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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고자 한 원숭이 ‘레드피터’...<반도> 제작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2020년 7월 8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이창동 감독의 <시>,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 그리고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 장르도 연출자도 모두 다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뭘까.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가 프로듀서로 제작자로 참여한 작품이다. 어려서 영화가 지닌 언어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창작자를 보며 어떻게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진 그는 영화를 공부했고, 꼭 직접 연출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야별로 재능 있는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작업하는 것,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 자체로 짜릿하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그 형식을 구분하는 것은 이미 구식이 됐다고 말하는 이동하 대표,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는 최적의 포맷을 찾고 그에 맞춰 플랫폼을 선택할 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도 인간이 되고자 한 원숭이 ‘레드피터’가 상징하는 것과 포괄적으로 같은 질문을 담고 있을 것이다. <부산행> 이후 4년, 폐허가 돼 버린 반도를 무대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반도> 개봉을 앞둔 이동하 대표를 만났다.


#<반도>

<부산행>(2016), <염력>(2017)에 이어 연상호 감독과 함께 한 <반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포문을 연 <부산행>으로 크게 대중적, 작품적으로 성공한 것과 달리 <염력>은 상대적으로 아쉬운 결과물로 남았을 것 같다. 제작자 입장에서 어떤가.
<부산행>은 젊은 층이 좋아하겠고, 투자자가 손해는 안 보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라 해보자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사랑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해외 반응이었다. 그렇게 흥행할지 몰랐다. <염력>은 아픔도 애정도 큰 영화다. 준비하면서 우리가 나간 방향이 관객의 기대치와 간극이 있을 거라는 것은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그 격차가 컸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반도>는 어떨까.
<반도>는 두 전작보다 연상호 감독이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더 발현한 작품이다. 연 감독의 작품 스타일에 좀더 부합하면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 전작보다 훨씬 많은 관객이 좋아할 이야기라고 본다.

<반도>가 7월 15일 개봉을 확정했다. 관객과 업계 모두 기대가 크다.
코로나로 전세계, 특히 영화계가 힘든 상황이다. 전세계 동시 개봉을 준비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아쉽게 됐다. 사실 마블 시리즈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게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선판매돼야 하기에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반도>는 각국에서 선구매했고 국내 개봉에 맞춰 마케팅과 개봉을 준비하려 했으나 나라별 상황이 다르다 보니 힘들어졌다. 홍콩, 대만 등 몇몇 국가에서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것 같다.

<반도>에 대한 궁금증이 크다. 제작자를 떠나 완성본을 본 첫 느낌은 어땠나.
개인적으로 이미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됐다.(웃음) 의례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감독과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했고 수고했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지 장담할 수 없지만,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을 충분히 담았다는 생각이다. 보통 4월 말이나 5월 초는 마블 영화 때문에 한국 영화가 비켜 가는 시기인데 오히려 한번 붙어보고 싶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이게 꼭 흥행에 대한 자신감보다 그냥 관객에게 빨리 보여주고 영화에 대한 평을 듣고 얘기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현재 극장에 오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게 어려운 시점이고 조심스러운 시기나 준비한 대로 나아가려 한다. 다른 영화도 하루속히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산행>에 이어 역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빠른 시간 내 완성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는데 연상호 감독의 속도감이 남다른 것 같다.
작년 6월 크랭크인해 9월에 크랭크업했다. 올 3월까지 후반작업을 마무리해 칸영화제에 보냈고, 이후 6월까지 다소 미진한 부분을 보강했다. 연 감독이 부지런한 거야 원래 알고 있었지만, 요즘엔 더 놀라는 중이다. 원래 <반도>가 작년 4월 초반 정도 촬영이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배우(강동원) 스케줄 상 6월로 미뤄진 거였다. 근데 그사이에 드라마 <방법> 대본을 썼더라! 게다가 드라마 대본뿐만 아니라 영화 버전 시나리오도 썼다고.

