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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일번이자 무기” <용감한 시민> 박진표 감독
2023년 11월 2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차려 놓은 밥상에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는데…” 2005년 청룡영화제에서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황정민의 일명 ‘밥상’ 소감이다. 이때 감독상은 연출을 맡은 박진표 감독에게 돌아갔다. 노년의 로맨스를 파격적으로 그린 데뷔작 <죽어도 좋아>를 시작으로, <너는 내 운명> <내 사랑 내 곁에> <그놈 목소리> 등 진지한 로맨스와 스릴러를 다루어 온 박 감독이 발랄하고 통쾌한 응징물 <용감한 시민>으로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다. 신혜선과 이준영이라는 원 투 펀치와 함께 평범한 우리네 같은 소시민을 향한 용기와 박수를 전한다. 여성 캐릭터를 잘 다룬다고 정평이 난 박진표 감독을 만났다. 무엇보다 ‘배우가 일번이자 무기’라고 말한다.

<오늘의 연애> (2014)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찾는다. 그간 연출한 작품 중, 가장 발랄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유명 웹툰 원작인 <용감한 시민>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그간 작품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선보이게 됐다. 재작년에 처음 제안받고, 각색 작업을 거쳐 12월에 크랭크인, 지난해 4월에 크랭크업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타 부모처럼 전전긍긍하고 조심스러운 마음과 사회 문제에 늘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가 ‘여자 캐릭터를 잘 다루시잖아요’ 하면서 원작을 권하는데, 마치 내게 질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 내게 ‘불의를 보면 참는 편인가, 못 참는 편인가’라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지 못하겠더라. 주인공이 가면을 쓰고 활약한다는 설정이 히어로를 고대하는 지독한 현실에서 꿈꾸는 판타지 같아 좋았다. 무엇보다 ‘소시민’ 이라는 이름에 확 당겼다. 응원해 주고 박수쳐 주고 싶더라.

권미경 대표의 ‘여자 캐릭터를 잘 다룬다’는 의견에 동의하나. (웃음)

내게 이 작품이 맞겠냐고 물으니 권 대표가 그렇게 답했는데, 글쎄… 다른 남성 감독보다 여성을 좀 더 이해하는 편에 속하지 않나 싶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을 잘 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다만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여성으로서 겪을 힘든 일을 알고 있어 상대적으로 이해의 폭이 넓을 것 같다.

기간제 교사인 ‘소시민’이 학폭을 일삼는 절대 악 ‘한수강’(이준영)을, 고양이 가면을 쓰고 응징한다는 다소 만화적인 설정인데, 붕 뜨지 않고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더라. 영화의 키 포인트로 삼은 건 무엇인가.

늘 관전 포인트는 배우, 나아가 배우가 연기할 캐릭터다. 이게 일번이자 무기라 하겠다. 두 번째는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융화되는지다. 기간제 교사인 시민, 왕년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던 시민의 아빠(박혁권), 치킨집 사장(이중옥), 동료교사(차청화), 그리고 학생들은 모두 소시민이다. 소시민인 우린 사실 모두 가면, 그러니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떤 투명한 가면을 쓰고 살지 않나. 이런 시민이 불의를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해, 분노하고 용기 낸다.

영화에서 제일 극적인 순간은 그가 가면을 벗고, 모두의 응원을 받으면서 악을 응징하는 부분이다. 불의를 보고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외면이나 방관하는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각박하고 독한 세상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거창한 메시지를 주장하기보다 소시민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후련한 웹툰이 원작이니만큼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앞으로 불의를 보면 ‘좀…’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또 웹툰을 접하지 않은 이들이 봐도 충분히 응원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였다.

목표 달성! 웹툰을 보지 않았지만, 응원하게 되더라. ‘소시민’ 캐릭터는 영화의 코어인데, 신혜선 배우를 캐스팅한 까닭은.

우선 외형적인 싱크로율이 높았다. 가면을 쓰고 남성으로 오인당할 정도로 신장이 크고 팔다리가 길고 이러한 신체조건에 아주 적합했다. 나뿐만 아니라 제작진 모두 웹툰 캐릭터와 혜선 배우가 아주 비슷하다고 느꼈고, 당연히 원픽이었다. 우리 영화에 담긴 결기, 끈덕짐, 생기발랄, 투혼 같은 여러 감정을 소화해 낼 종합선물세트, 또한 도화지 같아서 어떤 색(감정)을 칠해도 자체로 흡수할 배우라 생각했다.

소시민의 시그니처인 내려차기(내려찍기)를 비롯해 액션이 정말 간지나더라.

