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천직은 연기자, 남북교류는 ‘해야 할 일’ 평창남북평화영화제 문성근 이사장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문성근, 8월 개막하는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이사장 맡아

‘금강산 폐막식’ 무산됐지만… “내년 원산으로 수정 제안할 것”

‘인민이 즐길 수 있는 영화’ 주문하는 김정은, 북한 영화계 아직 못 따라가

남 영화계, 2000년대 초반부터 북에 망실 필름 공유 요청

북한 로케이션 촬영, 개성공단 부지 영화 촬영소… 남북 영화 교류 방안 구상 중

<트라비에게 갈채를>(1991) 보라, 영화만큼 서로 다른 삶 빠르게 이해시킬 수단 없어

“내 천직은 연기자”… 남북 영화계 교류는 ‘해야 할 일’ 하는 것뿐




오는 8월 개막하는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에서 초대 이사장직을 맡았다. 남북의 영화 교류를 지향하고 지원하는 성격의 영화제는 국내 최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방은진 감독(현 강원영상위원회 위원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겨울 올림픽에서 시작한 북한과의 대화, 교류, 협력 분위기를 국제영화제로 확산시킬 수 없겠냐고 말이다. 영화계에 사발통문이 돌았고 절대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나 역시 즉시 동의했다. 임권택 감독, 정지영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안성기 선배가 힘을 보탰으니 영화계 거의 전부의 뜻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당초 영화제 폐막식을 금강산에서 진행한다는 구상이었지만 무산됐다.
현실적으로 비용 문제가 어려웠다. 북쪽 영화인이 금강산으로 모이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유엔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주최 측인 우리도 지원할 방법이 없다. 내년 영화제에서는 수정 제안을 할까 한다. 금강산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강원도에 포함되는 원산이 폐막 장소로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김정은 주도로 원산에 개발한 대규모 관광단지가 완공 단계인 만큼 극장도 있을 것이다. 북 입장에서는 원산을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만드는 데 국제영화제가 효과가 있지 않겠나.

대중은 우리 영화계와 북한 영화계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6.15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영화인들과 평양에 갔을 때 우리 쪽에서 원했던 건 북한 로케이션 촬영이었다. 북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망실 필름을 공유해달라는 요청도 했었다. 북이 강세를 보이는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정도 이야기가 오가는 수준이다. 영화제를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는 북이 영화를 출품하고 영화제에서 토론회에 함께하는 방향으로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왼쪽부터 문성근 이사장, 방은진 집행위원장
왼쪽부터 문성근 이사장, 방은진 집행위원장

북한 영화계 규모는 어느 정도로 파악하는가. 2000년 당시와 지금의 변화는 어느 정도로 가늠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영화진흥위원회가 북한 영화 현황 관련 자료집을 냈는데 지난 9년 동안 모든 게 정지됐다. 그런 작업부터 재개해 공백을 메꿔야 한다. 다만 명확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최근 들어 북한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

올해 영화제의 ‘평양 시네마’ 섹션에서 상영하는 북한 영화를 살펴보니 전부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이더라. 최근 제작한 영화는 북한에서 영화를 만든 외국의 감독 작품들뿐이다.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김정은이 문화계에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의미 있는 걸 하되 인민이 즐길 수 있게 하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영화가 쉽게 만들어지겠는가. 여전히 관습대로, 옛날식으로만 하는 것 같다.

갑자기 세련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걸 잘한 게 현송월의 삼지연 관현악단이다. 우리 언론은 주로 그들의 의상 길이가 짧아졌고 남한 가요를 부른다는 두 가지 측면만 많이 다뤘다. 하지만 핵심은 그들의 발성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마치 이선희처럼 (부드럽게) 노래를 부른다. 사회주의에서 프로파간다는 대체로 발성이 앞으로 튀어나와 (찢어지는 듯한) ‘째째’ 소리를 내는데,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영화계도 아마 이런 종류의 변화를 주문 받는 것 같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 영화계가 우리 영화계와 교류를 원할 거라고 보나.
북한에서는 영화가 여전히 프로파간다 수단이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와의 협력이 필요한 단계가 됐다고 본다. 과거에는 북한에서 영화라는 분야 자체가 성역화되어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그런 사고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북 고위 관료가 북한 촬영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합작 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북 영화인도 단기간에 새로운 영화 제작 분위기를 익힐 수 있을 테니까. 또 과거에는 망실 필름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들은 척도 안 했지만, 지금은 되물어온다. 우리가 그런 걸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얼마나 가지고 있다고 추정하느냐 같은 식이다.


남북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고려 대상인가.
현재로서는 어려울 거로 본다. 서로 연기가 너무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1985년 즈음에 동시 녹음을 시작했다. 그래서 동시 연기, 즉 대사를 잘 못 하는 배우는 전부 사라졌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송강호, 설경구 같은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북한 영화는 여전히 후시 녹음을 한다. 배우들은 1950년대 정도의 연기를 한다. 앞으로 경제 협력 단계가 높아진다면 새로운 제안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제안인가.
개성공단 자리에 2~300만 평의 대규모 영화 촬영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북은 당초 개성공단 부지로 1,000만 평을 계획했지만 실상 100만 평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산과 강이 갖춰져 있으니 야외 촬영장으로 쓸 수 있고 부지가 넓은 만큼 세트장을 지을 수도 있다. 중국도 자금성을 실제 규모로 재현해놓은 세트장이 있지 않은가. CG 효과가 많이 필요한 영화를 위해 블루스크린을 쫙 펼쳐 놓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할리우드 영화도 그곳에 와서 촬영할 수 있다. 호텔과 위락시설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관광객 유치도 가능하다. 개성이 한류의 메카가 될 수도 있다.

