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시대의 100인을 만나다”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배우와 감독이 주를 이뤘던 기존의 인터뷰에서 보다 분야를 넓혀 피플 리스트를 채워 나갈 예정이다. 남다른 소신과 철학으로 우뚝 선 존재감의 이들은, 현실에 발을 붙인 흥미진진한 영화적 캐릭터에 다름 아니다. 영화 같은 자신만의 삶! 그 자체의 인문학을 들려줄 우리 시대 100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아시아모델페스티벌로 한국에서 세계로 뻗는 ‘모델로드’를 닦는 중,
중국에 집중하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시아 시장의 뉴미디어 콘텐츠 주도권을 잡아라,
촌뜨기, 모델 공급보다 수요가 컸던 풍요의 시대를 누렸다,
모델은 사업가로, 사업가는 교육자로, 교육자는 모델업계의 대표로,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 고달프지만 소명이다,
갈 길이 멀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아직이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을 부산국제영화제 위상만큼 끌어 올리는 게 목표다,
사드 이후 냉각된 중국에 들어가서 현지인과 첫 협업 성공, 뿌듯하다
#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모델로드’를 꿈꾸다
한국모델협회(Korea Model Association, KMA)를 이끌고 있다.
협회장을 맡으며 어떤 조직으로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 끝에 나온 게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이다. 올해로 13년 차다. 나름 외형은 커졌다. 처음 시작은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6개 이후 8개국.... 현재 27개국이 참가하니 말이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은 크게 3가지 콘텐츠로 구성된다. 신인 모델을 선발하는 ‘페이스 오브 아시아’, 각국의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패션·뷰티산업의 소통의 장인 ‘아시아美페스티벌’, 한류스타와 함께 하는 아시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축제인 ‘아시아모델 어워즈’이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의 지향점은.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기자 주: 중국 주도의 ‘신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내륙과 해양의 실크로드경제벨트를 지칭)와 유사하다. ‘모델’을 통해 대륙으로 바다로, 즉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이 처음 출발할 당시 한창 한류가 뜨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원웨이 방식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양방 소통이면 어떨지를 생각했다. 한류 문화의 단순한 수출이 아닌 문화의 교류 말이다. 해외에 우리 것을 알리고, 그들의 것을 우리에게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서로 대등하게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거지. 다행히 한국은 패션, 미용, 헤어에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관련 산업들과 동반 성장이 가능하다고 파악했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을 통해 궁극적으로 문화를 교류하고 이를 기반으로 관련 산업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게 지향점이라 이해된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 행사의 슬로건은 ‘유럽은 한국을 통해서 아시아로, 아시아는 세계로’ 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가 단순히 무역로가 아닌 동서양 문화 교류의 통로였던 것처럼 모델을 통해 문화, 패션, 뷰티, 미용 등 관련 산업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는 게 목표다. 이러한 플랫폼을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단순히 따라 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SNS에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한 사람이 늘고 있고, 그 세상만의 롤모델이 있다. 내가 아까 말한 ‘모델로드’에서 ‘모델’이란 닮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형상화한 단어라고 보면 된다. 무대에 서고 광고에 나오는 이런 특정 직업인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롤모델’의 ‘모델’을 의미한다.
플랫폼을 준비하며 주력한 부분은.
플랫폼이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유명한 연예인을 내세운다면 잠시 사용자들의 흥미를 유도할 수 있겠지만 그건 일시적이다. 사용자들은 공감할 수 없다면 더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요즘의 트렌드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이다. 꼭 배우나 유명인만이 가능한 게 아니라 나도 할 있는 것, 그 점이 핵심이다. 예를 든다면, 요즘 피트니스 모델에 왜 열광할까. 그 이유는 가능성에 있다. 개인이 배우와 가수처럼 되는 건 힘들다. 하지만 피트니스 모델은, 열심히 운동하면 자신도 그 모습을 가질 수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멀리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우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자신이 노력해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큰 거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을 추진하며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이다.
남이 안 했던 일을 처음 하는 것이기에 힘든 건 당연하다. 게다가 세 가지 행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사실, 신인 모델 선발에 주력하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단순한 모델 선발 대회는 많아도 너무 많다. 좀 전에 얘기한 닮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즉 ‘모델’을 형상화하는 행사로 발전시키려면 위의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우리가 사단법인, 비영리법인이다 보니 운영에 한계가 많다. 단독으로 펀딩할 수 없고 오로지 협찬에 의존해야 한다. 생각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현실은 발 묶여 있는 상태인 거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이 한국에서 개최된다고 한국 사람만 관심 가지리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제적인 행사이니만큼 점차 유럽의 큰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 기대한다.
