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백 번 중 한 번 만족스러우면 거기에 ‘미친다’ <파이프라인> 서인국 배우
2021년 6월 1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서인국은 매 작품 스스로 묻는다. “인국아, 이게 최선이냐?” 그동안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한 게 연기에 대한 스스로의 불만족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백 번의 연기 중 딱 한 번 만족스러운 순간을 경험하면 거기에 ‘미쳐버린다’고 과감하게 표현한다. ‘기름 도둑질’을 소재로 한 유하 감독의 신작 오락범죄물 <파이프라인>에서 ‘핀돌이’역으로 도유 전문가를 연기한 서인국은 그 한 번의 만족을 두 번으로, 세 번으로, 백 번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고 말한다.

유하 감독의 <파이프라인>에서 기름 도둑질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핀돌이’역으로 출연했다.
유하 감독님과는 원래 다른 영화로 미팅을 했다. 그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지만, 감독님이 나를 너무 마음에 들어하고 예뻐해 주셔서 ‘이대로 우리는 헤어질 수 없다!’ 싶은 상황이 됐다.(웃음) 마침 새로 받아본 범죄오락영화 <파이프라인> 시나리오도 너무 재미있었다. 선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모여 일을 저지르는 이야기이다 보니 블랙코미디 요소도 가미돼있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유하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출연을 선택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핀돌이’라는 캐릭터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는 전문 ‘업자’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소유하고 있다 보니 자신감이 강하고, 거칠게 욕을 하면서 남을 무시하기도 한다. 연기하면서 캐릭터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나.
‘핀돌이’는 예의 없고 거친 인물이다. “막장엔 위아래가 없다”든가 “너네는 대체 가능, 난 대체 불가능”이라는 대사를 할 정도로 엄청난 자만심에 도취해있다. 그런데 대기업 후계자 ‘건우’(극 중 이수혁)의 위험한 계획에 휘말리고, 막장 안에 모인 사람들의 리더가 된다. 그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챙기고 가족애를 형성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을 특유의 유머와 거친 면모로 극복해 나간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행동도 민첩한 캐릭터라 그런 점을 잘 버무려서 인물을 만들었다. 사실 촬영하면서 욕을 너무 많이 해서 후시 작업으로 그 양을 좀 줄였다.(웃음) 나도 모르게 너무 신랄하게 했었나 보다.


땅굴 안에서 진행되는 촬영이 많았을 텐데, 당시 상황을 전해준다면.
땅굴 내부 작업 신은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공간이 길게 돼 있어서 촬영 자체가 힘든 곳이다. 스태프가 배우들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어야 한다. 극 중 역동적인 행동이 많아서 공기도 탁해지고 먼지도 많아지는데, 그럴 때면 숨이 막히고 빨리 지칠 수밖에 없더라. 고생하면서 촬영했던 게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서 연기 이상으로 표현된 것 같다.(웃음) 땅굴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찍을 땐 세트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실제 창고를 빌려 3~40명의 스태프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땅을 파기도 했다. 미술팀 등 스태프들도 고생이 많으셨다.

땅굴 안에서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체력적인 부분인가.
좁은 공간에서 같은 쪽만 바라보는 게 무척 힘들더라. 위, 아래, 옆 어딜 봐도 다 막혀 있다. 땅굴 높이도 내 키에서 두 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지치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사람 한 명을 업고 연기하는 것처럼 온몸이 무거웠다. 중간중간 바람을 많이 쐬었고, 먹을 걸 잘 챙겨 먹고 농담도 많이 하면서 회복하려고 했다.

많은 배우와 팀을 이뤄 촬영한 만큼 고단한 촬영 중에도 의지가 됐을 것 같다.
우리 중에 가장 선배인 ‘나과장’역의 유승목 선배가 가장 의지됐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에서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역할을 맡으셔서 처음에는 조금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너무 배려가 깊으시고 유머러스하시다. <고교처세왕> 때 처음 만난 (이)수혁이는 지금 촬영 중인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서도 함께 하고 있는데, 사석에서 만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같이 운동하고 게임할 정도로 많이 친해졌다. 차가운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남에게 행복을 주는 거로 자기 행복을 느끼는 따뜻한 친구더라. <파이프라인>에서는 좀 얄미웠다.(웃음) 팀원들이 고생할 때 와서 한번 ‘툭’ 말을 던져서 판을 뒤집어엎고 어지럽게 만드니 우리끼리 장난삼아 ‘아휴 나쁜놈’(웃음) 하고 말했었다.


