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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한지민으로서 성장통 겪는 중 <조제> 한지민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하반신 마비에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자신을 고립시킨 채 살아가는 여인 ‘조제’(한지민)는 휠체어에 탄 채로 넘어져 있던 길거리에서 낯선 남자 ‘영석’(남주혁)의 도움을 받아 몸을 추스른다. 허름한 집 안에 구축한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에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경험해가던 ‘조제’는 무수한 두려움과 수많은 우려를 뒤로한 채, 자신과는 조금 다른 ‘영석’과의 사랑을 시작한다. 말수 적고 어두워 보이는 ‘조제’역을 맡아 사랑, 이별 그리고 성장과 어떤 변화를 표현해야만 했던 한지민은 “자기감정을 바깥으로 영악하게 표출하기보다는 눈빛이나 어떤 기운으로만 드러내는” ‘조제’ 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전한다. 인간 한지민이 경험한 개인적인 이별의 아픔 때문에 마음이 힘든 순간이나, 의지와는 다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는 때도 있었지만 <조제>는 늘 아플 수밖에 없는 이별이라는 경험에 약간의 굳은 살을 더해준 작품이 됐다고 말한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멜로 성장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김종관 감독의 <조제>에 출연했다.
어딘가에 (진짜) 살고 있을 것 같은 ‘조제’와 ‘영석’의 가공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 원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김종관 감독이 자기만의 색으로 담아내는 이야기는 어떤 결일지 기대감이 있었다.

당신이 연기한 ‘조제’는 하반신 마비와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오랜 시간 자신을 고립시켜온 인물이다.
‘조제’는 자기감정을 바깥으로 영악하게 표출하기보다는 눈빛이나 어떤 기운으로만 드러내는 인물이다. 늘 (감정이) 넘치지 않아야 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걸 이해하고 전달하는 게 다른 작품에 비해서 어려웠던 것 같다. <조제>를 다 보고 난 지금도 느리고 잔잔하게 표현해야 했던 ‘조제’의 세계를 과연 내가 다 알고 연기한 건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새로운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재미는 분명 있었던 거 같다. 매 신마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질문도 많이 드렸다. ‘좀 모자라게 표현했나?’ 물음표가 떠오를 때마다 감독님이 확신을 지니고 말씀해주셨다.


휠체어 없이는 걷지 못하는 신체를 연기했는데 그 준비 과정은.
가장 많이 아이디어를 냈던 부분이다. ‘조제’의 동선에 따른 움직임이 (시나리오에) 딱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휠체어에 올라타거나 차에 올라타는 장면 등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 레퍼런스 영상을 많이 봤고, 내 몸에 가장 익숙해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을 연습해 결과물로 보여드렸다. 감독님은 공간과 소리(사운드)로 ‘조제’에게 더 많은 색을 입혀 주셨다.

원작보다 더 어두운 면이 있는 인물로 묘사된 느낌이다. ‘조제’의 연령대도 더 높아졌다.
원작의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는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 동갑내기의 사랑을 보여줬다. 원작 개봉 당시 20대였던 나에게 감정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전달하는 ‘조제’가 굉장히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만 <조제>는 원작과 어떤 차별을 두는데 중점을 뒀다기 보다는, 김종관 감독님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나와 배우 남주혁으로 인해 생기는 질감에 더 집중하려고 했던 작품이다. 감독님은 내 (고유한) 결을 찾아주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다. 기존의 내 느낌에 감독님의 색이 입혀져 변화가 생기길 바랐다.

여러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제’는 자신을 도와준 ‘영석’(남주혁)과 사랑에 빠진다. 그 과정이 애틋하고 따뜻하게 묘사됐다.
‘조제’는 ‘영석’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가 떠난 뒤의 빈자리를 느끼고 그에 대한 감정에 확신이 선다. ‘조제’가 ‘영석’에게 “가지 마, 계속 내 옆에 있어줘”라고 말하며 붙잡을 때가 어찌 보면 ‘조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그 장면을 공들여 찍기 위해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신이 됐다. ‘조제’는 호랑이가 담을 넘어와도 이제는 무섭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영석’이 옆에 있어 주기 때문에 기존에 두려워했던 존재도 사라진 것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2019)에서 함께 연기한 남주혁이 ‘영석’역을 맡아 당신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눈이 부시게> 현장에서 (남)주혁 씨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배를 어려워하고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많은 신을 함께 연기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극 중 동갑내기로 출연해 부부 사이까지 연기하면서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녹여내야 했고, 그런 이유로 누구보다도 주혁 씨가 나를 편하게 대해 주기를 바랐다. 현장에서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고 용기도 많이 주려고 했다. 내가 촬영하지 않는 때에도 감정적으로 많은 격려를 해줬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한 감정도 서로 주고받게 됐고, 덕분에 이번 현장에서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편했다. 감독님 역시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편한 호흡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정작 ‘조제’와 ‘영석’이 이별하는 과정에서는 그 연유가 드러나지는 않는데.
영화에는 두 사람이 헤어짐을 결심하는 지점이 나오지 않는다. 나로서는 ‘영석’에게 ‘조제’가 큰 짐으로 느껴졌던 걸까 생각해봤던 것 같다. (관객이 그런 생각의 시간을 갖는 게) 감독님이 이별의 연유를 뺀 이유 같기도 하다.

‘조제’는 이별 후 어떻게 살아갈까.
‘조제’는 ‘영석’의 사랑으로 인해 분명 성장한 지점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떠나가는 ‘영석’의 마음이 무겁지 않도록 보내주려고 한다. 감독님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위스키를 수집하는 ‘조제’는 자기만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쓸쓸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조제’가 아닌 개인) 한지민은 이별에 그렇게 담담하지 못한 편이고, 마음을 비워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별하는 장면에서) ‘조제’의 심정을 담담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더라. ‘영석’이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감독님이 ‘컷’을 외친 기억이 있다.(웃음)

이별의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제’가 할머니를 잃고 난 뒤 (스마트폰 지도 앱의) ‘로드뷰’에 보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나도 어릴 때부터 걱정하던 한 가지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였는데…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 빈자리를 많이 느끼고 있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외국에 있는 언니와 아이들(조카들)까지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라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다. 인간 한지민으로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조제>를 촬영하면서 조금은 굳은살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같은 소속사 배우인 추자현, 이지아, 한효주가 힘들 때마다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감기처럼 지나갈 거라고 말해준 덕에 조금 더 성장한 것도 같다.

사진 제공_BH엔터테인먼트


2020년 12월 7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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