드라마 <방법>은 올 2월부터 방영을 시작해 좋은 성적으로 3월에 종영된 바 있다.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했나 보다. <방법>을 제작한 레진스튜디오 변승민 대표는 연상호 감독을 ‘가장 부지런한 콘텐츠 노동자’라고 칭찬하던데…
콘텐츠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가사와 돌봄 등 모든 영역에서 부지런함과 탁월함을 자랑한다. 그 나이 또래의 가정이 있거나 자녀가 있는 후배들을 보면 가끔 연 감독이 하는 것 좀 보고 참고하라고 농담하곤 한다. 그때그때 집중력도 뛰어나고 모든 것을 올인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화감독을 떠나 느끼고 배우는 게 많다.
<반도>
<반도>

<반도>는 <부산행>의 KTX 열차를 벗어나 도심으로 나온 만큼 프로덕션 디자인이 중요했을 것 같다. <부산행> 팀과 이번에도 같이 했나.
프로덕션 디자인을 비롯해 <부산행> 팀들과 가능하면 같이 하길 원했고, 일정만 맞으면 다 참여해 주셨다. 조감독, 미술감독 및 미술팀, 음악 등 대부분 같은 멤버다. <부산행>, <염력>, <생일>까지 함께했던 이목원 미술 감독, 모든 VFX 팀, 촬영 감독이 함께 어떤 식으로 디자인할지 논의했다. 연 감독이 추구하는 그림을 외부 촬영할지 세트로 지을지 등 큰 윤곽부터 아주 디테일한 지점까지 의논하고 들어갔다. 외부 촬영은 비슷한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 다녔고, 내부 세트는 넓은 공간이 필요해 인천 파라다이스 호텔 옆에 있는 큰 세트장을 활용했다. 초반은 주로 인천에서 이후엔 대전 세트에서 많이 촬영했다. CG와 VFX 후반작업은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가 담당했다.

<반도>의 제작 규모는. 또 CG와 VFX 등 후반작업에 투입한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순제작비는 약 160억 정도이다. 특별히 후반작업 예산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CG 등 특수효과 비중이 높아 그에 따라 예산도 올라갔다.

<반도>가 185개국에 선판매됐다. 영화를 홍보할 때 흔히 몇 개국 선판매라고 소개하는데, 정말 그 수만큼의 국가가 구매했다는 건가. 영화를 구매한(할) 국가가 그렇게 많은가. 평소 궁금한 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질문으로 딴지 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웃음)
해외세일즈 전문 업체인 ㈜콘텐츠판다에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그런데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까. 구매한 국가에서 꼭 극장 개봉이 아니라 OTT 플랫폼으로 풀 수도 있으니 말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넷플릭스에서 마이클 조던 관련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너무 재미있게 보는 중인데, NBA 사무국 총재였던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마이클 조던이 뛴 10년 동안 NBA 중계를 보는 나라가 100여 개국에서 현재 217개국으로 증가했다는 거다. 그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성과였다는 거지. 한 사람의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어떤 문화적 확장을 이룬 인물로 마이클 조던을 조망하더라.

아무튼 세계에 국가는 많지 않나. 예를 들어, 어릴 때 해외에서 단편 작업하던 중 모리스 섬 출신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길 섬에 극장이 단 한 개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주로 상영한다더라.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라니! 한국 콘텐츠도 경쟁력을 갖췄으니 우리가 잘 모르는 작은 국가도 충분히 구매해서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마케팅의 경우 대체로 해외세일즈사에 전권을 위임하는 게 관례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NEW 같은 투자·배급사처럼 해외세일즈팀이 내재한 경우엔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해외세일즈사에 작품별로 의뢰한다. 해외 영화제 관련 사항도 그쪽에서 다 맡아 진행한다. ㈜콘텐츠판다가 진행 과정에서 어떤 딜이나 이슈가 있으면 알려주고 의견을 물어 오는 등 평소 우리와 의견 교환을 활발히 하는 편이다.

#레드피터

현업에서 오랜 기간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영화사 레드피터를 설립, <부산행>을 제작했다. 이후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생일> 등 좋은 작품을 이어오고 있다.
레드피터 설립 후 상대적으로 투자 유치에 큰 걱정 없이 진행해왔다. 운이 좋았던 거지. 파인하우스필름㈜ 이준동 대표님과 함께 일하던 때 알게 된 분들과 그 이후 새롭게 만난 분들이 많이 지지해 주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신다. 예를 들면 <생일>과 <미성년>은 작품적으로 의의가 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내가 투자자 입장이라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감독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선뜻 참여해 주셨다. 앞으로 <미성년>의 김윤석, <생일>의 이종언 감독이 멋진 작품을 이어갈 것이니 관심 있게 지켜봐 달라.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다.

