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나부야 나부야>는 당신의 장편 다큐멘터리 데뷔작이다.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 이야기에 앞서 간략한 이력 소개를 부탁한다.
창원에 거주하는 외주제작 독립 PD다. 아마도 대한민국 최초 1인 외주제작사일 거다. 각본, 연출, 진행, 촬영, 편집까지 모두 나 혼자 담당한다. 그간 경남 MBC, 대구 KBS, 창원 KBS 등에 휴먼 다큐를 600여 편 넘게 제작, 공급했다. 현재 창원 KBS에서 방영 중인 <우문현답>을 제작하고 있다.
영화 개봉에 앞서 한국형 사회적 기업 ㈜추억을 파는 극장 ‘실버영화관’에서 18일 2회에 걸쳐 무료 상영회를 했었다. 소감은.
창원에 거주하는 관계로 안타깝지만 참석을 못 했다. 참석해서 GV를 진행했다면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아마도 많은 분이 자신의 이야기일 것 같다고 공감하고 좋아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나부야 나부야>는 이종규, 김순규 노부부의 7년의 세월을 담는다. 노부부와의 인연의 시작은.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KBS 방송용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처음 뵀었고, 방송 끝나고 이상하게 두 분이 마음에 남아 좀 더 촬영하고 싶었다. 방송국은 명절마다 시니어를 주인공으로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기에 이에 맞춰 기획서를 올렸지만 번번이 퇴짜 맞았다. 사실 나 같은 외주 독립 PD가 60분짜리 프로를 제작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선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2017년까지 추석과 설 특집 프로젝트로 제안했으나 결국 거절당하고, TV가 아니라 극장으로 플랫폼을 바꿔보고자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채택 안 됐던 이유가 있더라.
이유가 뭔가.
연로한 두 분의 모습을 좇다 보니 일단 동선이 짧다. TV는 좀 더 촘촘한 동선 안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요구되거든. 또, <나부야 나부야>의 콘셉트가 2014년 크게 인기 끌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비슷하다는 거였다. 아류로 생각하는 인식이 강해서 몇 번이나 퇴짜 맞은 거지. (웃음)
무슨 소리인지 잘 알겠다. 실제 노부부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주력한 부분은.
영화로 제작하려고 마음먹고 둘러보니 이전에 <워낭소리>(2008),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가 개봉 후 여러 잡음을 겪었더라. 그중 가장 큰 게 가족 문제라서 자녀들을 만나 영화화 의견을 전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좋다는 허락을 받았고 이후 1년 정도 후반 작업을 거쳤다.
처음 만든 방송용은 23분 분량에 한 계절을 보내는 두 분의 모습을 전했었다. 이후, (말했듯) 욕심이 생기더라. 한 계절이 아닌 두 분의 사계절과 그간 지켜본 꽁냥꽁냥한 모습뿐만 아니라 리얼한 생활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사람이 살면서 항상 좋을 순 없으니 분명히 관계 속에 갈등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지켜보니 없더라. 마냥 꽁냥꽁냥하시는 거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담았다.
<나부야 나부야>를 본(볼) 많은 분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떠올릴 거다. <나부야 나부야>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그렇겠지, 근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안 본 입장에서 어떻게 다르다고 말하기 힘들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았거든. 내일 보려고 한다. (웃음)
<나부야 나부야>가 오늘 개봉하니 이제 마음 놓고 보겠다는 거로 이해된다. (웃음) 영화의 상영시간이 60분 조금 넘는다. 7년의 시간을 담은 것 치곤 상당히 짧은 편인데 편집하기 전 분량은 얼마 정도인가.
