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첫 작품 <봉명주공>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셀프 소개를 부탁드려요.
독일에서 미디어 아트를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은 청주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공인 시각미술 관련 작업을 하면서 영상 매체를 다루게 됐어요. 영상 쪽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제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웃음)
청주에서 문화예술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고요. 영화도 이를 통해 만든 건가요.
영화하고는 별개입니다. 저희 협동조합에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있거든요, 문화예술 기획자도 미술 작가도 있고, 사진 조경 공예 그리고 저같이 영화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청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젊은 예술가들이 지방을 떠나 서울로 가는 현상이 많잖아요. 제가 한국에 돌아와 청주에 정착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 같이 고민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활동을 이어갈 환경을 조금이라도 만들어 가고자 뜻을 모았어요. 비영리 단체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협동조합’으로 한 건 이왕 이렇게 뜻을 모은 거 일종의 사업체로 해서 동기부여를 하고 책임감도 더 갖고 운영하고자 한 의도였습니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바라본 청주는 어떤 도시인가요.
음… 보통 청주는 참 재미없는 도시라고 하는데요. 바다가 있든지 해서 지리적인 장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메인 컬쳐도 많이 없고요. 이점에 대해서는 젊은 작가들끼리 서브컬쳐라든지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하나씩 찾아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정서적으로 잘 맞지 않을까 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알아갈수록 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또 곳곳에 숨겨진 명소도 있습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대청호를 좋아합니다. 청주가 물이 흔하게 있는, 그러니까 바다나 큰 강을 낀 지역이 아니라서 물이 보고 싶을 때는 대청호에 가곤 하죠.
<봉명주공>은 사람, 동물, 식물과 집의 의미를 생태학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예요. 생태학적 시선과 ‘봉명주공’, 그러니까 기획 의도와 아이템 선정 중 무엇이 먼저였나요? 선후 관계가 궁금합니다.
굳이 따진다면 ‘봉명주공’이 먼저예요. 처음 봉명주공을 방문했던 때가 2월인가 3월로 주변에 목련만이 꽃 피었을 때입니다. 풀도 없고 나무도 헐벗어서 주변 건물들이 아주 도드라지게 잘 보였어요. 그래서 이런 건물들에 관심이 갔죠. 어떻게 이렇게 독특하게 단지를 조성했을까 싶더군요. 보통 아파트 같은 경우 더 많은 세대수를 위해 건물 간의 간격도 좁고 또 높게 짓잖아요. 그런데 5층짜리 건물, 2층짜리 빌라 그리고 네 가구가 벽을 맞대고 각기 다른 입구를 가진 단독주택까지 굉장히 특이한 구성인 겁니다. 관심을 두고 보다가 잎들이 자라고 무성해지기 시작하면서 식물들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갔던 것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죠. 이 식물들이 무슨 종인지 어떻게 이곳에서 자라게 됐는지, 인위적으로 심어서 가꾼 건지, 자연발생적으로 이렇게 터를 잡고 자란 것인지 등 이런 생태적인 것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건물과 그곳에 살았던 주민들 삶의 이야기를 구상했는데 잎이 무성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조금 더 식물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2019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봉명주공의 사계를 담았습니다. 촬영 전후로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정말 그렇습니다. 영화를 편집하는 기간 중 작업실을 새로 옮겼는데, 그러면서 사무실 앞에 화단을 만들어서 장미 등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도심 내의 가로수도 관심있게 보게 됐고요. 인터체인지부터 청주까지 들어오는 도로의 가로수가 좀 유명하거든요. 근데, 가지치기하는 걸 보면서 이게 정말 나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자르는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못 자라게 하기 위해 자르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또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나무를 자른다는 뉴스를 때때로 접하면 아무래도 눈여겨보게 됩니다. 이전보다 환경적인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건 사실이에요.
1년이 넘는 시간을 촬영했으니 그 분량이 상당히 많을 텐데, 촬영하면서 또 편집하면서 어느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요.