회사를 책임진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거다.
대표가 됐다고 달라졌다기보다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느낌이다. 회사 대표라고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행정이나 법률적으로 귀찮은 일이 좀 많아졌다는 것? 그 외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서는 대부분의 프로세스가 예전과 마찬가지다. 이준동 대표가 프로듀서의 업무를 넘어 거의 제작자처럼 트레이닝한 덕분이다. 기획부터 프리프로덕션 그리고 개봉까지 항상 모든 작품의 전 과정에 함께해왔었다. 당시에 일은 힘들었지만 (현재 같은) 제작자로 나서는 데 큰 밑바탕이 됐다.

이준동 대표께 감사해야겠다! 빡세게 트레이닝(?) 해준 점에 대해. (웃음)
그렇지. 그래서 어제도 늦게까지 술을…. 별 이야기도 나누지 않으며 아주, 그냥, 오랜 시간 마셨다. 사무실도 바로 옆에 있고 말이지. <생일>도 이창동 감독님과 이준동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보여줘서 이종언 감독과 하게 된 거다. 현재 이준동 대표와는 아이템을 공유하고 준비 중인 프로젝트도 있어, 수시로 회의하고 긴밀하게 지내고 있다.
 <미성년>
<미성년>
 <생일>
<생일>

프로듀서로서 영화에 개입하는 한계선은.
개입은 주로 시나리오 단계에서 끝난다. 그때 이야기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한 주요 사항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후 캐스팅은 감독이 특별히 선호하는 배우가 있지 않은 한 함께 캐릭터에 맞는 최적의 배우를 찾는다. 지금까지는 놀랄 정도로 의견이 합치했었다. 프로덕션 역시 최적화된 최고의 스태프를 꾸리려 노력하고 세팅된 후에는 감독의 몫으로 돌린다. 감독이 뛰어난 크리에이티브들과 신나게 부딪치면서 훌륭한 결과물을 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거든.

‘레드피터’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뻔한 질문이고, 사실은 답변도 모 인터뷰에서 봤지만 직접 듣고 싶었다. (웃음)
어렸을 때 책을 아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으나 카프카를 좋아했다. 카프카 소설 중 故 추송웅 씨가 자주 공연했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의 원작 단편이 있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인데 그 주인공 원숭이에서 따왔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원숭이가 상징하는 바를 떠올렸고 우리가 만드는 영화가 포괄적으로 보자면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지금 이야기한 지점이 영화사 레드피터의 방향성이라고 봐도 좋겠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자문하곤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여러 의미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더 관심을 두고 질문하게 된다. 현 사태가 인더스트리 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독립영화 쪽은 어떻게 갈지, 후배들은 향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등을 고민한다. 영화 사이즈가 10억이든 200억이든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를 질문해보고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은 어떤 모습일까.
요새 어린이에게도 극장이라는 공간이 우리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공간으로 남을까. 요즘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OTT 업계와 디지털 플랫폼이 현재 활황이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극장에서 함께 공유한 콘텐츠라는 경험들, 작지만 힘 있는 영화들이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가 개인적으로 첫 번째 의문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에서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를 산다고 하는데, 독과점 때문에 통과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존이 극장을 매수하는 이유가 무얼까.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 상영보다 자신들의 영상 콘텐츠를 위한, 어떤 이벤트 혹은 프로모션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지 않을지라는 생각도 든다. 북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등 전 세계 극장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당연히 포맷의 다변화를 꾀할 것 같다.
예전부터 작가나 감독에게 얘기해 온 게 있다. 이야기라는 게 항상 극장 영화용 2시간짜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템에 따라 더 장시간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작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창작자가 한가지 방식을 고수하거나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거지. 꼭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든 뭐든 자신의 역량과 창의력을 펼칠 수 있다면 다양한 매체와 크로스오버가 가능할 거다. 지금까지 영화일이 쭉 이어져 계속하고 있으나 보다 이야기에 맞는 포맷을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지 시류에 맞춰 다변화를 (일부러) 시도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생각해 봐라. 현재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를 단순히 영화 제작사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있나. 영화든 드라마든 영상 콘텐츠에 관련된 회사로 바라보지 않나. 영화로 영역을 딱 정한다는 것은 구식이다. 이미 패러다임이 변한 지 꽤 됐고, 코로나로 인해 이런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시대가 온 거다. 구분자체가 고루한 생각이 된 거지. 북미의 경우 코로나로 극장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으로 공개를 선회한 작품도 꽤 있다. 국내 넷플릭스로 간 <사냥의 시간>처럼 말이지. 어떤 식으로든 관객을 만나는 것이 콘텐츠 생산자나 참여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제가 되는 콘텐츠는 좀 찾아보는 편인가. 개인적인 취향은.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찾아본다기보다 일적으로 보고, 일적으로 또 그 연장선에서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순수하게 흥미가 생겨 보기도 한다. 딱히 취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렸을 때 영화 공부할 시기엔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했었다. 전세계 영화와 감독들, 고전을 많이 봤다. 영화일 하면서는 웰메이드 영화나 아쉽지만, 시도가 좋았던 영화들 위주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최근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특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며 그 시절을 소환하는 방법과 ESPN(기자 주: 스포츠 프로그램을 주로 방영하는 미국의 글로벌 케이블 및 위성방송 TV 채널로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제작함)이 가진 방대한 아카이브 등에 관심 많다. 단순한 농구 영웅 조단이 아닌 인간 조단을 조명하는 스토리텔링 방식과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웠다.

