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12.3%?” 정종연 PD가 콕 집은 예상치와의 싱크로율이다. 숫자는 농담이라지만, 그만큼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는 말이다. <데블스 플랜>은 <더 지니어스> 시리즈로 두뇌 서바이벌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인 정 PD가 오랫동안 몸담은 회사를 나와서 처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많은 고민과 여러 잡념을 헤치고 탄생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라는 외연 확장에 꼭 필요한 플랫폼과 손잡고, 시청자와 접촉면을 넓혔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는 정 PD를 만났다. 예상과는 달리 전개된 양상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고, 아울러 나쁜 피드백 역시 지혜롭게 활용하면 될 자기 몫이라 말한다.
‘데블스 플랜’ 타이틀에 대해, 악마의 계획이 과연 무엇일지 추측이 무성했다. 제목에 담긴 의도는.
기획 단계부터 정한 제목이다. 마인드·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장르를 설명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또 앞으로 포맷이 바뀌더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었다. 마인드 게임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도록 하는 혹은 그러한 상태로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마치 악마의 계획 같은 면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특징을 담는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악마 같은 계획을 짜 보라는 의미도 녹아 있다.
게임의 흐름과 양상, 출연자 간의 관계 형성, 우승자 등 예상했던 그림과 어느 정도 일치했는지 궁금하다.
음… 12.3%? 하하! 구체적인 숫자는 농담이고, 그만큼 내 예상과 일치하지 않았다. 시즌을 관통하는 ‘공리주의’라는 키워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고, 풀어나가기 위해 출연자와 인터뷰를 여러 차례 진행했었다. 궤도 씨의 공리주의, 다시 말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주의는 그의 일관된 철학이라 말릴 수가 없더라. (웃음) 당혹스러운 한편 이 또한 새로운 서사라고 생각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기획부터 공개까지 대략적인 소요 기간과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이번 제작진은 <더 지니어스>를 비롯해 10년 동안 함께 한 팀이고, 대부분이 보드게임 매니아들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100개 정도의 게임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레퍼런스도 충분해서, 우리끼리 게임을 만들었고, 밸런스 조절이 관건이라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테스터를 호출해서 가다듬어 나갔다.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기획한 기간은 6개월 정도다. 그후 일주일 촬영 했고, 편집은 평소의 루틴대로 한 주에 1화를 뽑아내는 속도로 했다. 자막 등 글로벌라이제이션 하는 데 몇 달 걸려서 결국 1년 정도 걸렸다.
원조라 할 <더 지니어스>와는 다른 포맷인 합숙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무슨 효과를 의도 혹은 기대했는지.
<더 지니어스>가 본질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고, 그 정수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었다. 그 결과 출연자의 감정, 생각, 철학, 기분 등 그들의 변화와 성장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를 잘 유도하고 드러내는 시스템이 바로 합숙 서바이벌이더라.
출연자들 간의 대화를 보면 일주일간 실내에서만 지낸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우울감이 느껴지더라. 아무래도 햇볕을 쬐지 않고 인종 조명 아래에서 생활해서 그런 가보다.
해를 보여줘야 하는 부분은 간과한 게 맞다. 세트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려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다음에는 어떻게든 창을 내거나 해야겠다!
합숙이다 보니 출연자 간의 유대가 특히 더 돈독했나 보다. 탈락자가 숙소를 떠날 때마다 눈물에 눈물이… (웃음)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이유가 무엇일까.
압축된 감정선의 문제이고,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 같다. 최후의 3인이 남았을 때 (서) 동주 씨가 ‘이곳이 내 우주다, 바깥세상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 않나. 1~2년 동안 겪을 감정의 파고를 일주일 안에 농축해 경험하다 보니 한 명씩 한 명씩 탈락할 때마다 ‘내 우주가 무너진다’는 동주 씨의 표현 그대로가 아닐까 한다. 출연자만이 아니라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스탭들도 많이 울었다.
출연자 캐스팅 시 염두에 둔 지점은. 또 일반 출연자는 퀘스트가 있었다던데.
짧은 면접 과정에서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변화의 여지가 있다거나 성장의 여지가 보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서사가 있을 만한 출연자를 우선 고려했었다. 결과적으로 밸런스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생각해 볼 지점이다. 공격적인 플레이어가 있고, 방어적인 플레이어가 있는데 이번에는 방어적인 쪽이 많았다. 공리주의 영향도 있는 것 같은데 (웃음) 결과적으로 한쪽으로 쏠린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반 출연자는 퀘스트를 거쳤지만, 그 비중이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면접을 통해 파악하려 했었다. 특별한 기준을 정하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이를 캐스팅하려 했다. 여기서 공격적이라는 말은 남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게임을 하는 성향을 말한다.
