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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의 시대, 만남을 이야기하다 <너를 줍다> 심혜정 감독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어둠이 내리면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여성이 있다. 쓰레기를 통해 그 사람의 실체를 알 수 있다고 믿는 ‘지수’(김재경)는 깔끔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품위 있는 이웃집 남자 ‘우재’(현우)를 만난다. 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지수와 자기 영역이 확실한 우재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과연 만들어진 우연은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노년의 불안과 격동을 그렸던 <욕창>의 심혜정 감독이 <너를 줍다>로 다시금 관객을 찾는다. 개인 정보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면서 고민이 컸다는 감독을 만났다. 무엇보다 ‘버려진 것 안에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겼다’는 주제에 끌렸고, 사랑의 주변부를 맴도는 요즘 시대에 탐색이 아닌 만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장편 데뷔작 <욕창>(2019)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이다. 처음보다 좀 수월한 작업이었나. (웃음)

매번 새로운 고민에 봉착했던 것 같다. <욕창>을 찍으면서 너무 적은 예산과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서, 다음에는 좀 더 준비해서 들어가자고 다짐했었는데… 상황이 오히려 더 안 좋았었다! (웃음) 코로나 여파로 인해 제작 지원 경쟁률도 더 세졌고, 프리프로덕션 예산 확보도 잘 안됐었고 해서 이번에도 역시 저예산으로 고생하며 찍었다. 기다렸다가 (제작) 사이즈를 키워볼지 고민하다 결국 주어진 여건에서 찍었다.

병상에 누운 아내와 그를 돌보는 남편, 그리고 간병인을 주축으로 한 <욕창>이 자기 경험에서 비롯했다면, <너를 줍다>는 하성란 작가의 단편 소설 ‘곰팡이꽃’이 원작이다. 원작의 어느 면에 끌렸나.

버려진 것(쓰레기) 안에 그 사람의 진실이나 진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 그러니까 노인이나 이주노동자같이 타자화된 이들에게 관심이 간다. 그래서인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해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 끌렸다. 쓰레기만큼 그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영화화를 준비하며 다시 책을 읽었는데, 20년 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좋은 작품은 시간을 관통하더라.

‘지수’(김재경)는 이웃의 쓰레기를 수집해서 그 주인을 파악하는 인물로, 스토커 같은 범죄나 개인정보 유출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소설과 달리 주인공이 여성이라 범죄 인식이 다소 희석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 않아도 공동으로 각본을 쓴 이수진 작가와 고심했던 부분이다. 원작이 나온 후 시대가 많이 변했고, 자기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정보를 취합하고 취급하는 건 매우 첨예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작의 메시지이자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버려진 것에 진실이 있다’는 주제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정보와 데이터로 자기를 지키는 사람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갔고, 그러면서 주인공이 여성으로 바뀌었다. 지수가 쓰레기를 줍는 이유는 이 행위로 얻은 정보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보호기제라 하겠다.

쓰레기를 모을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어 꼼꼼하게 기록하고 파일링까지 한다. 언뜻 보면 범죄 수사 현장 같은 모습이다. (웃음)

쓰레기를 줍는 게 단순히 ‘수집’의 행위가 아닌 정보를 얻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으면 했다. 지수는 이렇게 얻은 정보로 자기를 지키고 또 직장에서는 고객의 편의를 돕는다. 고객을 관리하는 직업적인 특성상 정리와 파일링의 유용성을 잘 아는 인물이다. 그래서 지수의 방도 이에 맞게 꾸민 거다. 실제 쓰레기를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이미지와 텍스트화해 아카이빙하는 정보의 방 같은 느낌이 들도록 조율했다.

지수는 이웃집 ‘우재’(현우)의 깔끔한 쓰레기를 보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더라. 무슨 말이냐면, ‘쓰레기가 곧 내 얼굴’ 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나도 그 생각(!) 했었다.(웃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되겠다고 말이다. 지수는 사랑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사랑하다 보면 이별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모멸감을 느끼도록 함부로 버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중하고 품격 있게 쓰레기를 버린 사람에게 관심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순간 후킹하면서 납득할 쓰레기 아이템이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결국 공들이고 정성껏 포장한 안시(물고기) 사체로 했다.

물고기를 키우는 일명 ‘물질’이나 바(Bar) 문화, 바운더리가 확고한 관계 등 요즘 젊은 세대의 취향과 정서가 곳곳에서 읽힌다. 주변 리서치를 많이 한 것 같다.