내려찍기는 파괴력이 센 동작 중 하나로, 이 동작으로 순수 악마 같은 놈을 찍소리도 못하게 한 방으로 응징한다. 이전 드라마 촬영시 배운 발레 스트레칭 덕에 다리를 찢는 건 수월했지만, 여기에 파워를 싣는 건 6개월간의 고강도 트레이닝을 소화했기에 가능했다. 스턴트의 도움도 있었지만,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는 장면은 거의 다 직접 했고, 스턴트와 한 몸같이 움직였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멋진 폼을 연출한다는 것 자체가 연기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액션 콘셉트는 ‘감정 있는 액션’ 이었다. 표정이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컸는데 가쁜 호흡 안에서도 대사와 연기를 다 해내는데 보면서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액션 초보 감독이라, 자잘하게 욕심낸 부분을 무술팀에 계속 이야기했는데, 너무나 잘 들어줬고 두 배우에게는 무언가를 더 주문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줬었다.

화끈한 액션과 동시에 굉장히 러블리한 모습이다. 포근한 니트류 의상으로 더 그렇게 보인다.

영화 반응 중 ‘역대급 빌런’, ‘역대급 사랑스러운 영웅 탄생’ 같은 배우에 대한 칭찬이 많아서 기분 좋다. 러블리함에 크게 기여한 파스텔 색감이나 니트류의 의상은 고희정 의상 실장이 제대로 실력 발휘한 덕분이다. 장면에 맞는 색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100여 벌 이상 준비했었다.

학교의 절대 악 ‘한수강’으로 분한 이준영 배우는 ‘서사 없는 악인’이라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하더라. 소위 ‘잘생긴 쓰레기’라 하겠는데, 그를 주목한 이유는.

‘수강’은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다. 그를 이해하기 위한 어떤 서사가 있어야 하는데 다짜고짜 악인, 오로지 재미로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 아닌가. 준영 배우를 처음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다양한 표정과 눈을 봤었다. 무섭다가 귀엽다가 한편으로는 멍한 얼굴도 있고, 무엇보다 젊은 친구인데 깊은 마음을 지녔다는 게 느껴졌었다. 연기하다가 힘들어서 혼자 울기도 했다는데… 딱히 뭔가 해주지도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안아줄 뿐이었다. ‘사랑한다, 좀 더 힘내 보자. 보다 더 악하게 해보자!’ 하면서 말이다. (웃음) 힘들겠지만, 관객이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좋은 연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더 심하다고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학폭 현장을 보면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묘사의 정도와 수위 조절에 고민이 컸겠다.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기사로 접하고, 뉴스로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외면하게 되지 않나. 현실에서의 학폭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열 배 이상 잔인하고 세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를 통해 보니까, 순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크게 체감되는 것 같다. 학폭 피해자와 이를 방관 혹은 외면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전해져서 그 강도가 한층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현실은 더 피투성이고, 그 피해자는 평생의 상처를 몸과 마음에 새기고 산다. 이를 다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일부에서는 너무 센 것 아닌가 혹은 불편하다는 분도 계시더라. 보는 분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다음 활약을 예고하는 에필로그가 흥미롭던데, 혹시 후속편을 염두에 둔 건가.

속편은 내 영역의 문제가 아니고, 원작 웹툰도 후속 이야기는 없다. 다만 ‘시민’과 동료 교사 ‘재경’(차청화)이 또 다른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활개치고 있을 나쁜 놈을 응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힘든 세상과 맞서 싸우는 소시민 같은 히어로가 어디인가 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랐다.

노년의 사랑을 파격적으로 그린 데뷔작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진지한 멜로 영화로 호평받았는데, 멜로와 로맨스로 복귀할 생각은 없나.

돌이켜 보면 당시에도 멜로를 하겠다고 작정하고 들어간 건 아니었다. ‘세상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그 외피에 맞는 장르가 멜로나 <그놈 목소리> 같은 스릴러였다. <오늘의 연애>만 빼고, 절벽 끝에 몰린 인물을 나라도 응원하고 박수쳐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매번 출발했었다. 이번 <용감한 시민>은 감히 학폭 피해자를띄우기 위로한다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그를 바라보는 소시민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앞으로도 멜로든 공포든 누아르이든 혹은 본격 코미디이든 인물과 이야기에 가장 집중할 장르를 찾을 것 같다.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손에 꼽힐 정도로 극장가의 상황이 어려운 시기다. 흥행 부담도 상당할 것 같다.

한국 영화 스코어 자체가 많이 떨어져서 안타깝다. 예전처럼 한국 영화를 사랑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과 바람이 크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OTT를 비롯한 접근 채널의 다각화에 맞춰 영화계도 대응 전략을 세우고 노력해야 하겠다. 지금까지 관객수를 염두에 두고 만든 적이 없음에도 운이 좋게도 많이 사랑해 주셨고,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답답한 마음이다.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영화가 가진 좋은 기운과 응원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가 있는지.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으로 접근하다 보면 영화의 본질이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경우가 있어서, 큰 사건에 관심을 두기보다 사람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는 거라 개인 안에 사회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사람 이야기를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고, 한 3년 정도 홀로 고립된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우주 영화에 관심이 컸었다. 세상에 이야기를 던지는 사람으로서 그 채널을 비단 영화에만 국한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매체이고, 그 꿈을 꾸는 장소가 극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 마인드마크

2023년 11월 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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