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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집중한 영화 <빛과 철> 배종대 감독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남’(염혜란)의 남편은 한밤중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2년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 ‘희주’(김시은)는 남편이 낸 사고에 대한 죄책감에 영남 앞에 나서기가 두렵다. 영남의 딸인 고등학생 ‘은영’(박지후)은 희주의 곁을 맴돈다. <빛과 철>은 교통사고 후 그 유가족이 사고 난 밤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미스터리 형식으로 초반 몰입도를 높인 영화는 교통사고를 둘러싼 사실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가해자-피해자 구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첫 장편으로 여운이 짙은 <빛과 철>을 완성한 배종대 감독을 만났다.

<빛과 철>은 하나의 교통사고로 상반된 입장에 놓은 두 여자를 주축으로 한 미스터리 드라마다. 영화를 본 후 ‘빛과 철’과 영어 제목 ‘Black Light’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의미를 짚는다면..
시나리오 단계에서 가제로 썼던 제목이다. 관념적이고 직관성이 부족해 변경하려고 하다가 환하고 따뜻한 빛과 날카롭고 차가운 철이라는 상반된 속성에서 오는 모호한 느낌이 좋아 그대로 가져갔다. 교통사고 순간 상대를 비추는 헤드라이트의 빛, 자동차의 충돌 즉 철끼리 부딪치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될 수도 있다. 영어 제목은 어떻게 할지 고민했는데 ‘Black Light’가 불가시광선,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라는 의미가 있더라. 가려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인 우리 영화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교통사고로 ‘영남’(염혜란)의 남편은 의식불명 상태로 2년째 누워있고, ‘희주’(김시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두 인물 사이에 감정의 충돌이 거듭되는데 캐릭터에도 ‘빛과 철’의 속성을 녹여냈을까.
철과 빛을 인물로 뚜렷하게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통상적으로 ‘빛’이라 하면 진실 혹은 진리를 상징하지 않나. 어느 한 명이 아니라 두 인물이 번갈아 ‘빛’의 속성을 지니고 그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도록 했다. 촬영할 때도 해당 신의 주도권에 따라 조명의 강약을 조절해 차별화했다.

‘인간과 인간이 왜 단절되고 멀어질 수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음…누군가를 만나거나 관계를 맺을 때, 가족이든 지인이든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잘 모를 때가 많더라. 그러다 보니 관계가 어긋나기 십상인데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이해시키겠다는 착각에 빠지고 그런 착각이 깨지면서 좌절과 고통을 경험했다. 그런 고민이 영화를 촉발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를 돌아다보고, 타인과의 거리는 멀든 가깝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빛과 철>은 사고의 진실을 밝히려 충돌하는 인물들이, 몰랐거나 외면했던 죄와 대면하는 이야기다. 진실을 좇던 희주-영남이 그 사실에 마주해 자신의 맨얼굴을 목격하는 절망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려보고자 했다.

‘영남’역의 염혜란 배우와 ‘희주’역의 김시은 배우 간에 연기 스파크가 그야말로 탁탁 터진다. 그런데 사전 리딩도 하지 않았고, 촬영 전에 미리 만나지 않을 것을 부탁했다고 하던데.
작은 규모의 영화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주력할 점을 결정해야 했다. 미술이나 세트 등 보다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미니멀하게 꾸렸다. 두 배우 모두 원체 연기를 잘하는 분이지만 더 잘하길, 그래서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을 아프게 하길 바랐다. 사전에 대본 리딩을 하지 않은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막상 현장에 가면 연습과 달라지고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현장에서 찾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다. 리딩할 시간에 배우가 그 인물에 좀 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한 거다. 촬영하면서는 첫 만남에서 오는 스파크를 포착하고 싶었고 또 배우가 아닌 극 중 인물로 오롯이 대면하기를 바랐다. 세 배우에게 의견을 물으니 좋다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영남-희주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전반적으로 하이텐션인 인상이다. 강약의 균형을 고려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전체적인 구조를 흐름이 있으면 그 흐름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초점을 뒀다. 호기심을 가지고 다음은 무엇일지 따라가게 했다. 일부 영화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앞서 나가 이야기를 기다리곤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지점을 약간씩 비켜나가며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려고 했다. 긴장했다, 주시했다, 좀 더 몰입해서 보도록 말이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반에는 약하게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영화라는 차에서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리는 상태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이야기를 한 발자국 떨어져 보면, 너무 많은 우연이 겹쳐서 말이 안 된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몰아붙여 그런 의문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한 거다. 강에서 강으로 흐르는 전개가 인물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데 효과적이나 보는 입장에서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빛과 철>
<빛과 철>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은 가장 계산없이 상황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죄책감에서 제일 멀어 보이나 그 역시 죄책감을 느낀다.
<빛과 철>은 영남-희주, 같은 사고를 겪었지만, 정반대에 서 있는 두 인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할 접점이 필요해서 ‘은영’ 캐릭터를 구축해 삼각구도를 만들었다. 은영은 희주와 영남의 매개라 할 수 있다. 그를 통해서 두 사람은 상대에 관해 정보를 얻고 만나고 소통한다. 우리 영화는 한편으로는 은영이 주도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영남이나 희주나 진실을 감추고 덮으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한 은영의 고백으로 촉발돼 사건이 드러나고 앞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또 나이는 어리지만 극 중 가장 성숙한 인물이라 그를 통해 어른이 자신의 죄(잘못)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퇴장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퇴장이 없다는 것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은영’의 마음, 그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다. 관객이 ‘쟤는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도록 안배했다. 퇴장이 없다는 것은 희주-영남의 주변인인 오빠, 새언니, 과장, 경찰 등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든 안 하든 그 인물의 결말이 나온다. 하지만 은영만은 그렇지 않다. 그가 어떻게 됐는지, 어디로 간 것인지 남겨둬야 했다.

