나 둘 다 남는다면, 다시 말해 같은 선택을 한다면 어떤 정답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 떠나든 남든 그들이 선택했다면 그 결정이 맞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뜬금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코로나 시기 때 사정이 좋지 않은 식당이 많았고 경영자들이 접을지 계속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는 제삼자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인터넷에서도 찬반이 분분했던 문제다. 마찬가지로 어떤 선택이든 그들이 내린 답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했다.

제목인 ‘새벽의 모든’은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느낌인데, 이에 대해 원작자와 이야기해 봤는지.
촬영 전에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았고, 촬영 후에 이야기해 보니 일치하는 부분도 있더라. 일본에서는 ‘끝나지 않는 밤은 없다’는 희망을 말하는 표현이 있는데, 작가님과 나 모두 이런 말은 의미가 없다는 데 공감했었다. (웃음) 지금 암흑 속인데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지. 요컨대 ‘새벽의 모든’에서 ‘모든’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느끼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터이고, 이들을 다 포함해서 각자의 상황을 대입할 수 있을 거다. 말 그대로 ‘모든’인 거지.

전향적이고 희망적인 기운을 느낀 입장에서, 원작자와 그런 말을 나누었다니, 의외다. (웃음)
희망을 느꼈다면 나 역시 희망적이다. (웃음) 타이틀에 관해 좀 더 부연하자면, 안일하게 희망을 주거나 얄팍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 않지만, 관객이 희망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래서 새벽, 어두움, 암흑에 대해 깊이 생각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밝은 감정을 느끼길, 또 현재 우울감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좀 더 긍정적인 감정이나 밝은 감정을 느낀다면 족하다고 바랐다.

지금까지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오리지널 시나리오 혹은 스스로 각본 작업을 할 계획은 없나.
양쪽 다 모색 중이다.

전작에 이어 16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 카메라만의 물성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또 앞으로도 계속 16mm 카메라로 촬영할 생각인가.
16mm 필름으로 찍으면 좋은 게, 말한 것처럼 비주얼적인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진다. (웃음) 베테랑이건 젊은 스태프이건, 심지어 배우까지 으싸으?하는 기합이 들어간다고 할지 아주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필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기쁨이 있고, 이는 현장에 큰 힘을 불어넣더라. 앞으로도 16mm 필름을 꼭 고수한다기보다 장르나 서사에 적합한 방법, 디지털 혹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할 것 같다.

전작부터 힙합·일렉 뮤지션 Hi’Spec과 음악 작업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선 Hi’Spec의 빅팬이라 그분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제안드리고 있다. 내 영화와 맞고 안 맞고는 그 이후의 문제다. (웃음) 이번에도 음악 톤을 특별히 요청한 건 아니고, 이런 이야기와 이런 사람이 등장한다고 말로 전달했었다. 각본도 읽지 않은 상태로 오프닝의 데모 테이프를 들려줬는데 정말 천재더라.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카> 등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더불어 일본 뉴제너레이션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뉴제너레이션’의 대표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뉴제너레이션이라는 카테고리는 뚜렷하기 말하기는 힘들어도 앞세대와 다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지만, 어떤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도 서사도 다르고 찍는 방법론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좀 더 풍부한, 다양한 영화들이 나오지 않나 싶다. 우리가 차세대라고 불리는 것처럼 내 후세대도 앞으로 등장할 텐데, 개인적으로 내 나이대에 맞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 이 점이 내 안의 세대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거장’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앞으로 달고 싶은 혹은 기대하는 수식어가 있다면.?
젊은 거장인 내가 앞으로 나이 먹으면 늙은 거장이 되는 건가!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그래서 부담감조차도 없다. (웃음)


사진제공. (주)미디어캐슬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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