맞다. 사실 그동안 보고 싶었는데 참았었다! <나부야 나부야>를 2011년~ 2016년 말까지 촬영하고 2017년 후반작업을 했다. 실제 촬영 분량은 어마어마했다. 프리뷰부터 대사 정리까지만 6개월이 걸렸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편집해 놓으니 80분밖에 안 돼서 처음엔 조금 놀라기도 했었다. 거기서 좀 가다듬으니 더 짧아지더라. 그때 깨달았다. 부부로 지낸 78년 중 마지막 7년의 기록인데 객관적으로 아주 긴 시간인 것은 틀림없지만 중복된 활동이 많고 새로운 이벤트가 거의 일어나지 않더라. 인생이란 게 어느 순간 줄이고 줄인다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점에 착안해서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영화는 노부부의 사계절을 배치하는데, 다큐멘터리임을 감안하고도 개입이 정말 적은 편이다. 드라마적 요소가 전무하다고 할 정도다.
봄은 청춘 겨울은 노년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겨울이 많이 비치는 건 <나부야 나부야>가 노년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개입을 배제한 건 인위적 개입은 방송용 포맷이라고 생각했고, 개입하지 않는 게 다큐멘터리 아닌가. 아마 인위적으로 연출했다면 관객은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그런 모습을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한다. 딱 봐도 연출 티 나는 거 말이다. 또, 지금까지 내가 연출했던 많은 휴먼 다큐 역시 내레이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 연장이라고 봐도 된다. 두 분의 모습 그대로 담는데 충실했는데 단 한 장면 개입하긴 했다.
궁금하다.
두 부이 툇마루에 앉아서 봄이 좋은지 가을이 좋은지 서로 묻는 장면이 있다.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할머니의 청력이 좋았는데, 이후 점점 안 좋아지시더라. 그 장면에서는 할머니가 아예 못 알아들으시니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질문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질문하도록 부탁했다. 연출 개입은 그 장면 딱 하나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극 중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로 보인다. 그 후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는지. 마지막 엔딩 크레딧으로 유추한다면….
맞다, 2015년 8월에 구례장에 다녀오셨던 할머니가 혼자서 마당에 나갔다가 쓰려져 계셨다고 하더라. 나도 이 소식을 일주일 후에야 들었다. 당시 창원에서 하동까지 부랴부랴 갔었다. 할아버지를 뵙고 그간 사정을 들으며 <나부야 나부야>의 제목을 정하게 됐다. 할아버지 역시 할머니 돌아가신 후 1년 8개월 정도 흐른 후 세상과 작별하셨다. 알다시피 영화가 할머니를 잃고 자식한테 의탁했던 할아버지가 다시 집에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딸이 아버지를 고향 집에 모셔다 놓고 이것저것 챙기는데, 개인적으로 할머니가 챙기는 것으로 파악했다. 할아버지는 그 공간을 보며 추석 즈음 데리러 오라고 말하는데… 나중에 편집하다 보니 마치 그 딸이 할머니의 화신처럼 느껴지더라. 그 후 특정 질환이 아닌 노환으로 할아버지 역시 세상을 뜨셨다.
그렇군. 제목을 ‘나부야 나부야’로 정한 까닭은.
이어 말하자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를 찾아뵀었다.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당시 비가 조금 내렸었다, 마당에 호랑나비가 앉더라. 그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가 마치 할머니를 부르는 듯이 ‘할마이, 할마이’ 하시더라. 그래서 ‘나부야 나부야’로 타이틀을 정했다.
마당과 나비를 비추는 롱테이크 마지막 신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이유였군!
30초의 롱테이크로 잡아봤다. 나비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이 정말 할머니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촬영하면서 마음에 사무치는 장면이 있을 것 같다.
시간도 정확히 기억한다. 2014년 12월 31일이었다. 두 분이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얘기하시는데, 그 노을빛을 흠뻑 받으시며 나누시던 대화가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을 주제로 얘기하셨었다. 90세가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한테 한 해의 마지막은 어떤 의미일지…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의미심장함을 느꼈었다. 할아버지가 95 세셨거든. 누가 뭐래도 나만의 명장면이다.
영화를 통해 당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특히 노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그 답을 찾고자 했고, 결국 찾았다.
그 답은.
극을 보면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다리가 부실하고 추위를 많이 타서 본인이 설거지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부부는 관심과 배려 그리고 정리로 산다는 걸 깨닫게 한 모습이었다. 잘 보면 우리 영화 속에 아궁이가 자주 포착된다. 느꼈는지?
