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킹덤>은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만남으로 일찍이 기대를 모았던 좀비 사극.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주역인 주지훈에게 만족도를 묻자, 5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낸 동시에 한편으론 떨리다는 주지훈을 만났다.
<킹덤>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도는. 작품 자체로 흥미진진한 건 물론이고 당신이 멋있게 나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아주 만족한다. 5점 만점에 10점 정도? (웃음) 내가 멋있게 나왔다니 감독님과 작가님께 선물이라도 드려야겠다.
반응을 좀 찾아봤는지?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
SNS 등에서 댓글을 찾아보고 있다. 댓글 중 ‘멋없는 모자를 쓰면 일찍 죽는다’, ‘신발은 벗지만 모자는 안 벗는다’ 등등 흥미로운 표현이 많았다. 또 ‘K-좀비’라는 표현이 새로웠다. 어느 사이트에서는 세계 유명 좀비물을 넘어섰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그렇게 언급되는 거만도 감동이다.
넷플릭스 측 피드백은 어떤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긴 했는데…. 알다시피 넷플릭스가 수치 공개를 안 한다. 그런데 얼마 전 공개한 산드라 블록 주연의 <버드 박스>가 4,500만 명 찍은 건 알려주더라. 뭐, 우린 그 정도까진 아니라는 거겠지? (웃음) 한때 IMDB(Internet Movie Database)에 최고 11위까지 올라갔었다. 1~100위 안에 아시아 작품은 <킹덤>밖에 없었다.
평소 출연작 개봉 때도 관객의 반응을 찾아 보는지?
당연하다. 생계와 관련된 건데! 반응이 호의적이면 기분 좋으면서 힘을 얻고 반대인 경우는 슬프지만, 개선점을 찾으려 한다.
바람직(?)한 자세다. (웃음) 그렇게 관객의 반응을 모니터링 한 결과 가장 크게 개선한 점이 있다면.
그때그때 반응이 워낙 다양하다. 영화에 대한 평은 좋은데 흥행이 안 되는가 하면 반대로 관객은 많은데 평이 안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런 현상을 지켜보며 무엇이 좋은 작품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뭔가.
미술에 정말 문외한이지만 해외에 나가게 되면 가끔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찾아가곤 한다. 그럴 때 희한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들이 있는데 알고 보니 세계적인 명화로 누구나 사랑하는 작품이더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사전 지식이 없던 상태에서 감탄하며 들은 곡이 이미 명곡인 경우가 많았다. 결국 정말 훌륭한 것은 누구나 좋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대중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 평가를 바탕으로 개선하려고 시도하지만, 영화가 나 혼자만의 완성물이 아닌지라 감독님 이하 기타 여러 스태프와의 이견 조율이 필요하고 어디까지 내 의견을 밀고 나갈지가 관건이다. 관계를 해칠지 모른다는 우려로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아서 결과물이 잘 못 나온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매우 후회한다. 지금까지 그런 작품이 몇 편 있다.
좀비물에 첫 도전인 데다 사극이다. 캐스팅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
일단 한다고 해놓고 좀 고민했었다. 좀비 사극이라고? 이게 될까 싶었거든. 마치 <매트릭스> 영화에 처녀 귀신 나온다는 거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김은희 작가님과 김성훈 감독님을 워낙 신뢰하기에 믿고 갔는데, 촬영하며 눈으로 막상 보니 의의로 괜찮았다.
<킹덤>에 등장하는 좀비의 특징은.
