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엽기적인 그녀>(2001) 와 <클래식>(2003), 현재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두 배우 전지현과 손예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던 대표작이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곽재용 감독 작품이라는 것. 그는 소녀성을 앞세운 코믹함과 애절함을 무기로 징징 거리지 않는 찡한 로맨스로 크게 인기를 끌었었다. 이후 곽 감독은 중국과 일본의 영화 제작 최전선에서 몸소 부딪치며 특유의 감성 드라마를 제작해 왔다. 한, 중, 일 3국의 영화 산업의 흐름을 읽고 안목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 값진 시간이었다. 이제, 그가 2003년 우연히 접한 이후 카메라에 그토록 담고 싶었던 ‘유빙’을 스크린에 옮긴 <바람의 색>으로 관객을 찾는다. 일본 영화 제작 환경에 정통한 그답게 웹툰부터 시작하여 영화화까지 치밀한 계획하에 이룬 성과로, 전작들과 달리 남성 뮤즈 ‘후루카와 유우키’를 앞세워 곽재용 표 멜로를 완성했다. 시간이 흘러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곽재용 감독의 순수하고 아스라한 감성, 여전히 설렌다.
<시간이탈자> 이후 3년 만에 관객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는데 혹평도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
멜로와 스릴러 장르 사이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관객에게 혼란을 준 거 같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나온 한 여성이 어떤 장면을 지적하며 말이 안 된다고 화내는 걸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그게 사실 다 확실한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기업 지원을 받다 보니 표현의 한계로 편집했었다. 또, 제작비 초과로 필요한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못 해서 의도했던 감성을 끌어내는데 힘들었다. 총체적인 이유가 있던 거지!
관객이 120만 명 정도 들었는데,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친 수치였다. 아무래도 다음 작품 제작에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람의 색>을 일본에서 제작한 것인가.
꼭 그게 이유는 아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제작 투자를 받는 건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 만화 원작을 실사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원작 만화가 있으면 투자받기가 쉬울 듯해 네이버 웹툰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연재를 시작했다. 만화가 초반에는 반응이 괜찮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처음 의도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호응이 떨어졌었다.
만화 원작 실사화는 일본 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원작 소설이나 만화가 인기를 끌면 드라마로 일단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게 극장판으로 영화화되곤 한다. 좋아했던 드라마가 끝나면 아쉬우니까 마지막 정리 차원에서 극장판을 한번 더 본다고 할까. 그게 아니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대표되는 대작 애니메이션을 가족 나들이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편이다. 일본 영화 시장 자체가 역동적이지 않고 심심한 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같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드물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거의 다 저예산 영화라고 보면 되는데, 대부분 해외영화에서 수상하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다. 감독이 창작력을 발휘하여 역량을 쏟아부은 작품들은 대체로 영화제를 노린다.
일본의 영화 제작 메카니즘에 대해 자세히 들려달라. 궁금했었다.(웃음)
일본은 영화를 만들 때 방송국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방송국을 끼고 해야 홍보와 배급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배급사가 제작 지원한 영화들이 수월하게 배급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방송과 배급이 합쳐져서 출판사나 투자자 등을 모아 제작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보통 일본 영화 제작 방식이라 보면 된다. 이번 <바람의 색>은 일본 내에서도 인디 영화라 할 수 있다. 다만, 인디 영화치곤 제작비가 많은 편이었다.
<바람의 색>의 제작비는 얼마인가.
보통 일본 영화가 15~20억 선이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제작비가 적은 편으로 크게 돈을 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45억 정도였으니 많이든 거지. 방송국을 잡지 못했고 일본 내 배급을 맡은 회사가 큰 회사도 아니었다. 주연 배우인 ‘후루카와 유우키’가 지금은 많이 유명해졌지만, 당시는 소위 특에이급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라고, 일본에서는 한국 영화 아니냐고 이리저리 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작년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은 건가.
