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상경해 배우의 꿈을 꾸게 된 위하준은 공포 영화 <곤지암>(2017)을 시작으로 <걸캅스>(2018) <미드나이트>(2020) <샤크: 더 비기닝>(2021) <오징어 게임>까지 오락성 있는 작품에 연이어 주연으로 출연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실종된 형을 찾아 게임장에 잠입한 형사 ‘준호’역을 맡아 연기 대선배 이병헌과 마주하고, 가파른 절벽을 등에 진 채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담은 흔들리는 눈빛 연기를 소화하며 마지막을 연기했다.
위하준이 맡은 ‘준호’역은 잔혹한 <오징어 게임>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와 가담자의 역할을 추적해 나가며 관객의 시선과 동일한 위치에서 이야기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키맨’이기도 하다. 다만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허성태, 김주령, 정호연, 아누팜 트리파티 등 주요 출연진과 함께 게임에 참여하며 연기 호흡을 주고받을 기회가 없는 외로운 역할이기도 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이 경험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안 홀로 장면을 이끌어나가야 했던 고독감이 컸다고 말한다.
<오징어 게임> 시즌2가 제작된다면 그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위하준은 ‘준호’의 전사부터 그의 형이 어떻게 게임판에 합류해 ‘대장’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병헌과 연기 호흡을 맞추던 떨리던 절벽 촬영, 전 세계 관객의 비주얼 호평을 끌어낸 ‘VIP 신’ 등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자세히 들어본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당신이 맡은 ‘준호’역은 주요 배우들과 게임에 함께 참여하거나 연기 호흡을 주고받는 신이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수락하면서도 분명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은 상대와의 연기 상호작용 안에서 실력이 늘고 배울 점도 생기는 측면이 있지 않나.
나도 그 부분이 굉장히 많이 아쉬웠다. 선배님, 동료 배우분들과 호흡하면서 많은 걸 얻으면서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이 많지 않았다. 주로 혼자 연기하면서 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굉장히 컸다. 황동혁 감독님이 (자신을) 잘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세세하게 반응해 주시고 용기도 주셔서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황동혁 감독은 당신을 왜 ‘준호’역에 캐스팅했을까. 전 세계적인 흥행 이후 어떤 이야기를 해주던가.
내 눈빛과 (목소리, 연기의) 톤을 좋게 봐주신 거로 알고 있다. 작품 공개 이후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는데 (큰 흥행에 대한) 본인의 소감을 말씀하시기보다는 (나에게) 혼자 외로웠을 텐데 참 잘 해줬다고, 수고했다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했다. 박해수 선배와도 연락을 나눴는데 마침 <오징어 게임>을 공개하던 날 아들을 낳으셨다.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 (아이가) 복덩이다 말씀 드렸고 서로 축하를 나눴던 기억도 난다.
<오징어 게임>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누구와 가장 많이 상의했나.
작품 출연은 주로 회사와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 대본이 좋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매력 있다고 느끼면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대부분 전작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회사에서 그런 내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다. 나와 가장 친하고 내 내면까지도 아는 오래된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친한 친구들은 <오징어 게임> 출연을 두고 뭐라고 조언해줬나.
친구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연기를 시작한 뒤로 차근차근 자기 역할을 해나가는 입장이다. 출연 기회가 많지 않아서 힘들어할 때도 있다. (배우로서 고민이 비슷하니) 서로 계속해서 응원하고 힘을 나눠왔다. <오징어 게임>에서 황동혁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다른 선배들과 일할 수 있는 건 복이라면서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 했다.(웃음) 부러워하기도 했고. 또 ‘준호’라는 역할이 그동안 내가 너무 원했던 역할 아니냐면서, 내 장점을 살리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해줬다.
그동안 원했던 역할이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형사라는 직업을 너무 연기해보고 싶었다. (남보다 특별히 더) 좋은 성격을 지닌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의감 있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격을 하는 신 등 액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때 육상 대회를 나간 적 있어서 달리기도 잘한다. 역동적인 걸 좋아하고 신체에 대한 컨트롤도 잘하는 편이라 (형사라는 직업의 ‘준호’와) 비슷한 모습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극중 이병헌과 대면하고 연기 호흡을 맞추는 신이 있다. 후배 배우로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으리라고 본다. 그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
이병헌 선배의 출연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설레고 심장이 뛰어서 이러다가 연기를 못하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걱정 반, 좋음 반이었는데 (다행히) 굉장히 편하게 대해주셨다. 밥 먹을 때도 “하준아 와서 먹어” 하시고 “우리가 하관이 닮았네” 하는 식으로 긴장을 풀어주셨다.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들려주셨는데 그런 부분이 참 감동적이었다.
절벽 앞에서 그와 몇 마디 대사를 나누고 눈빛을 교환하는 신은 짧지만 귀중했을 것 같다.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은 점은.