힘든 촬영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 관객을 만난다. 자신의 연기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만족스러운 부분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내 눈에는 계속 모자란 모습만 보여서 스스로를 판단하기가 좀 어렵다. 언젠가 엄청난 경력을 쌓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내 연기에 만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던 순간도 있다. 온몸이 줄에 묶여 있다가 특수한 방법으로 그 줄을 끊고 탈출하는 신인데, 하도 몸에 힘을 줬더니 몸이 압력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지더라. 어딘가 터져버릴 것처럼 어지러웠고, 컷 소리를 들은 뒤에 밧줄을 풀어 보니 네 번째 손가락에 마비가 왔더라. 당시의 극한 모습이 영화에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영화가 끝날 때쯤 감정을 터뜨리는 신이 있는데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말에 따라 여러 번 촬영했다. 그 부분도 잘 표현된 것 같다.

일할 때마다 매번 좋은 결과물을 내는 건 누구든 어려운 일일 거다. 그런 중에도 자기만의 성취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사실 매 작품 너무 힘들다. 스스로 만족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나에게 묻는다. “이게 최선이냐 인국아?” 계속 내 연기를 의심하게 되는 거다. 재미있는 건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이 불만족스러운데 딱 1번 만족스러우면, 난 그 경험을 못 놓겠다. 한 번을 두 번으로 만들고 백 번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연기라는 일을 하고 싶다. 그 한 번의 만족이 좋은 의미로 날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당신을 ‘미치게 만들었던’ 순간은.
작품마다 있다. <응답하라 1997> 때 “만나지 마까”라는 대사를 했을 때도 그랬고. 드라마 <38 사기동대>를 찍을 때는 연기에 대해서 고민이 더 많았다. 내적인 표현이든 외적인 표현이든 많이 눌러가면서 연기했다. 이렇게 연기하면 너무 재미없게 보이거나 대충하듯 느껴지진 않을까 답답하기도 했는데, 한동화 감독님이 지금 이미 충분하니까 더 (힘을) 빼고 연기하라는 디렉션을 주셨다. 나중에 화면으로 보니 결과물이 굉장히 만족스럽더라. 그 뒤로 감정을 꾹꾹 누르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출연 중인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슬픔을 담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 중인데, (당시 경험 덕에) 자기방어적인 모습을 표현할 때 조금 더 빨리 (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응답하라 1997>이후로 <주군의 태양> <고교처세왕> <38 사기동대> <쇼핑왕 루이>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해왔다. 연기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내 분야에 대한 욕심이 많다. 가수 쪽과 마찬가지로 배우 쪽에서도 열심히 달리고 싶다는 꿈이 크다. 연기 면에서는 어떤 작품이든 어떤 캐릭터든, 내가 이전에 했던 역할과 겹쳐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서인국이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온전히 그 캐릭터로만 보여서 개개인의 취향을 초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 친구 연기 진짜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매튜 맥커너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 연기력이 가장 돋보인 것 같다.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인터스텔라>를 보면 또 완전히 다른 사람 같고. <레전드>에서 1인 2역을 보여준 톰 하디의 연기도 굉장히 멋있었다. 아니면 브래드 피트! 언젠가 나도 그런 배우가 될 수 있겠지.(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잠시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피자랑 치킨을 먹었을 때가 소소하게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영화 한 편 틀어 놓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잠드는 것도 위로가 된다. 혼자 작품 속 캐릭터를 분석하는 게 좋다. 단점은, 소주를 먹다 보니 다음날 일어나면 영화 중간부터는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것. 가끔은 제목도 잘 기억 안 난다. 그래도 뭐, 내가 소소하게 행복하니까!(웃음)

사진 제공_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2021년 6월 1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