사계절을 돌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진행했고, 촬영하면서도 단지가 갖고 있는 사계절의 모습, 그러니까 계절감을 영화에 많이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고려하여 작업했고, 풍경 같은 건 혼자 나가 찍은 것도 많습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주민들과의 인터뷰는 팀과 같이 나갔고, 일부는 풍경 찍다 만난 분들과 즉석에서 딴 것도 있어요.
사진하시는 분이나 식물네트워크 팀이 와서 단지를 견학처럼 다닐 때가 있는데 이땐 저도 그 팀에 합류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또 설명을 들으며 다녔습니다. 이때는 PD님(기자 주: 청주동물원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동물, 원>(2018)을 연출한 왕민철 감독)이 촬영했죠. 촬영하면서 단지가 지닌 고유의 분위기와 정서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이건 편집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부터 재개발이나 재개발과 관련한 어떤 이슈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은 지양했거든요. ‘봉명주공’ 단지를 통해서 사람들이 집에 대해서, 그리고 생태에 대해서 한 번쯤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나’하는 방향으로 의도했고 이에 맞춰 기획했기 때문에 최대한 이런 부분을 느낄 수 있게끔 화면 구성을 잡아 나갔어요.
청주 출신인데 작품 전에도 봉명주공에 대해 알았나요?
사실 몰랐어요. 매일 출퇴근하고 지나가던 길 인근에,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는 데도 말입니다. 아마 봉명주공 단지가 낮아서 주변의 높은 건물에 가려져서 안 보였던 것 같아요. 저희 PD도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선 후 봉명주공의 존재를 알았다고 합니다. 저보고 한번 가보라고 권유해서 갔더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그런 풍경이 있어서 좀 많이 놀라고 신기했습니다.
저도 놀랐어요. 특히 아파트 단지내 1층 주택이 있다는 사실이요. 극 중에서 그 비하인드가 잠시 나오는데요, 수출용으로 지었다가 판로가 막혔다고요. 영화 속에 나오지 않은 또 다른 정보가 있다면 풀어놔 주세요. (웃음)
당시의 주택과 관련해서 자료를 좀 많이 찾아보려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 쪽과 청주시에 문의하고 자료요청을 했으나 아쉽게도 남아있는 자료가 없다는 답을 받았어요. (영화에도 나오는) 건축 관련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분을 통해 약간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주민들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70~80년대 서울에서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차별화된 그러니까 중산층을 겨냥해 나름 고급화된 아파트를 보급하려 했다고 합니다. ‘불란서 주택’이라고 명명하고 말이죠, 사실 이게 프랑스 주택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웃음) 서울보다 조금 뒤늦게 청주에 조성된 이런 단지가 봉명주공인 거죠. 당시에는 청주에 아파트 문화가 없었고, 1세대 아파트인 봉명주공도 처음에는 미분양이 많아 집 없는 공무원들을 위해 임대 아파트로 제공할 정도였다고 들었어요.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도 비슷한 말을 하잖아요. 분양받은 후 쭉 살면서 자식을 키워 결혼시켰다고요. 혼자 사는 노래 좋아하는 할머니, 감나무 따는 할아버지 등 여러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재건축 관련한 일이 10년 가까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기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겠죠. 그래서 촬영 초반에는 주민들이 어느 정도 경계하고 그랬어요. 카메라 없이 갈 때는 두런두런 말씀을 잘하는데 녹화하기 위해 카메라를 세우면 피하시는 거죠. 그래도 계속 찾아가서 안면이 어느 정도 트니 나아졌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분들은 제일 마지막까지 봉명주공에 남았던 주민분들이에요. 촬영하는 중간중간에도 이주해 나가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아까 제가 봉명주공에 대해 몰랐다고 했잖아요? 아버지의 근무 때문에 7살 때 단양에서 1년 동안 산 적이 있는데요, 그때 살던 동네가 봉명주공이랑 굉장히 비슷합니다. 당시 이웃들도 다 제 또래를 키우는 분들이라 집집마다 친구들이 살고, 매일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즐겁게 지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실 제 기억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요. 저는 짧게 1년을 살았을 뿐인데 40년 넘게 사신 분들은 얼마나 추억이 많겠어요. 주민들이 자녀들이 어렸던 시기를 추억하는 걸 들으며 저도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봉명주공>을 보면서 식물 또한 우리가 사는 생태계의 일원이란 걸 새삼 느꼈어요. 그런 면에서 영화에 고맙네요. (웃음) 작은 꽃나무는 옮겨 심고, 돈 되는 나무는 따로 잘 옮겨 뒀다가 재건축 완료 후 다시 심는다고요. 근데 이도 저도 아닌 큰 나무는 그냥 싹둑 잘려 나가는 게 현실인데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씁쓸한 게 사실이에요.