게임에 강한 면모를 보인 일반 출연자인 ‘동재’가 초반 탈락했을 때 아쉬움이 컸겠다. (웃음)
굳이 동재 씨라서 더 크지는 않았다. 다른 참가자들이 탈락할 때의 아쉬움과 비슷했다. 다만, 그가 전략적으로 계획에 맞춰 플레이한 건지, 오해가 중첩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건지 자기 욕망을 제대로 읽은 건지 스스로 헷갈려 하는 듯해 그 부분이 아쉬웠다.
게임 난이도 조절이 관건인데, 게임이 어렵고 설명이 길어서 텐션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부 인정한다. 난이도는 게임을 만들면서 평생 고민할 지점이다. 게임 볼룸은 두꺼워도 룰북은 얇아야 잘 만든 게임이라는 말이 있듯이 좀 더 쉬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해법이 존재한다면 운이나 순서 싸움이 되어 버리니 이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지상과제라 하겠다. 멋을 부리려고 어렵게 만든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게임 설명이 길어지는 부분은 우리에게 친숙한 ‘마피아 게임’이라도 전혀 모르는 이를 대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 방송의 숙명이라 그렇다. 또 룰 자체는 간단한데 아이템 설명이 장황해진 부분도 있다.
감옥의 ‘하석진 X AI 오목 대결’에서, AI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서 일부에서는 봐준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게임을 준비하며 기본적으로 승률이 50%에 육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기준에 따라 AI 오목 게임 중 하나를 골라 제일 낮은 난이도로 세팅했다. 한 단계라도 더 올리면 블라인드 게임이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시원 씨와 석진 씨가 똑 같은 난이도로 게임을 했고, 이를 지켜보던 상황실을 찍은 영상도 있다. 이를 공개하려다가 그다지 논란이 크지 않아서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했다.
게임 자체와 플레이어의 서사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가장 핵심 요소가 아닌가 한다. 어느 부분에 좀 더 비중을 두는 편인가.
둘 다 너무 중요하다. 다만 게임 외적인 부분 역시 게임에서 파생되는 요소가 많아서 게임이 잘 만들어지고 구성되어야 서사도 따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서사를 위한 게임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또한, 서사를 보여줄 때 굳이 필요 이상의 자극적인 요소를 넣지 않으려 한다. 출연자를 배려하고 싶기에 이미지나 명성 등을 훼손하는 방향은 지양하려 한다. 이번에 넷플릭스와 작업하면서 좋았던 점이 이런 지점에 관한 가이드가 명확히 있었고, 촬영장에 출연자의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위해 정신 상담 관련 스페셜리스트가 상주했었다. 덕분에 수시로 인터뷰를 하면서 출연자의 심신 상태를 체크하며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존 <더 지니어스> 팬 사이에서는 좀 심심한, 순한 맛이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좀 더 대중적이라는 긍정적인 평도 있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즐기는 정도에 따라서 호불호가 엇갈리더라.
외연 확장은 필요하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이 중요했던 게, 외연 확장에 필수적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첫 번째이니만큼(다음 시즌에 관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오해 마시길!) 게임의 난이도나 상금 매치 등으로 사람들에게 최대한 친숙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해외 반응은 좀 살펴보고 있나.
<더 지니어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았음에도 해외 시청자가 꽤 많았다. 그래도 음으로, 암으로 보는 것과 (웃음) 넷플릭스를 통해 정식으로 보는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해외 반응을 보면 두뇌 서바이벌을 처음 경험하는 분이 많고 평도 좋은 편이다. 이렇게 어려운 걸 번역으로 보는 데도 재미있어 하는 게 신기하더라. 넷플릭스가 그만큼 내용과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 번역과 더빙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도인가.
알다시피 최종 결정은 넷플릭스의 몫이다. 사실 예능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며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저런 평을 보며, 특히 나쁜 피드백을 많이 받는 날은 현타가 오기도 하고,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를 어떻게 지혜롭게 활용하느냐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와중에 다음에는 어떻게 갈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개척자라 하겠는데, 이번 <데블스 플랜>의 의미는.
지난 작품을 모두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이번 <데블스 플랜>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제2의 출발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20년간 몸담은 CJ를 나와서 한 첫 작품이라 여러모로 고민했고, 또 이직하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잡념을 헤치며 준비한 작품이라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 지니어스> 시즌1을 했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시청자와 접촉면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와 또 작업하고 싶다! (웃음)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3년 10월 2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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