그렇잖아도 질문하고 싶은 지점이었다.
개인적으로 장작을 할머니, 부채를 할아버지로 인식했다. 할머니는 그야말로 ‘미소 천사’인데, 할머니를 웃게 만드는 건 할아버지다. 불을 붙였는데 부채질이 없다면 장작이 훨훨 탈 수 있을까. 어떤 상황에서 건 할머니를 미소 짓게 하는 건 할아버지이기에, 극 중 그렇게 아궁이 신이 많은 거다.
긴 시간 시니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많은 걸 느꼈을 것 같다.
14년간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았고 나름 그분들에 대해 잘 안다면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옛 성인인 공자나 맹자가 억수로 멋있는 말을 하지만, 과연 그 말에 따라 삶을 실천했을지에 의문이 많았었다. 한마디로 언과 행이 일치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내가 체험해보니 어르신들은 일치하더라.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마치 도서관 한 개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난 더 나아가 도서관 열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그분들은 몸소 체험해서 지혜와 연륜을 쌓았기에 진정 이 시대의 현자가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그런 깨우침과 가르침을 얻었다.
음…
그리고 또 하나! 나이 들면 우악스럽게 싸울 힘이 떨어진다. 보통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말을 잘 듣게 되더라. 좀 짠하기도 하다. (웃음)
좀 전에 언급한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 <우문현답> 관련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는데 질문해도 될까? <우문현답>의 콘셉트는 무엇인가.
현재 수요일 1시 30분에 전국 방영되니 직접 본다면 도움 될 듯하다. 한마디로 어르신들께 듣는 삶의 지혜라고 보면 된다. 작가가 경상도 일대 근처 마을을 발굴 섭외해 오면 내가 가서 각본, 연출, 촬영, 진행까지 1인 제작하는 거다. 내가 우문을 던지면 어르신들이 지혜와 연륜의 현답을 내려 주신다.
오,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겠다. 몇 개만 소개한다면.
음, 앞을 못 보는 어르신이 있었는데 내가 우문을 던졌었다. 할아버지께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앞을 보는 거라고 하시더라. 그 이유가 죽기 전에 우리 할멈 얼굴 보고 싶다고, 그래야 저승에 가서 할멈을 찾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
전국이 아닌 경남을 무대로 하다 보면 소재와 섭외의 한계가 있을 것도 같은데.
방송국 PD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에피소드에 있어 곧 벽에 부딪힐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현재 150여 편이 나왔는데, 잘 모르겠지만 경남에 위치한 마을 수가 2,300여 개에 이른다. 내가 일주일에 한편씩 제작한다고 하면 앞으로 97세까지 할 수 있겠더라! 하하, 그만큼 다양한 삶의 연륜을 지닌 어르신이 존재하고 내 우문은 똑같을지 몰라도 어른신들의 현답은 살아온 세월의 이력만큼 다 다를 거다!
그렇게 방대한 현장 경험이 있으니, 다음 시니어 작품도 기대된다. 혹, 나만의 바람인 건가. (웃음)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치매를 겪고 있는 할아버지 얘기를 할 것 같다. 이번 <나부야 나부야>의 부제가 노부부 이야기였는데 아마 다음 작품은 <기억> 노인 치매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감독님과 인터뷰하는 경우 빼놓지 않는 질문 중 하나다. 좋아하는 혹은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다면.
사실 극영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장예모 감독의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 <붉은 수수밭>(1988)을 인상적으로 봤다. 최근엔 <라라랜드>(2016)가 좋았다.
최근 행복한 순간은.
외주 독립 PD의 꿈이라고 하면 방송 쪽 필모를 쌓고 이후 영화 진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14년만에 그 꿈을, 그것도 내가 관심 있었던 노년의 삶을 주제로 그 결실을 이뤘으니 뿌듯하고 행복하다. <나부야 나부야> 개봉일인 9월 20일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2018년 9월 27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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