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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준비된 감독 <미성년> 김윤석 감독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막힘이 없다. 척하면 척이다. 이 장면은 이런 이유로 꼭 필요했고, 저 장면은 저런 이유로 들어냈다고 말이다. 바람피운 부모를 대신해 상황을 해결해 나가려는 두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미성년>에 관해 김윤석은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 없이 술술 설명해낸다. 과연 그간 어떻게 배우로만 살아왔던가 싶을 정도로 설득력 있고 힘 있는 연출의 변이다. 그가 설명하는 장면과 인물 그리고 감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묘사됐는지 이미 영화를 통해 확인한 관객이라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데뷔작을 준비했다는 그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윤석은, 완전히 준비된 감독이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연출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좋은 배우라고 늘 연출을 하는 건 아니다. 당신이 메가폰을 잡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때부터 연극 연출을 했고 희곡 대본을 공동 집필했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말보다는 ‘연출’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오래전부터 연출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연극에서 자연스럽게 영화로 넘어왔고, 언젠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타나면 영화 연출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시작도 하지 않아 놓고) 허언을 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웃음) 묵묵히 작업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미성년>이다.

2014년 본 연극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당시 젊은 연극 연출가들이 선보이는 소극장 창작극에 참석했다. 대중에게 공개한 공연이 아니라, 어떤 작품으로 지원금을 신청할지 내부적으로 선정하는 과정이었다. <미성년>은 그 중에서 하나를 발전시킨 작품이다. 당시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두 고등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고 명쾌하게 느껴졌다. 바로 원작자인 이보람 작가를 만났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의 인상이 독특하다는 데 동의한다. <미성년>은 바람 피운 각자의 아빠와 엄마를 대신해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두 고등학생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의 이야기다. 불륜이라는 소재는 흔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각을 담은 작품은 흔치 않다. ‘명쾌한 느낌’에 관해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극 중에서 ‘주리’가 그런다. “니네 엄마가 우리 아빠를 꼬셨고 지금 불륜이 진행중이다. 너 그거 아냐” 그러니 ‘윤아’가 말한다.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 다시 ‘주리’가 말한다. “임신을 했어? 몇 개월인데?” 아마 불륜의 당사자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굉장히 뜸을 들일 것이다. 자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야기하니 군더더기가 없더라. 사건 자체를 밀고 나가는 힘이 굉장히 좋았다.


10대 여자 고등학생 두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아는 게 필수적이었으리라고 본다.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조사하고 구현했는가.
실제 고등학생을 많이 만났다. 청소년 심리 상담을 하는 곳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부모가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청소년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결과는 정확하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쪽은 굉장히 불안해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를 지켜봐 왔기 때문인지, 혹시라도 (부모님의 이야기가 알려져) 자신이 왕따의 당사자가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 했다. 대학 진학을 포함해 자기 인생을 이미 설계해 뒀는데 뜻하지 않은 부모의 불륜 때문에 자기 인생이 무너질 것 같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한편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그건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관심이 없다는 식이다. 이런 반응에는 약간의 분노도 포함돼있을 거라고 본다. 이런 자료 조사에 살을 붙여가면서 두 주인공과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성향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벌여 나간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건 다소 충격적인 엔딩 신일 것이다. ‘대원’(김윤석)과 ‘미희’(김소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자 그 뼛가루를 우유에 타서 나눠 마신다. 이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그 결말을 서른 번 정도 고쳤을 것이다. 이보람 작가의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 영화에서 ‘못난이’(죽은 아이)의 얼굴을 보고 교감을 나눈 유일한 두 사람은 ‘주리’와 ‘윤아’다. 어른들은 ‘못난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니 어른들은 ‘주리’와 ‘윤아’가 어떤 방식으로 ‘못난이’와 교감하든 아무 말도 할 자격이 없다.

그런가. 관객 입장에서는 연출가의 허심탄회한 생각을 조금 더 듣고 싶을 거라고 본다. 그 장면의 의미를 조금 더 설명해줬으면 한다.
아마 많은 예산을 투자 받은 영화였다면 (투자사의) 강력한 반발이 들어왔을 수도 있을 법한 결말이다.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될 때 얼른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신인 감독의 패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함께 관람하던 기자들의 기함 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제발’, ‘안돼’라고 소리내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웃음)
그 장면을 싫다고 느끼는 건 보는 분들의 자유다. 하지만 이런 의미는 있다고 본다. 어른들이 아무리 숨겨도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런 자격도 없이 그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아름다운 생각이다.(웃음)

당신이 연기한 ‘대원’역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는 이 모든 사건을 촉발한 주범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도무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내는 법이 없다. 아내에게는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딸과의 만남은 아예 피하고, 자기 아이를 낳은 여인이 머무는 병원을 찾지도 않는다.
‘대원’이라는 이름을 지을 때 군부대 혹은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라는 뜻을 생각했다. 우리의 나약함, 무기력함, 우유부단함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길 바랐다. 물론 그를 완전한 악당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관객의 분노를 일으켜서는 이 영화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야기의 모든 초점은 네 명(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에게 두고 ‘대원’은 철저히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하게 했다. 콘티를 그릴 때부터 그는 옆모습이나 뒷모습뿐이었다.