북 영화계에 제안할 수 있는 방향은 무궁무진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동안 실현된 건 거의 없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북 영화인이 만나기로 한 건도 결국 무산됐다고.
베를린에 온 북 인사들은 (특정 권한을) 위임받은 책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토론 주제나 발표문을 미리 검토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부분이 걸림돌이 돼 결국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이 북미회담 타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 문화 예술 분야의 교류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른바 ‘여론 국가’에서는 문화, 스포츠 교류를 계속해 사회적 분위기를 띄워 놓아야 정치, 군사 회담 타결 같은 궁극적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데, 북이 그걸 간과하는 것 같아 아쉽다.

결국 늘 제안만 하고, 거두는 성과는 크지 않은 입장일 듯한데…(웃음)
문(익환) 목사는 같은 논리로 김일성 주석 설득했고 동의를 얻어냈다. 선대에는 그게 됐다. 나는 맨날 말하고 다니는데도 늘 안된다.(웃음) 그런 와중에 트럼프가 “(북한을 향한) 군사 작전은 처음부터 옵션이 아니었다”는 말을 해 무척 반가웠다. 개전하는 순간 남한도 같이 붕괴할 텐데, 그건 미국 대통령이 탄핵당할 만큼 위중한 사안 아닌가. 그러니 북한도 너무 걱정만 하지 말고 우리와의 교류에 조금 더 속도를 내도 된다고 본다.


국내 여론의 변화는 어떤가. 북한과의 교류에 부정적인 젊은 세대가 도래했다고 본다. 스포츠 경기에서 남북 단일팀을 형성하는 문제에도 썩 우호적이지 않다.
단일팀 관련 상황은 아주 놀라웠지만 동시에 반가운 현상이었다고 본다. 인권, 개인주의, 자기 성취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이 굉장히 커졌다는 증거다. 이제는 올림픽에서 단일팀을 구성하려면 협회마다 질문을 해야 한다. 과거 같으면 어림없는 얘기지.(웃음) 독재정권일 때는 그냥 하라면 하는 거였고, 민주정부에 들어서도 ‘민족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하는 거였으니까. 아마 앞으로는 ‘민족 단일팀’이라는 이름으로 선수들이 모이는 일이 적어질 것 같다. 그건 좀 아쉽다.

이미 그런 아쉬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 세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웃음) 통일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데도 거리낌 없다.
통일에 관한 거부감은 토론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그런 ‘정치적 통일’은 아마 영원히 안 올 수도 있다. 지금 말하는 통일은 서로 완전히 다른 나라를 유지하면서 경제 통합을 도모하는 방향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북한의 육지를 거쳐 중국과 단일 시장권을 형성하겠다는 거다. 지금은 부산의 신발공장에서 만든 신발을 북경까지 보내는 데 55일 정도가 걸리지만, 북한 땅을 거치면 기차를 태워 하루 만에도 보낼 수 있다.

남북 관계는 국제 정세, 국내 정치 상황, 사회적 인식 변화까지 많은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작동하는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영화제를 비롯한 문화 교류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거라고 보는가.
영화만큼 순식간에 다른 삶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분명 남북관계에 기여할 바가 많을 것이다. 서독사람들은 페터 팀 감독의 <트라비에게 갈채를>(Go Trabi Go)이라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 공산 세계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사고체계가 어떤지 알았다고 한다. 동독에 살던 ‘트라비’라는 사람이 통일 이후 ‘트라반트’라는 동독 자동차를 타고 유럽을 유행하는 로드무비다. 서방에서 받은 문화충격으로 좌충우돌하는 내용을 재미있게 다뤘다. 독일 지성계는 이미 서로 다른 사고 구조를 아는 데 있어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신이 그 역할의 선봉장에 있는 셈이다.(웃음) 거창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이 문성근의 소명인가.
문(익환) 목사를 보고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스크린쿼터제 건으로 소위 말려들었고, 참여 정도가 깊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정당까지 가버렸지.(웃음) 이제는 배우라는 본업으로, 내 천직인 연기자로 돌아왔다. 다만 남북 교류 중 영화 부문을 누가 맡아서 진행하겠냐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나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죽겠다는 정도는, 아니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잠시 생각하다) 연기가 될 때. 9~10월쯤 방영이 예정된 드라마 <배가본드> 촬영을 얼마 전 다 끝냈다. 백윤식 선배가 대통령 역이고 내가 총리 역을 맡아 청와대 내부에서 연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 양반, 참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본인이 집중을 하니까 나도 같이 집중이 되더라. 와, 정말 그렇게 연기를 주고 받으니 너~어무 너무 좋더라고.(웃음)

사진 제공_ 평창남북평화영화제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 (www.facebook.com/imovist)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