그들은 먹을 게 없어서 인육을 먹게 된 결과 좀비가 된 아이러니하고 불쌍한 존재다. 아이를 지키려던 엄마가 결국 아이를 해치게 되는 가련한 크리처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안식을 찾지 못한다. <킹덤>의 경우 정서적 공포가 크지만 직접적 표현은 별로 없다고 본다. 가령 부모가 아이를 덮치려는 순간 장면이 전환된다. 감독님이 노골적으로 잔인함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셨다. 연출자가 피사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신기하게도 카메라를 통해 드러나는데, 감독님이 그들을 괴물이 아니라 부모 자식 그리고 이웃으로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양적으로는 외국 좀비처럼 창백하고 송곳니가 길고 이런 모습이 아니라 질감이 다르지 않던가. 한국화를 잘한 것 같다. 또 외국 좀비와 달리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매우 빨리 달리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당신이 연기한 왕세자 ‘이창’(주지훈)은 백성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에 눈을 뜨고 각성,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인물이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가볍게 생각해 보면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지인이라도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 마음이 확장됐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세자 역할을 몇 번 해봐서 자료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궁궐 안에 사는 세자는 백성의 현실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가 굶주린 백성을 대면했으나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2부 촬영에 들어갔는데, 1부 촬영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또 2부 대본이 이미 다 나왔다고 들었는데, 시즌 2가 끝인 것은 맞나?
1부를 촬영하고 1년이나 지났다는 게 전혀 실감이 안 난다. 그냥 일주일 정도 쉬었다 들어간 느낌이다. 촬영에 새로 들어갈 때마다 각오는 항상 똑같다. 내 것에 충실히 잘하자, 오지랖 떨지 말자, 뭐 이 정도다.
비행기에서 대본을 봤는데 계속 ‘정말? 정말?’ 이러면서 읽었다. 글쎄… 2부에서 끝날까? 흥미로운 건, 유명한 미드 <왕좌의 게임>도 주인공들이 계속 죽어 나간다. 내가 살아 있을까, 과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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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드라마에 일가견 있는 김은희 작가와 섬세한 연출로 유명한 김성훈 감독과 작업했다. 호흡은 어땠나.
김은희 작가님은 한마디로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내는 분이다. 평소 관심이 없으면 어렵고 전문적인 분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보는 사람도 연기하는 사람도 공감하도록 쉽게 쓰신다.
김성훈 감독님의 경우 현장에서 우리끼리 ‘선비님’이라고 불렀다. 공감 능력과 설득력이 엄청나시다. 큰 소리 한번 없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조근조근 이야기해 다 얻어 내신다.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절대 밉지 않고 뭔가 잘 해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분이다. 일하다 보면 득과 실을 따져야 할 때가 생기고 그런 경우 불편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보통 하고 싶은 말을 못 해 불편함이 쌓이는데 감독님께는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공작>(2018) 인터뷰 당시 힘듦에 대한 개인적인 역치가 높다고 했었다. <킹덤> 촬영하며 힘들었던 점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 작업의 경우 당시엔 힘들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기억만 남는다. <공작>과 <킹덤> 모두 그렇다. <공작>이 심리적 압박감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진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촬영장에 산소호흡기가 있을 정도였다니까! 극 중 말과 함께 뛰는 장면이 있다. 내가 키가 큰 탓에 열심히 뛰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 좀 억울한데, 정말 한 번 뛰고 나면 대자로 뻗을 지경이었다.
<킹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데 기존 작업 환경과 차이점이 있던가.
오해를 살지도 몰라서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넷플릭스라고 해서 무조건 돈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20억 규모의 작품에 20억을 투자하는 거지 2억짜리에 20억을 주는 식은 아니다. 다른 사업 분야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영상 사업과 플랫폼이 넷플릭스의 본질인 만큼 투자사의 PPL 등 간접 광고나 홍보면에서 자유로운 것 같다. 또 해당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 관용적이고 열린 태도가 좋았다.
한국 드라마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있어 나름 사명감을 가졌을 것 같다.
감독님과 작가님은 한국적인 것을 알린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에 별생각이 없었다. 다만 공개 이후 우리나라 풍경과 건축물이 아름답다는 반응을 접하면서 우리 문화를 알렸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당신은 드라마 <궁>(2006)을 통해 한류를 개척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류에 대한 생각은.
