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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스테파니’와 듬직한 ‘승준’을 오가며 <아빠는 예쁘다> 백서빈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클럽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스테파니'는 여성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엄격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용감하게 키워진 남자 '승준'이다. 동굴에 모여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던 <산상수훈>(2017)에서 난해하고 방대한 대사를 훌륭히 소화해 놀라게 했던 백서빈이 경계에 선 모습으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빠는 예쁘다>는 클럽 '하와이'를 배경으로 CD(Cross Dresser) 콘테스트를 주요 소재로 한 색다른 드라마다. <산상수훈> 이전 촬영한 영화 속에서 백서빈은 ‘스테파니’이자 ‘승준’으로 지금보다 좀 더 앳띤 얼굴로 말갛게 웃는다. 4년 만에 개봉하게 돼 기쁘다는 그를 만났다.

4년 만의 개봉을 축하한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 혹은 감상에 변화가 있다면.
작년 부산독립영화제에 초청돼 처음 봤는데 배우 입장에서 아무래도 연기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다. 이번에 다시 보니 영화 자체가 가진 아기자기함과 유쾌함이 잘 살아있다고 느꼈다. 2015년에 만들었으니 그간 감성 코드가 다소 변했을 수 있지만, 가족에 기반한 이야기라 유행에 민감하기보다 대중적인 공감도가 클 것 같다.

<아빠는 예쁘다>는 우연히 CD(Cross Dresser) 콘테스트에 출전하게 된 가장 ‘덕재’(김명국)와 그를 콘테스트로 이끈 ‘승준’(백서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승준’ 캐릭터를 소개한다면.
그는 ‘덕재’와 달리 단순히 취미로 여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다. 경계에 선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사는 친구로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에 대해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 아닌가.

준비 과정은 어땠나.
이태원 클럽을 방문하기도 했고 트렌스젠더분을 만나 이야기도 나눴다. 선뜻 자기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지만, 점차 마음을 열었다. 나 역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야가 넓어졌고 공감의 영역이 커졌다. 많은 것을 배웠다.

실제로 CD 콘테스트가 개최되나. 영화 보면서 문득 궁금하더라.
극 중 클럽 ‘하와이’ 멤버 중에는 게이, 레즈비언, 크로스드레서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등장한다. 콘테스트는 설정으로 실제 개최되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지향점이 다른 이들이 모여 화합하고 동료애를 나누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영화적 장치로 접근하면 좋겠다.

연기하면서 중점을 둔 지점은.
남자 모습인 평소나 여장을 한 경우나 모두 자신감 있고 당당해 보이려 했다. 말했듯 경계에 있는 캐릭터라 어떻게 중심을 잡아갈지 고민했고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여자가 되길 희망하는 분들과도 대화를 여러 번 했는데 숨거나 회피하기보다 돌파하고자 하는 면이 강했다. 그런 모습을 부각하고 싶었다.

‘스테파니’(극 중 ‘승준’의 여성 이름)로 다수의 여장을 소화했다. 가발, 드레스, 하이힐 등 평소 착용하기 힘든 아이템이라 남다른 느낌이었겠다.
연극할 때 분장하곤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화장하고 여성 모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굉장히 재미있었고, 서로 예뻐 보이려고 선배들과 경쟁적으로 치장하곤 했었다. 당시엔 정말 즐기면서 촬영했는데, 이번에 보면서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우리끼리 농담하기도 했다.