이유는.
희주와 영남은 교통사고를 둘러싼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에서 가해자-피해자 구도에서 그 위치가 계속 바뀐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서로 덧씌우려는 상황으로 몰고간다. 그러다가 남편을 놓친 것처럼 ‘은영’도 놓칠 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거다. “당신들, 지금 서로 탓하며 또다시 잘못을 되풀이할 거야? 은영은 어디 갔어?”라고 물어 그들이 은영을 찾으러 가길 바랐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 했다. (웃음) 영남-희주가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던 지점에서 고라니가 등장하는 엔딩이 인상적이다.
결말에 대해 허무하다와 생각할 여지가 많다로,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 같다. 정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단순히 고라니에 의한 사고라는 암시일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 의미 없는 진실공방을 멈추고 딸을 찾으라는 충고가 담긴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표현되지 않지만, 설정상 엔딩에 등장하는 고라니는 극 중반에 로드킬을 당한 새끼 고라니의 어미다. 새끼가 죽었는데도 모르고 찾아 방황하는 거지. 그런 모습이 희주-영남과 중첩된다고 생각했다.

작은 공장이 있는 삭막한 거리, 한산하고 스산한 도로와 주변의 야산 등 쓸쓸한 풍광이 영화의 정서와 잘 어울리더라. 언뜻 보니 부산인 것 같던데 주요 촬영지는.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촬영했다. 부산영상위원회 지원작이라 일정 부분은 부산에서 촬영했고, 작은 예산에도 김해, 정관, 창원, 동해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었다. (웃음) 공장만 해도 내부, 외부, 기숙사 등을 다섯 곳에서 쪼개 촬영한 거다. 도로 씬은 강원도 홍천이다. 한적한 산길에, 왕복 2차선으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곳에, 한쪽은 산으로 한쪽은 개방돼 있으면서 끝과 끝이 안 보이는 곳을 찾아야 했다. 조건이 까다롭지? 찾고 찾다가 마침내 홍천에서 발견했는데 중요한 오브제인 나무가 없는 거다. 나무가 꼭 한 그루가 있어야 했거든. 결국 경기도 일산에서 홍천으로 나무를 이송하기로 결정, 운반 트럭에 맞춰 가지를 잘랐다가 나중에 케이블타이로 다시 붙였다. 스탭들이 고생 많이 했다.

촬영하며 특히 힘들었던 장면이 있을까.
은영이 희주에게 사고에 대해 털어놓는 장면으로 영화의 변곡점으로 정말 중요했다. 그 장면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비가 필요했는데 홍천의 1월은 정말 추워 살수차로 비를 뿌려도 바로 얼어붙을 정도였다. 배우들이 옷 안에 잠수 슈트를 입어도 추위를 막기에는 부족해 비를 뿌려야 할지 망설였었다. 박시후 배우가 괜찮다고 했지만, 긴장감이 역력해 보였거든.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전혀 추운 기색 없이 한두 테이크만에 깊은 감정씬을 소화해냈다. 배우들께 정말 고맙다.
 차르-배종대 감독
차르-배종대 감독

독립영화를 작업하다가 <곡성> 등 메인스트림 영화의 연출부로 활동했다. 현장 경험에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았을 것 같다.
학교 다니며 단편과 독립을 습작처럼 찍었지 본격적인 작업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졸업 후 동기들은 보통 장편을 준비하는데 나는 그전에 상업영화 현장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현장으로 나가 두 편의 영화에 참여했다. 첫 번째는 신인감독의 영화였는데 신인감독이라 아무래도 시스템적으로 한계점이 확실했다. 상업영화는 단편/독립영화보다 (환경적인) 제약과 한계가 적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 그게 깨진 거지. 그래서 규모가 크고 네임드인 감독의 영화에 참여하고 싶던 참에 운 좋게도 <곡성> 연출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홍진 감독님이 워낙 거장이지만, 그럼에도 제약과 제한 안에서 가능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 감독님께 배운 것은 절대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다는 거다. 설득하든 구슬리든 스탭들이 같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갈 환경을 만든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안주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잃은 것은 정신적 피폐함과 육체? 현장이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 아닌 데다 <곡성> 연출부에 들어간 후 한달 동안 10킬로가 빠졌다니까! (웃음)

첫 장편을 마친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떠나보낼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다. 지치지 않고 올 수 있던 원동력은 은영-희주-영남을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와 주변이 일정부분 투영돼 창작된 인물이지만, 내가 그들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거든. 영화를 만들며 그 인물을 알게 됐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첫 영화라 넓은 시야로 현장을 챙기지 못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특히 스탭들과의 시간에 소홀한 점이 있었어서 앞으로는 주변을 좀 더 아울러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음… 고양이 ‘차르’와 노는 거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마치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 8시에 나가 저녁 8시에 들어오곤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정을 마치고 귀가해 냥이와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제일 좋다.


사진제공. 필앤플랜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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