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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시, 너마저! “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감독
2024년 9월 6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우리만 잘하면 될 것 같아” 김윤석, 이정은, 윤계상 배우를 캐스팅한 후 모완일 감독이 상대적으로 신인이었던 고민시를 향해 한 말이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자 ‘민시마저, 앞서가고 있어 위기감을 느꼈다’고 모 감독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털어놓아 좌중에 웃음을 안긴 바 있다. OTT 플랫폼은 첫 경험이라 설레면서도 얼떨떨 하다는 모 감독을 만났다. 촬영하는 동안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극과 거리감이 사라지는 걸 느끼며 고민했고, 모든 능력을 쥐어짜서 시청자를 극의 끝까지 인도하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 생각했다는 감독이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작품에서는 시간이 순삭되는 느낌을 살려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감독의 말을 들어본다.

넷플릭스 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인데, 공개 후 반응은 좀 살펴보고 있는지.
이렇게 한 번에 오픈하는 OTT 시리즈는 새로운 경험이라 굉장히 떨린다. 정확하게 이 시리즈가 잘 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솔직하게 말하면 잘 모르겠다. (웃음)

언급했듯이 오픈 방식이 다른 만큼, 연출이나 편집에 있어서 중점 둔 부분이 있다면. OTT 시리즈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중간에 ‘STOP’ 버튼을 누르지 않고 시청을 이어가게끔 하는 일이 관건 아닌가.
얘기했듯이 아직은 OTT 플랫폼의 요체라고 할지, 어떻게 해야 시청자에게 좀 더 밀착하여 많은 걸 보여 줄지 그 방식에 대해 잘 모르겠다. 드라마의 경우 어느 순간에 이르면 이쯤 하면 어떻게 되겠다는 그림이 그려졌는데, OTT는 그렇지 않더라. (웃음) 대중적인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시간이 순삭 되는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 부분을 좀 더 살려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대체로 연출자들이 매 에피소드의 엔딩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하던데 어땠나.
마찬가지였다. <부부의 세계>의 경우 시청률보다 방영 다음 날 시청자들이 다음 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유도하는 것이 미션이었다. 그래서 엔딩에서 주인공 ‘지선우’(김희애)가 갖는 감정이 중요했다. 이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끊는 시점, 다시 말해 그만 시청할 포인트(타이밍)를 못 찾도록 하려는 욕심이 있었다. 의도는 분명했는데 성공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어떤 작품은 엔딩까지만 보고 다른 일을 하려고 생각하다가 어, 어하다 보니까 계속 보게 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지 않나. 그런 감독님 작품을 계속 봤는데 내가 아직 모르는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펜션 주인 ‘영하’(김윤석)와 모텔 주인 ‘상준’(윤계상)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처음에는 두 이야기가 동시간대라는 착각을 불러오는데 의도한 부분인지.
소품이나 자막 등을 활용하면 두 인물의 시간대적 차이를 보여줄 방법은 많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의도한 부분으로 상준과 영하가 혹시 동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두 인물이 놓인 상황과 감정이 돌고 도는 듯 마치 한 인물처럼 느껴지도록 말이지. 물론 이름과 성은 다르지만! (웃음) 영하가 상준의 경험을 다 겪었다고 느끼듯이, 시청자도 마찬가지로 영하를 보며 그 상황과 입장을 머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감정으로 느꼈으면 했다. 그렇다고 ‘놀랐지?’ 하며 서프라이즈하려 한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이 사는 시간대를 적극적으로 숨겼다기보다 그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편이 맞겠다.

그럼 ‘술래’인 ‘보민’(하윤경, 이정은)의 과거와 현재 모습의 싱크로율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의도한 건가.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건 아니다. 이정은 배우와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었고, 그 꾸미지 않는 느낌이 보민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윤경 배우 역시 만나보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식이 없어서, 두 분 다 캐릭터와 너무 적합했다. 외양은 별로 안 닳았을 수 있지만, 눈빛과 표정 그리고 톤앤 매너가 무엇보다 비슷했다.