환경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는 부분도 있고,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일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됐잖아요. 환경과 우리가 사는 생태에 관해 관심이 점차 커지고 인식이 개선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나 식물에 시선을 많이 두시는 분이 <봉명주공>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같이 느낀 분이 많았다는 거겠죠. (웃음) 제18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2021)에서 대상을 받았고,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2020)에서 상영했습니다. 관객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상영했는데요, 한번은 익산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익산에도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추진 중인데 이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냐’고요. 낡은 아파트는 지역마다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역의 아파트들은 단순한 아파트가 아닌 그 지역의 주민과 정서, 문화가 담긴 공간이잖아요. 그러니 해당 지역을 잘 아는 분이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청주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청주에 있는 것들 중 소재를 얻으려 합니다.
첫 영화라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작업할 때는 어떻게든 완성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지원받아 제작한 다큐라 당연히 최대한 퀄리티를 높여 만드는 걸 목표로 했고요. 그런데 운이 좋게 완성했고 더 운이 좋게도 시네마달이 배급을 맡아서 영화제에 가고 이렇게 개봉까지 온 거예요! 정말 기대 못했던 일입니다. 관객과 만나서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화라는 게 너무 매력이 많더군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으로 영화와 만나는 것과 필름 메이커로 관객과 소통하는 건 다르고, 이쪽의 매력이 너무 커서 앞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집이라는 공간은 각자의 사연과 추억이 쌓이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봉명주공에 남아 있던 주민분들도 다른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상, 세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실제로 그런 마을에 살았든 안 살았든 어쨌든 기억 속에 그런 마을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를 떠올리며 ‘집’이라는 게 정말 어떤 의미인지 한 번쯤 생각할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청주) 지역에서 몇 가지 소재는 찾았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건 없습니다. 생태와 관련된 지역 현안으로 ‘도시공원 일몰제’(기자 주: 도시공원으로 지정해 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을 조성하지 않을 경우 땅 주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것)로 공원이 사라지는 부분에 관해 좀 찾아보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빈티지 아날로그 오디오를 좋아하는데 지난해 엠프가 고장나서 수리해야 했어요. 그때 매우 작은 골방 안에서 30년 동안 오디오 수리를 해온 분을 알게 됐고, 좀 감명이 깊었습니다. 오디오 자체가 디지털로 변하면서 음악을 듣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아직까지 옛날 오디오를 고치는 분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려고 지금 섭외를 진행 중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감독으로 또 개인으로 ‘김기성’은 어떤 사람인가요.
바로 떠오르는 건 예전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던 그 감수성이나 정서가 많이 남아 있는 사람. 이번 <봉명주공>을 찍으면서도, 이전에 시각미술 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 어릴 때의 감수성과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작품 활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예술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일을 했다면 이런 감수성이 (지금처럼) 많이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기억과 감각을 계속 갖고 가고 싶어 하는 예술가 혹은 어떤 소년인 것 같습니다.
사진제공. 시네마달
2022년 5월 2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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