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라임크라임>은 힙합과 성장, 두 요소를 융합하여 녹여낸 영화로 두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연출의 큰 방향성이나 주안점을 짚는다면.
이승환(이하 이승환) <라임크라임>은 여러 요소가 담긴 영화다. 힙합 음악과 청춘의 성장,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과 픽션, 독립과 상업, 계층 간 문제 등의 사유와 재미까지 이렇듯 상반되고 병렬되는 여러 요소를 겉핥기가 아닌 제대로 융합하는 게 목표였다. 나아가 이런 요소들을 전혀 인지하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를 만들려 했다.
실제로 학창시절에 ‘라임크라임’을 결성했다고. 힙합을 하던 두 소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 청년이 됐을까. (웃음)
이승환 어릴 때, 당시는 비디오 대여 문화였는데 여러 편을 빌려 가족과 함께 보는 등 학창시절부터 영화를 즐겨봤다. 힙합과 랩을 할 때는 너무 좋아서 했지만, 힙합을 업으로 삼기에는 부족했기에, (웃음) 영화 쪽으로 진로를 정했다. 힙합하며 스토리텔링이 강한 가사를 썼던 경험은 시나리오를 쓰는데 또 여러 편집 툴을 다뤘던 점은 영화를 만드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됐다. 무엇보다도 어떡해서든 결과물을 도출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유재욱 감독(이하 유재욱) 승환의 말처럼 랩을 잘했다면 계속 힙합을 했을 거다. 첫 번째 꿈은 래퍼이고 그다음으로 힙합 클럽 사장이 되고 싶었다. 영화감독은 한 세 번째쯤? (웃음) 입시 준비하면서 승환이가 영화과에 간다기에 관심이 생겼다.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에 준비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붙고 승환이는 떨어져 재수해야 했다!
이승환 생각해보면 재욱이와 난 친해질 요소가 없는 사이였다. 그러다가 중2때부터 친해졌는데 어느 날 재욱이가 우리 반에 와서 ‘너 힙합 좀 한다며?’ 이러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일부러 이상한 척하는 게 아니라 타고난 이상함이라,(웃음) 호감이 생겼고 이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유재욱 감독이 극 중 ‘주연’(장유상)이 ‘송주’(이민우)에게 하듯이 다짜고짜 들이댔나 보군? (웃음) 그간 단편 <그런 밤>(2006) 등의 공동 작업에 이어 첫 장편도 함께 했다. 공동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의견을 조율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텐데.
유재욱 예전부터 팀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서로의 장단점과 언어를 정확히 알고 있다. 큰 방향성을 공유하다 보니 대립하기보다 의견을 조합해서 맞춰가는 편이다. 승환이가 대체로 들어주는 편이다.(웃음)
이승환 공동 작업하다 보면 여러 면에서 충돌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린 뿌리를 함께하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가지는 달라도 결국 목표로 하는 지점은 같기 때문에 척하면 척인 부분이 있다. 같은 방향을 향해 좀 더 나은 길을 찾는 과정인 거지. 확실하게 영역을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주로 랩 메이킹 등 음악과 배우의 연기 지도를, 재욱은 촬영과 비주얼적인 면에 치중해 작업했다.
영상적으로 힘준 부분이 있다면.
유재욱 힘주었다기보다 몽타주(따로따로 촬영한 화면을 적절하게 떼어 붙여서 하나의 긴밀하고도 새로운 장면이나 내용을 만드는 기법)를 많이 활용했다. 송주가 ‘E SENS’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나 친구인 ‘상희’(김최용준) 무리와 함께하는 시퀀스 등을 몽타주로 재구성하여 기억의 편린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이승환 몽타주를 구성할 때,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인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공중화장실에서 상희가 옷을 싸는 모습을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공중에서 흐르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컷을 붙여서 기억을 형상화하는 느낌으로 가져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 'KBS 독립영화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런던한국영화제, 즐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등 주목받았다. 촬영 시기와 제작비 규모는. 또 관객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유재욱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2019년에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은 3~4개월 정도로 끝냈는데 이후 편집과 믹싱 등 후반 작업에 시간이 오래 결렸다. 지원금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초과한 부분은 사비와 제작사인 시네마 달의 지원으로 충당했다.
이승환 평소 힙합을 즐기는 분들은 너무 반가워하고 좋아해 주셔서 뿌듯했다. 그리고 힙합을 잘 모르더라도 크게 장벽 없이 봤다고 해서 또 다른 의미로 기뻤다. ‘쉽게 따라가고 편안하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나아가 힙합에 대해서 관심이 간다’ 등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예전에 어떤 계기로 힙합에 빠졌듯 <라임크라임>이 다른 사람에게 그런 계기가 된다면 기쁠 것 같다.
유재욱 영화에 대한 반응을 주로 블로그나 인스타에 쓴 글로 접했는데 재밌다는 반응이라 안심했다. 또 힙합을 소재로만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힙합과 성장이 어우러진 드라마라는 평가가 있어 개인적으로 기뻤다.