후루카와 팬이 많이 와줬다. 내가 지인 용으로 몇 장 사려 하니 예매 오픈한 지 1분 만에 바로 매진 되더라. 부천 덕분에 스톰픽쳐스에서도 보고 한국 배급을 결정했고, 미로 비전이 일본 외 판권은 사 갔다. 고마운 ‘부천’이다. (기자 주: (주) 스톰픽쳐스코리아가 <바람의 색> 국내 배급을 담당)
<바람의 색> 이전에도 <싸이보그 그녀>(2008)를 일본에서 제작했었다. 한국과 일본의 감성이 다를 것이고 언어 차로 인한 소통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언어도 언어지만 감성이 매우 다르다. 처음 <바람의 색>을 촬영하러 갔는데,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창가에 한 명씩 다 따로 앉아서 각자 식사하고 있더라. 그래서 모여서 같이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함께 식사하며 친분을 쌓아가곤 했다.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자 영화에서 사용할 음악을 먼저 들려줬었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감성을 담은 음악을 일일이 선곡해서 음악 들으며 시나리오 읽으라고 주문했다. 디테일한 대사는 배우한테 도움을 받아 몇 번의 과정을 통해 일본 상황에 맞게 단어와 뉘앙스 등을 수정했었다.
<재세계중심호환애>(2016), <미스 히스테리>(2014) 등으로 중국에서도 활동했다. 중국의 영화 제작 환경은 어떤가.
중국은 무수히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는데 수준 미달이거나 검열을 통과하지 못 하는 등의 이유로 그만큼 버려지는 것도 많다. 그들의 마켓 시장을 가 본 적이 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진행하고 방 하나가 각각의 부스라고 보면 된다. 또, 중국은 철저하게 배우 위주이고 제작 기간이 아주 짧다. 가령, 제작비 200억짜리 영화라 하면 절반 이상이 주연 배우의 몫이고 나머지가 제작비로 쓰인다. 또, 중국만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엄청난 PPL이 동원된다. PPL로 제작비의 반 이상을 뽑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 어떤 경우엔 PPL을 위한 회의와 전용 콘티가 따로 준비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총 두 편을 중국에서 만들었는데 그들의 제작 관행에 철저하게 맞춰서 진행했었다.
관행이라 하면.
절대 제작비 초과 안 하고 단 39일 만에 촬영했다. 좀 전에 얘기했듯, 철저하게 배우 위주라 주연 배우가 한 달 이상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남녀 배우가 각각 한 달 동안 촬영한다고 해도 동시에 한 달이 아니라 어떤 경우는 15일 만 겹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 15일 안에 남녀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을 다 몰아서 촬영해야 하는 거다. 또,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을 못 한다. 시간이 초과되면 주연 배우는 계속하자고 하지만 조연이나 단역 배우는 촬영하다 그냥 가버리곤 한다. 게다가 땅이 넓으니 도시를 오가며 촬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서 한 장소에서만 찍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일본도 인건비와 숙박비, 식비 등의 기본 물가가 모두 높기 때문에 아무래도 촬영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이번 <바람의 색>은 43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중국의 경우 표준 근로 시간을 초과하면 촬영하다 그냥 가버린다고 했는데, 스태프 복지가 좋은 건가.(웃음)
그건 조역이나 단역 등 배우가 그런 거고, 스태프 복지는 한국이 가장 잘 돼있다고 본다. 한국은 스태프가 하루 12시간 이상 못 찍는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데다 최근에는 더 강화됐다. <시간 이탈자> 촬영 당시에 한 달에 80시간이 오버돼서 다음 달 80시간을 적게 찍었던 기억이 있다.
중국은 정말 배우 중심인가 보다.
잘 나가는, 소위 핫한 배우가 왕이라고 보면 된다. 한, 중, 일을 비교해보면 감독의 위치가 가장 바닥(?)이다. 심지어 유명 배우들은 따로 작가를 거느리고 있고, 시나리오를 직접 고쳐오기도 한다.
혹시 한국의 경우도? 유명 배우가 직접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는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잘 나가는 배우라 해도 감독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한국 배우가 최고라고 얘기하곤 한다. 다만 한국은 나이를 먹은 감독은 올드하다는 편견이 강하다. 일본,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 기회나 입지가 좁은 편이다. 반면, 일본이나 중국은 그런 면에서 좀 더 열려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요즘은 ‘영화사’라는 개념이 뚜렷이 없다. 대기업에서 자본, 시스템, 배우와 스태프까지 모두 몰빵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영화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반드시 고무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게 그만큼 다양성이 없어졌다. 돈 많은 사람이 대빵이다, 즉 얼마나 많은 개봉관을 잡고 홍보에 집중하냐에 따라 흥행이 좌우된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가 전혀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라. 다만 좋은 영화임에도 상영 기회가 적어, 홍보가 안 돼 사장되는 경우도 많다는 거다.
