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한 뒤 2003년부터 지속적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왔다.
그간 일반적인 방송에 몇 번 참여하긴 했지만 주업은 아니다. 독립 다큐멘터리는 창작자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장르다. 소재, 주제, 스타일 등 여러 면에서 하나하나가 고유성을 갖고 있다. 대신 다큐멘터리로 밥 벌어먹고 살기는 어렵다. 일종의 비싼 취미생활인 셈이다. (웃음)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 이름에게>, <가난뱅이의 역습>, <멋진 그녀들> 등을 통해 꾸준히 사회소외계층의 삶과 위상을 조명해왔는데.
내가 궁금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사안이 있으면 영화로 만드는 편이다. 평소 계층, 공동체 등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여성, 노인, 장애인까지 모든 사람이 평등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지니고 있다.
2003년 불법체류 노동자 문제를 다룬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이주>로 데뷔했다. 이어 2004년에도 동일한 사안을 다룬 <계속된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 기록되다>로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을 수상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이주노동자가 이 사회에서 평등하게 살 수 있다면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막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몇 십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셨던 경험을 들려줬다. 그 전엔 잊고 살던 기억이었고, 다시 들을 때도 반쯤 흘러 들었다. (웃음) 그런데 작업을 하다보니 ‘이주노동자가 남의 얘기만은 아니구나.’라고 느껴질 수 있도록 아버지 이야기를 인트로에 넣으면 좋을 거 같더라. 그래서 아버지를 정식으로 인터뷰하려 했더니 자랑할 만한 거리가 아니라고 거절하더라.
이주노동자가 사회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시작했는데 정작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했고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자는 주제가 이주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이야기라 그랬던 거 같다.
이번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당신의 사월>로 돌아왔다. 유가족의 후일담을 다루거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대신 사건에서 한발짝 떨어진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슬픔에는 위계가 있어서 내가 아무리 슬프다 할지라도 유가족의 슬픔만 못하다. 전에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게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일부 사람만이 아닌 당시의 기억이 ‘사건을 목격했던 우리 모두의 기억이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랐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 꼼꼼하게 찾아보게 되지 않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그러한 사고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게 목표였다.
사회적으로 여론이 분분했던 까다로운 소재에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낸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세월호 사건 자체가 어떤 이들에겐 보고 싶지 않거나, 혹은 지겨운 주제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월호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더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의 크기가 아니었기에 나도 참사 3주기까지 참사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세월호만 떠올리면 눈물이 났고,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떼지 않더라.
그걸 보고 문득 왜 우리가 지난 일에 그토록 큰 영향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러 단서를 조합해 진실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와 사람들이 지닌 감정을 들여다보고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다큐멘터리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관련자료가 방대했다. 유족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도 있고, 어민이나 인근 지역의 주민들의 심층면담부터 전문적인 연구조사까지 무수히 많은 자료가 마련돼 있다. 탐정이 된 거 같아서 이 단계를 참 좋아한다. (웃음)
자료를 세밀하게 분석한 다음엔 주제에 맞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섭외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엔 맥락에 적합한 푸티지를 고르고 자막과 음악을 삽입하는 등 편집 과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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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고통은 지문만큼 다양하다더라. 많은 사람을 만나 당시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힘듦의 정도나 사고 이후의 행동이 전부 달랐다. 모든 이야기에 공감이 가더라.
극장 개봉에 앞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와 공동체 상영을 통해 다양한 관객을 만나고 피드백을 받았다. 보통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얘기하기 마련인데, <당신의 사월> 상영 후엔 영화와 별개로 그날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자신이 어떠했는지 개인적인 기억을 들려주는 관객이 많았다. 바로 어제일도 기억이 잘 안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몇 년 전 그 날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까 싶더라.
가끔 영화는 별로인데 어떤 한 장면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지 않나. (웃음) 삽입된 수많은 푸티지 중 하나라도 관객의 기억, 마음과 만날 수 있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의 사월>에는 단 하나도 뺄 장면이 없다. 영화의 모든 순간이 의도 하에 촘촘하게 배치된 것이다.
부정적인 반응도 없진 않았을 듯한데.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의견도 전부 이해한다. 당시 한 관객이 ‘지금에 와서 이걸 상영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라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 이 시점에 더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은 곧바로 그 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어렵다. 충격과 슬픔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왔을 때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7년은 짧은 편이다.
아우슈비츠와 관련된 영화는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꾸준히 나오지 않나.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도 계속해서 논의돼야 하는 사고다. 아직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당신의 사월>이 관객들로 하여금 세월호 사건이라는 사회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볼 계기이자 대화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재난이자 트라우마다. 아직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자유롭게 다니지 못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정 폭력이나 이혼율도 높아진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는 소중한 이를 잃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이러한 충격과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문제이지 않나.
팬데믹 초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지금에 비해 비교적 적었을 때도 온 세상이 전부 멈추지 않았나. 그런데 세월호 참사 때는 삼백명이 넘게 죽었다. 누구나 탈 수 있는 배였고,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참사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충격도 컸다. 물론 그 일을 기점으로 사회 안전망이 더 보완되고 분명한 발전이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가 주는 메시지를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고, 사회 시스템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시기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데 부담이 크겠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영화를 관람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이고 또 세월호라는 소재와 장르가 주는 심리적인 장벽이 있으니 극장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기가 쉽지 않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관객들이 영화를 본 걸 후회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세월호 참사 4주기를 기념해서 <이름에게>라는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제목이 익숙할 텐데 아이유의 노래에서 착안한 거다. (웃음) 내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다하니 지인이 그 노래를 추천해주더라. 공식적으로 세월호와 관련된 노래라고 발표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떠올린다.
<이름에게>의 다음이 <당신의 사월>이다. 내가 모은 이야기를 한 영화에 전부 넣을 수 없기에 차기작에서도 세월호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현장에 있던 기자나 단원고 선생님들의 이야기, 혹은 안산이나 목포, 진도 등 사건을 목격한 인근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세분화해 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너무 워커홀릭 같겠지만 일이 너무 즐겁다. 내가 상상하던 게 실제로 구현이 될 때 오는 쾌감이 가장 크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도 추진력이 된다. (웃음) 그 외엔 운동을 하고 텃밭을 가꾸고, 양육하며 일상적인 루틴을 유지하려 한다. 또 요즘엔 어렵지만 캠핑을 가거나 오지를 탐방하는 등 자연을 만끽하며 힐링한다.
사진제공_시네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