패션·뷰티 산업계에서 한국 시장의 위상은.
현재 유럽은 한국을 지표로 아시아 시장을 가늠하려 한다. 한국은 ‘끓는 냄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그만큼 열정적인 시장이다. 다국적 기업인 로레알, 멀츠 등이 한국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 중국에 집중하다
최근 ‘페이스 오브 차이나’ 행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이번엔 특히 한국 사업가가 많이 동행했는데 느낀 점이 많다. 다른 아시아 로컬 행사가 ‘페이스 오브 아시아’ 결선 진출자 선발이 주목적이었다면 이번 중국 행사는 좀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결선 진출자를 선발하는 게 아니라 한복쇼를 비롯해 양국 전통 의상쇼, 스타들이 참여한 음악 공연 등의 다양한 문화 교류 행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중국에 공을 많이 들이는 거로 보인다. 이유는.
페이스북도 못 한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중국은 현재 페이스북을 막아 놓고 있고, 우리도 중국 플랫폼을 직접 이용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지인과 협업한 현지 행사를 통해서라면 플랫폼 이용이 가능하다. 이건 중국과 한국 모두 윈윈하는 거다. 중국은 한국을 통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한국은 중국 내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 아시아모델페스티벌 참가국이 아시아 27개국이다. 이들을 다 수용하기엔 한국의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 어마어마한 중국의 시장을 우리 콘텐츠로 이용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기 위해선 중국 현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 생산이 필수이다. 아시아는 사계절이 있고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우리가 아시아 시장의 뉴미디어 콘텐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한국 시장의 협소함쯤은 얼마든지 타개할 수 있다.
# 촌뜨기 모델 되다
84년 ‘도투락’ 아이스크림 모델로 데뷔했다.
난 충남 공주 출신으로 학교를 대전에서 나왔다. 처음 올라온 서울은 참 낯설었고 스스로가 촌뜨기처럼 느껴졌었다. 의상, 헤어, 사고방식 등의 고정관념을 깨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당시는 일명 ‘가방 에이전시’라는 게 있었다. 지금 같은 체계적인 에이전시가 없었던 때라 모델 사진을 가방에 넣고 사무실을 방문하여 출연 섭외를 하곤 했었다. 처음에 촬영비를 가져오면 데뷔를 시켜준다는 등 사기 비스름한 것도 많을 때였다. 데뷔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난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84년 데뷔 후 군대 갔다 오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게임으로 이어지는 광고 열풍의 시대가 와 있었다. 그런데 모델 희망자는 지금보다 현저히 적었다. 한 마디로 일은 많고 사람은 적었던 거다. 유명 탤런트가 CF 업계를 장악하다 보니 중복 출연이 많았기에 광고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전문 모델과 외국인 모델 수요가 증가했던 상황이었다.
영화배우를 해도 좋을 외모다. 배우로 진출할 생각은 없었나.
전혀. 정서가 중요하다. 시골에서 주로 자연을 접하며 살았기에 매체를 통한 직, 간접 경험이 부족했고 따라서 상상력과 정서가 풍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투리라는 약점이 있었기에 스스로 모델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옳은 판단이었던 게, 이후 내 광고를 본 관계자들에게 연락이 와서 몇 번 연기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잘 안 됐었다. 나한테는 30초의 짧고 굵은 연기가 어울린다. 긴 호흡의 연기는 어렵더라.
# 모델은 사업가로, 사업가는 교육자로, 교육자는 모델업계 대표로
전문 광고 모델 1세대이다. 빨리 현역에서 은퇴한 느낌이다.
한 10년 정신없이 활동하다가 ‘코닥필름’ 광고를 마지막으로 30대 초반에 현역을 떠났다. 모델은 생명력이 짧은 편이다, 승진이나 퇴직금도 없다. 후배에게 밀리기도 일수다. 때문에 현역에서 잘 나갈 때 이후의 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낭떠러지에 몰리곤 한다. 우리끼리 오죽하면 ‘전문 면접인’이라고 칭하겠는가. 그만큼 모델은 매번 미팅에 참여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게 일이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면접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모델 수요가 공급보다 컸던 풍요의 10년 동안 누린 경제적 부가 만만치 않았을 거 같다.
내가 CF, 카탈로그 등 총 3000편 이상의 광고에 출연했었다. 당시 야구 선수 선동열보다 더 나은 수입을 기록한 해도 있었다.(웃음) 하지만 좀 전에 말했듯 많이 벌어도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벌어 놓은 돈을 발판으로 모델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모델 아카데미는 교육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 건가. 이후 순조로웠나.