어떤 얘기인지 잘 알겠다. 사실 개봉 첫 주 스크린을 1000여 개 확보한다면 웬만하면 100만 관객은 깔고 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후 2주 차부터 흥행할지, 바로 내릴지는 그야말로 작품의 힘인 것 같다. <바람의 색>의 현재 스크린 확보는 어느 정도인가.
글쎄, 쉽지는 않다. 촬영할 때는 그토록 담고 싶었던 ‘유빙’의 풍광을 잡는 등 운이 따라 줬는데 말이다. 현재는 100~150개 사이로 예상하는데 남자 주인공인 ‘후루카와 유우키’ 팬이 있으니 기다려 보는 중이다. 그런데 스크린수도 수지만 제대로 된 시간대에 배치되는 게 중요하다. 퐁당퐁당 이거나 새벽에 열어 주니.... 나도 얼마 전 스필버그의 신작 <더 포스트>를 새벽에 가서 봤었다. 정말 보고 싶었기에 새벽에라도 간 거였는데, 일반적으로 새벽 시간에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바람의 색> 얘기로 돌아가 보자. 보통 한국 관객이 (전개와 연출 등에서) 스피디함을 즐기고 선호가 빠르게 변하는, 소위 역동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드함’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번 영화에선 ‘레옹과 마틸드’ 시퀀스가 그렇게 느껴졌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잘 아니 너무 조심스레 말할 필요 없다. 지금까지 <바람의 색> 인터뷰하면서 거의 공통으로 받은 질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질문하더라. 뜬금없고 올드하게 느껴졌다고.
아, 그런가. 그럼 단도직입으로 묻겠다. 굳이 두 연인이 <레옹>의 ‘레옹’과 ‘마틸다’ 를 코스프레한 이유가 뭔가.
그게, <레옹>밖에 생각이 안 났다. 그렇다고 ‘스파이더맨’이나 ‘원더우먼’을 코스프레하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대체할 캐릭터가 없더라. <로마의 휴일> 패러디도 생뚱맞게 느껴질 거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남주인공 ‘후루카와 유우키’의 소년적인 매력이 좋았다. 영화의 감성을 한층 깊게 만들더라.
아내도 ‘후루카와 유우키’를 칭찬하더라.(웃음) 이번 <바람의 색>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 영화 중 보기 드문 남성 중심 영화일 수 있다. ‘료’와 ‘류’를 연기한 ‘후루카와 유우키’가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를 이끌고 나가니 말이다. (기자 주; 후루카와 유우키가 ‘료’와 ‘류’ 1인 2역을 소화함) 게다가 극 중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일본 개봉 당시 예상외로 남성 관객이 좋아했었다. 여주인공인 후지이 타케미는 일본보다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배우라 생각한다. 정말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공 남녀가 각각 자동차와 기차를 타고 멀어지는 시퀀스는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 아닐까 한다. 카메라 앵글과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창문에 글자를 쓰고 마술로 보내는 장면은 로맨틱 그 자체였다.
고맙다. 가장 공들였던 장면 중 하나였다. 당시 사용된 음악을 미리 들으며 그 감정을 끌어내려 나도, 배우도 노력했었다. 다행히 의도대로 잘 나온 거 같다.
간담회 때 일본 배경이기에 ‘마술’과 ‘도플갱어’ 소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실, ‘마술’과 ‘도플갱어’ 소재는 부차적인 것으로 무엇보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마술과 도플갱어를 결합하게 된 거지.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면 소재 자체가 달라졌을 거다. 그러면 <바람의 색>이 <바람의 색>이 아니게 될 수도....(웃음)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예전에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2003)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본 유빙을 보고 언젠가는 영화 속에 담아내고 싶었었다. 유빙을 떠올리니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홋카이도가 떠올랐다. 중국이나 한국 등의 다른 장소를 생각해 봤지만 역시 홋카이도만 가능하겠더라.
일본을 배경으로 제작하고 투자받기 위해 앞서 얘기했듯 웹툰 연재를 먼저 시작한 건데, 만화 작가로서 활동한 게 상당히 이례적이다.
일본판 웹툰은 주인공이 한국인 마술사였다. 내가 스토리 작가였는데 만화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있긴 했다. 내가 만화 작가로 활동한 게 이례적이라 했는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간 ‘인어 이야기’를 포함해 만화를 네 작품 내놓았었다.