대장이 가면을 벗을 때 나는 그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형인가 헛것인가 하는 놀라움과 소름 돋음, 충격을 최대한 잘 표현하고 싶어서 촬영까지 최대한 (이병헌을) 안 뵀다. 촬영 전에 물론 인사는 잘 드렸지만(웃음).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그가 가면 벗을 때 그 눈빛, 무게감, 포스에 좀 (기가) 눌려서 순간적으로 연기에 조금 집중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한 컷으로도 엄청나게 큰 힘을 줄 수 있는 배우라는 걸 느끼면서 내게도 큰 (내적) 작용이 있었다.
외국인 VIP가 ‘준호’에게 성적인 강제력을 행사하려는 대목에서 등장한 당신 얼굴이 ‘짤방’형태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비주얼 호평을 받고 있더라. 배우로서는 해당 신을 촬영하는 과정이 다소 난감했으리라는 생각도 들던데, 당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많은 팬이 그 ‘짤’을 쓰면서 나를 태그하고 좋아해 주시더라. 가면을 벗길 때 눈빛이 좋다는 얘기를 한 외국 팬도 있었다.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이런 반응은 생각지도 못해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그 신을 찍을 때 참 걱정이 많았다.(웃음) (VIP를 연기한) 외국 배우분이 내 바로 눈앞에서 노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존경심도 들었다. 그런데 슛 이후 그의 모습을 보고 순간 얼어버려서 한 번 NG를 냈던 기억도 난다.(웃음) 다행스럽게도 외국 배우분께서 친근하게 농담을 건네줬고 생각보다 호흡도 잘 맞아서 신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바위섬을 뛰어오르고 스킨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등 신체를 활용하는 신이 많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산을 뛰어오르거나 각종 액션을 소화하는 부분에서는 체력적인 힘듦은 좀 있었지만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스킨스쿠버 잠수 신만큼은 공포가 심했다. 내가 물을 굉장히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정말 컸다. 그 신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수영 강사까지 붙여 수영을 배우고 잠수도 하면서 물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시즌 2가 나온다면 ‘준호’는 어떤 역할을 할까.
‘준호’가 살아 돌아올지는 나도 모른다. 만약 시즌 2가 제작되면 ‘준호’의 형이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어떤 이유 의도로 동생에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야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준호’의 전사가 나오지 않아서 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형을 찾을 만큼이라면 그들의 우애는 얼마나 깊었을까. 한 가면남으로부터 공개된 (형이 동생으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는 이야기로 알 수 있듯 둘은 목숨을 나눌 만큼 우애가 깊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준호’가 형사가 된 이유도 형을 너무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에 그의 삶을 따라가고 싶었던 거라고 믿으면서 연기했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도 궁금하다.
6월부터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라는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기자 주: tnN에서 방영될 판타지 히어로물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020~2021)을 연출한 유선동 PD가 연출을 맡고 이동욱이 출연한다.) 판타지적 인물 ‘수열’을 맡았는데 화려한 액션을 소화하는 정의감 있는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코믹한 요소가 많아서 조금은 과장된 연기를 해야 한다. 익살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모습인데 아무래도 그동안 안 해봤던 연기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 방송이 나오면 시청자께서 “어, 위하준의 새로운 모습이네. 이런 귀여운 코미디 연기도 잘하네” 하면서 봐주셔야 하는데 걱정이 크다.
제주에서 상경한 거로 안다.
굉장히 작은 시골 섬마을에서 배우라는 꿈을 꾸고 상경했다. 이런 작품으로 기자님들과 인터뷰한다는 게 지금도 너무 신기하다. 출세했다고 생각한다.(웃음) 올해 내가 참여한 작품이 (연이어) 공개되고 많은 관심을 주셔서 꿈인가 싶을 만큼 기분이 좋다. 한편으로는 물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맡은 일을 잘해야 하고 남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이 흥행했지만 절대 들뜨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고 지금 하는 촬영에 집중하려고 한다. 작품이 잘되든 안되든, 누가 날 알아봐 주든 아니든 연기하면서 (내가) 즐겁고 현장 가는 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곤지암> <걸캅스> <미드나이트> <샤크: 더 비기닝> 등 끊임없이 출연작을 선보이고 있는데 ‘열일’의 원동력을 꼽는다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나 보다. 아버지가 음악도 정말 좋아하고 나보다 훨씬 끼도 많으시다. 내 경우에는 춤을 좋아해서 동아리 소속으로 남 앞에서 공연을 해봤는데 그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된 것 같다. 배우가 되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연기도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고 그때 제대로 된 연극을 접해봤다. (집 근처에는) 없었던 영화관도 그때부터 제대로 가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받는 자극이 엄청 컸다. 이 일을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아버지가 요즘 기분이 참 좋으시겠다.
부모님 두 분 다 너무 좋아하신다.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느낌이다.(웃음) 요즘 카카오톡 프로필에 부모님 사진을 올려뒀다. 내가 출연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분들께서 더 좋아해 주니까 (연기하기를) 참 잘했구나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어릴 때부터 밖을 나돌아다니거나 (시끄럽게) 술 마시는 건 별로 안 좋아했다. 믿음 가는 친구들과 좁은 집에서 조용하게 크래미 안주에 소주 한잔하는(웃음) 그런 게 참 행복하더라.
사진 제공_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