여성스러운 외모와 달리 근육질의 팔이 유난히 눈에 띄더라. (웃음)
그게 바로 감독님의 의도이자 생각이셨다. 완전히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경계에 있는 모습 말이다. ‘덕재’역의 (김) 명국 선배께는 살을 빼라고 하면서 내게는 오히려 근육질이면 좋겠다고 요청하셨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간직한 ‘승준’과 아들을 원했던 ‘덕재’ 간에 공감이 형성되면서 점차 서로 위로받는다. 담담한 표현이 좋았다.
과거 이야기를 털어 놓되 감정이 덜 드러나길, 절제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주문하셨다. 비록 속으로 여러 감정이 들끓겠지만 쉽게 표출하지 않는 것 말이다. 나 역시 그 톤과 결이 마음에 들었다. ‘승준’이 내질렀다면 오히려 감정을 공유하기 힘들었을 거다. 극 중 승준이 화장대 위에 놓인 아버지 사진 액자를 때때로 혼자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그런 행동을 통해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그리움, 죄책감, 안타까움 등 여러 감정이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

덕재의 딸 ‘정아’(손민지)는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로 인해 남성적인 의상을 즐기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아버지 덕재는 처음에는 강요로 여장을 했지만 결국엔 자발적으로 동참, 일탈에서 오는 어떤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지켜보며 ‘스테파니’(백서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덕재를 단지 클럽 멤버로만 여겼다면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았을 거다. 두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입장에서 승준은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마지막 콘테스트 시퀀스에서 ‘스테파니’가 아닌 ‘승준’으로 참석하고, ‘정아’는 아버지가 사준 원피스를 입는다. 극 중 가장 남자답고 여자다운 모습이다. 이건 내가 감독님께 제안한 부분인데 승준의 아버지가 남자다운 아들을 원했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아빠는 예쁘다> 스틸컷
<아빠는 예쁘다> 스틸컷
 <아빠는 예쁘다> 스틸컷
<아빠는 예쁘다> 스틸컷

영화의 소구점은 무얼까.
가족 전체 이야기면서 구성원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자의 정체성을 돌아보고 거기에 직면할 것을 독려한다. 한마디로 가족과 가족 구성원 모두 삶에 대해 직면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인 백윤식 선생님이 원체 유명한 연기파 배우로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시다. 정체성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자 했나.
배우인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봐왔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장서희 선배가 뽀미 누나로 활동할 때 뽀뽀뽀 유치원생이었는데 몰랐지? 그렇게 늘 가까이에서 느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결심한 것은 교환 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원래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그곳에서 연기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후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고 졸업 영화를 찍기도 했다.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연기하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을 뿐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아버지가 평소 화를 내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 편이시다. 그 점이 더 무섭기도 하다. (웃음)

아버지가 배우라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일 거다.
배우의 인생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확실히 흔치 않은 기회다. 여러 훌륭한 선배들이 계시지만 그분들의 연기를 볼 뿐 그 이면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선배로서 연기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법 즉 삶의 자세를 배운다. 이런 것은 장점이고, 단점은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니고 비교된다는 것? 스스로 극복해야지. (웃음)

평소 연기 조언은 하시는 편인가. 이번엔 뭐라고 하셨나.
말했듯 표현을 잘 안 하신다. 그래도 모니터링은 해주시는 편이고 영화 시사회 때는 매번 참석하신다. 요즘엔 아닌 점에 대해선 확실히 말씀하신다. 이번엔 딱 한 마디 하셨다. ‘어려운 연기한 거다’라고. (웃음)

동굴에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산상수훈>(2017)에서 여덟 청년의 리더격인 ‘도윤’을 연기했다. 난해하고 방대한 대사에 깜짝 놀랐고 그 소화력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다. (웃음)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쑥스럽다. 원래 기독교 신자지만, 대사 소화하는 게 쉽진 않았다. 하고 나니 종교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아직 내가 선택하기보다 캐스팅해주시면 감사한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어떤 명분을 가진 작품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오락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사회적 역할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마담 B>(2018), <뷰티풀 데이즈>(2018)를 연출한 윤재호 감독의 <파이터> 다.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접은 복싱 코치를 맡았다. 촬영은 끝났고 내년 상반기쯤 개봉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은.
살아있는 것?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 ‘나’라는 것이 인지되는 순간, 오늘 하루도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데 그때 참 행복하다.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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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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