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치즈인더트랩>의 ‘홍설’은 대학생 역이다. 서른 살 넘어 대학생을 연기하니 어떻던가.
출연한 모든 배우가 서른 살이 넘었다. 20대 연기를 하려니…(웃음) 웹툰에 나오는 대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마지막 캠퍼스물이라고 생각하고 촬영했다
‘유정 선배’를 연기한 박해진도 어려 보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대학생은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더라. 딱딱한 느낌 없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복장을 고르는 데 신경 썼다. 다행히 촬영 당시 날씨가 워낙 좋아 자연광 덕도 좀 본 것 같다. 그 좋은 날 캠퍼스를 걸어 다니는 대학생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싱그럽게 느껴지고, 또 싱숭생숭하기도 하더라.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 비해 영화 <치즈인더트랩>은 로맨스는 다소 줄고, 스릴러는 늘어난 느낌이다.
감독님이 충분히 고민한 부분으로 알고 있다. 워낙 원작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다 보니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어떤 내용을 선택하고 또 집중할지 결정해야 했다. 영화 전체 분량에 비하면 스릴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기다 보니 관객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정작 촬영할 때는 로맨스 분량이 많았는데 편집 과정에서 많이 잘려나간 듯 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웃음) 그래도 영화를 위한 선택일 것이다. 두 시간 내내 로맨스만 보면 지루할 수도 있으니까.
당연히 불편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 계층이든 폭력에 노출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치즈인더트랩>이 경각심을 일으켜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다.
캠퍼스 로맨스물인 만큼 촬영하며 당신 대학 시절도 떠올랐을 것 같다.
당시만 해도 배우를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지금만큼 유명하지도 않아서 학교 다니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조금 게으른 데도 있는 학생이어서 가끔 학교에 안 가는 날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 장학금을 받아보고 싶다. 받고 싶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연극영화과를 전공한 거로 안다.
연영과는 봄이나 방학 즈음에 연극을 준비한다. 그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도 아쉽다.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동기, 후배와 함께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하고 싶었는데 대학생 때는 워낙 신인일 때라 급작스럽게 오디션을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 학교 활동에 욕심을 내기 어려웠다.
정확히 언제 데뷔한 건가.
다들 잘 모르시겠지만(웃음) 중학교 때 가수로 데뷔했다. 그 후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는 예쁜 옷 입고 화장하는 배우나 가수가 참 화려하고 좋아 보였다. 그 직업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나 시련은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어릴 때 데뷔했다. 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면서 당연히 고민의 시절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자기 전공을 계속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취직을 해야 하나? 특히 20대 때는 여러 좌절을 경험하면서 배우를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다. 비록 몇 개월이었지만.(웃음)
계속해오던 걸 그만두려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그럴 용기가 없었을 수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들어가는 건 겁이 많이 나는 일이다. 연영과 출신 학생들은 이론보다는 실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갑자기 수학, 영어 같은 공부로 전향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취직도 쉽지 않다.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겪어보니 정말 그렇다. 그렇게 오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물론 운이 좋기도 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 ‘버틴’ 셈이군.(웃음)
어떤 선배들은 배우가 버티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 또 누군가 너의 진가를 알아준다면서.(웃음) 캐스팅을 하는 사람도 다들 성향이 다르다.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지만 또 누군가는 나를 좋아할 수도 있다.
물론이다. 예고 출신이라니, 평소에 궁금했던 걸 묻고 싶다. 예고에서 배우는 다양한 실기 항목이 배우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
사실 별 쓸모 없더라.(웃음) 예고에서는 뭘 엄청 많이 가르친다. 탭댄스, 현대무용, 요가, 필라테스, 헬스, 수영… 그런데 바짝 열심히 배우고 다 까먹는다. 일반 학생들이 시험 전에 벼락치기 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연기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니, 어떤 기술을 잘 습득한다고 해서 훌륭한 배우가 되는 건 아니다. 발음이 훌륭하거나 표정이 다양하다고 해서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눈빛 하나만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해내는,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배우도 있다. 그래서 연기가 참 어렵다. 살아온 인생이 서로 다르니 거기에 영향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
당신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 배우가 있다면.
전도연 선배가 참 대단한 것 같다. 작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어떨 땐 굉장히 세련됐다가, 또 어떨 땐 팜므파탈 같다. <밀양>처럼 화장을 아예 안 한 소탈한 얼굴로 나오기도 한다. 사실 예쁘지 않게 보이는 얼굴로 촬영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걸 과감하게 해낼 때 멋있어 보인다. 변신을 잘 하는 배우가 좋다.
예쁘지 않게 보이는 얼굴이 조금은 걱정되는 모양이다.
망가지는 연기에는 열려있다. 안 예쁘게 나와도 된다. 대신 내가 그렇게 나와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시킬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론이 얼마나 멋진가. 그 정도로 매력적이라면 다른 배우도 다들 연기하려 들걸?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시나리오가 많지 않다.
언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남는 시간에 이것저것 배우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별로 잘 하는 건 없다.(하하하) 배우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장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배우는 게 제일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현장에서 무조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그런 태도를 지켜봐 온 분들께는 ‘열심히 하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쌓이지 않았을까.
드라마에 비해서 영화는 많이 출연하지 않았다.
드라마를 활발하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드라마는 좀 친절하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라면 영화는 약간 전쟁 같은 느낌이다.(웃음) 두세 신만 나오더라도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다. 그렇게 조금만 나오더라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수 있는 게 영화니까.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많다.
그렇군.
여전히 어떤 과정 중이다. 안 맞는 옷(역할)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시도해보지 않으면 그게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도전한다. 다음 작품에서도 재미있는 도전을 하고 싶다.
어떤 역할이 탐 나는가.
검사,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연기해보고 싶다. 드라마 <미스티>(2017)의 김남주 선배만 봐도 얼마나 멋있나. 려원 언니가 했던 드라마 <마녀의 법정>(2017)의 검사 역할도 마찬가지다. 대사가 길고 어렵다는 게 좀 부담스럽긴 하다. 대사를 틀리면 다른 연기까지 다 무너지니까. 드라마 <메티컬 탑팀>(2013) 때는 심지어 어리바리 레지던트 역할이었는데도 어려웠다.(웃음)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어젯밤에 추리 소설 한 권을 다 읽었다. 하나의 챕터가 끝나는 게 너무나 아쉽더라. 나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다시 서점에 가볼 생각이다. 드라마를 할 땐 대본을 외워야 하고 이동 시간도 많아서 책을 잘 못 본다. 시간 제약 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으니 이런 게 행복이지 싶더라.
2018년 3월 21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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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리틀빅픽처스