그런가. 이제는 <궁>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TV 채널 돌리다 혹시 나오면 못 보고 외면했거든. 연기도 못하고 촌스러워서 말이다. 지금은 나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니 귀엽기도 하고 잔주름이 하나도 없는 게 완전 아기더라.(웃음)
한류 콘텐츠가 앞으로 개선할 요소가 있겠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방탄 소년단’을 봐라. 한국을 전 세계에 이토록 알리고 있는데 지금도 상을 많이 받고 있지만 아무리 많이 줘도 부족할 지경이다. 제작자나 감독분들이 워너, 폭스, 디즈니 등에서 제안을 많이 받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한국적인 색을 유지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세계에 널리 알렸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해외에서의 인기를 실감한 경험이 있다면.
얼마 전 발리에 갔었다. 규모가 작음에도 공항에 20~30명이 나와 계시더라. 내 짧은 영어로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물어보니 <신과함께>와 <킹덤>을 봤다는 거다. 당시 <킹덤>이 공개된 지 이틀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라 그 빠른 반응에 놀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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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 전· 후편(2017), <공작>(2018), <암수살인>(2018)에 이어 <킹덤>과 드라마 <아이템>까지 그야말로 <킹덤> 속 말같이 전력 질주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계속 주는데 안 할 이유가 없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니 예전 드라마 <궁> 이후 청춘물을 좀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그런 청춘물을 하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 체력이 허락하는 한 다하려고 한다.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킹덤> 촬영하면서 많이 뛰느라 살이 좀 빠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날이 추워 뛰는 만큼 고열량으로 많이 먹었다. 특별히 식단 관리는 따로 하지 않고 보통 운동을 열심히 한다. 그렇다고 왕(王)자 근육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체중이 모델로 활동할 때 보다 20킬로, <키친>(2009) 촬영 때 보다 12킬로 정도가 더 나가는데 그때그때 작품의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편이다.
제2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기’란 뭐라고 생각하는지. 또 자신의 장점을 꼽는다면.
인기라는 게 오라고 한다고 오지도 가라고 한다고 가지도 않는 것 같다. 그냥 그 자체로 감사하려고 한다. 사실 <궁> 이후 갑자기 쏟아진 인기에 무섭고 버거웠고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다. 누군가 찾아와서 인사해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세월과 경력이 쌓이며 대처할 방법을 터득했다. 예전에 선배님들이 인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 점점 피부에 와닿는다. 지금 인기 있다면 깊이 감사하고 언젠가 갈 때 쿨하게 보내주려 한다.
내 장점이라…내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보는 사람이 못 느낀다면 아무 소용없겠지만, 굳이 꼽는다면 유연한 사고로 잘 소통한다고 할까. 유명한 감독님 혹은 내로라하는 선배와 함께 작업해도 어려워하지 않고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게 좋게 보자면 유연하고 소통에 능한 건데 한편으론 눈치 없고 줏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사이 균형을 잘 맞추려고 한다.
<킹덤>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극 중 ‘영신’(김성규)을 연기한 성규와 촬영하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영신’은 이야기의 구조와 서사에서 또렷하게 주목받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배우로선 행운인 역할이다. 둘이 많이 걸으며 가끔 그의 멘탈 케어를 해주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성규가 아직 카메라 앞에서 울렁인다고 하길래 나도 그렇다는 식의 대화를 자주 했는데 문뜩 내가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6개월 전만 해도 힘들지 않았냐고 질문받으면 괜찮았다고 대답하곤 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못 느끼는 척 혹은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 막고 있었던 거다. 이제 시간을 내서 내 스스로를 AS (?)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또 힘든 점을 인정하니 촬영하면서 훨씬 수월해졌다. 예를 들면 학생 때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점프를 잘 못 하는데 사람들은 내가 키가 크니 점프력이 아주 좋을 거라고 기대한다. 예전에는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해냈다면 이제는 내 사정을 밝힐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내가 힘든 부분이 있으면 감추는 게 아니라 털어놓으니 함께 해결책을 찾게 되더라.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드라마 <아이템>은 방영을 시작했고 <킹덤 2>는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작품이 있다.
최근 행복한 일이 있다면.
최근은 아니고 지난 3~4년 동안 좋은 사람이 내게 축복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들과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요즘이다.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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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