술래는 범죄를 캐치하는 능력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인물인데, 이런 타고난 촉이 크게 체감되지 않더라.
상준과 영하의 서사를 이어주는 인물이 필요했고, 보민은 나서기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캐릭터다. 유능한 형사지만, 단순히 범인을 잘 잡는 것을 넘어 통찰력을 타고난 사람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준과 영하 같은 피해자도 알아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보민의 주 역할은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닌 관찰자이고, 또 보민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비중이 커진다면 장르가 바뀌었을 거다. (웃음) 사실 술래 캐릭터를 보고 혹시라도 ‘겉멋’ 같이 보이지 않을지 고민이 많았다. 진실을 통찰하는 인물인데 멋부리기 위해 이런저런 캐릭터를 다 갖다 붙였다고 오해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처음 글을 보고 영상화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럼에도 끌린 부분이 있다면.
방송국 PD로 시작한지라, 선배들한테 첫 화에서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마지막화는 아무리 잘 해도 안 본다고 배워온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처음 각본을 보고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에 참고 끝까지 보는 시청자라면 후반부로 가면서 훨씬 더 큰 감정을 느끼며 보지 않을까 했다. 초반부가 너무 스피디하면 오히려 그 감동이 줄어들 것 같았다. 이상하게 ‘영하’나 ‘상준’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더라. 그들과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그 억울한 심정이 너무 잘 느껴지면서 읽다가 울음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내 능력을 최대한 짜내어 한 분이라도 중간에 덜 손을 놓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부분에 그렇게 끌린 건가.
상준네 가족에 특히 이입했던 것 같다. 상준의 아내 ‘은경’(류현경)이 일하는 식당 주인한테 당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연기를 너무 잘한 덕분에 한 번에 끝나서 감사해야 하는 데도 식당 주인이 오히려 밉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 상준의 아들인 ‘기호’(최신후)가 술 셔틀을 하고 그 주모자로 지목당할 때는 가슴이 정말 아팠다. 촬영하면서 시종일관 거리감이 상실되는 느낌에 고민이 많았다. 너무 애정하고 몰입해서인지 거리감이 점점 없어지는 거다. 선배들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웃음) 그게 글의 영향도 있고 또 상준의 모텔과 영하의 펜션, 두 곳에서 장시간 찍다 보니 그 안에 갇힌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촬영장에만 가면 어제 벌어진 일 또 오늘 벌어질 일이 생각나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배우들도 그랬다고. 공간 자체의 힘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상준과 영하 둘 다 누군가 던진 돌에 맞은 억울한 개구리지만, 상준 가족에게는 더욱더 가혹하다는 의견이 있다. 너무 심했던 것 아닌가. (웃음)
나 역시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말하기를, 현실에서 무너지는 가족을 보면 그 정도가 더 심할 수 있다고 하더라. 다만,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다시 말해 그 가족이 무너지는 걸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하는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제대로 담아내서 시청자께 전달해 보자 싶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기호’(박찬열)가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백점 만점에 백점 연기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복수라는 삶의 목표가 끝났을 때, 기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성장이 멈췄던 아이에겐 할 일이 없어진 현실이 마치 길을 잃은 것과 같아 울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을 배우가 정말 잘 캐치해서 연기해주었다.

인트로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라는 대사에서 숲속은 우리 사회를, 커다란 나무는 개구리 같은 피해자를 상징하는 것 같더라. 의미를 곱씹게 하는 대사인데 매화 반복되면서 후반부에는 힘이 빠지는 인상이다.
딱히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물음은 아니고 시청자가 막연하게 느끼는 감정이 대부분 맞지 않을까 한다. 숲속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 느끼는 감정과 또 주변 사람이 이를 알아 봐줄지 아닐지, 이런 문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했다. 인트로의 내레이션은 8개월 간의 촬영이 다 끝난 후 제일 마지막에 한 작업이었다. 특정 톤을 제안하기보다 배우들이 느낀 그대로 해주십사 했는데, 각 캐릭터들이 읊조리는 느낌이 다 달랐다. 그게 너무 신기하면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 사운드가 극을 한층 살렸다는 평가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과유불급이랄지 너무 소리로 꽉 찬 느낌이었다. 때때로 고요함이 그리웠다. (웃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인정한다. (웃음) 잘 몰랐는데 이렇게 사운드가 꽉 차고 휘몰아치는 느낌을 내가 선호하는 것 같더라. 이번 음악 작업은 드라마를 할 때와 달리 새로운 경험이었다. 보통 드라마의 경우, 다 찍은 후 음악을 나중에 삽입하며 맞추는 편인데 이번에는 음악&사운드 팀이 처음부터 참여하여 작업했다. 한국 드라마 중 가장 고퀄리티로 담아보자고, 애트모스 기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했다. 그 사운드의 힘이 너무 좋아서 놀랄 정도다. 헤드폰을 쓰고 보면 더욱더 그 진가를 느낄 것 같다. 개미(강동윤) 음악 감독님이 <소년시대>(쿠팡플레이)를 끝낸 직후 다른 작업을 미뤄 놓고, 이 작품을 위해 두 달간 한 땀 한 땀 작업해 주셨다. 개미 감독과 여러 번 같이 작업했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제일 눈에 띄는 배우는 고민시다. 내면을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성아’라는 캐릭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표현했더라.
처음 만나서 ‘우리(모완일, 고민시)만 잘하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작품이 될지도 몰라’ 이랬었다. (웃음) 그때만 해도 지금 같이 유명하지 않았고, 촬영하면서는 고민시 배우가 예쁘고 옷도 잘 입고 연기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 몰랐다. 방영 중인 예능 <서진이네>에서도 보니 일을 너무 잘하던데, 촬영 현장에서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배우는 처음 봤다. 워커홀릭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오픈하면 다른 평가는 어떻든 고민시 배우만은 주목받겠다고 생각했었다.