글, 음악, 미술 등 세상과 소통할 매체가 여럿인데 왜 영화였을까.
중고등학교 때 운동, 글, 그림, 노래 등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봤다. (웃음) 영화에도 언어가 있고,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창작자를 보며 어떻게 누가 만드는지 또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궁금했었다. 이런 생각에 공부하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내가 직접 연출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아하는 작품에 어떤 역할이든 스태프로 들어가 참여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더라. 아주 멋지고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영화 업계에 이렇게 직업군이 많은 줄 몰랐다. 연출 쪽을 공부하며 단편 영화 등을 만들었고, 처음 프로듀서로 입문했을 땐 나를 연출자로 보는 제작자도 몇몇 있었지만, 연출은 공부와 또 다른 내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프로듀서 일이 좋았던 것은 분야별로 재능 있는 크리에이티브와 함께 작업한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 그 자체로 짜릿하고 의미 있고 재미있다. 힘들어도 즐거운, 내게 맞는 일이다.

오래 달려오다 보면 슬럼프 혹은 회의감이라는 방해물이 끼어들기도 했을 것이다.
슬럼프나 회의와는 좀 다른 감정이다. <여행자> (2009)를 하고 바로 <시>(2010)로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후 앞으로 또 어떤 시나리오에 마음이 움직일지 의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앞선 작품에 다 쏟아부었는데 이후 뭘 하지 한편으론 누가 또 함께하자고 할까 이런 감정이었다. 선택하기도 받기도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프로듀서로 한 편 한 편 영화를 만날 때마다 좋아서 올인했는데 이후 또 어떤 내적 동인이 생길지 혹은 누군가 또다시 내게 손 내밀지 이런 의문을 품다가 다음 작품을 만나 최선을 다해 만들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어떤 작품이 특히 힘들었나.
예산이 크든 작든 모두 힘든 지점이 있는데, 좀 더 어려웠던 것은 <여행자>였다. 예산도 작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이 많았다. 스태프들을 독려하고, 한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 의미도 컸지만 그만큼 고생도 컸다. 지금보다 낯선 상황이 많았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준비 중인 작품 소개를 부탁한다.
이준동 대표님과 2년 전부터 기획 개발 중인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또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게 여러 편 있는데 준비한다고 해도 알다시피 어떤 감독이나 제작자도 꼭 들어간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니 관객과 만날 것을 확신하긴 어렵다. 지금은 일단 <반도>를 잘 개봉한 후 기획 개발 중인 작품을 가다듬어 내년에 들어가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1월에 페루에서 파타고니아까지 남미 트레킹을 갔다 구정 무렵에 돌아왔다. 본가에 들려 그동안 쌓아 뒀던 물건을 다 가져왔다. 이사 다니며 채 정리하지 못했던 물건들이 계속 쌓이기만 했던 거지. 옷을 다 꺼내 거실에 쌓아 놓고 한 일주일은 쳐다보기만 했었다. 묵은 숙제를 앞에 놓고 미루는 심정이었는데 그 후 주말마다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다. 그간의 인생을 돌이켜보고 한숨도 쉬면서 버리기 시작해 두 달 넘게 정리했다. 배낭 하나 메고 트래킹 다닐 때는 정말 공기만 있으면 됐는데 뭔 물건이 그리 많은지.. 마침 코로나로 외출도 안 하니 주야장천 주말마다 물건을 버리고 분리 수거하는 등 정리하는 작업을 혼자 했다. 지금까지 가장 뿌듯한 작업이 아닌가 한다. 지금 한 7~80% 했다. 책과 자료 등 디테일한 정리 작업만 마저 하면 된다!


2020년 7월 8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 박광희(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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