모델 에이전시와 모델 연기학원을 동시에 운영했다. 사업이라는 게 기복이 있지만, 아카데미는 상당히 잘 됐다. 문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서 내가 여러 가지 일을 겸임했던 거다. 저녁에 대학원을 다녔고, 낮에는 사업, 그리고 협회일 하다보니 사업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니 사업 확장에 한계가 있더라. 결국, 다른 사람에게 사업체를 넘겼다. 지금처럼 판을 키워 팔았다면 돈을 벌었겠지만, 당시는 요즘 같은 시스템이 아니었다.
한 가지 일로는 성에 안 차는 건가.
그럴지도. 모델 아카데미 운영 중에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으니까. 처음 대덕대학에 모델학과를 개설했고, 이후 서경대학교로 옮겨가 모델 관련 학과를 3개 개설했다. 현재 모델학과가 있는 4년제 대학교는 서경대학교와 동덕여자대학교 두 곳뿐이다.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지금도 서경대학원에서 강의 중이다.
모델, 사업가, 교육자 어떤 일이 가장 만족스럽던가.
만족이라는 건 없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기 마음에 달렸다고 본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거고 불만족하다고 생각하면 불만족한 거지. 상상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기획해서 만들고 추진해서 성공하는 게 정말 힘들다. 간혹 내가 뻥쟁이 아닌가 자문하곤 한다.
이유는.
주제넘게 내 힘에 부치는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다. 사업을 정리하고 교수로 재직하며 모델업계의 대표가 됐다. 업계를 대표해서, 이 시대에 맞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고민 중이다.
# 갈 길이 멀다
인생의 황금기를 꼽는다면.
모델에서 사업가로, 교수로, 모델업계의 대표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 왔다. 아마 각 롤에 따른 황금기가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굳이 말한다면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이다.
만족의 기준이 높은 것 같다. 당신을 이렇게 열심히 뛰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내가 속해 있는 업계를 위해, 국가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업계와 국가를 위해 얼마나 생산성 있는 일을 하고 있냐는 거지. 그 점이 내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다.
그 결과를 자평한다면.
뷰티, 미용, 패션 등의 분야에서 자국의 문화에 타국의 문화를 입힌 콘텐츠를 생산하여 ‘아시아 모델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하려 했고, 어느 정도 결실을 얻었다. 향후 한국은 아시아 뷰티와 패션 콘텐츠를 선도하는 생산국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모델협회의 향후 로드맵은.
크게 두 가지다. 모델로, 교육자로 세계에 진출하는 거다. 한국은 패션 시장이 너무 작기에 패션모델이 설 자리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나이를 조금만 먹어도 설 자리가 없어지고 실질적으로 할 일이 없다.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이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 잡는다면 각국에서 진행되는 로컬 행사도 자연스럽게 규모가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모델들이 해외로 나가 교육자로서 활동을 넓힐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모델학과가 전국에 20여 개 정도 개설돼 있는데 인구에 따른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드는 구조라 교육자의 수요가 많지 않다. 때문에 교육자의 해외 진출이 필수다. 또, 중국에 한국 모델을 진출시키는 것이다. 중국 패션 위크는 서울 콜렉션보다 몇 배나 큰 규모를 자랑한다. 중국뿐 아니라 밀라노, 파리 등 세계 무대로 내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해 아시아모델페스티벌을 부산국제영화제만큼 키우는 게 목표다.
# 양의식
‘일’에 대한 열정과 소명이 느껴진다. 개인적인 질문이다. 평소 영화를 즐기는 편인지.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다면.
영화를 좋아한다. 개봉에 맞춰 일부러 찾아다니진 않아도 채널 돌리다가 많이 본다. (웃음)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전쟁 영화 <퓨리>(2014)가 좋았다.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더라.
최근 행복했던 순간은.
사실 5월 3일부터 시작하는 아시아모델페스티벌 준비로 정말 정신없이 보내는 중이라 행복을 느낄 짬도 없다. 그런데 이번 ‘페이스 오브 차이나’ 행사를 치르며 너무 기뻤다. 사드 이후 중국과 냉각됐던 관계가 최근 어느 정도 풀어졌는데, 우리가 제일 먼저 중국에 들어가 행사를 한 거다. 거기다 이번 5월 3일 남산한옥마을에서 진행되는 아시아美페스티벌이 한·중 공동개최로 진행된다. 솔직히 뿌듯하다.
2018년 4월 1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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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