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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대사도 만들어내는 적극성 <히트맨> 이이경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이경은 권상우, 정준호와 함께하는 코믹 액션 영화 <히트맨>에서 국정원 소속 특수요원 ‘철’역을 맡았다.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때는 <공조>(2016)에서 유해진의 부하 형사역을 연기할 때와 거의 다른 점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배역을 맡더라도 노력에 따라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여긴 그는 최원섭 감독과의 상의 끝에 최초 대본에는 없던 여러 대사와 행동을 준비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알 수 있는 대사 “마누라도”와 “기생충이야?”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적극적으로 자기 캐릭터를 구축한 이이경의 시도는 대부분 <히트맨> 속 장면으로 살아남아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권상우, 정준호와 함께 코믹 액션 영화 <히트맨>에서 국정원 소속 특수요원 ‘철’역을 맡았다.
최원섭 감독님께 전화를 받았다. 영화 <아기와 나>(2016) 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 시리즈 등 내 전작을 다 봤다고 하시더라. 이미 연출부와 투자배급사를 설득해 놨으니 무조건 자기와 작품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본을 보니 약 40회차 촬영까지 내 배역이 아역으로만 나오더라. 대사도 굉장히 간단하고 깔끔했다.(웃음) 이 공백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간 것 같다. 14일 <히트맨> 언론시사회에서 애드리브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현장 분위기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공조>에서 유해진 선배를 따르는 막내 형사 역할과 이미지가 겹치는 걸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동안 비슷한 역할 안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 허성태 선배에게 하는 말은 전부 애드리브다. 극 중 ‘제이슨’역을 맡은 조운 형이 나를 보고 배웠다고 하시더라. 처음 대본을 볼 때는 내 캐릭터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면서. 그런 말을 들은 것만 해도 성공이다.


때에 따라서는 그런 변동성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감독도 있을 텐데.
운이 좋았다. <히트맨>을 촬영할 때 최원섭 감독님은 항상 내게 자신감을 주셨다. 오늘 촬영이 내 덕에 잘 나왔다고 하시는 덕에 다음날 또 다른 준비를 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2013)라는 드라마를 할 때는 장나라 누나가 많은 걸 도와주셨다. 아무리 봐도 대본에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 감독님께 섣불리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서 해결해 주셨다.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2014) 때도 똑같은 상황에서 이승기 형님이 나서 주셨다. 그런 덕분에 촬영 중간중간 (의문점을) 해소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

밝은 이미지로 코믹한 연기를 다수 선보였다. 실제 성격도 긍정적인 것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운명론자다.(웃음) 그리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나. 선배들을 봐도 최대한 맑고 상쾌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히트맨> 촬영장에서 정준호 선배를 처음 봤을 때 뛰어가서 무릎에 앉았다. 나중에는 그렇게 앉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해하시더라.(웃음) 드라마 <칼과 꽃>(2013) 촬영 현장에서 최민수 선배에게도 그렇게 했었는데 굉장히 귀여워해 주시고 좋아하셨다.(웃음)

상대적으로 수는 많지 않지만 영화 <아기와 나>(2016) <괴물들>(2016)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2018~2019)처럼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붉은 달 푸른 해>에서는 아동 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며 정극 연기를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한 <아기와 나>는 내게 가장 애착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코믹한 대본이 많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장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건 복인 것 같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나 <별에서 온 그대>(2013~2014)에서도 작은 역할을 맡았을 뿐이지만 잘 된(흥행한) 작품을 경험했다는 것 역시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스스로 ‘럭키가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럭키 가이’…(웃음)
10대 때 방황을 했다. 우울증도 앓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8살부터 혼자 살았다. 노량진 옥탑방, 반지하, 공용화장실을 쓰는 무슨무슨 ‘텔’을 거쳐 원룸, 투룸, 쓰리룸에 살았고 지금 상황까지 왔다. 돈이 없을 때면 무조건 공사장으로 가서 소장님을 찾았다. 학생인데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보통은 거절하셨지만, 나를 안타깝게 보는 분들은 안전 모자를 씌우고 주변 정리를 시키셨다. 나무 잔재나 시멘트 찌꺼기를 치우면 당시 돈으로 10만 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라면 한 박스를 사두고 한 번에 3~4개씩 끓여 먹었다. 그런데 비참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고, 그마저 재미있었다. 그때 경험이 지금의 일을 하는데 바탕이 된 것 같다.

흔히 배우는 모든 경험이 자산이라고 하더라.
요즘에도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함께 20대를 보낸 친구 사이더라도 내가 그들을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도 나를 다 이해할 수 없더라.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인이다. 제일 친한 친구의 가장 큰 고민은 이직이었다. 고민 끝에 회사를 옮기더니, 연봉을 높여서 원래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반면 나는 평생 계약직 아닌가.(웃음) 작품계약서에서는 을이 아니라 병, 정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고민이 그만큼 다르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이야기 중인 영화와 드라마가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소식을 살짝 흘릴 텐데. (웃음) 그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작품 연락을 줬다는 게 참 감사하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건 기본이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제일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연기 못 한다’는 댓글인데… 칼 가는 사람에게 칼을 못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다 잃는 것 같은 기분 아닐까. 다행히 아직 그런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웃음) 늘 불안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가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밤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누워서 유튜브를 볼 때. 마음이 평온하다.

사진 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2020년 1월 22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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