‘송주’역은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출전자로 연기 경험인 없는 이민우 래퍼가, ‘주연’역은 랩을 유창하게 하는 장유상 배우가 연기한다. 언더래퍼와 기성 배우와의 조합이다.
유재욱 음악영화로써 랩과 연기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배우를 찾으려 했다. 이민우 배우는 연기는 처음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아웃사이더인 송주 캐릭터와 잘 어울렸다. 또 랩 또한 트렌디한 스타일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함이 있다. 장유상 배우는 극 중 ‘주연’처럼 고등학교 때 힙합 활동을 한, 한때 준 래퍼였던 데다 극 중 캐릭터와 비슷한 학창시절의 경험이 있어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이승환 이민우 래퍼는 야생적이고 훌륭한 원석 같은 배우다. 타고난 감이 좋아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해석이나 느낌을 보여주곤 했다. ‘주연’ 캐스팅에 고민하던 중 장유상 배우의 오디션을 진행했다. 그가 오디션장을 나가자마자 우리 둘이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연기는 당연하고 출중한 랩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 래퍼 올티가 보성고 힙합 동아리 MNG 리더로 출연하여 그의 팬이라면 특히 반가울 것 같다. 영화 속 음악은 누가 작업한 건가.
이승환 ‘송주’가 ‘E SENS’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실제 그의 곡을 사용했다. 공연을 준비할 때는 ‘가리온’, ‘일 스킬즈’ 등 올드스쿨 한 힙합이 흐르는데 이 점에서 힙합을 즐기는 분이라면 더욱더 반가울 것 같다. 과거와 현재, 힙합 씬의 변모와 트렌드를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외 상당수의 곡은 김종연 음악감독이 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전작도 함께 작업했다.
유재욱 랩의 가사는 두 배우가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에 맞춰 직접 썼다. 이민우, 장유상 배우가 힙합과 랩에 익숙한 분이라 가능한 작업이었다. 캐릭터와 배우 사이에 아이덴티티의 접점을 찾아 가사를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성이 높아질 거로 생각했다. 또 두 친구의 성장 정도, 그러니까 미숙한 상태에서 점차 성장해 나가는 맥락에 걸맞은 가사를 갖추려 노력했다.
‘E SENS’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기표현이 적은 ‘송주’의 상황과 심리,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인상이다.
유재욱 어릴 때 게임 잡지에 엽서를 보낸 경험을 살렸다. (웃음) 엽서 썼던 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글거리는데… 그가 말이 없는 친구라서 속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보여주려 했다.
‘E SENS’는 두 친구의 강한 연결고리이자 중요한 모멘텀이다. 문득 ‘E SENS’에 대해 궁금해지더라. 힙합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유재욱 한마디로 리빙 레전드다.
이승환 먼저 우린 ‘E SENS’의 광팬이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는 힙합씬에서 위상이 높고 랩을 잘하는 걸 넘어 독보적인 면이 있다. 보통 유명해지면 크루를 만들거나 대중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가사(랩)는 소위 ‘플렉스’를 내세우기보다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렇기에 ‘송주’가 그의 음악에 공감하는 것 이상으로 롤모델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개봉이라는 멋진 피날레로 <라임크라임>을 떠나보내는데, 영화가 두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유재욱 장편 데뷔작인 데다 승환과의 작업이라 무엇보다 의미가 크다. 든든한 친구이자 파트너가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했기에 유년시절을 정리하고 가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이승환 <라임크라임>은 지금 곁에 없을지 몰라도 내 안에 소중하게 남아 근간을 이룬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게 힙합일 수도 또 어떤 열정일 수도 있다. 그 시절의 우정이 될 수도 있겠지. 그리웠던 걸 추억하는 것과 동시에 꺼졌던 불씨를 다시 태운 시간이었다.
다음 작품도 함께하는 건가.
유재욱 굳이 단독과 공동, 이런 식으로 작업을 구분할 필요가 없더라. 그간의 경험으로 같이하는 게 나을지 아닐지 촉이 온다. 그런데 따로 작업한다고 해도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 편이다.
이승환 미리 정하고 들어가는 건 아니고 시나리오 작업과 이를 피드백하면서 작업 방식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더라. 내가 연출을 맡으면 재욱은 촬영을 담당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게 작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크게 도움된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이승환 요즘엔 아무래도 <라임크라임> 관련해서 즐거움이 크다. 아직 개봉 전이지만, 영화제나 시사회를 통해서 관객의 반응을 접하는 것, 특히 내가 원했던 반응을 만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유재욱 음… (인터뷰하러) 무비스트 온 게 소소가 아닌 대단한 행복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었고, 당시에 ‘장르영화 탑100’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안 본 영화를 챙겨보곤 했었다. (웃음)
사진. 박광희 실장(울트라 스튜디오)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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