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016년에 촬영한 <이,기적인 남자>가 개봉하게 됐다. 이번 백상에서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개인적으로 기쁜 일의 연속인 것 같다.
그렇지. 촬영한 지 좀 됐지만, 개봉하게 돼서 기쁘다.
마침 오늘 밤에 특별 시사가 있다고 들었다. 지인들을 많이 초대했나.
지난봄에 부산에서 관객과 만날 자리가 있었다. 당시 반응이 좋았기에 오늘도 좋지 않을까. (웃음) 이번엔 연기와는 관련 없는, 같이 서핑하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강원도 양양에 내려가 서핑을 즐기곤 하는데 평소 그들의 놀이터에 놀러 갔다면 이번엔 내 놀이터로 초대한 셈이지. 매우 즐겁게 영화 볼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 중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상상이 된다. (웃음) <이,기적인 남자>가 뭐랄까, 참 독특하다. 영화 제안을 받고 첫 느낌은.
일단, ‘재미있겠다’ 그리고 ‘잘할 수 있겠다’ 였다. 자칫하면 민감할 수 있는 퀴어를 소재로 평범하게 잘 활용했다고 생각했다. 퀴어를 언급하면 어딘지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지점을 유머러스하게 잘 넘겼더라. 어차피 퀴어 자체가 우리 영화의 주제도 아니고 말이다.
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
아, 마치 당신 인생의 주제는 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웃음) 글쎄, 우리 영화의 주제가 뭘까, 주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개인적으로 우리 영화는 누군가의 인생을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꼭 영화가 계몽적이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인생도 있구나’하고 환기하는 정도? 특별하고 괴이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 상황을 풀어나가는 데 그 와중에 측은지심과 공감을 유발한다고 본다.
극 중 ‘재윤’(박호산)은 결혼 10년 차 영화과 교수로 학과 조교에게 쿨하게 사귀자고 제안한다. 공감되던가.
공감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다만 이해는 된다. ‘재윤’은 아주 원초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이거든. 어떤 면에선 아이 같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벌 받지 않나. ‘너, 언젠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와 비슷한 심정으로 지켜보게 되더라.
‘재윤’을 연기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밉게 보이지 않으려 했다. 단점투성이 인물이지만, 극의 초반부터 끝까지 주야장천 등장하는 데 꼴 보기 싫으면 영화를 계속 볼 수 없겠다 싶었다. 떼쓰는 아이를 보며 ‘어이구’ 이런 생각이 들어도 그 아이가 막 밉지 않듯이 유사한 느낌을 주려고 일부러 더 아이같이 보이려 한 것도 있다.
성공한 거 같다. 밉다기보다 측은지심이 생기더라. 특히 초반에 상황 파악 못 하고 껄덕(?)대는데 참 짠했다.
다행이다! 사실 ‘재윤’(박호산)은 이기적인 남자였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관객이 불쌍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본다. 극 초반 보였던 뺀질거리고 얄미운 모습이 계속 이어졌다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 거다.
결말도 참 파격적인데, 마음에 들던가.
우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모습이 아닐까 한다. 말했듯이 여러 삶이 있고 그런 삶의 한 모습을 유쾌한 소품처럼 보여준 것 같다. 우리 영화 타이틀이 ‘이,기적인 남자’인데 찬찬히 보면 이기적인 남자가 기적인 남자로 거듭나거든.(웃음)
웃자고 하는 얘긴데, 혹시라도 그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면 어떨까.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대체로 반응이 비슷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데 그 상대가 동성인 경우 그나마 화가 30% 정도 줄어든다고 할까. 흔히 스팀 받는다고 하는데 그 정도가 다소 낮아지는 것 같더라.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결말의 ‘재윤’처럼은 못 할 것 같다.
그렇군!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한데 여성한테는 사이다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남성들 입장에선 고구마일 수도 있겠던데…
그럴 수도. 하지만 극 중 ‘재윤’(박호산)의 잘못은 아내를 두고 다른 젊은 여성에게 흑심을 품었고, 그것에 전혀 양심의 가책 없이 뻔뻔했다는 것. 그 점은 명백한 잘못이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영화와 드라마로 넘어왔다. 특히 최근 드라마 <나의 아저씨>,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 이어 현재 방영 중인 <손 the guest>까지 화제작에 참여했는데, 인기를 실감하는지.
인기라기보다 이제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신다. 대학로에서 20년 넘게 공연해서 예전에도 대학로에 가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었다. 이제 전국이 대학로화 된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어깨가 으쓱해진다거나 그렇진 않다. 그럴 나이는 이미 지났고, 알아봐 주시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해 주는 거에 감사하다. 박호산이라는 배우보다 내가 그간 연기했던 캐릭터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아 기분 좋다.
20년 넘게 무대를 지키면서 경제적 문제를 포함해 어려움도 있었을 거다.
오래전에 공연 작품 수가 적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다행히 30대 중반 정도부터는 작품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일 년에 열 편 정도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니 경제적으로도 가장으로도 어느 정도 삶이 채워지더라. 대본을 못 받으면 배우는 사실 무직자와 마찬가지다. 작품을 못 할 때가 힘들었지, 많이 하기 시작하면서는 바쁘지만 재미있었다.
당신을 무대로 이끈 건 무얼까.
원래는 통기타 가수가 되고 싶었다. 중3 때 기국서 선생님 – 기주봉 선생님의 형이시다 – 께서 공연한 <햄릿>을 봤다. 사실 중 3이 뭘 알았겠느냐 마는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더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요즘 바빠서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은데, 그립지 않나.
연기적으로 확장,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의미 있는 시간이다. 물론 무대가 좋지만, 가족이 편하다고 집에만 머물 수는 없지 않나. 올해 연극배우 박호산을 좋아하는 팬들께 공언했었다. 1년만 집(무대)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이다. 방송과 영화판에서는 신인 배우이기에 공연 잡혔다고 촬영 일정을 조절해 달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거든.
무대와 방송과 영화, 연기적인 측면에서 차이는 없는지. 연기 톤이라고 할까.
연기하는 건 기본적으로 같다고 본다. 모두 관객을 만나는데 다만 보여주는 방법이 다른 거지. 영화와 방송은 중간에 타인의 눈, 즉 감독과 작가의 눈을 거쳐 관객에게 보여진다. 무대의 경우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후 무대에 올라서면 그 이후는 배우의 몫이다. 최종 편집권이 배우에게 있는 거다. 방송과 영화는 그 편집권이 PD 혹은 작가 그리고 감독에게 있는 거고 말이다. 무대가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재미가 있다면 방송과 영화는 작품을 다듬고 만들어 가는 묘미가 있다. 마치 잘 만들어진 파도를 차곡차곡 쌓는 느낌이다.
좀 전에 방송과 영화판에서 신인이라고 표현했는데, 무대 베테랑이 신인이 되면서 느낀 자괴감이라고 할까. 부정적인 감정이 들진 않던가.
전혀, 내가 그 정도로 덜 성숙하지 않다. 당연히 신인인 거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여러 작품에서 찾아주니까 감사하고 앞으로 보여줄 연기가 많다는 게 짜릿하다. 배우에게 작품만큼 고마운 게 없다.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즉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음, ‘박호산’이라는 배우 자체보다 작품 속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한 순간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대부분 사람이 빚을 지고 살 테고 나도 그랬었는데, 최근 그 빚을 다 갚았다. 돈을 앞에 놓고 좇아간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따라와 준 것 같다. 사실 평소 빚이 있다고 끙끙 앓고 걱정했던 건 아닌데 막상 다 갚고 나니 행복하고 세상 마음 편하더라.
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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