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세골>에서 미혼의 만삭 임신부를 연기한 그는 2005년의 비범한 데뷔 이후 지금까지 이미지 변신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배우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어린 시절 수년간 피난소와 가설 주택 생활을 겪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힘든 삶을 살았을 누군가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언니들과 동생 덕에 엇나가는 삶을 택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끝에, 성숙한 연기를 선보일 준비가 된 배우의 단단함을 본다.
<세골>은 풍장 뒤 남은 망자의 뼈를 다시 꺼내어 씻는 오키나와 아구니 지방의 독특한 장례 풍습을 다룹니다. 영화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세골 의식을 위해 온 가족이 오키나와로 모입니다. 이 희귀하고 신비한 소재가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소재가 어떻든 관계없이, 테루야 토시유키 감독의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출연할 생각이었습니다. 연예계 생활을 하는 동안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라면 어떤 이야기든 임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감독님은 직접 오키나와 지역 사람의 증언을 듣고 관련 영상을 찾아가면서 충분한 취재를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내용을 잘 전달받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간 준비한 내용을 리허설한다는 마음보다는 마치 진짜 그 인물인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이 맡은 ‘유코’역은 만삭의 임신부입니다. 미혼인 그가 홀로 고향에 나타나자 친오빠 ‘츠요시’(츠츠이 미치타카)는 크게 꾸중합니다.
아무래도 친오빠 역을 맡은 츠츠이 미치타카와 연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격앙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종 격렬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럴 때마다 그간 봐온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을 받았어요.(웃음) 한국 작품이 드러내는 극한 상태의 감정 표현은 배우의 연기 면에서 아주 훌륭한 도움을 줍니다.
아무래도 일본 작품보다는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나요.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2008)를 좋아해요. (한국말로) “XX놈아”. 이 대사를 엄청 많이 하더군요. 하도 많이 나와서 외워버렸어요.(웃음) 그리고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2011) 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따로 과외를 받는 건 아니지만 한국 영화를 본다든지, 한국 여행 전에 책에 나와 있는 표현을 연습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말로) “얼마예요?”,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 “잘 먹겠습니다!”(웃음). 일본에 여행을 온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어를 쓰려고 노력해줄 때마다 저는 굉장히 기쁜 마음이 들어요.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한국말을 열심히 합니다. 제 말을 듣는 한국 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세골>에서는 오키나와 사투리를 써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평소 잘 쓰지 않는 언어를 훈련하는 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던가요.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는 관서(간사이)지방 출신이라 일본인 중에서도 억양이 굉장히 격렬한 편이에요. 하지만 오키나와 사투리는 억양이 매우 완만합니다. 그런 걸 제대로 표현해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쨌든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웃음)
<세골>은 가족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게서 멀리 떼어놓고 싶은 존재지만, 때로는 서로 함께하며 상실과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 생명을 맞아들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힘들 때 가족으로부터 기운을 얻기도 하는지요.
음. 저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요. 자매만 다섯입니다. 언니 세 명과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아마 그들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소위 엇나가는 삶을 택하지 않고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니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었습니다. 자기들이 타고 다닐 버스비까지 아껴야 할 형편이면서도 동생들의 생일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 줄 때면 요즘 유행하는 물건을 사주기 위해 애를 썼지요. 그럴 때마다 인간적으로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존경합니다. 제가 연예인 혹은 배우가 되려고 한 것 역시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자매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한국말로) “괜찮아요”(웃음) 그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받은 것을 조금씩 돌려줄 수 있는 위치가 되어서 뿌듯할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웃음) 사실은 오래전 우리 자매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들께도 은혜를 갚고 싶어요. (기자 주: 미사키 아야메는 1989년생으로 7살이던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겪어 큰 피해를 입었다. 1년간의 피난소 생활과 4년간의 가설 주택 생활을 경험했다.) 또 나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께도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잔잔한 로맨스 <빛나는>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기 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실사판에 출연해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이며 주로 누구와 상의하나요.
(함께 온 매니저를 가리키며 한국말로) “아저씨.”(웃음) 저와 10년 이상 함께 일한 매니저입니다. 아무래도 엔터테인먼트나 매니지먼트 업계에는 어두운 면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제가 몸담고 있는 호리프로라는 회사는 꽤 투명한 편입니다. 회사와 매니저가 권해주는 작품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기자 주: 호리프로는 1960년에 생긴 일본 매니지먼트 회사로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에 ‘히가시’역으로 출연한 츠루미 신고가 소속돼 있다.)
데뷔 후 지금까지는 <진격의 거인>처럼 액션으로 표면적인 강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빛나는>으로 그간의 작업을 총괄하고 배우 생활의 제1막을 내린 것 같습니다. <세골>은 제가 직접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 아닐까요.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년에 촬영할 영화에서는 <세골>과 마찬가지로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언젠가 한국에서 제작되는 작품에 출연하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요.
지금까지 한국에 스무 번 정도 왔습니다. 닭한마리, 설렁탕, 삼계탕 같은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굉장한 행복을 느낍니다.(웃음) 이번에도 엄청나게 기대 중이에요.
2018년 12월 26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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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제주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