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스마트폰 첫 화면 뭐로 해 두셨어요?”라고 기자에게 묻는 이혜리의 스마트폰 첫 화면은 구글이다.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가 배치한 각종 뉴스를 살펴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게 일상인 뭇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구글 첫 화면에서는 연예 뉴스를 볼 수 없고, 그래서 자신과 주변을 향한 악플을 보는 횟수도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좋은 말에 기쁜 날만큼 나쁜 말에 아픈 날도 많을 테니 ‘알아서 피하고’ 싶은 마음인 모양이다. 종종 누군가를 향해 포화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알기에 어쩐지 조금 애잔한 마음이 생기는 순간, 그가 상당히 해맑은 표정으로 예상 밖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괜찮아져요. 승부욕이 생긴 달까!” 특유의 ‘헤헤’ 하는 모양새로 웃는 이혜리에게서 긍정왕의 기운을 나눠 받은 듯한, 그날의 인터뷰를 전한다.
괴생물체 <물괴>를 수색하는 전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의 딸 ‘명’역을 맡아 첫 스크린 주연작을 선보인다. 영화 개봉 소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선배님들은 보이지 않고 내 연기만 보이더라. 여기서 이렇게 할 걸, 저기서 저렇게 할 걸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찍을 때는 재미있을 줄 몰랐던 장면인데 그 지점에서 시사회장에 함께 계신 분들이 웃는 걸 보고 ‘관객은 여기에서 웃는구나’하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감정은 아쉬움이다. 대사 연습을 좀 더 할 걸… 지금 찍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지만. (웃음)
<응답하라 1988>(2015) 시리즈로 브라운관에서 큰 사랑을 받은 당신이다.
그래도 영화 현장은 처음이어서, 첫 촬영 때 상당히 많이 떨었다. 놀란 것도 있다. 드라마 현장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영화 현장 스태프들은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미술팀까지 백여 명의 스태프가 한 컷을 촬영할 때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대단했다. 특히 촬영 첫날 비가 오는 동시에 먼지가 날리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는데 그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분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걸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괴>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액션이 곁들여진 크리쳐물이다. 평범한 드라마와는 다른 연기 도전이 필요한 작품이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8개월 정도 쉬던 때 <물괴> 시나리오를 처음 봤다. 가수 활동이든 드라마 활동이든 너무 쉬지 않고 일만 한 것 같아서 머릿속에 여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물괴>를 본 순간 마음속에 도전의식이 끓어오르더라. 워낙 액션 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활 쏘는 여자 ‘명’이라는 역할이 그간의 로망과 맞아떨어졌다. 괴물이 어떻게 그려질지도 기대가 됐다.
로망이라면…
우리나라든 할리우드든 액션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향이 있다.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서도 악인의 미끼가 되거나 그들에게 잡혀가는 식이다. <물괴>의 ‘명’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서 좋았다. 이렇게 큰 영화에서 내가 ‘명’이라는 역할로 나만의 몫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활 쏘고, 도망가고, 몸싸움 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건 특히 재미있더라. 어렵긴 했지만 지치지는 않았다. 워낙 체력이 좋은 편이라 지치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그랬다. 맨날 “저 더 할 수 있어요!” 하는 식이었다.(웃음) 액션 분량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버지 ‘윤겸’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감정 표현도 신경 써야 했을 텐데.
‘명’은 전체 인물 중 감정신이 가장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겁이 났다.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 쫄 것 같아서 ‘명’이라는 인물의 심정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친 아빠도 아닌 ‘윤겸’에게 왜 그렇게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지 말이다. 촬영 전 감독님께 질문도 많이 드렸다. 아주 자유롭게, 이러저러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으면 감독님은 주로 내 생각이 맞다고 답 해주시곤 했다. 연출 스타일이 일방적이지 않아 핑퐁 하듯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일할 때 보통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인가.
지금은 그렇다. 이렇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성격이 변했다고 봐야 하나.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 데뷔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배우와 달리 가수는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너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왜? 라는 질문을 꺼낼 수도 없다. 핸드폰 없이 답답하게 생활하는 시절도 있다. 모두가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수로 데뷔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런 경험을 한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배운 것 같다. 이제 데뷔 8년 차고, 조금씩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 혼자 결정해서 통보하는 일은 없다. 사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주변에 의견을 구한다. 그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인스타그램 말고는 하나도 없다.(웃음)
<물괴> 이후 엄태구와 함께한 <뎀프시롤>까지 선보인다. 이미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선배들이 왜 여러 영화 촬영 현장을 경험해보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물괴>는 총 80회차 중 내가 출연한 분량이 35회다. 그런데 <뎀프시롤>은 총 회차가 28회차 정도였다. 각자의 매력이 있더라.
두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각인시킬 수 있을까. 여전히 당신을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이미지로 기억하는 관객층도 존재한다.
처음엔 ‘덕선’이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게 문제가 될까 싶었다. 내가 연기한 캐릭터에는 다 내 모습이 들어 있는데, 그걸 굳이 숨겨야 하는 건지 말이다. 아직은 그런 이유로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에게서 ‘덕선’이의 모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내 몫이자 과제다.
관객의 평가는 종종 너무나 냉혹하니까...
사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악플을 꼼꼼하게 다 확인한다. 여러분이 인터넷을 자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웃음) 상처를 받으면 기분이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래서 스마트폰 첫 화면을 연예 기사가 뜨지 않는 구글로 해놓는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욕을 잘하는지… 그래도, 하루 정도 지나면 금방 괜찮아진다. 오히려 승부욕이 생기는 편이다. 내가 연기 실력으로 당신들을 한 번씩 울려 주겠어!(웃음)
성격이 대단히 긍정적인 것 같다.
나를 욕하는 댓글 몇천 개가 달렸다고 해도 오천만 국민 중에서 사천구백만 명은 날 좋아해 주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식이다. 악플이 삼천 개 정도 돼 봤자 아파트 단지 하나 정도 인구 아닌가.(웃음) 좀 정신 승리인 측면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획을 짜서 일하는 편은 아니다. 그때그때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다. 왜 그렇게 걱정이 없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다. 들쑥날쑥한 연예계 생활을 견디려면 내년에 뭘 찍을지, 앨범 활동은 어느 시점에 시작할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운명적인 만남이 좋은 것 같다. 걸스데이 멤버들과도 이런 성향이 잘 맞는 편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큰일보다 작은 일에 행복을 느낀다. 상대가 내 이야기에 웃으면 속으로 ‘어! 내가 웃겼어!’ 하고 좋아한다.(웃음) 힘든 일 때문에 우울하다가도 맛있는 레모네이드를 먹으면 기분이 금세 나아진다. 어제는 일정을 마치고 저녁 여섯 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삼겹살을 사 와서 기뻤다. 며칠 전부터 너무 먹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밥을 두 그릇 먹었다.(웃음)
2018년 9월 12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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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