고민시는 오디션을 볼 때만 해도 이렇게 큰 역할을 맡게 될 줄 몰랐다고 하던데, 그를 주목한 이유는 무얼까.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 달라. (웃음)
후배가 연출한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서 고민시라는 배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정된 예산으로 작업 여건이 좋지 않았을 텐데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이 보였다.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만 보는 느낌을 받았었다. 미팅 때 만나니, 가짜가 아닌 진짜구나 싶었다. 또 캐스팅이 확정됐다고 하자 마지막까지 안 믿긴다고, ‘진짜요?’ 하면서 자꾸 묻는 거다. 그날 카페에서 만났는데, 새 구두같이 보이는 매우 예쁜 구두를 신고 왔었다. 미팅이 끝나고 구두가 예쁘다고 하니 ‘오늘 신으려고 준비했다’고 하는데, 이게 참 아무 근거 없는 느낌이지만 그때의 눈빛이 너무 좋았다. 디테일 하나까지도 작품을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이 느껴지더라.

이번에는 김윤석 선배를 비롯한 주연 배우들만이 아니라 조연 배우들 한 분 한 분이 캐스팅될 때마다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 ‘정말 하신대?’ 하면서 넷플릭스 캐스팅 담당자와 같이 아이처럼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지환, 하윤경, 노윤서 등등 역할이 작아도 작품이 좋다면서 흔쾌히 수락하는 걸 보고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순수한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넷플릭스와 처음으로 작업했는데, 해보니 어떻든가.
제작과정만 놓고 보면, 고민할 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사실 채널 드라마를 할 때는 단시간 안에 많은 고민을 해소해야 했고, 그게 경쟁력으로 인정받았다. 마치 24시간 컴퓨터가 돌아가듯이 짧은 시간에 모두 해내야 했는데, 이번에는 고민의 양은 같은데 시간을 많이 주니 행복할 수밖에! (웃음)

KBS 공채(27기, 2001년) 출신으로 동기들이 <미생> <나의 아저씨> 김원석,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공개예정인 디즈니+ <넉오프> 박현석 감독 등 황금라인으로 불리더라. (웃음)
당시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만났는데 뭐랄지, 우린 좀 못난이(?) 같았다. 그러니까 변두리에서 기웃기웃하는, 주류가 아닌 느낌이었다. (웃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김원석은 상계동, 신원호는 강남을 꿈꾸지만 사실은 송파구에서 물고기 잡고 놀았던 친구이고, 나야 뭐 시골 출신이라… 아주 촌스러운 인간들이 세련된 세상을 꿈꾼다고 할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동경만은 진심이었고, 시청자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시절이었다. 일하는 방식은 놀라운 정도로 달랐지만, 우리가 하는 일 자체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아주 어렸던 조연출 시절 때로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JTBC로 이적 후 드라마 <미스티> <부부의 세계> 등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독립한 건가. 또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지금은 스튜디오 플로우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공동 대표나 관계자 아니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데 (웃음) 그냥 소속 감독이다. ‘내부자들’ 드라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영화와는 별개로 원작의 캐릭터를 가지고 시리즈화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제작 준비 중으로 벌써 6년 정도 되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9월 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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