음, 한때 만화 애독자로서 ‘인어 공주를 위하여’라는 만화가 불현듯 떠오른다. ‘인어 이야기’도 흥미로웠을 거 같은데, 못 봐서 아쉽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
인어가 수태하기 위해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임신하면 떠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번에 개봉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를 보고 내가 무릎을 딱 쳤었다.
이유는.
내 만화에도 방에 물을 가득 채워 넣는 장면이 있었거든! 또,뱃사공이 인어를 만나는 이야기인 ‘여보’(여주의 보물)도 있었다.
인어를 소재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그게, 한번 하니까 익숙해지더라. 하하하. 좀 전에 말한 ‘인어 이야기’는 단순히 인어가 사랑하고 임신을 하면 떠나는 게 다가 아니다. 인어가 태평양까지 돌아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그 상대를 잡어 먹어야 한다. 마치 사마귀처럼.... 사랑과 회귀 사이에서 갈등하는 거지.
음.... 흥미롭지만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듯, 호불호 갈릴 것 같은 이야기다. (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쟁과 사랑 이야기다. 전쟁이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인간의 역경과 사랑을 그리고 싶다. 내가 서극 감독의 데뷔작 <상하이 블루스>(1984)를 참 좋아한다. 전쟁 때 얼굴도 모르고 사랑했던 연인이 종전 후 위 아랫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몰라보는 이야기인데, 사실 이 부분이 말이 좀 안 된다. 어쨌든 남자가 마지막에 사랑을 깨달고 여자를 쫓아간다!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애수>(1940)의 홍콩판 코미디 버전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식으로 웃기는데 찡하고 애달프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좋다. 징징 짜는 건 별로다.
좀 전에 부인이 <바람의 색> 남자 주인공이 좋았다고 했다. 가끔 부인이 영화에 조언하는지.
뭐, 손예진은 항상 예쁘다고 하고, 이번엔 남자 주인공이 뮤즈다 보니 남배우가 멋있다고 하더라. 와이프가 좋아하는 영화가 몇 가지 있는데, 비슷한 감성으로 만들어 보라고 가끔 얘기한다. 특히, 리차드 기어와 샤론 스톤 주연의 <마지막 연인>(1994)을 와이프가 되게 좋아한다. 불륜임에도 순수한 느낌이 강한 영화라 그런 거 같다.
전작 <엽기적인 그녀>(2001), <클래식>(2003) 그리고 이번 <바람의 색>까지 여주인공의 공통점이 ‘소녀적’이다. 풋풋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순수한 사랑을 그리려다 보니 그런 거 같다. 좀 더 나이가 든다면 여성으로서 섹슈얼리티가 부각된다. 아름다움은 깊어지나 순수함은 약해지는 거 같다. 물론 성숙함이 순수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까, 가장 반짝이던 시기를 꼽는다면.
감독은 누가 뭐래도 촬영장에서 가장 빛난다. 지금 돌이켜 볼 때 가장 좋았던 시기는.... 아무래도 <엽기적인 그녀>와 <클래식>을 만들 때 같다. 현장 자체도 좋았고 제작비가 부족하고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했기에 힘들었지만, 참견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바람의 색>도 거의 참견 없이 완성했다. 경험 상 참견 적었던 작품이 대부분 (흥행)결과도 좋더라. (웃음)
지금까지 작품을 해오면서 이 부분만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지점이 있는지.
글쎄, 앞으론 (타협)해야지. 늙을 때까지 작품을 계속하려면 타협해야 한다!
혹시 이 배우만큼은 내가 부르면 꼭 온다 하는 배우가 있을까.
아이고, 그런 거 없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했었고 결과가 좋았어도 배우는 일단 작품이 좋아야 움직인다. 아마도 시나리오 주면 친분 상 하겠다고 하겠지만, 읽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후 바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웃음) 그건 당연한 거다. 친분만으로 영화를 하긴 배우 입장에서 감수할 리스크가 너무 크니 말이다.
최근 기쁜 일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최근은 아닌데, 촛불집회에 아내와 함께 참여했었다. 옛 추억이 떠오르며 묘한 기분에 젖더라. 토요일마다 같이 나가는 게 뭔가 여행을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참 좋았었다. 마침 오늘이 결혼 31주년 기념일이다.
31주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다니. 행복함이 느껴진다. 축하드린다.
하하, 그게 예전에 10주년 기념이라고 반지를 사 간 적이 있는데, 아내가 9주년이라고 똑바로 세라고 한 이후 정확히 세고 있다! 축하 고맙다.
2018년 4월 15일 일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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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wannabe F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