당초에는 ‘대원’역을 당신이 직접 연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배우에게 맡기려고 했다고 들었다. 후보에 올랐던 배우를 알려줄 수 있는가.
절대 말 못 한다.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다.(웃음) 그렇게 기능적으로만 활용할 배역을 다른 배우에게 주는 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내가 맡게 된 것이다.

기능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대원’은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봤다.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는 내 남편이나 내 아버지를 떠올릴 것만 같은…(웃음)
정확히 그거다. 그걸 원했다. ‘대원’을 완전한 악당으로 그려 놓으면 보는 사람은 “저 나쁜놈” 하고 말 것이다.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적당히 빈틈을 보이는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묘사하면 그 인물에 나 혹은 내 주변 사람의 모습이 투영됐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종종 봐 왔나.
TV 안에서 종종 본다. TV 밖에서도 물론 본다.(웃음) 아니, 나이가 40 혹은 50이나 된 사람이 무슨 놈의 ‘생각할 시간’이 아직도 필요한가. 왜 그렇게 상황을 피하고만 있는가. 그 이면에는 결국 누군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무책임한 회피 성향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상황을 수습하는 건 두 아이들이자, ‘대원’의 아내 ‘영주’(염정아)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어른다운 어른처럼 보인다.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인 ‘미희’의 병실에 찾아가고, 그의 딸 ‘윤아’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최소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책임지려 한다.
인물의 내면과 그 고민을 드러낼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염정아에게는 배우 출신 감독이 가할 수 있는 가장 못된 행동을 한 것이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지만 피할 수는 없는 장면을 다 집어넣어 놨으니까.(웃음) ‘영주’가 ‘미희’와 만나는 병실 장면은 찍으면서도 스스로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다. 무슨 확인 사살도 아니고…

그럼에도 ‘영주’를 그들과 만나게 했다.
그게 가장 용기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나고 대화하지 않으면 결국 증오가 생긴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감정이다. ‘영주’는 비록 ‘미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상대와 연대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남겨둔 인물이다.

당신도 그런 노력을 하는 편인가. 곤란한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와 대면하려 한다든지…
그런 편이다. 나이가 들면 자기가 편한 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친구가 줄고 한정된 사람만 만난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아무도 안 만나면서 사는 게 속 편하고 좋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외로운지 눈에 보인다. 자신을 찾아온 게스트가 너무 좋아서 있는 먹을 것 없는 먹을 것 다 꺼내 놓는다.(웃음)

비슷한 생각을 나도 한 적이 있다.(웃음)
소통이라는 건 정말 물 건너간 건가? 비슷한 또래끼리도 서로 만나려고 하지 않는 상황인데 나보다 더 아래 세대와는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하나?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을 때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냥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일 것 같지만, 정작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많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대원’이 딸 ‘주리’를 피해 도망가는 에스컬레이터 장면이라든가, 배우 이정은이 등장해서 ‘대원’의 삥(?)을 뜯는 장면이라든가…
어느 날 투자사에서 작품 응원 차 음료수를 사 들고 촬영 현장에 찾아 왔는데 ‘대원’이 도망가는 에스컬레이터 장면을 보고 뒤집어지게 웃는 거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오히려 걱정이 됐다. 이 영화의 무기는 배우의 섬세한 연기와 표정이다. 관객이 완전히 뒤집어져서 난리가 날 정도로 웃는다면 다음 장면의 감정으로 넘어가는 데 썩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았다. 지금 버전 보다 세 배는 더 웃길 자신이 있었지만, 그저 기가 찬다! 정도로 피식 웃는 정도를 바랐기 때문에 완급 조절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에 관한 모든 질문에 정말 ‘턱턱’ 대답해낸다. 너무 완벽하게 대답해내서 조금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감독들도 가끔은 여러 질문 앞에서 고민하곤 하던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만든 애정 가득한 영화다. 영화 속 장면에 관한 설명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물론 배우로 인터뷰에 임할 때보다는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내가 등장하지 않은 장면에 관해서도 말해야 하니까. 그래도 배우일 때보다는 질문이 구체적이어서 좋은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웃음)

‘신인 감독의 패기’로 밀어붙인 작품이 관객 앞에 공개되는 시점이다. 아쉬운 점이나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은 없나.
투자, 공동제공, 배우, 감독 등의 정보를 주는 크레딧을 어디에 넣을까 고민하다가 영화의 맨 뒤로 뺐다. 이야기가 끝나고, 극장이 암전되고, 첫 번째로 뜨는 글자는 ‘염정아’ 그다음은 ‘김소진’ 그다음은 ‘김혜준’과 ‘박세진’ 그다음에는 ‘감독 김윤석’이라는 글자가 떠오르는 걸 계획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무엇인지.
이야기가 끝난 뒤 극장은 암전되는 게 불이 켜지더라.(웃음) 나는 엔딩 크레딧이 등장하는 순간 배우들이 굉장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연출을 했는데… 달려 나가서 불을 끄라고 할 수도 없고, 완전 망했다.(웃음) 짜증이 났지만 어쩌겠나. 신인 감독의 시행착오였다고 본다.(웃음) 앞으로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차례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곰곰이 생각하다가, 웃으며) 얼마 전 배우들과 모여서 와인을 마셨다. 큰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굉장히 행복했다. 그동안은 늘 남자 배우들하고만 함께여서 그랬나?(웃음)

사진 제공_ 쇼박스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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