우선 독거인의 취미 생활을 서칭해 보니 고양이, 개, 물고기, 다람쥐 등 다양한 동물을 많이 키우고 있더라. 마침 물고기를 키우는 친구가 있어서 ‘안시’라는 물고기 속성에 대해 들었는데 ‘카브’(동굴)에 숨는 습성이 지수와 닮았더라. 공통 관심사를 매개로 이웃 간인 우재와 지수가 좀 더 쉽게 다가가도록 했고, 인물과 싱크로율이 높은 어종을 선택했다. 주변에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썸을 왜 타지, 그냥 만나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건 일종의 두려움 혹은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덜 상처받고, 덜 너덜너덜해지고 싶은 마음 말이다. 또 SNS에서 수없이 많은 정보를 탐색하며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기 싫어하는 등 요즘 젊은 세대의 모습을 많이 녹여 내려 했다.

<욕창>의 노인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관심이 옮겨갔나 보다.

일단 사람에 관심이 많다. 트렌드에 민감하기도 하고, 지켜보면서 어떤 기제로 인해 작동하는지 그 본질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공통점이 현상으로 묶이고, 여기에 스토리가 붙는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욕창>의 경우 어머니를 통해 간병인을 처음으로 직접 접했고, 그 집단의 문화가 낯설고 신기했다. 이런 점을 영화 속에 반영했었다. <너를 줍다>에는 주변에 있는 젊은 세대로부터 보고 들은 부분을 투영했다.

익명성이 중요한 일인으로서 (웃음), 지수의 행동에 선뜻 공감이나 동의할 수 없던 게 사실이다. 지수-우재 커플은 솔직히 헤어질 거로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결말에 대해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처음에는 우재가 지수를 찾기 시작하면서 끝나는 열린 결말로 생각했었다. 쓰레기를 통해 얻은 정보만으로 과연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평범하지 않은 인연으로 시작한 만남이 진실이 드러났을 때 과연 진전될 수 있을지 고민이 컸었다. 그래서 열린 결말이 맞겠다 싶었는데, 계속 주저하게 되더라. 사랑의 주변부를 왔다 갔다 하며 탐색만 하는 요즘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더욱더 만남으로 끝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또 내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알아서 성장한다는 말처럼, 어느새 두 사람을 응원하고 있더라. (웃음) 다만, 우재 역시 설득이 되어야 하는 문제라, 이런 고민을 수수께끼 풀 듯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 나갔던 것 같다.

나 역시 결국엔 두 사람의 만남을 응원하게 되더라. 설득의 힘이 강한데, 김재경과 현우 두 배우가 지닌 호감도가 한몫한 것 같다.

어느 댓글에서도, ‘김재경 배우라 설득된다’고 비슷한 말씀을 했더라. 재경 배우가 지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그녀가 진심으로 애쓰고 있다는 걸 무언으로 전달하는 것 같다. 덕분에 인물에 저절로 이입하게 되는 듯하다.

엔딩의 아쿠아리움 씬은 정말 유려한데 어디에서 촬영한 건가.

코엑스 아쿠아리움이다. 여러 곳을 알아봤는데 코엑스 수족관만이 완전하게 풀샷으로 나온다. 마치 바닷속에 두 사람이 있는 듯이 보이는데, 이건 전혀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다, 이때 이 둘의 표정보다 만남의 행위에 집중해서 촬영했다. 전체적인 실루엣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섬을 보여주려 했다.

미술작가로 활동하다가 영화를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영상 설치와 퍼포먼스 등 영상 미술을 주로 해 와서 자연스럽게 영화로 넘어온 케이스다. 영상과 이미지의 언어를 알고 싶은 마음에 영화 제작 워크숍에 참여해 단편영화를 찍었고, 이때의 인연으로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단편 스탭으로 일한 적도 있다. 미술은 문턱이 높아 관람객이 소수인 반면, 영화는 이에 비하면 정말 많은 분이 봐주신다. 영화제에 가서 일면식도 없는 관객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더라. 꾸준히 단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매년 한 편씩 만들다가, 첫 장편인 <욕창>을 만들었다. 아이디어가 풍부하지는 않아도 일단 생각하면 끝을 보는 편이다. <욕창>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다음 영화를 고민하다가 소설 ‘곰팡이꽃’이 떠올랐고, <너를 줍다>를 만들게 됐다.

마지막으로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제주대 해양생명과학과에 재직 중인 정석근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인물 다큐를 촬영하고 있다. 60대에 접어든 남성인데 짧은 치마를 입기도 하는 분이다. 내년 가을 완료를 목표로 현재 절반 정도 촬영을 마쳤다. 또 범죄에 얽히게 된 두 여성의 우정과 연대, 커뮤니티에 관한 이야기인 극영화도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영화로운 형제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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